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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특유의 습도 높고 강렬한 더위를 아낌없이 느끼고 프랑스에 돌아오니, 가을이 한창이다. 파리의 한 귀퉁이,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작은 원룸에 살고 있는 나는 벌써부터 으슬으슬하다. 이럴 때면 내가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고향에서 9,000km나 떨어진 이곳에서 아등바등하고 있는지 괜스레 우울해진다. 누구라고 힘들지 않으랴. 일찍부터 취직해 적지 않은 월급을 수령하고 있는 친구들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아이가 크는 모습에 하루 하루 감사해 하는 친구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충과 사정이 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전 10시, 딱 5분 동안만, 그것도 옆 건물 창에 반사되어 내 방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만족하기에는 유학생활이 참 지랄맞다. 그래도 나는 딴지 프랑스 특파원이니까 맡은 임무는 해야 한다. 사실은 그래야 내가 조금은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는 프랑스와 한국이 수교한지 130주년 되는 해다. (1886년 6월 4일에 한불수교통상조약이 맺어짐) 이에 따라 프랑스는 2015년 9월부터 1년간을 ‘한국의 해’로 지정하여 크고 작은 행사들을 하고 있다. 지난 9월 18일 샤이요 국립극장에서 펼쳐진 종묘제례악 공연을 시작으로, 파리 가을축제에서 <김금화 서해안 풍어제>, <안은미 컴퍼니> 및 <안숙선 판소리 수궁가>을 공연했고, 기메 박물관에서는 전시회, 파리의 중심 샤틀레에서는 <매혹의 서울(Séoul Hypnotique)> 한국영화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9월 25일부터 27일까지는 파리 한복판에서 한국 길거리음식 행사를 진행했고, 파리 일레트로닉 위크의 서울밤에는 DJ 수리, DJ Mushxxx 및 그레이스 김이 출연했다. 이처럼 지금껏 진행된 행사만 해도 손에 꼽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거기다 프랑스 중등교육에서 한국어가 제3외국어에서 제2외국어로 격상되는 영광(!)도 얻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프랑스는 여전히 먼 나라다. 이 휘황찬란한 2015-2016년을 보낸 이후에도 프랑스에서의 한국은, 그리고 한국에서의 프랑스는 그저 떠다니는 이미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려고 하는 작업이 시간낭비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수많은 타국 중 한 나라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한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되도록 같은 시간(오전 9시)에 구글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다섯 개씩을 정리하여, 딴지 독자들과 매주 프랑스에서 화제가 된 사건들을 공유해 보려고 한다. 프랑스의 주요 이슈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인들이 (적어도 인터넷 상에서) 어떤 매체를 보다 선호하는지, 세계적인 이슈에 있어서 한국과 프랑스의 시선차이 등을 겉핥기로나마 알 수 있을 거다.


지난 9월부터 이 작업을 시작하기는 하였으나, 매번 일주일을 다 채우지 못하는 바람에 이제서야 이 글이 빛을 보게 됨을 고백하며, 필자의 게으름을 자인하는 바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해 놓은 게 아까우니까 예고편이라도 보여주겠다.



공화당의 좌충우돌


프랑스의 대중운동연합(UMP)을 전신으로 하는 우파정당 공화당(Les Républicains)은 2015년 5월에 창당되었다. 현재 UMP 때 대통령에 선출되었던 사르코지를 당수로 하며, 공화당엔 UMP 창당 초기 당수를 맡았던 알랭 쥐페(Alain Juppé)도 있다. 쥐페는 현 보르도 시장으로, 공화당의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프랑스의 거물급 정치인 중 하나다. 설문조사에서도 사르코지와 쥐페에 대한 지지율에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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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화당은 올해 12월에 치러질 지방선거 후보자를 정하는 일에 한창이다. 사르코지는 지방선거의 후보자를 정하면서 2017년에 있을 대선 후보 역시 확실히 해야 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 주장으로 사르코지와 라이벌인 알랭 쥐페와의 사이는 더 벌어졌다.


