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같은 남자 원세훈
시스템은 광활하다. 한 국가를 유지하는 시스템은 보통 사람들이 그 규모를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활하여 곳곳에 허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허점이 결코 자생적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단지 모든 국가 시스템을 마치 사우론의 눈깔처럼 지켜보고 있는 사법 시스템이 어느 특정한 사람들에 대해서만큼은 외면을 하게 만드는, 즉 국가 시스템을 초월할 수 있는 권력의 행보가 등장할 때에서야 비로소 그런 허점이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허점의 한 중심에 보석 같은 남자 원세훈이 자리잡고 있다.
보석제도
보석제도의 취지는 매우 올바른 것이다. 그냥 구속의 반대급부적인 제도라고 보면 맞을 것 같다.
어떤 혐의가 발생했을 때 이 사안의 내용을 밝히고 관련자들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재판을 진행하게 된다. 이 재판이라는 것은 모든 유권자들의 합의에 의해 권력을 위임 받은 신성한 행위이며, 이 재판의 결과에 의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모든 행위는 제한되어야 한다.
따라서 증거 인멸이나 도주 등을 감행하여 올바른 법 집행을 방해할 우려가 다분한 피의자나 피고인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 구속영장은 모든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인권의 한 갈래인 행동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다. 참고로 피의자와 피고인의 차이는 공소가 제기되기 전과 후로 나누어지는 개념이다.
그러나 그렇게 구속된 사람에 대해서도 일정한 조건을 확보하게 되면 다시 행동의 자유를 복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최종 판결이 나기 전에도 말이다. 구속된 당사자가 갑자기 병이 들어 허약해진다거나 하는 경우 말이다. 이럴 때 법원은 일정한 보증금과 재판과정에 성실히 응하겠다는 서약서 등을 받고 조건부로 보석을 결정하게 된다. 물론 그 조건을 어기면 보석은 다시 취소되고 보증금은 몰수되기도 한다.
물론 구속 자체를 정지시키거나 취소할 수도 있다. 구속이 취소되는 상황이라면 보석은 애초에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며, 구속집행을 정지하는 경우와 보석은 살짝 개념이 달라진다. 구속집행 정지는 당사자의 요청이전에 법원에서 직권으로 행하는 것이며 보증금 같은 것을 받지 않는다.
하여간 보석 제도는 그리 나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으며 사법제도는 그런 모든 사람의 사정을 고려해줄 수 있는 여지가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예외조항들은 언제나 남용의 허점을 만들어 내곤 한다. 보석같은 남자 원세훈의 경우처럼 말이다.
원세훈의 보석
원세훈은 이명박 정권이 물러난 뒤 보기 드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일단 큰 흐름으로는 두 가지 사건을 볼 수 있다. 하나는 뇌물수수죄, 또 다른 하나는 선거법 위반과 국정원법 위반에 관한 건이다. 황보건설 사장 황보연씨가 관련된 뇌물수수죄 관련 재판은 마무리가 된 상태이며, 선거법 위반 관련 건은 현재까지 진행 중.
뇌물수수 재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에 재직 시절부터 항간에 이미 다 흘러나왔던 얘기로 그 재판과정도 그다지 복잡한 것도 없었다.
2013년 7월 10일부터 이 뇌물수수건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던 원세훈은 1심에서는 징역2년에 추징금 1억6천275만원을 선고 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1년2월에 추징금 1억84만원으로 감형이 된다. 그러다 보니 2심 선고를 받자마자 이미 1년2월의 구금일수를 다 채우게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그 재판은 거기서 끝. 다만 원세훈이 순순히 1억이 넘는 추징금을 모두 납부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원세훈은 다시 감방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건 바로 선거법 위반 재판의 2심 판결로 인한 일이었다.
선거법 위반 건 재판에서 1심판결은 선거법은 무죄, 국정원법 위반은 유죄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아서 구속되지 않고 재판을 받을 수 있었지만, 2심에서는 덜컥 선거법 위반까지 유죄로 포함되면서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되는 바람에 법정에서 구속되어 버린 것이다. 그게 올해 2월 9일이니 이미 반년도 넘은 전 이야기.
