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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리들리 스콧

주연: 맷 데이먼, 제시카 차스테인, 제프 다니엘스, 케이트 마라, 크리스틴 위그, 마이클 페나, 세바스찬 스탠, 치웨텔 에지오포, 엑셀 헨니, 맥켄지 데이비스, 도날드 글로버, 숀 빈

음악: 해리 그레그슨-윌리엄스

촬영: 다리우스 월스키

PG-13 / Color / 142분

원제: The Martian



(다 쓰고 보니까 스포일러가 있는 거 같아요. 그냥 내 생각이에요)


<킹덤 오브 헤븐>,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등을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은 내게 의미가 깊은 분이시다. 이 분의 작품인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로, 돌비 사가 내놓은 새로운 사운드 포맷인 ‘돌비 애트모스’를 처음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역사는 인간 홍준호의 뇌에 위치한 아카이브에 평생 저장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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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역사를 기억하는 나의 자세


아무튼 그 분이 신작인 <마션>을 들고 오셨단다. 첫 번째의 강렬한 기억 때문에 두 번째 애트모스 관람작 역시 거침 없었다. 어여 오라는 리들리의 리들리들한 손길이 리들거렸다. 봐야하지 않겠는가! 나는 돌비 코리아가 개최한 돌비 애트모스 특별전에 당첨된 덕에 극장 개봉일보다 빠른 10월 3일에 <마션>을 관람했다.


혼자 간다고 신청했었는데 상영관 앞에 있는 직원이 해맑게 "두 분이시죠?"라고 물었다. 난 애인이 없는데! 해맑게 웃는 직원에게 화를 낼 수는 없어서 사람 좋은 웃음으로 "하하. 아뇨. 한명입니다"라고 하며 표를 수령했다. 초청자 명단에 두 사람으로 표기되어 있더라. 씁쓸한 기분으로 감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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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마션>을 감상하는 처음 몇 십 분 동안은 이 작품이 헐리우드 특유의 스펙터클을 강조한 스타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감독이 전작인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을 찍을 때처럼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찍었던 촬영지들에 다시 한 번 찾아갔다는 소식을 들어서였다. 전작에서의 해당 촬영지는 고전기 헐리우드가 만들어냈던 스펙터클한 시대극에 대한 오마주로서 선택된 바 있었고, 컴퓨터 그래픽으로도 만들어낼 수 있는 화성을 굳이 현실에서 찾으려 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그리 생각할 만 했다.


<마션>의 촬영지는 요르단에 있는 와디 럼 사막. 이전에 화성을 배경으로 한 두 작품이 여기를 배경으로 촬영했었다. 하지만 <마션>이 단순히 영화계의 선례를 따라가려고 와디 럼에 간 것 같지는 않다. 다른 이유도 있어 보였달까.


데이비드 린 감독의 1962년작, <아라비아의 로렌스> 중에서


<아라비아의 로렌스>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작품의 주인공인 T.E. 로렌스는 영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자신의 국가보다 사막에 더 매력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는 외부인이지만 사막에 살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고 그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물론 <마션>은 로렌스처럼 실존인물을 다룬 작품이 아니고 앤디 위어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니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큰 연관은 없다.


하지만 화성 시퀀스의 촬영 장소 자체가 작품 속 주인공을 향한 응원을 담고 있다는 감흥을 준다. 작품의 주인공인 마크가 T.E. 로렌스 같은 사람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로렌스가 사막을 좋아했듯이 그도 화성을 좋아했으면 하고. 왜냐하면 <마션>의 기본 설정이 굉장히 심각하고 막막하기 때문이다.


우주비행사 마크는 우주여행 중 사고를 당해 공기가 없는 화성에서 홀로 남는다. 팀원들이 마크가 죽은 줄 알고 구조를 포기했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는 다른 나라가 아니고 다른 행성에 있고, 지구의 사람들에 의해 구조되어야 한다. 생각만 해도 깜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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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매우 암담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마크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다. 본격적으로 화성에서 눌러 앉은 그는 식물학자인 본업을 살려서 남은 식량으로 농사를 지어 배를 채우며, 지구에 신호를 보낼 방법을 궁리한다. 로렌스처럼 그도 사막과도 같은 화성에 적응해 나간다. 작품은 마크의 여정과 변해가는 심리를 보강해주기 위해 해리 그레그슨-윌리엄스의 미니멀리즘의 정서가 담긴 스코어 음악을 활용한다. 그러다 한 번씩 디스코 펑크 장르의 음악도 나오는데, 이 정도까지 봤다면 포스터와 예고편이 주는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서 뜬금없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예상과 다르게 그는 (의외로) 별 일 없이 산다.


의심도 해볼 수 있다. 작품이 원작과는 다르게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강박적으로 유머를 끼워 넣는’ 최근 영화들의 트렌드를 고려해서 만들지 않았을까? 그럼 위험하다. 어느 장르든 유머를 첨가해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잘못하면 본래의 장르도 소화 못한 채 어정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낭비’다.