2015년 9월 12일, 프랑스 북부, 영국 해협에 연해 있는 투케(Touquet)에서 프랑스 공화당 소장파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거물급 정치이자 현 보르도 시장인 알랭 쥐페가 이 자리를 깜짝 방문하여 주목 받았지만, 사르코지가 도착하기 전에 자리를 떠남으로써 둘 사이의 팽팽한 라이벌 의식이 공공연하게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후에도 둘은 서로에 대한 견제를 감추지 않는다. 2015년 9월 27일에는 이번 지방선거의 일 드 프랑스(Île-de-France) 주 공화당 후보자로 선출된 발레리 페크레스(Valérie Pécresse)를 축하하고 격려하기 위한 자리가 있었다. 사르코지는 투케에서 자신을 보지도 않고 떠나 버린 쥐페의 방문에 감사를 표하며, ‘같은 당 소속이라면 라이벌이라 하더라도 서로 사이가 좋은 척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겠냐’고 의연한 척 이야기 했다. 그러나 실은 속으로는 화가 많이 났었던 듯 하다. 페크레스를 위한 이 자리에 쥐페를 포함한 당 지도부와 함께 입장하기로 했었으나 이를 전격 취소함으로써 쥐페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이 자리가 페크레스의 축하 파티가 아니라 사실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힘겨루기였다고 비꼬았으며, <르몽드>는 2015년 9월 28일 자 기사에서 이를 두고 두 라이벌 사이의 극적인 긴장을 보여준다고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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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알랭 쥐페, 발레리 페크레스, 니콜라 사르코지
페크레스를 위한 자리에서 라이벌이 만났다.
쥐페와 사르코지의 표정이 묘하다.


쥐페와 사르코지 사이의 이 흥미진진한 갈등에 대한 프랑스의 관심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공화당에서 더 큰 이슈가 터졌기 때문이다. 9월 26일, 공화당 정치인이자 유럽 하원의원인 나딘 모라노(Nadine Morano)는 <TF1>의 토크쇼에 출연하여 자신의 지방선거 출마 사실을 밝히며 "프랑스는 유대 및 카톨릭의 나라이자 백인의 나라"라고 발언했다. 아시다시피 프랑스는 그 동안의 식민지배 및 1970년대 이전까지 적극적으로 실시한 이민 정책의 일환으로 유럽 국가 중에서도 인종구성이 상당히 다양한 나라다. 때문에 공공연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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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딘 모라노는 TF1 프로그램에서 "프랑스는 유대교 및 카톨릭의 국가이자 백인종의 나라"라고 발언했다


모라노의 발언에 대해 '프랑스를 위한 운동(Mouvement pour la France, MPF)'의 창시자 및 현 당수인 필립 드 빌리에(Philippe de Villiers)가 적극적인 지지 를 보낸다. 드 빌리에는1995년과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MPF 후보로 나선 적이 있는 거물급 정치인이며, MPF는 민족적 카톨릭주의를 내세운 (FN처럼) 프랑스의 극우정당이다. 극우정당이 아닌 공화당의 정치인이 이런 극우스러운 발언을 했다는 것이 상당히 충격적인데, 중도우파로 인식되는 공화당은 정체성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사르코지가 모라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면서 일이 커졌다. 2015년 10월 7일 아침, 공화당 공천위원회장이자 현 니스의 시장인 크리스티앙 에스트로시(Christian Estrosi)가 <유럽1>과의 인터뷰에서 모라노 발언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이 때 에스트로시는 ‘모라노의 발언은 단지 개인 의견일 뿐 자신은 그에 찬성하지 않으나, 공화당의 당수인 사르코지는 모라노의 손을 들어 주었다’며, 사르코지가 모라노에게 24시간 이내에 해명의 서신을 보낼 것을 제의했다고 밝혔다. 즉, 모라노가 해명의 서신을 보내기만 하면 모라노는 여전히 지역선거 공천권을 잃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문제는 모라노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데에 있다. 2015년 10월 8일, 우아즈(Oise) 주의 하원이자 전직 장관 에릭 워스(Eric Woerth)가 프랑스 라디오 채널 중 하나인 <RTL>과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에 의하면 전날 사르코지가 나딘 모라노에게 요구한 사과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 모라노의 지역선거 출마는 요원해졌고, 결국 모라노 대신 발레리 드보르(Valérie Debord)가 뫼르트 에 모젤 (Meurthe-et-Moselle)주의 지방선거 공화당 후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모라노에 대한 처분을 놓고 벌인 투표에서 미쉘 아이요 마리(Michèle Aillot-Marie) 등 3명은 기권을 했으며 알랭 쥐페, 프랑수아 필롱(François Fillon) 및 브뤼노 르 매르(Bruno Le Maire)는 불참했다. 사르코지는 조만간 프랑스 동부 지역에 들려 현 상황을 설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라노 사건에 대한 공화당 주요 인물들의 대응이 흥미롭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유력한 사르코지는 일단 모라노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지지를 보내지는 않았으나 그에 대한 선처를 베품으로써 모라노의 생각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또 다른 유력한 후보인 쥐페는 입장을 밝히기를 거부하였다.


