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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07.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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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백인경찰 총에 맞아 죽는 건 흑인인가 1






저소득층 흑인 가정은 악순환의 역사


저소득층 흑인과 히스패닉이 사는 지역의 고등학교는 당연히 흑인과 히스패닉이 전교생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의 학업 성적은 전국 고등학생 평균을 밑돌며, 졸업률도 떨어진다. 현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내 고등학교의 평균 졸업률이 70%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즉, 100명 입학생 가운데 70명만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인데,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이 사회로 나가면, 앞서 살펴봤듯이 대학 졸업자에 비해 소득 수준이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지역 청소년들은 아버지나 형이 약물 거래를 통해 생계를 유지할 경우, 일찍부터 약물에 노출된다. 게다가 약물 딜러는 갱단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총기 및 폭력과 밀접한 환경 안에서 성장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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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튼 고등학교 치어리더들. 보다시피 모두 흑인 아니면 히스패닉이다.

(영화 <브링 잇 온>의 한 장면)



그 뿐만 아니라,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흑인 청소년들은 십대 후반에 아빠, 엄마가 되는 아이들이 많다. 어린 나이에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교육 정도가 낮은 아이들은, 인생을 길게 설계하고 긴 고등 교육 과정을 마칠 인내심도 부족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크고 작은 죄목으로 감옥에도 들락거린다. 게다가 흑인 가정은 유달리 편모 가정이 많다. 아빠라는 사람이 사랑이 식으면 가정을 돌보지 않고 떠나기 때문이다. 


가정 내 아버지의 부재는 아이를 굳건히 잡아줄 멘토의 부재를 의미하고, 따라서 아버지 있는 가정의 아이들보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 아이를 낳고, 학교도 때려치우고, 범죄에 빠지는 악순환을 반복할 확률이 높아진다. 다시 말하면,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거나, 아니면 직업을 갖고 자신의 미래를 착실히 준비하는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과 매우 다른 인생의 행로를 걷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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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되는 것은 쉽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라는 기차내 포스터.
아이만 낳고 돌보지 않는 젊은 흑인 남자를 계몽하려는 의도의 캠페인이다.



흑인 남자는 위협적인 존재


수년 전, 한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겪었던 일이다. 당시 엘리베이터 안에는 나 밖에 없었는데, 문이 닫히려는 순간 한 흑인 남자가 올라탔다. 키와 덩치가 매우 큰 남자였는데, 차림새는 수수한 편이었고, 얼굴은 순한 편이었다. 그러나 순간 이 남자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을 했다. 물론 엘리베이터 안에 감시 카메라가 있는 건 알지만, 그런 거 상관 안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언론을 통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타자마자 내가 내리는 것도 이상하고,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도 같아 짧았던 순간에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아무튼 순한 인상을 믿고 그냥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기로 했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이 경험담은 사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평상시 나는 인종 차별에 반대하고, 흑인이나 히스패닉이 범죄자처럼 취급 받는 사실이 옳지 않다고 비판하였다. 그런데 막상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흑인과 엘리베이터 안에 단 둘이 있게 되자, 정말 불안했다. 이 불안의 근저에는 흑인 남자를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사회적 집단의식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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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rison Policy Initiative)



위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인구 100,000명당 백인은 450명, 히스패닉은 831명, 그리고 흑인은 2,306명이 감옥에 있다고 한다. 미국 인구의 65%가 백인, 16%가 히스패닉, 13%만 흑인임을 상기해볼 때, 인구 대비 흑인의 투옥률이 월등히 높은 걸 알 수 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흑인 남자를 범죄자 내지는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사회적 경향이 있다. 거기다 무기를 구하는 게 쉬운 터라 이들이 무장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흑인 남자를 대체적으로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흑인 남자가 범죄에 연루되는 케이스가 많기는 한데, 연방 감옥이 아닌 카운티 감옥에 갇히는 이유는 주로 약물 소지 같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죄목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미국 내 흑인 인권 운동가들은 약물 소지 등으로 적발되는 흑인 청소년들을 전과자로 만들기보다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선도하여 사회에 다시 합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유죄 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 흑인들은 벌금형에 그칠 수도 있는 위반 사항에 대해 실형을 선고 받기 때문에 흑인 투옥률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예를 들자면 주마다 총기 운반법이 다르긴 한데, 캘리포니아의 경우 차 안에 총을 가지고 다닐 경우 총신은 케이스 안에 있어야 하고, 총알은 총신과 별도로 폐쇄된 장소(트렁크)에 보관해야 한다. 그런데 교통 신호 위반으로 걸린 흑인의 차 안에서 장전된 권총이 발견되고, 운전자가 총기와 관련된 전과가 있을 경우, 무조건 투옥된다. 전과가 없을 경우 벌금형에 그칠 수도 있는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총기 관련 전과 여부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인종주의의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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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브라운(좌)과 대런 윌슨(우)