풀려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감방에 끌려 들어간 원세훈은 이제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대법원은 원심, 즉 2심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사건을 재심리하라며 고법으로 파기환송 시켜 버린다. 이 때도 원세훈은 "그러니까 일단 좀 풀어주고 재판 받으면 안될까요?"하면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보석을 신청하기도 했으나 대법원은 차마 그것까지 받아주긴 민망했는지 보석허가는 내주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사건이 돌아간 고법의 담당판사 김시철 판사께서는 향후 피고인과 검창, 어이쿠 오타가 났네. 검찰 모두 주장을 정리하고 입증해야 할 사항이 많다고 판단하면서 보석 신청을 받아준 것이다. 하해와 같은 아량이라 할 수 있겠다.
심지어 김판사는 1,2심 판단 모두 맞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얘기까지 덧붙여 주셨으니 보석 같은 남자 원세훈의 눈에서는 보석 같은 눈물이 굴러 떨어졌을 법도 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원세훈은 누구인가?
원세훈, 'The 머니 메이커'
원세훈은 51년생으로 경북 영주 사람이다.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재학시절 이미 행시를 패스해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다. 아버지 할아버지 모두 의사를 했던 집안이며, 나중에 한양대에서 도시행정학 석사를 따기도 했다. 그 뒤의 학위들은 대략 모두 명예학위.
병역은 보충역이며, 아들은 병역 관계로 잡음을 일으킨 적이 있으나 본인은 별다른 문제없이 (비록 현역은 아니지만) 보충역을 통과한 걸로 되어 있다.
순조롭게 시작한 공무원 생활을 거의 평생 지속했으며, 서울시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이명박을 만나 손꼽히는 MB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마친 뒤 잠시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는 척 하다가 이명박이 깃발을 들고 대선에 출정하자 재빠르게 돌아와 상근특보를 맡았으며 당선된 이후로는 새로 구성된 행안부의 최초 장관으로 재직했고 1년뒤 국정원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특이한 점은, 이 사람의 일생을 개월 단위로 쥐 잡듯이 뒤져봐야 정보계통 업무는 근처에도 간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국가정보원장에 취임을 했다는 점이다. 이런 얘기는 무척 조심해야 하는 것이 원세훈이 국정원장에 재직하던 시절, 국정원 5급 행정관 김모씨는 "이명박이 시장할 때 똘마니나 하다가 국정원에서 와서 뭘 알겠냐" 한마디를 그것도 사석 술자리에서 한 번 했다가 바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해임된 경우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MB맨답게 국정원을 수익모델로 봤다는 것이다. 유죄판결로 징역형(물론 구속재판 받느라 다 채우긴 했지만)까지 받을 정도이니 얘기해도 별 탈은 없을 것이다. 국정원에서 하청 받아 일하던 조그만 건설업체 황보건설의 사장 황보연과 급격하게 친해지면서 황보연은 대박이 나게 된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인데, 전말은 이렇다.
당시 MB맨 원세훈은 국정원장이 되고, 또 다른 MB맨 김중겸 전 사장이 현대건설 사장에 취임하게 된다. 이 때가 2009년.
2008년 말 자본금 19억, 매출 63억, 도급순위 490위 였던 황보건설은 2009년 매출 207억, 2010년 매출 395억으로 성장하게 된다. 하청은 끊이질 않는다. 2011년 기준으로 현대건설, 금호산업, 두산중공업, 대우건설 등 주요 대형 건설사로부터 하청을 골고루 받았고, 금호건설과는 격에 안 맞게 컨소시엄을 결성해 프놈펜 56번 도로공사 프로젝트도 수주한다. 금호건설쯤 되는 곳이 무슨 자본금 19억짜리 회사하고 컨소시엄을 결성하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런 업자에게 뭐 돈 몇억, 금 몇 십돈, 무슨 크리스털 따위를 받아챙겼다고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원세훈은 스승에게서 뭔가를 제대로 배우진 못한 것 같다. 일단 통이 너무 작지 않은가.