점차 프랑스 극우정당의 지지율이 높아져 가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 실제로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10여 년 전과 비교해 보았을 때, "프랑스를 프랑스인에게!"로 대표되는 극우정당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여기서 ‘프랑스인’이란 피부가 하얗고 카톨릭 신앙을 지닌 이들을 일컫는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언론이 모라노의 "프랑스는 유대교 및 카톨릭의 국가이자 백인종의 나라" 발언 중 후자, 그러니까 '백인종의 나라'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발언에만 집중하더라도 흑인이나 아랍인을 제외하고자 하는 모라노의 생각은 분명히 전달된다. 보통 종교가 문제시 되는 것은 이슬람교이고, 프랑스 내 이슬람의 대부분은 아랍인이니까. 동양인은 '아웃 오브 안중'이니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그런데 모라노는 여기에 왜 굳이 유대교를 슬쩍 끼워 넣었을까? 프랑스야 전통적으로 카톨릭 국가였으니 카톨릭은 그렇다 치더라도 유대교는 어찌 보면 뜬금 없다. 그런데 프랑스 우파가 대변하는 계층이 이른바 부르주아임을 감안하면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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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7일자 <샤를리 엡도> 표지
모라노를 샤를 드 골의 숨겨진 다운증후군 아이로 표현하고 있다.
공화당의 전신인 대중운동연합(UMP)이 드골로부터 왔으니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어찌됐든 <샤를리 엡도>가 보기에 모라노가 모자라 보이긴 한가 보다.
물론 이 표지는 드골을 존경하는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았으나 <샤를리 엡도>야 뭐 욕 먹는 데는 이골이 났을 테니 그런가 보다 하지 않을까?


필자가 매일 찾아 보는 TOP5 기사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모라노는 자신을 지방선거 후보에서 낙마시킨 사르코지의 결정을 두고 "멍청하고 우스꽝스럽다"며, 사르코지는 "프랑스에 해명의 서신을 보내야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자신만의 독자 노선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실제로 모라노의 생각에 동의하는 이들이 점차 모여 들고 있다. 이를 두고 프랑스의 언론인 에르베 가테뇨(Hervé Gattegno)는 "사르코지는 모라노에 감사해야 한다."고 평하였다 . 모라노가 이제껏 사르코지가 이루지 못한 공화당 지지층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모라노는 지방선거에 후보로 나서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축출되지도 않음으로써 공화당의 정체성을 보다 오른쪽으로 옮기는 데에 성공했다.