마이클 브라운은 2014년 8월 9일 미주리 주 퍼거슨에서 백인 경찰인 대런 윌슨이 쏜 총알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사망 당시 브라운은 18살 청소년으로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이 사건은 곧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경찰이 비무장 청소년을 총으로 쏘아 사망케 한 점, 그리고 백인 경찰이 흑인 민간인을 사망케 한 점 때문이다.


미국 내 흑백 인종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예를 들어, 백인이나 아시안 청소년이 경찰의 총을 맞고 사망하였다면 뉴스에 나오긴 하겠지만, 브라운의 경우처럼 전국이 떠들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상 모형 총이나 게임 컨트롤러를 든 청소년을 무장한 것으로 착각하여 경찰이 총을 쏘는 사고들이 간혹 일어난다) 다시 말하면 가해자인 경찰이 백인이고, 사망한 마이클 브라운이 흑인이었기 때문에 언론에서 가해자 ‘백인’과 피해자 ‘흑인’이란 공식을 통해 인종 문제로 이슈화할 수 있었던 거다. 이는 월터 스캇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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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gregation 폐지를 골자로 하는 인권법에 서명하는 존슨.



1964년 존슨 대통령은 ‘Segregation(차별, 격리, 분리)’을 철폐하는 법안에 서명함으로 흑인 차별은 공식적으로 종말을 맞았다. Segregation 하에서는 흑인은 백인과 같은 식당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없었으며, 같은 버스 안에서 백인은 앞쪽에 흑인은 뒤쪽에 앉아야 했다. 그리고 흑인이 버스에 앉아 가다가도 백인이 올라타면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 가야 했다. 이뿐만 아니라, 공공서에 드나들 때도 백인이 사용하는 출입구와 다른 출입구를 사용하게 했으며, 흑인 아이와 백인 아이는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했다. 남북 전쟁 이후 흑인은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긴 했지만, 남부 지역 백인들은 차별적 법률이라는 합법적 올가미를 통해 흑인이 자신들과 동등한 지위를 갖지 못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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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개, 흑인, 멕시칸 금지 표지판
(중간) 백인, 유색인종 화장실 안내 표지판
(맨 아래) 유색인종 좌석은 뒤쪽에 있다는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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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전용 공공 수영장 표지판



역사적으로 노예제 찬성주였고, Segregation 폐지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던 남부 지역 백인들의 의식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백인 우월주의 및 인종주의적 성향이, 법이 바뀌었다고 하룻밤 사이에 달라지지 않았음은 자명한 노릇이다. 1964년 이후 남부 지역의 인종주의는 법망을 교묘히 피하든, 흑인들이 법을 잘 모르는 점을 이용하든, 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암리에 이루어진다.



흑인은 왜 백인 경찰 총에 맞아 죽는가?


