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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금 하고 있는 특별전시의 주제는 <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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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처음 만들어진 인도 지역의 불상,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가 중국 특유의 양식으로 불상이 바뀌고, 그 중국의 불상 양식이 한반도로 건너와 다시 한반도 특유의 불상의 모습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 전시였지요. 각 양식의 특징이 꽤나 재미있었습니다만 이런 분야에 큰 관심이 없다면 시큰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도 책에서 봤던 간다라 미술이나 초기 불교의 불상 양식에는 흥미가 있지만, 중국으로 넘어간 이후의 불상들은 비슷해보여 흥미가 떨어졌습니다.


한반도의 불교는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시기 한반도는 삼국시대, 중국은 남북조시대였습니다. 초기 한반도의 불상은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삼국만의 고유한 양식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반가사유상’에 이르러 불상 예술의 최고점을 찍습니다. 반가사유상은 싯타르타 태자가 깨달음을 얻어 석가모니가 되기 전, 생로병사에 대해 고민하던 모습을 불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특히 한반도 지역에서 가장 뚜렷하게 발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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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반가사유상인 ‘국보78호 반가사유상’입니다.


다른 유물들은 사진 촬영이 불가능했지만, 국보78호 반가사유상(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촬영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반가사유상은 특별히 이 두 유물만 모셔진 공간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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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좌)과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우)


제가 처음 반가사유상의 실물을 마주하며 든 생각은 “어? 크다?”였습니다. 역사책으로만 봤을 땐 크기를 짐작할 수 없어서 대략 30cm 정도의 아기자기한 크기이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하고 보니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큰 반가사유상이 있었던 거죠. 불상의 크기에 압도 당했습니다.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왼쪽에 있는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이었습니다. 저는 불상이나 미술사, 그리고 미적 지식이 없는 편이라 ‘특징’이 있는 것을 먼저 찾았거든요. 머리에 있는 보관(寶冠)부터 화려한,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국보78호 반가사유상의 화려한 모습에 비해, 오른쪽의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의 모습은 심심해보일 정도였습니다. 저는 ‘국보 83호가 초기작이고, 국보 78호의 형태로 발달했나보다’라고 추측했습니다.


반가사유상의 크기가 가져온 압도감에서 벗어나자, 생각보다 수수하고 별거 없는 모습에 곧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반가사유상은 미술적 지식이나 식견이 있는 사람한테나 대단하지 나한텐 그저 대단한 게 아니구나. 사진이나 찍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전시장 벽에 적혀있던,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 나오는 말에 공감할 수 없어서 더 그랬습니다. 


“슬픈 얼굴인가 보면 그리 슬픈 것 같지 않고, 미소 짓고 계신가 하면 준엄한 기운이 누르는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


최순우는 반가사유상을 매우 깊은 시각에서 바라봤겠지만, 내 눈엔 그냥 잘 만든 불상 하나였습니다. 


두 반가사유상에 대한 설명을 휙 보고 사진이나 찍고 나오려고 하다가, 전시장 옆에 있는 ‘두 반가사유상의 모습을 비교’한 영상을 보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돈 내고 온 전시장에 가장 중요한 유물에 대한 설명을 보지 않고 나오기엔 아깝다는, 참으로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생각이 있었습니다. 불상이 눈앞에 있다고 번뇌가 사라지진 않습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영상을 봤지만, 곧 흥미가 생겼습니다. 저는 제 예상과 달리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이 국보 83호 반가사유상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비슷하게 생긴 두 반가사유상이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난 후 제 눈에 비친 반가사유상은 처음의 그 심심한 반가사유상이 아니었습니다. 역시 아는 만큼 눈에 보이는 것이었죠.


얼핏 보면 보관과 복장 때문에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이 훨씬 화려해보입니다.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고, 화려한 복장을 입고 있으니까요. 그에 반해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심심해보이고 멋이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의 모습에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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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좌)과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우)


처음에는 보지 못한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의 하반신 옷 부분을 자세히 보시고, 국보 78호와 비교해보세요.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하반신의 옷자락을 ‘선’으로 표시해 나타낸 부분이 많지만, 국보 83호는 확실히 입체적입니다. 또 국보 78호에 비해 국보 83호의 손과 발이 훨씬 현실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죠. 왜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국보 78호보다 후기에 제작된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다 알고 나니 처음과 국보 83호 모습이 달라 보입니다. 국보 78호에 비해 심심해보였던 국보 83호의 상반신은 더 이상 심심함이 아니라 ‘간결함’과 ‘생략’의 미학으로 보였습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의 상반신을 간결하게 만든 건, 장식품이나 화려함에 현혹되지 말고 반가사유상 자체가 가진 미학과 본질에 집중하라는 제작자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반신과 손, 발은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만든 걸 보면, 제작자가 자신의 제작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선이 자연스레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의 얼굴로 따라갑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의 가장 핵심인 얼굴에 묻어나오는 ‘수많은 감정’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아까 설명한 최순우의 글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슬픈 얼굴인가 보면 그리 슬픈 것 같지 않고, 미소 짓고 계신가 하면 준엄한 기운이 누르는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