검찰이 이 관계를 들이 팠으니 꺼리가 안 나오기 힘들다. 그리고 황보연 사장 역시 재판과정에서 순순히 곧이곧대로 일관성 있게 증언을 하고 만다. 그 덕분인지 황보사장은 사기 및 횡령 혐의로 받던 재판에서 징역3년이지만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나게 된다.
이런 얘기야 곁다리일 뿐이다. 원세훈이 왜 보석 같은 남자인지는 나오지도 않은 거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역시 원세훈의 선거법 위반 재판이라는 얘기인 것이다.
원세훈, 'The 킹 메이커'
원세훈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역시 지난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을 진두지휘하여 선거에 부정한 방법으로 개입하게 만든 것이라는 점, 아무도 이견을 달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 공화국의 원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 자는 정상적인 유권자들의 대표를 뽑는 과정에 개입하여 공화국의 최고 존엄인 국민의 권리 행사를 방해한 혐의가 있다. 그것도 국가 안보에 필요한 정보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된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을 움직여서 말이다. 이는 국기문란 행위이며 헌정 파괴 행위다. 무력 쿠데타에 다름 아니며 정권의 정통성을 망가트린 반국가사범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죄판결이 잘 안 나온다. 이례적으로 2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오고 법정 구속이 되자 외신들이 오히려 더 신기해서 난리를 칠 정도이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쯤이면 감을 잡아야 한다.
심지어 어렵게 어렵게 2심에서 나온 유죄판결은 대법에 가자마자 산산이 흩어지고 만다. 유죄 아니라는 거다. 마치 대법이 고법에게 "니들, 나대지 말라, 넌씨눈(넌 씨발 눈치도 없냐?)이냐?"고 훈계를 하는 느낌이다.
그렇게 대법이 고법으로 재판을 다시 환송시키자 이제 갑자기 눈치를 장착한 고법에서는 극보수적인 성향으로 알려져 있는 판사를 배정하고, 그 판사는 대법에서도 안 받아줬던 '보석신청'까지 덥석 받아주고, "1,2심 재판은 문제가 있었지, 암~"이러는 서비스 멘트까지 날려 주신다.
이제 남은 고법의 심판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 아직도 모르겠다면 당신은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사시겠어요?"라는 핀잔을 받아도 싸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판사들도 알고 강용석도 알고 변희재도 안다.
원세훈이 현존하는 권력을 만들어낸 'The 킹 메이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물론 내가 주장하는 게 결코 아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주어들은 내가 전달해 드리는 것뿐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권력은 이어진다
그렇게 힘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 우리 사회다. 이명박은 원세훈을 동원해 박근혜에게 권력을 주고, 박근혜는 그 권력을 만드는데 동원된 MB맨은 물론 이명박 본인의 뒤도 보호해 주고 있는 걸로 보인다.
사우론의 눈이건 뭐건 사법체계의 감시망은 권력 앞에서는 저절로 오그라들면서 외면을 하게 된다. 그만큼 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이제 또 그 권력은 어디로 가는 걸까?
시사인은 세간에 떠도는 루머를 보도한 적이 있다.
<기사 원문 보기>
이런 루머를 보도한 듣보 주간지의 기사를 링크 거는 것은 민족정론지 대딴지일보의 위상에 전혀 걸맞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너무나 어이없는 루머라서 보고 웃으시라고 붙여 드린다.
요약하자면, 박근혜는 김무성을 버리고 반기문을 택했으며, 정권을 넘겨주는 대신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중임제 개헌이 되면 반기문의 차기에 다시 박근혜가 복귀하는 '푸틴맛 시나리오'가 있다는 얘기이다. 이 시나리오를 만든 당사자들은 다름아닌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라는 것. 그 쪽 업계의 입장에서 보면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비서관 그룹이 정권이 끝난 뒤 자신들의 안온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어때, 웃기지? 웃음이 나지?
그런데 이런 허황된 시나리오를 막아야 할 야권의 행보를 보고 있자면, 나오던 웃음이 저절로 울음으로 바뀐다는 것이 함정.
그렇게 2015년 가을, 대한민국의 권력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끝.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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