우리 가족이 미국에 처음 와서 다녔던 교회의 담임 목사는 유니온 신학교(진보주의 신학으로 유명한 학교)에서 박사를 받으신 40대 후반 내지 50대 초반의 흑인이었다. 교인 가운데 흑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백인 교회의 리더가 흑인이었던 점이 특이했지만, 일찍이 고향인 테네시를 떠나 온 가족을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그 분 아버지의 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 분의 아버지는 남부 지역의 Segregation을 직접 겪으셨기 때문에 인종차별이 그나마 표면화되지 않은 서부로 이주를 단행하였다고 한다.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 오래된 삶의 터전이자 직장을 버리고, 3,000km 떨어진 새로운 환경으로 가족 전체를 이주할 결정을 내리기까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리면 32시간이 걸리는 거리이고, 하루 10시간씩 운전하고 간다고 해도 꼬박 사흘이다. 그렇지만 먼 훗날 아들이 박사학위를 마치고 담임 목사까지 된 걸 보면 미래를 내다 본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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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gregation이 주로 남부 지역(주황색)에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150년 전 흑인은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고, Segregation은 50년 전에 공식적으로 종말을 맞았지만, 현재 남부 지역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마이클 브라운이 살고 있던 미주리 주는 남북 전쟁 당시 남부연맹의 일원은 아니었지만, 노예제 찬성 쪽으로 기울어진 주였기 때문에 그 지역 백인의 성향을 짐작할 만 하다.


미주리 주 전체 인구 구성을 보면 백인이 82% 이상이지만, 브라운이 살고 있던 퍼거슨 시는 흑인이 65%, 백인이 30%를 차지하는 흑인 커뮤니티이다. 그런데 <CNN>이 인용한 연방 법무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이 검문하는 차량의 90%가 흑인이고, 범칙금을 발급하는 85%, 체포되는 피의자 93%, 체포과정 중 물리적 폭력을 동원하는 경우의 88%가 흑인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통계는 퍼거슨 경찰이 법을 집행할 때, 그리고 공권력을 사용 할 때 인종에 따른 차별을 해왔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월터 스캇이 살고 있던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노스 찰스턴 시의 경우도 비슷하다.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남북 전쟁 당시, 가장 먼저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던 노예제 찬성주였다. 현재 노스 찰스턴의 전체 인구 가운데 흑인이 45%, 백인은 41%인데, <L.A. 타임즈> 기사에 의하면, 흑인 운전자가 백인 운전자에 비해 두 배 이상 검문을 당한다고 한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흑인의 투옥률이 어느 인종보다 높은 건 사실이다. 그리고 흑인 남자를 위협적 존재로 간주하는 사회적 경향 역시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마이클 브라운이나 월터 스캇이 살았던 커뮤니티의 통계를 살펴보면, 경찰이 유독 흑인만 범죄자 취급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노스 찰스턴에 거주하는 어떤 흑인 교사는 과속이나 신호 위반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경찰에 의해 검문을 받았다고 <L.A.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종 차별이 합법적으로 행해지던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흑인을 백인과 똑같이 대하는 게 어렵다고 치자. 하지만 법 집행을 맡은 경찰은 적어도 인종주의적 사고방식으로부터 벗어나 피부색에 상관없이 흑인을 편견 없이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통계를 보면 피부색에 따른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예를 들면, '흑인 남자는 범죄자다' '흑인은 뭔가 나쁜 짓을 저질렀기에 경찰을 보면 피해 다닌다' '흑인은 법을 잘 지키지 않는다' '흑인은 물건을 잘 훔친다' '흑인은 거짓말을 잘한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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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런 윌슨의 부상 부위.



비무장 흑인이 백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을 때마다 죽은 흑인은 경찰의 공권력에 반항하여 폭력을 사용한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대런 윌슨은 마이클 브라운이 자신에게 무력을 행사했다고 진술하였고(위 사진 참조), 마이클 슬레이거는 월터 스캇이 자신의 무기(테이저)를 뺏으려고 달려들었다고 진술하였다. 따라서 이 두 경찰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기를 들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범죄자도 아니었던 비무장 흑인 남자 둘이 사망하였다. 흑인 커뮤니티와 진보 언론의 비판이 있긴 했지만, 이러한 진술은 현재까지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경찰 측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월터 스캇 비디오’가 완전히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 비디오를 보면 경찰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슬레이거는 달아나는 스캇의 등을 향해 거의 처형하듯 총을 발사하였다. 스캇은 살인 용의자도 아니었고, 자동차 후미등이 하나 작동되지 않아서 검문에 걸린 사람이었을 뿐이다. 굳이 여덟 발을 발사해서 죽일만한 흉악범이거나, 경찰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중무장한 피의자도 아니었다.


