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정치
최근 정치권은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 공천을 두고 치열한 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TK 지역에 자기 사람을 심으려는 청와대와 차기 대권을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높이고자 하는 김무성 현 대표의 싸움이 자못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또한 혁신안을 두고 벌어진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정국이 마무리된 이후, 잠잠하던 내부 암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김한길, 안철수 전 대표가 한마디씩 하며 판을 흔들고, 박영선을 비롯한 중간 모임에서 통합전대 이야기를 꺼내는 등 분란의 씨앗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우리들의 현실 세계에서도 곧 정치의 시즌이 다가오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각 정당에서 걸어 놓은 현수막의 수가 늘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필자가 주로 찾는 집 앞 시장에서도 최근 이 지역구의 현역 의원이 시민 공청회를 한다는 현수막과 반대편 당에서 이 지역을 노리는 비례대표 의원이 걸린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있다. 그 위와 아래에는 새누리당과 새정치에서 걸어놓은 현수막으로 선거운동이 시작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런 현수막 정치에서 계속 새누리당에 밀려왔다. 지역에 꼭 필요한 문구를 적어놓는 새누리당과 달리 새정치의 현수막의 문구는 지역 공략적이기보다 좀 더 고차원적인 문구를 다루고 있었고, 디자인도 별로였다.
그런 새정치의 현수막이 최근 달라졌다. 디자인도 이쁘게 문구도 한번 읽으면 딱 이해가 되는 식으로.
이러한 변화는 한 사람의 영입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바로 손혜원 새정치민주연합 홍보 위원장이다.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광고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처음처럼 소주, 트롬 세탁기 등의 한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사보거나 들어봤을 그 유명한 브랜드들의 이름을 직접 만든 사람이다.
익숙한 이름, 참이슬과 처음처럼
이 영입은 ‘침대는 과학’이라는 유명한 광고 카피를 만든 조동원 씨를 영입한 새누리당과 비교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런 손혜원 홍보 위원장이 최근 페이스북의 글을 하나 올렸고 그 글이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시작은 평범한 야구 이야기이다.
출처 - 손혜원 페이스북
한화 이글스와 김성근
한화 이글스의 2015년은 뜨거웠다.
팬들이 1인 시위까지 해가며 영입한 김성근 감독은 동계훈련을 그야말로 혹독하게 운영했고, 그 내용과 사진이 실시간으로 국내에 전해지며 많은 팬의 지지를 받았다. 시즌이 시작되고 한화가 무기력하던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끈기 있고 승리를 원하는 팀이 되었다는 평가와 함께 많은 팬들이 한화 야구에 빠져들었다.
'마리한화' 등의 용어도 이렇게 나왔고 한화 경기는 높은 시청률과 많은 관중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2015년 시즌이 중반을 넘어서며 점점 김성근 감독의 팀 운영의 말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혹사, 지나친 언론플레이 등으로 각종 야구 게시판은 김성근 안티와 김성근을 옹호하는 부류로 극단적으로 나뉘기 시작했고, 한화의 후반기 성적이 점점 떨어지고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김성근의 팀 운영이 '혹사'로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김성근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대표적인 혹사 케이스로 꼽히는 투수 권혁
2015년 중앙일보 인터뷰(링크) 中 김성근 감독
그리고 한화 이글스는 2015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손혜원 홍보 위원장은 김성근 감독의 평소 지론을 좋아했던 거 같다. 그래서 이번 시즌 한화를 응원했고 2015년 시즌을 실패로 규정하는 한 기사에 반박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 과정에서 김성근의 '혹사'를 비난하는 야구팬들의 비난 댓글이 달렸고 이에 그는 매우 당황했던 모양이다.
그는 결국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을 트위터에 남기고 만다.
출처 - 손혜원 트위터
저녁이 없는 삶
최근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노동개혁이다. 새누리당은 일반 해고를 위장한 쉬운 해고, 노동시간 연장 등을 밀어붙일 모양이고, 대통령은 이게 안 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듯이 엄포를 놓고있다.
처음 손혜원 위원장의 위 트윗을 보고 새정치민주연합의 홍보 위원장이 아니라, 청와대 홍보 위원장의 트윗인 줄 알았다. 그가 평생 일한 광고시장이 아이디어를 쥐어짜야 하는 환경이기에 긴 노동시간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주당 60시간 이상 일하고 그걸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출처 - <LawTalk>
위 내용은 새정치의 장하나 의원이 발의한 속칭 '칼퇴근법'이다. 많은 커뮤니티에 올라가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법이 이대로만 개정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구호. ‘저녁이 있는 삶’. 이를 구호로 삼은 손학규는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문재인은 이 구호를 이어받아서 저녁이 있는 삶을 외치며 선거운동했다.
그런 새정치민주연합에 손혜원 씨가 들어왔다. 손혜원 위원장은 얼마 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이 당에 들어왔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당시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정국이 한창이던 때 만일 문재인 대표가 물러난다면 당에서 바로 떠나겠다는 말을 이어서 하며 말이다.
손혜원 위원장에게 묻고 싶다. 손혜원 위원장이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왜 사람들이 야신이라 불리던 김성근의 팀 운영을 비판하고 있는지.
노동시간 단축을 말하고, 사람의 가치에 주목하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이다. 그 당의 홍보 위원장이 스스로 직원들을 혹사한다고 말하며 선수들을 혹사하는 감독을 옹호한다면, 바라보는 이들이 그의 작품에서 감동을 느끼고,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까.
현실에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으면서, '슬로건'으로만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소리지기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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