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4. 30. 목요일
벨테브레
이미지 출처 - 한겨레
결국 펠레가 되었다. 누구나 야권의 불리함을 예상하는 가운데 영혼까지 끌어모아 '적어도 2석 이상'을 질렀으나 끝내 혹세무민을 피하지 못해 부끄럽다. 아울러 몇시간이나마 희망고문을 당하게 해드린 점 사과드린다. 각종 여론조사나 양당의 판세예측보다도 훨씬 표차가 더 벌어져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부끄럽지만 하일성 씨의 명언 '야구 몰라요'와 '역으로 가네요'를 되뇌며 뻔뻔하게 다시 글을 쓰도록 하겠다. 패인을 분석해야 개선도 할 수 있을 게 아닌가? 물론 예측도 틀린 놈이 분석은 제대로 하겠느냐는 지적 또한 피하지 않겠다.
사실 이번 재보선에는 처음부터 큰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졸렬했지만 헌법재판소에 부여된 권한 내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의원직 상실 결정은 헌법과 헌법재판소법 어디에도 근거하지 않고 막 지른 것이다. 하지 말았어야 하는 선거란 뜻이다. 거기에 여야 모두 전국적 인지도보다는 지역에 특화된 후보를 내세웠다. 야당 입장에서야 명망가와 전략공천을 남용하다 참패한 작년 7.30 재보선의 반작용도 있었겠지만, 전국적으로 바람을 일으키기엔 역부족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야당의 후보들이 상대방보다 더 지역에 밀착해 있었느냐 하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는 게 함정. 특히 성남 중원과 서울 관악을의 경우 해당 지역에서 재선을 한 신상진이나 구청장, 국회의원에 연달아 출마하며 이름을 알려온 오신환에 비해, 첫 출마인 정환석이나 정태호는 인지도에서부터 밀리고 들어갔던 상황. 두 정씨가 지역에서 활동한 기간이 짧지 않음을 생각해 보면, 야권 단일화로 인해 몇년간 출마 자체가 원천봉쇄된 후유증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지역현안을 꿰뚫고 있는 상대 후보에 비해 뻘짓을 하는 경향도 곧잘 볼 수 있었는데
이 사진은 딱 한달 전인 3월 31일 서울 관악을 지역에 해당하는 대학동 고시촌에 걸린 여야 3당의 현수막이다. 위에서부터 새누리당, 정의당,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이 지역을 오고 가는 평균적인 고시생들과 그들로 인해 먹고사는 주민들의 입장에서 가장 호소력 있는 현수막은 과연 어떤 것일까? 심지어 두 야당은 추상적인 구호를 '...하겠습니다'로 끝낸 반면, 새누리당은 이미 법안이 발의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현수막 하나 별거냐 싶지만 이렇게 각 당의 내공 차이가 드러난다.
그런데다가 '유능한 경제정당', '국민의 지갑을 지키겠습니다'라는 구호를 내세우다 소위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후 '정권교체', '친박게이트 심판'을 들고나온 것도 스탠스를 잃고 메시지가 흐려진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권교체는 아직 멀었고, 친박게이트를 심판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렇게 요란하게 떠들지 않아도 알아서들 야당 찍는다. 조금 더 싫은 소리를 하자면, '경제정당'이나 '지갑지킴이'라는 구호만 내세웠지 이를 뒷받침할 능력은 한계에 부닥친 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
개인적으로 선거운동 기간 중 신림역을 지나가다가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서 멀티비전이 달린 유세용 차량 한 대를 세워놓고 그 주변에 여러 명의 선거운동원이 로고송에 맞춰 율동을 추는 걸 본적이 있는데, 딱 드는 생각이 '저거 다 우리 세금 아녀?'였다. 그런 상황에서 지갑을 지켜드리겠다는 메시지는 모텔 앞에서 '오빠 믿지?'를 속삭이는 것 만큼이나 호소력이 없을 것 같았다.
더 서글픈 건 그날 정장에 금배지를 단 당 관계자들(시의원, 구의원인듯?)도 다수 동원된 것으로 보였는데, 아마도 자기 선거를 치러본 경험들이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완전 억지로 끌려나온듯한 표정을 하고 있더라는 것.
