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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29. 수요일

벨테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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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815) 이후 최초로 만들어진 법률은?

 

정답은 사면법(법률 제2)이다. 법률 제1호 정부조직법이 사면법보다 먼저 제정되긴 했으나 이는 정부 수립 전인 1948717일 헌법과 함께 공포되었기 때문에, '정부 수립 후' 만들어진 법률로서는 사면법이 최초인 것이다. 정부조직법이 불과 1년도 안 된 1949322일 개정되는 운명을 맞이했던 것과 달리, 1948830일 제정된 사면법은 2008322일 일부 개정될 때까지 거의 60년 동안 일자일획의 수정도 없이 의연하게 법률의 지위를 지켜왔다.

 

덕분에 참여정부 시기인 2007년까지도 '좌에 열기한 자' '형의 언도를 받은 자' '검찰관' '형무소장' '첨가진달' 등과 같은 고풍스러운 보캐뷸러리들을 살아있는 법률용어로써 공부하게끔 해준 뜻깊은 법률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이런 단어들은 2012년까지도 살아있었다!)

 

그 클래식한 사면법이 적용되었던 마지막 이벤트, 바로 200811일자 특별사면이 73개월이나 지나 새삼스레 주목을 받고 있다. 하필이면 사면을 해준 사람도 사면을 받은 사람도 고인이 된 다음이다. 사면은 과연 나쁜 짓일까?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제헌국회가 정부수립이 되기 무섭게 사면법을 제정한 까닭은 조국의 광복과 정부 수립에 맞추어 현재 각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2만여 명의 죄수를 사면함으로써 조국 광복의 기쁨을 같이하고 이들에게 재생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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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6일 오전 9시. 마포형무소 앞

뒤늦게 광복 소식을 접한 민중들


그렇다. 일제강점기와 미군정을 거치며 공정하지 못한 법률과 사법시스템으로 처벌받았던 이들을 구제해줘야 할 필요성과 함께, 좌우대립으로 인한 사회의 분열을 극복하고 신생 조국의 국민통합을 이룩하려면 사면과 같은 이벤트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1948년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해 적용될만한 명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찍이 부여에서 '영고'라는 제사를 지내며 죄수를 사면해 주었던 이래, 수천 년간 국왕의 즉위 등을 기념해 사면령이 내려졌던 건 역사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이들도 익히 알만한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고.

 

하여 제헌헌법 이래 현재까지 헌법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을 규정하고 있는 것 또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라 하겠다. 이후 수십 수백 번의 사면이 단행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입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윤보선,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이명박이 사면, 복권의 대상이 되었다. 이승만의 경우에도 고종 황제 시절 사면된 사례가 있었으니 사면의 은혜는 가이 없다 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형사처벌 받은 적이 없어 사면 받은 적도 없다. 아직까지는. 그러나 종북세력(a.k.a. 남로당)에 연루되어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은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가 다시 군에 복귀하는 과정을 통해 사실상 사면, 복권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씨 또한 마약사건으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았지만 사면 받은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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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23일자 <경향신문>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7년 전 사면의 적정성을 물고 늘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당시 사면 대상자였던 75명 중 오직 한 사람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만을 겨냥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참여정부와 엮어 물타기 해보려는 허접한 정치 공세인 듯싶었으나, 급기야 정사를 돌보기 어려울 정도의 중병에 시달리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메시지를 발표하며 곧 검찰 수사로 이어질 기세다.

 

! 불과 열 달 전까지 새누리당 국회의원이었고 죽기 직전 인터뷰에서조차 '어느 누구보다도 한나라당을 옛날부터 신한국당 때부터 사랑하고 아꼈잖아요'라고 열렬히 고백했던, 심지어 '한나라당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 차례 거액의 정치자금을 상납했다던 사람이 사면 한 번, 그래 통크게 인심 써서 사면 두 번으로 친노 야권 인사가 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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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tv>


더구나 그렇게 사면 받자마자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자문위원으로 가담하는 것은 물론, 한나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출마까지 준비했던 사람을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악착같이 사면해줬겠는가? 그 사면으로 어느 당, 어떤 정치세력이 이득을 보게 될지를 생각한다면, 사면을 밀어붙인 '보이지 않는 손'이 누구였을지도 대충은 짐작할 만 하지 않은가. 하물며 함께 사면 받은 김우중, 한화갑, 박지원, 이기택 등 쟁쟁한 인물들이 전부 끝나가는 참여정부에 빌붙어 사면을 받았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사면이란 기본적으로 죄지은 사람을 풀어주는 것. 당연히 말이 많을 수밖에 없고 신중한 고민 끝에 행사되어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전에 사면된 적이 있다고 해서 절대 사면해주어서는 안된다거나, 나중에 다시 범죄에 연루되었다고 지난 사면이 위법해지는 것은 아니다.