테러리즘


IS 사태에 대한 관심은 전세계적이다. 프랑스 역시 시리아 내 IS 공격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인 관계로 IS와 관련된 소식은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시리아 현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며 시리아 내전에 간섭하기 시작했다는 기사들이 조명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한 프랑스 언론들의 시선은 NATO 및 미국의 시선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편 프랑스는 최근 일련의 테러 관련 사건들을 겪으면서 테러리스트에 대한 대응 수위를 한층 높여 가고 있다. 2015년 10월 6일에는 프랑스 내무부 장관 베르나르 카즈뇌브(Bernard Cazeneuve)가 국회에서, '국무총리에게 지난 2003년 5월 16일 발생한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테러에 참여한 5인의 프랑스인 테러리스트의 국적을 박탈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히기에 이른다. 카즈뇌브 내무부 장관은 지하드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접근 차단,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이들의 출국 금지 조처 및 프랑스 국적 테러리스트 재입국 금지, 증오 발언을 퍼뜨리는 이들에 대한 추방 등을 테러리즘에 대한 대응책으로 내놓고 있다. 국적 박탈은 이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방책으로, 이 조처를 현실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근거가 되는 민법 25조 등 3가지 법 조항을 들어 그 적법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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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국회에서 테러에 대한 대응을 강력히 할 것을 밝히고 있는 카즈뇌브 내무부 장관


테러리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탈리스 열차 테러 기도 사건에 대해서 잠시 언급해 볼까 한다. 1월의 <샤를리 엡도> 사건 이후 프랑스의 '테러와의 전쟁'은 현재진행 중이다. 그 중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사건이 바로 탈리스 열차 테러 기도 사건이다. 이 사건과 관련한 기사는 사건이 일어난 후 거의 2주가 지나도록 항상 ‘가장 많이 읽은 기사’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프랑스가 지난 1월 <샤를리 엡도> 및 그 일련의 사건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탈리스 사건이 발생한 시점과 비슷한 시기에 중국 텐진에서는 대규모 폭발이 있었고, 남북한의 대치상태와 극적인(!!) 화해 등 굵직한 사건이 있었지만 그래 봐야 지구 반대쪽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큰 조명을 받지는 못하였다]


탈리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2015년 8월 21일, 암스테르담 발 파리 행 탈리스 기차가 벨기에 브뤼셀에 잠시 멈춰선다. 여기에서 범인 아유브 엘 카자니(Ayoub el-Khazzani)가 무장한 채 기차에 오른다. 오후 5시50분, 기차가 프랑스 국경을 넘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엘 카자니가 화장실로 들어가 총을 장전한다. 그 소리를 알아 들은 미군이 엘 카자니가 화장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린다. 범인이 화장실에서 나올 때, 28세의 네덜란드 은행에서 일하는 프랑스인 여행객이 카자니를 무장해제하려고 하나 실패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고 그 중 한 발을 프랑스계 미국인인 한 탑승객이 맞는다. 결국 세 명의 미국 청년(Alek Skarlatos, Spencer Stone et Anthony Sadler, 각각 22, 23, 23세)이 영국인 중년남성 크리스 노먼의 도움을 받아 범인을 무장해제하는 데에 성공했고, 테러는 미수에 그친다.


엘 카자니는1989년생의 모로코 국적 남성으로 프랑스에서 자랐다. 2009년과 2010년 스페인에서 마약밀매로 체포되기 전까지 절도 및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브뤼셀의 한 공원에서 무기를 발견했고, 무기를 시험해 보고자 한 것일 뿐 테러에 대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하였으나, 1등석 표를 현금으로 지급한 점, 증언과는 달리 브뤼셀에 사는 가족의 집에서 기거했던 점, 프랑스로 입국하기 전 시리아에 갔던 점 등을 미루어 테러 조직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를 계속했다.


이 사건에 대해 대중은 첫 번째는 범인, 그 다음으로는 테러를 미수에 그치게 한 장본인, 이른바 '영웅'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딱 들어 맞는 이 사건에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이 사건에서 프랑스 경찰은 '영웅'들과 빈번히 비교되었는데,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곳에 경찰 및 군인을 배치할 수는 없다는 것이 프랑스 경찰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실제로 <샤를리 엡도> 사건 이후 모든 언론사 및 유대인 학교 등에는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 어디에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테러를 모두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미국 영웅들이 프랑스인을 안심시켰으니, ‘세계의 경찰’인 미국의 힘을 다시 각인 시킨 계기가 되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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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스 열차 테러 기도 사건의 '영웅'들이 훈장을 수여 받고 올랑드 대통령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 영웅들은 며칠 후 카즈뇌브 내무부장관에게 훈장을 수여 받았다. 훈장 수여는 이번 사건으로 기차가 멈춘 파 드 칼래(Pas-de-Calais) 지역의 아라스(Arras)에서 이루어졌다. 훈장을 받은 세 사람은 미국인 학생과 군인, 영국인 경영인이고, 부상을 입은 두 사람의 국적은 각각 미국과 영국으로 밝혀졌다. 프랑스에서는 내무부 장관, 교통부 장관 등 많은 정치인들이 이들의 용기에 감사를 표했으며, 미국 오바마 대통령 역시 영웅적 행동에 대한 칭송을 잊지 않았다.