그만큼 지역 당 조직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당내 경선에서 0.6% 차이로 패한 김희철 전 의원 역시 정태호 지지를 선언하지 않은 채 선거를 마쳤다. 그는 경선과정에서 여러가지 부정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사실관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012년 야권 단일화의 안 좋은 추억이 있는 김희철로서는 피해의식을 가질만 했겠다는 생각. 더구나 김희철이 동교동계에 속하고 정태호가 친노 인사로 분류되는 점을 감안한다면,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중앙당 차원에서 그의 하소연에 좀 더 귀를 기울여줬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오신환 후보와 경쟁했던 김철수 양지병원장에게 20대 비례대표 공천을 공언한 새누리당과 묘하게 대비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건 새정치민주연합의 선거운동에는 '후보'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후보들이 많았던 탓도 있겠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선거운동은 박근혜 정부 심판이나 상대 후보 디스가 아니면, 지원하러 온 문재인 등이 더 부각되는(ex '강화의 사위') 이상한 캠페인이었다. 새누리당의 경우 김무성 대표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명망가들이 찬조출연하면서도, 자신은 어떻게든 낮추고 어떻게든 후보를 살리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심지어 불리한 지역에선 최고위원 지명이나 예결위 배정을 공언하며, 후보들을 업고 다니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야권 지지자들의 결집을 호소하는 것 이상의 선거운동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안 흔들렸다.
다급해진 문재인 대표는 막판 광주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선 당직을 맡고 있는 국회의원이 '더 이상 여론조사는 무의미하다'고 했다는 풍문이 돌 정도로 전패가 유력하게 거론되었던 상황. 그나마 지난해 지방선거의 추억을 되새기며 '미워도 다시 2번'을 바랐겠지만 문재인은 안철수가 아니었고 천정배는 강운태가 아니었다. 어제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천정배에 대한 비판(탈당과 지역구 변경)은 조영택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왔고, 정치생명을 건 천정배와 달리 패하더라도 문재인에겐 큰 타격이 없을거라는 전략적 판단역시 개입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어제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0대4' 패배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표의 거취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대안이 없다'는 것. 문재인이 사퇴할 경우 주승용 최고위원이 대표직을 승계할테지만 그가 총선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을 지휘해 나갈 수 있으리라곤 보이지 않는다. 결국 다시 전당대회를 열어야 되는 상황인데, 대표를 할만한 인물들이 대부분 나가 떨어진 마당에 그럴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을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에서도 모르지 않았을 터. 그렇다면 좀 더 과감한 모습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기본적으로 야권 내부의 싸움이라 할 수 있는 광주에 매달려 있기보다, 당락을 떠나 여당과 승부를 벌여야 하는 수도권에 집중을 했다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야권 입장에서 호남의 중요성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선거 때 그것도 강력한 경쟁후보가 나타나서야 여러 차례 방문하는 이벤트만으로는 마음을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야권 내부에서(경우에 따라서는 이정현 같은 여권 후보와도) 경쟁을 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평상시 보여주는 진정성 있는 행보로 승부해야 할 것이다.
이러란 얘긴 아님.
야권 분열의 원흉으로 불리는 천정배와 정동영에 대해서도 마냥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들의 행보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새누리당을 싫어하면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의 수요는 존재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공간 또한 필요하다. 그것이 설령 야권 분열로 인한 패배로 이어진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야권 단일화를 통한 1대1 구도'가 필승공식이 아니라는 점은 2012년에 증명이 되었다. 통합진보당 사태 후폭풍으로 완전한 단일화는 역풍을 몰고 올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번 재보선에서도 인천과 성남에서는 야권 후보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여당 후보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관악의 경우 정태호와 정동영의 득표수를 합치면 오신환보다 앞설 수 있지만, 야권 분열에도 불구하고 승리했던 2012년을 생각해 보면 여러모로 아쉬운 상황이다.
결국 정권교체라는 명분 하에 단일대오로 뭉치는데 집착하기보다는, 여러 다양한 목소리의 존재를 인정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이길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사표방지심리를 강요하는 소선거구제, 그리고 지역기반이 없는 정치신인들의 진입을 가로막는 여론조사/경선시스템 등을 보완할 필요가 절실하다. 마침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개정이 불가피한 상황. 야권 입장에선 기득권에 안주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이란 점을 직시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여당과의 협상 그리고 공천제도 개혁에 임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웃을 일이 많지 않았던 선거에 깨알같은 재미를 준 무소속 변희재 후보에게 갈채를 보낸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그의 득표수는 578표(0.74%). 무소속 출마를 위해서는 유권자 300~500명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그의 선거운동은 추천해준 사람 이상의 지지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주관적 확신과 객관적 현실의 간극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벨테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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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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