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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06. 수요일

Samuel Seong










재난상황이 주는 가장 큰 문제는 종합적인 정보를 가지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쉽게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위험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가질 수 있는 정보는 사실 단편적인 정보들밖엔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절판된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을 쓸 때 출판사와 가장 먼저 합의했던 게 있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일반인이 가질 수 있는 '제한된 정보'들 중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 정보 값이 무엇이냐에 따라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쓰자는 것. 재난현장에서 알아야 할 정보를 무수히 안다 하더라도 활용하지 못하면 그저 누워있는 정보에 그친다. 실제로 도움이 되고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정보가 되려면, 중요도가 높은 정보가 무엇인지 알고 이를 지표 삼아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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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네팔 지진 보도에서 가장 빛을 발하고 있는 매체들은 대부분 영국 매체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단 여기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작년 가을에 출판된 <카트만두>라는 책이 있다. 저자인 토마스 벨은 <이코노미스트>와 <데일리 텔레그라프> 네팔에 특파원으로 근무하였다(나보다 이 나라에 더 오래 있었다). 무엇보다 아내도 네팔인이다. 이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게다가 이 소식을 취합하는 이들 역시 현지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다. 즉, 전문적인 기자들이 일제히 현장에서 정보를 취합하고 본사로 보내면 본사에서도 네팔의 각 지역에 대해 아주 익숙한 이들이 그 정보들을 가지고 통합된 정보들을 기사로 내보낼 수 있었던 것.


언론이 이렇게 움직이면 해당 국가의 대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영국이 다른 이를 안 보내고 고르카(Gorkha - 카트만두 북서쪽 80km지점, 히말출리산(山) 남쪽 기슭에 위치하며, 네팔왕가(王家)의 출신지로 알려져 있다) 연대만 딸랑 보낸 것도 이번 지진에서 가장 복구하기 힘든 지역이 바로 그 부대원들의 출신지역이고, 그들이어떤 장비로 어떻게 해야 할지 훤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대중과 국가의 눈과 귀가 되지 않고 선정성 경쟁을 벌이기 시작하면, 이런 침착한 대응은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있는 자원, 피해 상황, 대응 우선순위와 관련된 협의가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데, 만약 언론에서 선정적인 기사들을 내보내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정상적인 대응은 애당초 물 건너가게 된다.


처음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천리안으로 카트만두 현지 상황을 보고 기사를 송고했던 두 신문의 기자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냥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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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유종 특파원의 기사

출처 - <동아일보>


여기서 해야 할 것도 많은 데다 안 그래도 생활 자체가 피곤한 이재민이 특파원까지 하려고 하니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고. 그런데 천리안 능력자 중 하나인 <조선일보> 기자가 송고한 기사 내용을 나중에 읽고 나서 말 그대로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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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으로 쓴 기사

출처 - <조선일보>



1. 카트만두에선 정말 어떤 건물도 볼 수 없는가?

 

본 기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장 많이 파괴된 건물은 이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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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 상조회의 건물로 구릉족들의 핏값으로 세워 올린 건물이다. 내 주변의 많은 구릉들이 이 건물이 이 상태가 된 것을 보고 땅을 치고 통곡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본 기자의 거주지에서 딱 2km에 있다.


그 이내의 피해상황? 균열이 가장 큰 집을 정말 이잡듯 찾아다녔는데 대략 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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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도대체 도시가 얼마나 많이 파괴되었는가 보기 위해 며칠을 직접 걸어 다니면서 아래 지도에 따라 여러 지역의 상황을 점검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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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느려터진 인터넷으로 본 기자가 급하게 위치를 표시해 본 카트만두의 구글 위성 사진이다. 박타뿌르(Baktapur), 바산타뿌르(Basantapur), 파탄(Patan)은 카트만두 분지를 구성했던 작은 도시 국가들이다. 이 국가들의 광장을 덜발 광장(Durbar Square)이라 부르는데, 여기가 대부분 무너져 내렸다. 특히 박타뿌르는 도시의 상당부분이 몇백 년 된 건물들이었는데, 그쪽은 정말 다 무너져 내려서 피해가 극심하다.


하지만 카트만두 시내의 상황은 규모 7.9의 지진이 흔들고 지나간(게다가 여진이 거의 100여회 가깝게 지나간) 도시 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아래는 위 지도에서 A라고 표시한 지역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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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무너진 것 보이시는가? 사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저 상태다.

 

위의 지도의 B라고 표시한 지역에서 가장 크게 부서진 건물은 국영통신사인 <Nepal Tele Com>의 훈련센터로, 현재 건물의 상태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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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장재가 붙어 있어서 실제 건물 구조를 확인할 순 없지만, 지진으로 인해 망가진 건 간판이 전부다.