다행히도 <마션>은 화성에서 조난당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풀 수 있으며, 단순히 기능적인 측면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를테면 본편에 삽입되는 디스코 음악들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처럼 ‘시퀀스를 지배하는 선곡’은 아니다. 대신 인류의 눈으로 볼 때 미지의 존재, 혹은 최악의 환경을 자랑하는 화성의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효과로서 기능한다. 웃기려는 목적으로 무리하게 선곡하지도 않았고 사용 목적도 명확하다. 말하자면 <마션>은 낭비가 아닌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정체를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는 'Disco Clip'


예컨대 작품에는 꽤 많은 수의 등장인물이 출연한다. 대부분 짧게 출연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갈 만큼의 비중을 가진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보다 보면 출연 배우들 대부분을 ‘어디선가 봤다’는 느낌이 들어 그들을 낭비하지 않았나 싶을 수도 있다. 이를 예상한 듯 작품은 인물이 처음 등장할 때마다 이름과 직책 자막을 함께 표기한다. 덕분에 직책으로 인물의 성격을 예측할 수 있으며, 이러이러한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마크 안토니를 구하기 위해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화성에 홀로 남은 그를 걱정하고, 누군가는 세속적인 이유로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든 ‘살려야 한다’는 결론에는 변함이 없다.


작품은 한 눈을 팔지 않는다. 마크는 ‘살아야 한다’에 집중하고,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마크를 ‘살려야 한다’에 집중한다. 화성에 울려 퍼지는 디스코 음악은 마크에게 삶의 의지를 북돋는 원동력이다(물론 그는 디스코를 싫어하는데 들을 수 있는 음악이 그것뿐이라 마지못해 틀어놓는 것이다. 기능적인 측면의 유머다). 그리고 지구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수다는 화성의 조난자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야 하는 베테랑들이 기운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엔돌핀과도 같다. 덕분에 당황스러움은 사라지고 이해가 된다. 아. 이 작품의 유머는 ‘절실함’에서 비롯되고, 존재할 가치가 있구나.


지구에서 마크를 구하기 위해 이론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법들을 시연하는 시퀀스


문득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왜’ 지금 자신의 신작으로 <마션>이라는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일까? 작품을 보는 내내 미소를 머금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흔치 않은 게 (1.85:1의 비스타비전으로 찍은 작품과) ‘유머러스’한 작품이었다.


물론 <마션>의 유머는 감독의 온전한 창작물이라 볼 수 없다. <캐빈 인 더 우즈>를 감독한 드류 고다드의 손길이 담긴 각본, 그리고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앤디 위어가 쓴 원작소설의 영향이 클 테니 말이다. 그럼 리들리 스콧이라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인장은 어디에 있을까. 그건 ‘주저함이 없는 명확한 이야기 전개’에 있다. 사실 이 감독의 매력은 ‘모호함’이다. 그의 전작들을 생각해보라. 많은 부분들이 모호했다. 데커드는 레플리컨트인가? 스페이스 쟈키는 어디서 왔는가? <프로메테우스>는 <에일리언>과 연관이 없다며? <카운슬러>에서 카메론 디아즈는 어떻게 됐을까?


그런데 관객으로서 의문들에 대한 답을 상상해 보는 재미가 <마션>에는 없다. <마션>은 주인공에게 많은 애정을 쏟는 스타일의 작품이다. 애정이 절정을 이루는 순간은 중후반부에 등장하는데, 마크를 화성에 버려두고 왔다는 죄책감을 가진 팀원들이 귀환 중에 찾아온 기회를 망설임 없이 잡을 때다. 자칫하면 자신들이 죽을 수도 있고 지긋지긋한 우주임무 기간이 길어지는 등 위험요소가 많은데도 이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마션>에 대해서스펜스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애초부터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서스펜스는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살고 싶다, 살리고 싶다’에 가깝다. 이 작품은 생존과 희망의 가능성을 믿고 그것만을 향해 달려가는 뚝심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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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마션>을 보면서 서스펜스가 부족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원작소설에는 마크 와트니가 겪는 고난이 더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영화는 이를 위해 그저 한 배우를 배치할 뿐이다.