반가사유상의 얼굴에서 수만 가지의 감정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은 결코 튀어나와 감상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많은 감정을 잡아낼 수 있도록 더욱 조용히 숨어들어갑니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의 모습이 아닌, 석양을 따라 조용히 흘러가다 마지막 지점에 이르러 자신의 생명을 마무리하는 강의 흐름과 비슷할 겁니다. 고뇌하는 모습이라기보다 그 고뇌조차 종교적으로 승화해낸,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진 그 희미한 미소가 감정을 조용히 흔듭니다. 그렇게 반가사유상은 자신이 숨겨왔던 그 깊은 속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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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


다시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의 모습을 봅니다. 더 이상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의 보관과 옷가지가 화려해보이지 않습니다. 본질은 반가사유상의 껍데기에 있지 않다는 걸 국보 83호를 보고 깨달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의 식견은 여전히 얄팍합니다. 국보 83호의 깊은 속을 보고 나선 국보 78호의 또 다른 모습을 찾기보단 허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국보 83호에 비해 가벼울 수밖에 없는 시간의 무게와 깊이에 주목했습니다. 하반신의 투박함, 자연스럽지 않은 손과 발, 그리고 국보 83호보다 자연스러움이 부족한 신체의 선.


하지만 이것 또한 또 다른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저는 화려한 껍데기에 현혹되지 말라는 국보 83호의 모습을 보면서 이번엔 껍데기의 부족함에 집착한 것입니다. 이것에 매달리다 잠시 관심을 놓는 순간, 다시 국보78호 반가사유상 그 자체와 마주했습니다. 국보78호에 얼굴에서 묻어나는 종교적 깊이는 여전히 국보 83호보다 부족합니다만, 그만큼 확연히 나타나는 국보78호 반가사유상의 감정과 마주합니다.


그것은 반가사유상이 원래 나타내고자 한 것인 싯타르타 태자의 생로병사에 대한 고뇌와 자신은 깨달음을 얻었으나 중생들을 위해 남은 보살들의 책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보83호 반가사유상의 표정에 담긴 모든 감정과 고뇌의 결과가 종교적 승화로 이어진다면, 국보78호 반가사유상은 모든 감정과 고뇌가 표정 자체에 맞춰집니다. 먼저 만들어진 국보78호 반가사유상은 종교 이전의 고뇌하고 홀로 서있는 인간에 가까웠을 것이고, 늦게 만들어진 국보83호 반가사유상은 훨씬 더 종교적으로 흘러갔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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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


국보78호와 국보83호 반가사유상 모두 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두 반가사유상이 왜 한국 불교 예술의 정수라 불리는지를 알았습니다.


두 반가사유상은 보면 볼수록 더욱 더 깊고 무거운 감동을 선사합니다. 전시회장에서 나가기 싫을 정도로 두 유물이 가져온 놀라운 감정의 울림은 컸습니다. 그 순간, 그 공간에서 만큼은  작은 ‘불국(佛國)’이었고, 저는 거기서 잠시 거닐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순간은 잠시일 수밖에 없고 전 현실로 돌아가 전시회장을 나가야했죠.


국립중앙박물관의 다른 유물을 보려고 했지만, 두 반가사유상의 감동이 여전히 저를 흔들어댔고, 결국 다른 유물들의 관람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유물을 볼수록 감동이 사그라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박물관을 나와 이 감정 자체에 몸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혹시 국립중앙박물관을 갈 계획이거나 가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꼭 두 반가사유상을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반가사유상이 가진 것들을 알고, 그 감정과 깊이를 잠시 느껴보세요.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신다면 아마 생애에 정말 귀중한 경험을 하신 거라고, 제가 장담하겠습니다.




하타노유이하트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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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노유이 인터내셔널 의장

'사랑은 아름답다.'
사랑을 주는 이, 사랑을 받는 이는 아름답다.
우리에게 사랑을 주는 이.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이.
그래서 하타노 유이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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