그리고 원칙대로라면 경찰은 총에 맞은 피의자에게 CPR(심폐 소생술)을 실시했어야 하는데, 슬레이거는 하지 않았다. 게다가 테이저를 죽은 스캇 몸 근처에다 떨어뜨리는 모습이 포착되어 자신의 진술에 맞추어 증거를 조작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닌지 의심마저 받고 있다. 따라서 스캇이 흑인이기 때문에 백인 경찰이 총기를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 비디오가 아니었다면 마이클 슬레이거의 초기 진술이 그대로 받아들여졌을 것이고, 경찰에서 해임되지도 체포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이 비디오의 존재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Black Lives Matter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미시시피 대학을 졸업하고, 전형적인 남부의 한 주인 미시시피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다 작가의 길로 들어선 존 그리샴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타임 투 킬>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변호사 시절, 백인 남자 둘에게 강간당한 흑인 소녀 사건을 접했다고 한다. 그리샴은 만약 그 소녀의 아버지가 가해자인 백인 둘을 직접 처단하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상상을 하다가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고 말한다.  


내가 이 영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변호사의 최후 진술 장면을 통해 남부 백인들의 의식 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인종주의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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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임 투 킬>의 한 장면)



10살 흑인 소녀 토냐가 백인 남자 둘에게 무자비하게 강간을 당하자, 토냐의 아버지인 칼 리는 자기 딸을 강간한 범인들을 직접 응징하기로 한다. 백인 강간범들이 재판에 회부되어도 백인 배심원들로부터 중죄 판결을 받아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단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칼은 백인 강간범 둘을 총으로 쏴 죽이고, 일급 살인죄로 재판에 회부된다.


백인 배심원은 칼이 느꼈을 고통과 분노에 대한 공감을 전혀 하지 못하고, 칼을 오로지 백인 남자 둘을 살해한 흑인 살인범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흑인은 백인인 나와 다른 철저한 타자이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피부색 때문이다. 변호사는 최후 진술에서 토냐의 슬픈 스토리를 배심원에게 들려주면서 강간당한 소녀가 흑인이 아닌 백인이라고 상상해보라고 하자, 비로소 백인 배심원들은 흑인 아버지에 대해 공감을 한다. 그리고 그 공감대가 칼의 무죄를 이끌어 낸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공권력에 의한 흑인 남자들의 죽음은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인종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경찰이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흑인을 표적으로 삼는다는 사실은 통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흑인이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백인 경찰이 그렇게 쉽게 흑인의 등을 향해 총을 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흑인 남자들의 투옥률이 다른 인종과 비교했을 때 높은 상황이고, 돈 몇 백 불이면 권총 하나 구하는 게 어렵지 않은 사회이다 보니 경찰이 일선에서 흑인 남자를 대할 때마다 느낄만한 불안감을 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월터 스캇의 비디오에는 흑인의 위협을 당하는 경찰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경찰이 두려움 때문에 지레 짐작으로 무고한 시민을 경솔하게 총으로 쏘아 죽일 순 없는 노릇이다. 경찰은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지역 사회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걸 감수하고 직업 정신을 발휘하는 게 진정한 경찰일 것이다.


윌터 스캇은 신원 조회 과정에서 자신에게 발행된 영장(이혼 후 자녀 양육비 미납으로 인해 발행된 것)으로 인해 체포를 당할까 두려워서 도망친 걸로 보인다. 이것은 벌금 납부를 안 해서 잠시 감옥에 잡아두는 것으로 돈을 내면 당장 풀려나기에 범죄 행위로 인해 발급된 영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마이클 브라운의 경우, 죽기 1년 전에 절도죄로 구속된 적이 있었고, 사망 당시 그는 보호감찰 기간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또 그는 대런 윌슨을 대면하기 전 가게에서 시가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이들이 경찰의 총알에 죽음을 당한 것으로 합리화할 수 없다. 심지어 흉악한 살인범도 적절한 재판과정을 거쳐 유죄가 선고되기 전까진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의자일 뿐이다. 범죄에 따른 처벌은 경찰의 몫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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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도 백인과 똑같은 사람이고, 그들의 생명 역시 백인과 똑같이 소중하다. 











편집 :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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