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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제일 큰 은행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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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JP 모건 Chase라는 은행이다(편의상 JP모건이라고 하겠다). JP모건은 자산가치가 2,600조가 넘어가는 매머드급 은행이다. 근데 이 은행에 2012년도에 발생한 흑역사가 하나 있다. 바로 런던 고래(London Whale) 사건이다.


여기서 런던 고래는 JP모건이 아니라, 여기서 일하던 트레이더인 브루노 익실(Bruno Iksil)에게 붙은 닉네임이다. 근데 좀 이상하지 않나? 무슨 채팅방 아이디도 아니고, 누가 뭘 사는지도 알기 힘든 금융시장에서, 어떻게 트레이더가 이런 닉네임까지 얻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이 사람의 남다른 스케일 때문이다. 큰손들이 많은 금융시장에서도 이 사람의 배팅은 정말 남달랐다. 2012년 스캔들 당시 그가 베팅한 규모가 150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서울시 1년 예산이 20조쯤 되는데, 이 익실이란 넘은 서울시의 7년 예산을 가지고 돈놀이를 해댄 거다. 그것도 파생 상품 한두 개를 잡고 몰빵으로. 가뜩이나, 좁은 파생상품 시장에서 이렇게 독보적인 규모로 돈을 굴리니, 이 사람이 한번 움직이면, 고래가 움직인 것처럼 시장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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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주로 취급했던 파생상품을 살펴보면, Credit Default Swap(CDS) 인덱스 관련 상품인데 (CDX High Yield 11으로 추정), 이게 또 졸라 복잡하다. CDS라는 건 기업 신용도에 대한 보험 같은 건데, 단순하게 설명해 보겠다.


A와 B가 있다. A는 CDS를 파는 사람이고, B는 CDS를 사는 사람이다. A는 매달 B에게 보험료 같은 걸 매달 꼬박꼬박 받는다. 그러다 계약한 기업이 파산하면 A가 B에게 ‘파산 보상금’을 지급하는 형식이다. 만약 기업이 파산하지 않으면 A는 보험료만 먹으니 이득이 되고, 기업이 파산한다면 B는 막대한 보상금을 받을 수 있으니 이득이 된다. 보험이랑 비슷하다.


CDS Index라는 건, 이런 CDS 여러 개를 묶은 거다. 보통 기업을 한 100개 정도 찍어놓고, 100개 기업에 대한 보험료를 계약 기간 동안 B가 납입하다가, 100개 중 하나라도 파산을 하면 B가 보상금을 타 먹는 상품이다. 이렇게 기업에 수가 늘어나면, 당첨될 확률도 늘어나지만, 그만큼 보험료도 올라가게 된다. 몇 년 뒤에 기업이 망할지 말지를 가지고 돈을 건다? 딱 들어도 졸라 투기 같지 않은가?


근데 이거를 위대한 트레이더인 익실은 기본 조 단위로 샀다는 거다. 그것도 고객들이 예치시켜 놓은 예금으로. 돈놀이의 역사 전편을 본 독자라면 기억할런진 모르겠지만, 서브프라임이후로 볼커룰이니 Dodd Frank니 해서 미국의 금융당국들이 금융업계에 대한 온갖 규제를 만들었다. 이들 법안에 핵심 규정 중 하나는, 대형 은행들이 고객 예금으로 위험한 파생상품에다 투기질을 못하게 못 박아 놨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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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valuewalk>


근데 익실은 이딴 거 다 쌩까고 고객 예금을 제 돈처럼 굴렸다. 어떻게? 그 답은 익실이 일한 부서에 있다. 그는 런던에 소재한 Chief Investment Office란 곳에서 근무했다. 원래 이 부서가 하는 역할은, 최고자산운용 담당자 밑에서 은행이 관리하는 투자 자산들과 위험을 측정하고, 위험을 낮추는 업무(헤징)를 하는 부서이다. 돈을 벌어오는 부서가 아니라, 돈 버는 애들을 감시해야 하는 부서란 소리다. 이론적으로는.


사실 따지고 보면, CDS가 은행의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한다. 은행이 근본적으로 돌아가는 방식은 싼 이자를 주고 예금을 떼 와서, 좀 더 이자를 얹어서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예금 이자와 대출 이자 사이에 마진으로 먹고 사는 게 은행인데, 만약에 돈을 빌려준 기업들이 파산신청을 해버리면, 은행입장에서는 돈 떼여서 손해 볼 수가 있다. 그러니, CDS라는 보험을 사서, 신용위험을 헷징하는 것은, 위에서 말한 각종 금융 법안에서 예외로 인정을 해주었다.


그니까, 익실이 Chief Investment Office 소속으로 CDS를 사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불행히도 익실과 그의 동료들이 돈 버는데 훨씬 재능이 많은 트레이더였다는 것이다. 공시자료의 따르면, 그의 부서는 지난 3년간 은행에 6조 원가량의 이익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가 최초의 목적인 헷징을 훨씬 넘어서는 규모에 돈을 굴리게 된 것이다. 즉, 위험에 보험을 드는 정도가 아니라, 익실이 직접 도박을 할 수 있게 판돈을 대 준거다.