프랑스에 사는 동양 여성으로서 작년부터 지하철이나 기차 등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성추행 및 성폭행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매번 범인을 저지하거나 적어도 비상 레버를 작동시킨 이가 하나도 없었는데, 그에 따라 프랑스의 연대의식 부족 및 보안의 결여가 지적되곤 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점은 거의 없었다. 참 살기 힘든 세상이다.



에어프랑스 노사 충돌 사건


에어프랑스 노사 충돌 사건은 가장 최근에 발생한 사건으로, 마뉘엘 발스(Manuel Valls) 국무총리가 "프랑스나 다른 나라에 충격을 준 사건"이라 표현한 바 있다. 2015년 10월 5일 월요일, 에어프랑스의 임원들은 2,900여 명의 직원에 대한 해고 사안을 두고 회의하기 위해 모인다. 이 소식을 들은 노조가 임원들의 회의를 막는 과정에서 에어프랑스 인사 담당자의 셔츠가 찢어지는 등 충돌이 발생했다. 한국 언론에서도 여기에 대한 보도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말 그대로 임원들의 옷을 찢고 벗겨 버리다니, 그 장면이 참 대중의 눈길을 끌만 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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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노조원으로부터 대피하는 자비에 브로세타(Xavier Broseta) 에어프랑스 부사장




재미있는 점은 한국 언론의 보도에서 볼 수 있는 '일관적인' 시각이었다. <MBC 뉴스투데이>에서는 "국가 이미지 실추라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 되자 프랑스 정부는 이들에 대해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것"이라고 했고, <연합뉴스>에서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에어프랑스 경영진에 대한 노조의 공격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 프랑스 이미지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우려"했다고 기사를 내보냈다. <JTBC>에서는 "프랑스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며, "정부와 노동계가 한 목소리로 폭력 사태를 비난했다"고 밝혔으며, <KBS>는 <연합뉴스>와 마찬가지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의 이미지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우려했고, 마뉘엘 발스 총리는 엄하게 법을 집행하겠다고 밝혔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 언론이 빼먹은 것이 있다. 일부러 빼먹은 건지 아니면 외신 전달 과정에서 누락된 것인지는 내가 판단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사건 다음날 오전 9시 경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중 1위에 오른 <프랑스앵포>의 라디오 기사는 한국 언론의 시선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기사는 물론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표현으로 시작하지만 또한 "이번 사태는 에어프랑스 사의 이제까지의 모순이 터져 나온 결과"라고 냉정한 입장을 유지할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이번에 모여든 노조들 중에는 파일럿 노조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 일반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노조들만 있었다. 파일럿의 생계는 당연히 보장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 논의한 2,900여 명에 대한 해고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도 한국에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에어프랑스는 최근 6년에 걸쳐 만 여 명을 해고했다.