C는 왕궁으로 가는 길(Kings road)이다. 이곳에서 가장 크게 파괴된 곳은 아래 '자미의 담벼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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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지역은 왕궁 바로 앞, 중심가의 나름 명품 샵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물은 아래 사진과 같다. 창문 하나 깨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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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는 카트만두 스타디움인데, 여기도 담장 무너진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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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는 트리푸레솔로 가는 길에 있는 사원인데, 이곳은 흔히 생각하는 지진 피해지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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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의 여행자 거리인 '타멜'에서 무너진 건물은 타멜 입구의 사원 바로 옆의 담벼락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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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멀쩡해 보인다. 적어도 카트만두 도착하면서 공중에서 보고, 그리고 땅에서 봤을 때 기사에서 표현한 것처럼 '아무런 건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라고 할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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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지진하면 바로 연상하게 되는 파괴된 도시의 이미지들은 사실 아주 국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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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산타뿌르 덜발광장에서 시신 수습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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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히 무너진 빔센타워


문제는 이렇게 과장된 기사가 어떤 결과를 낳았냐는 것. 뭐 사실 과장된 기사가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면 도덕적으로만 비난 받을 일이니까.




2. 포카라의 학생들


네팔어로 '포카라'는 호수를 말한다. 이름처럼 큼직한 네와 호수가 있는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라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앞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포카라의 공항에는 중대형 제트여객기가 착륙할 수 없다. 워낙 공항이 작아서. 아니, 지금 네팔에서 중대형 여객기가 착륙할 수 있는 공항은 카트만두의 트리듀번 공항 밖엔 없다. 포카라의 지진 피해는 사실 카트만두에 비해선 훨씬 경미했다. 일부 교민들은 '멀미 좀 할 정도'였다는 참 여유로운 표현을 쓰셨을 정도.


바로 여기에 수학여행이었는지 봉사활동을 왔던 건지, 고등학생들과 교사를 합쳐 마흔 여덟 분이 지진 당시 계셨다고 한다.


그런데 국내 굴지의 일간지가 수도 카트만두가 완전히 붕괴된 것처럼 기사를 써서 보내자 아이들을 네팔에 보냈던 학부모들은 어떤 상태가 되었을 것 같나? 세월호 1주기도 며칠을 지나지 않았는데. 당연히 빨리 귀국시키라고 관계기관에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했지.


<대한항공> 정기 항공편이 월요일과 금요일에 있음에도 목요일 대한항공 특별기가 왔던 이유는 바로 이들을 귀국시키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앞서 이야기했듯 포카라에는 중대형 제트 여객기가 착륙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붓다에어>가 소유한 약 50명을 태울 수 있는 비행기가 이곳에 착륙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이다. 급하게 포카라로 가려고 하면 얘를 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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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보자. 날개에 구멍 보이시는가? 기내 상태는 어떤지 아시나? 영화 <Indiana Jones and the Temple of Doom>에서 히말라야에 꼬나박는 야크랑 같이 탄 비행기 안보다 약간 좋다.


정리하자면, 과장된 기사에 기겁을 한 학부모들이 외교통상부를 쪼았을 때 허겁지겁 주 네팔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포카라로 달려가기 위해 일단 타고 가야 했던 비행기가 저 상태였다는 것이다. 도로로 가면 되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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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지도에서 포카라와 카트만두를 찍고 진앙이 어디였는지 찾아보시라. 거의 정 가운데다. 진앙이 정 가운데인데 저 길의 상태는 어땠을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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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길보다 상태가 훨씬 나쁘다


그리고 무엇보다 25일부터 지난주까지 계속 비오거나 강풍이 부는 등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았다. 특히 포카라의 앞산은 앞서 말했듯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저 공항에 바람 불면 장난이 아니다. 내가 저 비행기를 타고 갔을 때는 바람에 맞서 착륙한다고 비행기가 말 그대로 비스듬히 내렸었다.


대사관 직원들은 여진이 계속 오는 상태에서 비행기를 띄우고 착륙시킬 것이냐, 아니면 다 부셔진 길을 달려서 카트만두로 갈 것이냐를 선택해야 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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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외교통상부에서 학부모들을 설득시킬 방법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세월호가 각인시킨 것은 '가만히 있으라'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따르면 죽는다는 것 아닌가.


국내 굴지의 언론사가 그런 방정을 피우지만 않았다면, 외교통상부는 여진이 없어졌던 금요일 정도에 비행기 편으로 아이들과 선생님을 카트만두로 데려와서 토요일과 일요일 좀 쉬게 하고 월요일 안전하게 한국으로 귀국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설득의 여지라도 있었겠지.



3. Give and Take

 

이 모든 것을 지난 목요일 저녁에 알았다. 정기편이 있는데 왜 하루 전에 특별기가 날아온 것인지, 아이들이 왜 그 위험천만한 상태에서 카트만두로 왔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조선일보 기사 내용을 듣고서야 그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그 방정이 어떤 연쇄반응을 일으켰는지 알 수 있었던 것.