익실이 JP모건으로 무한정 실탄을 지급받아 파생시장의 고래로 거듭났을 때, 이를 노리는 세력들이 있었다. 시장이 조금이라도 비정상적으로 출렁이면, 상어처럼 피 냄새를 맡고 어디선가 나타나서 철저히 돈을 긁어가는 헤지펀드들이었다. 이 분덜은 연기금이나 아주 부유한 쩐주님들의 자금을 오래 운용하면서, 그 수익금의 일부로 보너스를 받아가는 분들이다. 보통 운용하는 자산규모의 2%에다가 따온 수익의 20%를 떼간다. 귀뚜라미 보일러도 아니고, 두 번씩 돈을 따박따박 떼가신다. 돈을 많이 떼가는 만큼 실력도 있고, 불철주야 돈 벌 궁리하시느라 바쁜 분들인데, 그분들 눈에 이 런던 고래가 포착된 것이다.


2011년 여름, 익실은 12월 20일 만기 CDX High Yield 11에 1조 원가량을 투자했다. 즉, 12월 20일 만기일까지 이 인덱스에 포함된 기업 100개 중에 일부가 부도가 나야 돈을 버는 구조였다. 근데 문제는, 익실이 한번에 1조 원 베팅을 해버리니까, 배당률이 한쪽으로 확 기울여졌다는 점이다. 비정상적으로 CDX High Yield 11에 가격이 떨어지자,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바로 계산기를 두들겼다.


8월 당시 100개에 기업 중에 Dynergy라는 기업만이 파산에 임박해있었는데,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CDX High Yield 11을 팔고 (보험료를 수금하고), Dynergy에 대한 CDS를 사는 (망하면 보상금을 받는) 포지션을 취했다. 즉, Dynergy라는 기업이 망하더라도, 헤지펀드는 돈을 벌겠다는 작정이었다. 당시 미국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던 상황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을 했다. 이렇게 헤지펀드들이 반대포지션으로 익실을 압박했는데도, 익실은 한결같이 “드루와 드루와”만 외쳤다.


11월이 되어도, Dynergy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파산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한 달만 더 지나면 익실은 1조 원을 날리는 상황. 손절매를 하고 나가야 했던 상황인데, 익실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11월 29일, 기적이 일어났다.


AMR이라는 아메리칸항공 모회사가 깜짝 파산신청을 한 것이다. 결국 익실은 이 거래 한방으로 4,500억을 쓸어담는다. 반대편에 섰던 헤지펀드들은 충공깽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래가 상어때를 물리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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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승리한 고래나 패배한 상어나 만족하고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쎈 배팅으로 내부에서 비판을 받던 익실은, 이 거래 한방으로 영웅이 되었고 더 많은 돈을 마음껏 굴릴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큰 상처를 받고, 브로커를 통해 익실의 신상을 턴 헤지 펀드들은 익실에게 복수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턴매치가 성사되었다. 2012년 2월경부터 익실은, 100조 원가량에 돈을 풀어 각종 CDS 인덱스를 팔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포지션을 바꿔, 경기가 회복할 거란 가정 하에 CDS 인덱스를 팔고, 보험료를 수금하는 쪽에 섰다. 문제는 역시, 그 규모였는데, 너무나도 많은 판매 매물이 나온 나머지, CDS 인덱스(기업 100개) 가격이 100개 기업의 CDS를 개별적으로 사는 가격보다 훨씬 싸지는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두 개가 똑같은 상품인데, 익실의 포지션이 너무 큰 나머지 이런 가격 차이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가격 조작 현상이 Credit Flux라는 잡지에 보도된 이후 (참고로 이 잡지는 보안도 정말 철저하고, 엄청 비싸다ㅜㅜ), Saba Capital Management라는 헤지펀드의 번스타인이란 매니저가 헤지펀드 매니저 모임에서 이 사실을 공개하며, 대대적으로 반 런던 고래 연합전선이 형성되었다. 블루마운틴 등 유수의 헤지펀드가 참여한 이 연합은 대대적으로 익실에 반대포지션에 베팅을 걸었고, 시장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그해 봄… 유럽발 경제위기가 닥친다. 기업체의 신용도가 급락했고, 신용도 개선 쪽에 베팅했던 익실은 완전히 탈탈 털리는데, JP모건이 발표한 공식 손실만 2조 원에 이른다. 여기에, 이 사건이 알려지자 금융당국은 즉각 조사에 나섰고, 벌금으로만 1조 원가량을 토해내게 된다. 또한 은폐되었던 포지션의 손실까지 합하면, 현재까지 6조 원에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JP모건 최고 경영자이자, 압도적인 실적으로 월가의 우두머리로 불리는 다이아몬드는 이 사건으로 연봉이 반토막 난다. 내부 조사에 따르면, 익실은 관행적으로 내부 리스크 관리지침에 300배가 넘는 규모의 베팅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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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e Guardian>


결국 익실은 (당연하게도) JP모건에서 잘리게 되지만, 사법당국으로부터 구속되진 않았다. 비록, 비정상적인 방법이었지만, 그간 그와 그의 동료들이 은행에 돈을 벌어준 점과, 사법 조사 시 회사 내부의 문제들이 추가로 드러날 것을 염려한 은행 경영진이 규제 당국과 벌금으로 쇼부를 쳐서, 익실과 그의 상사들을 사법조치만큼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6조 원이 날아가고 끝난 이 런던 고래사건은, 2008년도 이래 단일은행에게 일어난 최악의 손실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이 사건은 어떤 트레이더의 무모한 베팅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의 무모한 베팅을 가능하게 했던 은행의 실적 제일주의와 리스크 관리 체계에 실패가 숨어있다. 금융업이 계속되는 한, 이런 사건은 언제 어디서든 반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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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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