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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녀 그네' 상


서울 청와대에 박통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권력에 눈이 멀어 독재자가 되었는데, 독재자가 된 지 얼마 후 그의 부인 육 씨는 그만 죽고 말았다.


박통은 딸의 이름을 그네라 짓고 혼자서 기르게 되었다. 그네가 스물세 살이 되자 어머니를 대신하여 영애가 되어 지극히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하고 외국어를 익혔다. 이러한 그네의 소문이 인근에 나돌자 허경영이 마누라를 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네는 자신이 시집을 가게 되면, 외롭게 살아갈 아버지를 걱정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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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부하들과 술을 마시던 박통이 잔을 제때 채워주지 않다가 격분한 부하의 총을 맞고 숨졌다. 그네는 아버지를 국립묘지에 묻고 기나긴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하루는 백담사의 일해 스님이 추징금을 얻으러 왔다가 그네를 보고 ‘국정교과서를 영전에 바치면 아버지가 살아 돌아 오리라'고 하였다. 아버지가 살아 돌아 올 수 있다는 말에 앞뒤를 생각하지 못한 그네는 선뜻 국정교과서를 바치겠다고 약속하고 말았다. 그러나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 국정교과서 제작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어 근심이었다. 그네의 이와 같은 사정을 알게 된 일해스님이 그네에게 6억 원을 주며, 이제 자신은 전 재산이 29만 원밖에 남지 않아 더는 추징금을 낼 수 없으니 배를 째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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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중국의 시진핑이 63세 된 처녀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가야 하는 뱃길에 NLL이라는 곳이 있는데, 김정은의 심술에 배가 지나가기에 아주 위험한 곳이었다. 위험에서 피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하여 열병식을 참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네는 시진핑을 만나 일본의 역사 왜곡에 공동대응하기로 한 뒤 그 여세를 몰아 국정교과서를 만들기로 하였다.


그네는 떠나는 날이 되자 오바마에게 양해를 구하고, 천안문에 이르러 열병식 단상에 올랐다. 이때 오바마는 그네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을 하여 그네를 천조국에 초청했다. 그네는 펜타곤에 들러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의 핵심기술을 이전받으려 했지만, 끝내 거절당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수모를 당한 그네는 자주국방을 부르짖던 아버지가 보고 싶어 박통 추모제를 열고, 일베와 어버이연합, 그 밖에 모든 애국보수 인사들을 초청하였다.


한편 박통도 자신을 위한 추모제가 있다는 말에 국립묘지에서 부활을 꿈꾸며 게이지를 모으고 있었다. 그러나 좌빨들이 무덤에 침을 너무 많이 뱉는 바람에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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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는 추모제를 열고 혹시나 자기 아버지가 살아났는가 여러 날을 기다렸지만, 보이지 않자 실망한다. 추모제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그네는 국정교과서를 펼쳐 보이며 "5.16은 구국의 결단이며, 10월 유신은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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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시선 갈무리)


이에 깜짝 놀란 박통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뜨게 되었으니, 부녀는 서로 끌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이를 지켜보던 뉴라이트들 역시 만세를 불렀다. AGAIN 1972, 제2의 유신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벨테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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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