하나 더. 지난 주 금요일부터 트위터에서 외교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돌았다. 외교통상부가 연락 두절인 교민 일부를 '속세를 뜬 분들'이라 파악할 수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안을 두고 외교부를 일방적으로 비판하긴 힘들다. 공관이 특정 교민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네팔엔 '묵띠나트'라는 곳이 있다. 무스탕이라고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곳의 힌두교 및 불교 성지다. 관세음보살께서 현신하셨다고 알려진 곳으로 '영원한 불'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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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Moments in Light


여기 아쉬람(기독교로 하면 기도원 정도라고 번역하면 될까?)에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꽤 찾아 온다.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고 여기까지 와서 인생을 끝내려고 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도 좀 있다. 그리고 이곳을 찾는 또 하나의 그룹은 불법 약국에서 파는 약물들에 취해 있는 분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국적별로 다양하게 있는데, 이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파악하는 외국 공관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외교부의 말 그대로 '속세를 떠난 분들'이기 때문에.


이런 와중에 국민일보에선 공관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해외의 한국인 교민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쓸 수 없는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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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일보>


기사를 본 그때, 나는 딱 조선일보 기사 덕택에 카트만두 곳곳을 돌아다니느라 진이 빠졌을 타이밍이었다. 기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이렇다. 현지 공관원들도 나랑 같은 신세, 이재민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을 특별기에 실어 보내기 위해 뛰어다닌 것만 해도 진이 충분히 빠졌을 그들이다.



기사에선 공관이 '등정 가있는 사람들을 방치했다, 교민들의 반응은 차갑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공관에 뭐 수백 명이 있었으면 다 챙기지. 우선순위로 쪼는 것부터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게 관료조직인데, 굴지의 언론사에서 방정을 떨어놨으니 세월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우선순위가 뭐였겠나?


그리고 교민과 공관과의 관계? 정통성 없는 정권들이 외국에 사는 한국 교민들을 어떻게든 구워 삶으려고 만들어놓은 각종 관변 조직들 덕분에, 그 조직과 관계 있는 사람들 이외에는 공관과 관계, 데면데면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게 뭐 특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니 무엇보다 자기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이 기사화된 것을 보고 황당스러웠다. 그런데 일요일 교민들의 단체 카톡방을 보니, 공관원들이 한국에서 오신 기자님들 모시고 다니느라 바쁘다는 말이 올라온 것. 


교민 안전 졸라 걱정하던 분들이 공관원을 공짜 가이드 삼아 취재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아니, 교민안전을 그렇게 걱정하는 분들이 몇 되지도 않는 공관원들 공짜로 가이드 시키고 있으면 그 교민 안전은 누가 챙기나? 대한민국 공관원들은 몸을 서너 개로 분리시킬 수 있는 기술도 있나 부지?



4. 나가며


언제부터인가 남들 모두가 비판하는 대상을 두둔하면 '너 걔네들과 뭔 관계있지'라는 반문이 바로 튀어나온다. 대한민국 공관이 바보같이 행동하는 것을 나도 한두 번 본거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쓰는 건 그 시스템이 나와 함께 약 700여명에 달하는 네팔에 있는 한국인들의 유일한 구명줄이기 때문이다.


지진이 일어난 나라에서 메이저 매체의 기자들이 벌인 행각, 세월호 참사에서 그들이 기레기질을 했던 것에서 단 한 끝도 벗어나지 않았다.


단원고 찾아가서 아이들 생각나지 않냐고 묻던 기자, 나중에 욕 바가지로 먹었잖는가? 마찬가지였다. 보조 배터리를 갖고 오던 모 주간지 기자를 공항에서 기다리던 중, 아는 척 하며 다가왔던 모 매체의 기자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번 지진으로 집을 잃거나 다친 처가 분 없으신가요? 인터뷰 좀 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나도 병원에서 뛰어다니기 바쁘지 공항에 나가 있었겠나? 이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다.


지난 수요일과 목요일엔 카트만두의 시민 약 40만 명이 카트만두를 급하게 빠져나가 고향 집으로들 향했었다. 시신 처리가 늦어지고, 유기성 폐기물 처리 역시 늦어지고 있으니 수인성 전염병이 돌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돌았던 것이다. 뭐 실제로 아이티의 경우에는 콜레라가 돌았으니까 이들이 걱정했던 것도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약 700여명에 달하는 네팔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유일한 구명줄은 공관이다. 재난상황에서 이 시스템 마져 붕괴되면 살아남을 수 있는 이들은 없다. 그런데 소설을 작문해서 과부하 걸리게 하고, 이미 충분히 과부하 걸렸던 조직을 취재 편의를 위해 적당히 협박해 쓴 당신들, '교민 안전'이라는 말이 낯부끄럽지도 않은가?










 

국제부 Samuel Seong

트위터 @ravenclaw69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