그에 따라 마뉘엘 발스 국무총리는 "지난 폭력 사태가 프랑스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충격을 준 장면"이라며 "폭력 사태에 대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여기까지는 한국 언론이 이야기하는 바와 같다. 하지만 발스는 "에어프랑스사의 구조조정은 필요한 조처이지만 그 책임을 일반 노동자들에게만 지워서는 안 되며 파일럿을 포함한 임원진도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밝혔다. 그의 오른팔이자 빠른 시일 내에 에어프랑스 인사 담당자로 일하게 될 질 가토(Gilles Gateau)는 "프랑스는 현재 변화가 필요하며, 노조 중에서도 이를 절감하는 이들이 있다. 프랑스에는 노조가 필요하다. 우리는 개혁이 필요한 것이지 단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불필요한 혼동을 우려해야 한다 고 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역시 이러한 폭력 사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며 "프랑스 이미지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우려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진과 노조 책임자 사이의 책임감 있는 대화"라고 밝히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 언론에서 굳이 이런 ‘사족’을 뺀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


이쯤 되면 프랑스인들의 반응 역시 궁금해진다. 사건 직후에 진행된 <Ifop>의 설문조사(10월 7일부터 9일에 걸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에 따르면 응답자의 54%가 이번 노조의 행동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나 찬성하지는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절반이 넘는 수치다. 8%는 "찬성한다"고 대답하였으며 38%는 "용납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응답자의 직업군에 따라서 응답 경향 또한 달라졌다는 점이 재미있다. 일반 회사원의 경우는 66%가 "이해할 수 있다"고 밝힌 반면, 중간관리자는 60%, 일반 노동자(이 개념을 대체할 만 한 용어를 결국 찾지 못하여 그냥 쓰면서 무한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54%, 고위 임원직은 49%가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용납할 수 없다"는 응답은 고위 임원직의 44%, 중간관리자 35%, 일반 노동자 34%, 일반 회사원 24%로 나타났다.


다만 2009년 비슷한 사태에 대해 진행된 같은 형식의 설문조사에서는 "이해할 수 있으나 찬성하지는 않는다" 항목에 대한 응답률이 62%였음을 감안하면 그 동안 프랑스 사회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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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프랑스 폭력사태에 대한 프랑스인의 시선



자, 이제 예고편이 끝났다.


딴지 프랑스 특파원이 야심차게 (하지만 게으르게) 준비한 <프랑스는 지금> 시리즈는 이런 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물론 이제부터는 일주일 간의 사안에 집중할 예정이므로 보다 다양한 소식들을, 보다 얕게 전해주게 될 것 같다.


한 사회에서만 지내다 보면 그 사회에 적응하는 고로, 그 사회의 일반적인 시선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그렇게 사는 것이 실은 더 편할 지도 모른다. 잘못하면 사회부적응자 혹은 종북, 공산주의자 등으로 낙인찍힐 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동시대에 존재하는 각각의 사회들이 사실은 각기 다른 관습과 사상을 토대로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참고


2015년 9월 13일자 <RFI>, “Dans l'ex-UMP, Sarkozy veut faire «comme si on s'entendait très bien»”

2015년 9월 28일자 <르파리지앙>, “Un meeting aux faux airs de primaire”
2015년 9월 28일자 <르몽드>, “Chez les Républicains, un meeting pour la primaire déguisé en réunion de soutien à Pécresse”

2015년 10월 6일자 <웨스트 프랑스>, “Philippe de Villiers. "Morano, je la soutiens"”

2015년 10월 7일자 <유럽1>, “Estrosi : "Sarkozy a tendu la main à Morano"”

2015년 10월 8일자 <RTL>, “Éric Woerth est l'invité de RTL”

2015년 10월 9일자 <FranceInfo>, “Pour Nadine Morano, Nicolas Sarkozy aussi aurait dû écrire "une lettre d'excuses" aux Français”
2015년 10월 9일자 <BFMTV>, “Nicolas Sarkozy peut remercier Nadine Morano”
2015년 10월 7일자 <BFMTV>, “Cazeneuve a demandé la déchéance de nationalité française pour 5 terroristes”
2015년 10월 6일자 <프랑스 앵포>, “De la violence à Air France, pourquoi ?”
2015년 10월 7일자 <르 피가로>, “Air France: "l'État joue son rôle" (Valls)”
2015년 10월 6일자 <르푸앙>, “Incidents Air France : Hollande déplore des "conséquences sur l'image" de la France”
2015년 10월 10일자 <르 피가로>, “Air France/violences: les Français comprennent”








아까이 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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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