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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30. 목요일

Samuel 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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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7.9지진 - 현지 특파원의 생생보고(28일 오후 1시 45분 추가)

네팔 지진 4월 29일 현지특파원 소식: 상상하는 네팔과 실제의 네팔

네팔 지진사태 보도에 할 말이 좀 있다






오전 7시 50분. 부슬비를 뚫고 대한항공 특별기가 도착했다. 내가 알고 있는바로는 수학여행(?)왔던 고등학생과 교사 48명, 그리고 일반 여행자 30명을 태우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평소였으면 월요일과 금요일에 볼 수 있는 비행기 찍으러 갈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기록해줘야 할 것 같아서 착륙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나가서 두 컷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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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반갑긴 하더라. 내일 또 올 비행기지만




1. 느려터진 정부 행정에 분노하는 시민들


화요일부터 네팔정부는 정부 각 부처로 일을 분배하기 시작했는데, 각 부처별 언론 담당자들도 안 알려주는 것은 물론, 아마도 당연하게(?!) 인수인계가 제대로 된 것 같지 않다. 전기 없으면 전자정부 같은 거 만들 수 없고 종이서류로만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 서류 들고 사람이 돌아다녀야 한다. 그런데 그 돌아다니는 사람이 차 한 잔 하러 나갔다가 서류 잃어버리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는 곳이 네팔인데 뭐 이 정도야 했지만... 많은 것을 잃어버린 이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구조대와 구조물품이 도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지진 첫 날 저녁부터 나오기 시작했지만 자신의 손에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음에 분노한 약 200여명의 시민들은 제헌의회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카트만두에서 약 3km 떨어진 상가쪽 마을 사람들도 구호물자가 하나도 오지 않은 것에 분노, 타이어에 불을 붙여 길을 막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식량과 각종 물자들을 실은 트럭들이 카트만두로 달려갈 뿐 자신들을 위해 멈추지 않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말했지만 이 재난은 네팔 정부 혼자서 해결하기엔 피해규모가 너무 크다. 안 그래도 허약한 인프라 구조에서 종합적으로 정보를 취합하고 적절한 대응을 할 상황이 못 된다. 그나마 초기엔 내무부에서 일괄적으로 지휘를 했지만 재난 규모가 너무 크니 각 부처에 이첩했다. 그 과정에서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돼 놓으니 피해 현장 상당수에서 민간 자원봉사자와 경찰, 군, 무장전투경찰, 해외구조대가 따로 국밥으로 움직이고 있다. 아마 이 혼란이 다시 정리되는 데는 며칠 소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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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요청에 따라 자원봉사자들이 도로 통제를 맡고 있는데, 이게 서로 상충되는 경우도 있다. 일방통행으로 나가게 만들어야 하는데 한 길을 놓고 양쪽 반대쪽에서 보내기도 한다.




2. 카트만두를 떠나는 시민들


기사 송고하는 중에 여진이 오는 것을 한 두번 겪은게 아니다. 솔직히 무섭다. 실낱 같던 정부에 대한 신뢰가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어제, 4월 29일 저녁까지 카트만두시 교통경찰은 338,932명의 카트만두 시민들이 카트만두를 떴다고 발표했다. 어제 시내 피해현장 한 번 더 보고 지진으로 집 잃어서 밥 굶고 있다던 네팔인 지인 찾아 카트만두의 이태원이라고 할 수 있는 타멜로 가던 중, 수 많은 사람들이 짐을 챙겨들고 길가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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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역은 인도와 맞닿아 있어서 물자 이동이 아무래도 쉽고 지진 피해도 비교적 적은 편이다. 북동부의 쿰부 같은 곳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고향으로 친척집으로 떠나고 있는 것이다. 타멜의 여행자 거리는 여전히 문 닫은 상태로 극히 일부만 정상영업을 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어제 저녁까지 자국민 2700여명을 대피시켰고 중국인들을 주로 상대하던 숙박업소들과 식당들도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다.




3. 피해현장들


대형 아파트들의 경우 지진 첫 날에는 큰 문제가 없어보였는데 계속 이어졌던 여진은 이기지 못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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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 사이에 고층아파트들이 부쩍 들어 섰는데, 지진으로 미분양 사태가 속출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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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발 광장과 타멜로 이어지는 거리에 있는 조금 오래된 집들은 상당수가 이렇게 집 어딘가가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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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하면 주로 연상하는 이런 벽돌+목조 구조의 주택들이 가장 피해가 컸다

 

 

사람들이 정부에 분노하게 되는 것들 중에 하나는 이런 현장들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것. 아니 최소한 붕괴했을 때 다치지 않도록 경계선이라도 붙여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청들을 높이는데... 솔직히 난 그런 경계 라인을 붙여놓는다고 해서 이 분들이 그걸 그대로 지킬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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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근에 지어진 대형 쇼핑몰 중에서 CTC몰은 거의 붕괴 직전 상태로 보이는데 경계선 하나 안 쳐져 있어서 그 옆으로 차들은 물론 사람도 막 지나다니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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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모여드는 자원봉사자들


네팔 불교의 뿌리는 사실 거의 사라졌고 티벳 불교가 다시 내려와 자리를 잡는 상태다. 그리고 티벳인들, 특히 티벳 스님들은 네팔 공안부서가 중국 공안과 협력해 감시하는 대상이다. 지난 마오바디 정권 시절에는 요시찰 대상을 정기적으로 중국에 넘겨주는 대가로 이런 저런 협력을 얻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 재난에서 자주 보이는 분들은 바로 티벳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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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식 만두집에서 공짜로 밥 준다고, 찾아오라는 광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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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급식에 나서고 있는 티벳인들

 

 

네팔은 국제 NGO가 항상 찾는 곳이다. 이번에 들어와 있다가 이 재난을 맞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하는 단체들은 쉽게 만날 수 있다. 모금부터 시작하는 이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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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거리 타멜의 사장들은 사실 꽤 부자들이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위해 경찰과 논의하고 있다.


살다보면 별 일이 다 있긴 한데... 내가 이스라엘 군인들을 보고 반가워할 줄은 몰랐다. 구조팀으로 와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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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지진 이후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갑자기 땅이 흔들리거나 꺼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실제로 그런게 아니라 그런 착각을 하는것. 나 혼자 그러는 것 같았는데 일본의 동북 대지진을 겪었던 트친들께서 그런 경험을 한다는 말씀해주시는 걸 보고 나서야 이게 PTSD의 일종이구나 싶었다.


어제, 5일차가 되어서 처음으로 집에 들어와서 잤는데 자던 와중에도 두 번이나 뛰쳐나갔었다. 장인어른께서 비슷한 착각을 하고 '지진이다!'라며 가족을 모두 깨웠던 것. 공항에서 가까워 비행기 이착륙 때 진동을 가끔 느끼는 경우가 있었는데 비 온다고 천둥까지 치고 있었으니 그러셨던 것 같다.


무덤덤하게 있으면서 가끔 농담도 하고 그러고는 있는데, 이게 어떤 형태로 내 무의식을 지배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진 6일차, 네팔 카트만두에서.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저자 Samuel Seong 

트위터 : @ravenclaw69


편집 : 딴지일보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