 

성완종의 첫 번째 사면은 여야 모두 관행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2002년 대선 이전의 정치자금 제공에 관한 건이었으며, 유사한 혐의로 처벌받았던 정치인과 경제인 대다수가 함께 사면 받았다. 아울러 두 번째 사면은 소위 행담도 사건과 관련 120억 원을 빌려주며 이자를 받지 않은 점에 대해 배임죄를 적용한 건인데, 첫 번째 사면 전에 이루어진 행위인데다 형량 또한 사실상 집행유예의 하한선인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었다. 항소심 재판부의 의지에 따라선 벌금형도 가능했던 사안이라는 것.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두 번 다시 사면해줄 수 없을 정도의 중죄일지는 의문이다.

 

물론 성완종은 사면 후 다시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데 이어, 자원외교 비리 의혹에 연루되어 수사를 받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김기춘, 부산시장, 유정복, 이병기, 이완구, 허태열, 홍문종, 홍준표 등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의혹 역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과연 성완종에 대한 사면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 사면 받고 나서 또다시 사고를 친 사례는, 성완종을 비롯해 새누리당 정치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어느 정권에서 사면되었는지 가리지도 않는다.

 

예컨대 성완종에게 1억 원을 받았다고 지목된 홍준표 경남지사는 선거법위반으로 당선무효 & 피선거권박탈 크리를 먹었다가 2001년 광복절특사로 재기할 수 있었으며, 성완종에게 2억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홍문종 의원 역시 선거법위반으로 피선거권을 상실했다가 2011년 광복절특사로 가까스로 복귀할 수 있었다. 홍준표야 사면 받은지 10년 가까이 지나서 일어난 일이라 해도, 불과 1년 남짓 만에 또 다른 범죄혐의가 있는 홍문종에 대한 사면의 적정성은 한번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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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탓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철창 속에 계신 듯한 홍준표 경남도지사

출처 - <오마이뉴스>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를 돌렸다는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명박 퇴임 직전인 2013년 사면 받은 그는 불과 2년도 안되어 다시 골프장 캐디를 성추행했다가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사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성추행은 집행유예 결격 사유에 해당되므로 꼼짝없이 무상급식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사면 받았던 친박계의 좌장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그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혐의(a.k.a. 차떼기)로 징역 1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가 2006년 광복절특사로 피선거권을 회복했다. 이후 친박연대 대표로 재기하는 듯 보였던 그는, 이번엔 비례대표 공천헌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징역 16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다. 2010년 광복절특사로 감형 받았던 그는 위에 언급한 2013MB의 마지막 사면 당시 완전한 복권이 되었다. 말하자면 세 번 사면 받은 셈.

 

재미있는 것은 서청원 최고위원이 대선자금 재판 당시 1년 가까이 진행해오던 항소를 돌연 취하해 집행유예 판결을 확정 시켰다는 점. 이에 대해 2005년 석가탄신일 사면을 노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으나 당시엔 추징금 문제로 사면 대상에서 제외 되었다능. 이를 보면 항소를 포기하거나 취하했다고 하여 반드시 사면에 대한 언질을 받은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성완종 사면을 문제 삼으려면 위 모든 사람에 대한 사면도 다 한번 따져보는 게 공평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러잖아도 불공정한 검찰권 행사로 국민들의 피로가 누적된 상황. 개인적으로는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광복절엔 광범위한 사면을 통해 민심을 다독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과거 처벌받았던 정치인, 경제인, 관피아(!) 등도 다수 구제되겠지만, 최소한의 기준과 형평성만 지킨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으리라 본다. 당연히 비난이 있을 것이다. 허나 사면이란 게 원래 그런 여러 가지 논란을 감수하고 내리는 통치권자의 결단인 것이다. 비난이 두렵다면, 사면제도를 없애는 수밖에 없다. 헌법을 바꿀 수 없다면, 솔선을 수범하는 자세로 박근혜 정부부터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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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에 대한 각하의 속마음

 

무엇보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의 유죄판결이 확정될 경우 적어도 박근혜 정부에선 이들에 대한 사면이 이루어져선 안 될 것이다. SK, CJ, 태광그룹의 오너들, 선거법 위반으로 장기간 활동을 할 수 없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전임자의 사면권 행사를 비난하고 법적 책임까지 물으려는 듯한 박근혜의 대국민메시지는, 당장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쓸 수 있는 카드를 날려버린 자충수가 될 것이다. 임기가 절반 넘게 남은 가운데 이처럼 수습할 수 없는 멘트를 남발하는 건, 레임덕을 부추기는 지름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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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