그 이름 숀 빈. 그는 이 작품에서 악역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문제다. 앞장서서 마크를 구하려 애쓰는 선한 역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숀 빈이 헐리우드에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면, 거기서 굉장한 서스펜스가 생긴다. 한 사람의 생사가 달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를 구하기 위해 작전을 지휘하는 사람이 김갑수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개복치 살리기’ 수준의 굉장한 긴장감이 있다. ‘혹시 구조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다가 그만 숀 빈이 죽어서 위기가 닥치거나 그러는 거 아녀? 숀 빈이 죽어 쓰러지면서 핵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른다든가’ 같은. 숀 빈의 존재감 덕분에 최소한 나는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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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있었던 일 하나가 기억났다. 앞으로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들에서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 그 문제, 동생인 토니 스콧 감독과의 사별 말이다. <탑 건>, <언스토퍼블>, <맨 온 파이어> 등을 만들어 ‘명장 형제’라 불렸던 토니 스콧은 자신이 치료가 불가능한 뇌종양에 걸린 것을 알고 2012년에 다리에서 몸을 던졌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가 개봉되고 몇 달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의 비보를 처음 들었을 때 앞으로 리들리 스콧의 영화에 ‘밝은 분위기’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동생의 사후에 만들어진 <카운슬러>는 너무나 암울한 작품이었으며, 성서를 영화화한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도 다소 신경질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마션>은 그 두 작품에 비하면 의아할 정도로 밝지만, 왜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화 해야겠다고 결심했는지 알 것 같다. 토니 스콧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크 와트니’가 아니었을까. 영화와는 달리 결코 이뤄질 수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마크 와트니의 생존과 귀환은 감독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모호함이 존재할 수 없다. 감독이 창작욕구를 느꼈다면 인류에겐 미지의 세계면서 또한 죽음의 세계인 화성에서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는 명확한 완결성에 매혹됐기 때문일 것이다. <마션>은 예상보다 편안하고 재미있는 블록버스터이면서, 동시에 리들리 스콧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다.



p.s.


1) 위에서 언급한 감독의 인장 말인데, 작품 속에 디테일이 몇 개 더 있다. 이를테면 마크의 집이 되는 화성기지는 1979년 작인 <에일리언>에 등장하는 노스트로모 호의 내부 인테리어와 질감 등이 닮았다. 그리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컴퓨터가 분석한 데이터를 출력할 때, 모니터가 번쩍이면서 기계적인 효과음을 낸다. 이 역시 <에일리언>에서 노스트로모 호를 관리하는 컴퓨터 ‘마더’와 닮았다. 작품의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음향 부분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마션>을 볼 때도 재밌을 거다. 아날로그 타자기처럼 철커덕 거리는 소리와 기계식 키보드에서 나오는 삑삑거림의 조화라니.



2) 돌비 애트모스 포맷의 감상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나는 <마션>을 부산 롯데시네마 광복점 슈퍼플렉스관에서 2D로 감상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이 날 앉았던 위치에서는 애트모스의 위력을 100% 느끼기가 힘들었다. 슈퍼플렉스관에는 천장 위에도 스피커가 부착되어 있어, 음향 효과 때문에 골통이 울리는 게 장점인데, 내가 앉은 좌석 위에는 낮은 천장이 있었다. 뭐지 이거?


상영이 끝나고 나와 보니, 롯데시네마 광복점 슈퍼플렉스관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더라. 위층은 ‘시네커플’관이라고 했다. 위층에도 관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트모스 음향만큼 커플들 쪽쪽거리는 소리와 옆에서 통닭 먹느라 쩝쩝거리는 소리는 잘 들었다.


전면적으로 듣지 못했더라도, <마션>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전작인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처럼 애트모스 포맷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성질의 작품은 아니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중후반부에 신이 꼬장을 부리며 이집트에 재앙을 안기는 부분에서는 애트모스가 작두 타듯 신명나게 놀아나지만, <마션>의 경우에는 필요할 때 모습을 드러내어 효과를 강화한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디스코 음악이야 기본이 스테레오 포맷이니까 애트모스로 믹싱을 한다고 해도 원본의 한계가 있을 것이고. 뭐, 온전하게 음향을 느끼지 못했더라도 내가 사는 곳에는 슈퍼플렉스나 애트모스관이 없으니 어떻게 듣던 간에 좋은 기억으로 남겠지만 말이다.


3) <마션>에는 ‘민디 파크’라는 캐릭터가 있다.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를 감상했기 때문에 민디 파크의 ‘파크’가 공원 할 때의 'park'인줄 알았다. 알고 보니 한국의 성씨 ‘박’을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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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로 <마션>은 한국에서 ‘인종차별영화’의 선두주자가 되고 있다. 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왜 인종차별을 했는가’가 아니라, ‘왜 캐스팅을 그렇게 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그런데 원작자인 앤디 위어가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가진 인터뷰 도중 민디 파크 캐스팅에 관해 이렇게 말을 했단다.


“민디를 한국계로 설정한 것은 맞지만 소설에서 명확하게 서술하지는 않았다. 또 ‘파크’의 ‘park’가 영국식 성이기도 해서 감독이나 캐스팅 담당자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의문은 이렇게 해결됐다.


다른 문제는 그 캐스팅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건가 하는 점이다. <마션>을 인종차별영화라 규정하기에는 본편에서 등장하는 배역들의 인종이 다양하고, 비하 묘사도 없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어떤 인종이든 상관없이 모두 자기 일을 열심히 한다. 한국인 배우가 헐리우드 영화에서 핵심인물로 나오는 광경을 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 작품을 인종차별영화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홍준호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