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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은 아니지만 요즘 태어나서 최고로 돈이 없다.


올해 상반기에 진보랍시고 행세하고 다니는 인간들에게 엄청난 엿을 먹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좋은 사람들일 것이고 일부에게는 여전한 존경심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나와 화학작용을 일으켰을 때 그들은 별로 좋은 사람이 못 되었고, 나 역시 그랬다. 엿 같은 일들이 다가오는 걸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조심해 현진아. 엿 같을 거야. 구역질 참아’하고 단도리를 하지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도 마주칠 때마다 왜 이리 새록새록 엿 같고 역겨운지. 딴지스 여러분도 그러시죠?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어쨌든 신용 하나로 먹고 사는 이 장사를 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감을 넘기고 거래도 끊기고 해 참 타격이 컸다. 돈이 없어서 술을 못 마시는 것도 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최근 연태고량주에 재미가 들리는 바람에 소주로는 취하지 않는 빌어먹을 육신.


그래도 돈 없는 건 상관없다. 여성 독자들이라면 이해하시겠지만 입을 것 없다 해봤자 사실 옷장 속엔 옷뿐이고, 화장품도 저 아이섀도는 손녀한테 다 물려줘도 평생 쓰겠다! 싶다. 발은 두 개인데 신발은 왜 이렇게 많은지. 거기다 그냥 도서관에서 책이나 빌려다 읽고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시간도 잘 간다. 항우울제 조제를 위한 진료비 정도를 빼면 별로 돈 들어갈 데 없어, 고개를 오른쪽으로 10도 정도 떨어뜨린 채 멍하니 동물원의 들돼지처럼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현금이 들어갈 데가 필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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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길지만 비정규 노동자의 집에서 만든 글귀를 여기에 옮겨 싣는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쉼터’를 만듭시다.


우리는 아주 쉽게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말합니다. 민주주의 최종점을 다수결에 의한 투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의 결과는 적대적 모순이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결국 강자에 의한 약자의 배제라는 폭력이 되고 맙니다. 이 폭력의 경기장이 합법이라는 말이며 기조직의 절차와 형식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배제된 소수, 이렇게 소외된 변경에서 새로움이 움텄습니다. 고난 받아 투쟁하는 이들이 인류의 역사에선 언제나 인간의 미래였습니다.


지금 우리 노동자들에게 약자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지금 우리 노동자들에게 변경은 조직화를 위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아직 차디찬 겨울공화국입니다. 10년 투쟁을 통해 대법에서 승소해도 법대로 되지 못하고 또 피울음을 내뿜으며 투쟁하는 하청노동자들, 10년 투쟁을 통해 정규직을 쟁취해도 회사가 사라지고 마는 비정규노동자들, 노동의 고귀함을 하인 하녀 노동으로 농락당하며 고통 받고 싸우는 비정규직 설치 상담 노동자들. 홈에버 이랜드, ktx, 동희오토, 지엠대우 하이스코 하이닉스... 무수한 역사가 밀고 온 우리의 미래지만 우리는 아직 고통 속에 있습니다.


비정규직 투쟁의 한 상징인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투쟁이 절정이자 종점을 맞이한 게 이 제안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별적인 사업장 투쟁의 의미가 소진된 곳에서 비정규직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가장 낮은, 그러나 가장 치열한 오체투지를 하며 만들어낸 생각입니다. 기륭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연대의 고리 노릇을 했습니다. 그 10년의 역사를 그대로 녹여버릴 수 없다고 공대위를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공간적 거점이자, 상경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쉼터요, 연대와 소통의 공간이며, 틈새를 매우는 역할의 기지요, 필요한 물품의 신속한 조달창고로서 ‘비정규 노동자의 집’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게 된 것입니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쉼터’ 공간을 만들자, 우리들의 자체적인 힘으로 눈치 받지 않고 투쟁하는 최소 공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여름방학 외갓집 같은 공간을 만들자, 거기서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열악한 비정규직 운동단체와 활동가들의 소통과 연대와 쉼의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비정규직 투쟁에 헌신적이었지만 돌아갈 곳도 사라진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여전히 비정규직 투쟁에 복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가자는 것입니다. 지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되새기고 응집하여 작지만 단단한 미래를 하나 구축하자는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공간이 우리 앞에 있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공간을 고민하면 갈 곳이 없어 헤매는 것이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마당을 열고 우리가 우리의 사랑방을 짓자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럴수록 시작이 반인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천리 길을 내 걷는 첫 소걸음,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쉼터’ 건설의 주인으로 함께 해 주시기 바라면서 다음을 제안합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기륭전자 비정규직 10년 투쟁을 한 이들은 ‘비정규직 구조와 체제가 있는 한 비정규노동자들의 고통과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는 교훈(기륭전자 투쟁으로 법으로 다 이기고, 잘 하기로 악수까지 했다. 하지만 회장이 날아버렸다)을 얻었다. 이들은 ‘비정규 노동자의 집’을 만들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쉼터의 운영주체가 되어 비정규직 운동에 복무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물론 언제나 문제는 돈이다. 기륭전자분회 회장으로 계신 흥희언니에게 텔레그램 메시지가 왔다.


비정규 노동자의 집 씨앗발기인 좀 해 줬으면….


물론 거절 안 (못) 하는 성격답게 호쾌히 ‘알겠음다’ 하고 유인물을 받아봤다. 그런데 유인물에 눈을 시리게 찌르는 한 구절이 있었다.


씨앗발기인은 각 구좌당 50만원을 예치한다!


50만 원이라니! 난 5만 원도 없는데! 나도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근데 제가 50만 원이 없는데….


조용히 답신이 돌아왔다.


분납, 괜찮은데.


역시 10년 동안 투쟁한 동지들을 우습게 볼 수 없다! 어쩌면 좋지, 고민고민하다가 구걸을 시작하기로 했다. 원래 나를 위해서는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지만 남을 위해서는 잘 한다. 무턱대고 전화를 걸어서 ‘저기 돈 좀’하고 구걸을 시작했다. 목표는 4급 이상 공무원 내지는…, 어쨌든 사회지도층으로 하자! ‘5만 원이나 10만 원 좀’ 하고 시작했더니 나의 대학 은사이자 영화감독인 김홍준 선생께서, 민생적인 충고를 잘 주시는 버릇대로 이렇게 소리쳤다.


“야! 5만 원이 뭐야! 10만 원으로 해! 어차피 10만 원 안 주는 놈들은 5만 원도 안 줘.”


충고를 따른 결과, 그 날 점심이 되기 전에 씨앗발기인 자금을 모을 수가 있었다. 심지어 돈 더 넣었으니 나보고 밥 사먹으라는 분들까지 있었다. 내가 박복하긴 뭐가 박복해 이렇게 복이 많은데. 그래서 마구 남의 돈을 갈취해서 비정규 노동자의 집의 씨앗발기인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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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현금 쏴준 분들을 여기서 잠시 밝히자면,


개독에 맞서는 기독 청어람 아카데미 대표 양희송 님
두 번 말하면 입 아픈 신사 한양대학교 석좌교수 라종일 님
금호아시아나 그룹에서 제일 미남인 김상우 님
서울에서 가장 힙한 골목 바이닐&펍 얼굴마담 이기나지나 교주님
<씨네21> 편집장으로 날리다가 공무원으로 변신한, 차기 총리하실 서울문화재단 대표 조선희 님
늘 다정하신 영상원 교수 김홍준 님 (이름 같은 거 밝히지 말라고 했는데 쥰, 제가 좀 이렇잖아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에게 알려줘야 돼요)
빵구난 거 내가 다 채워주겠다고 가오 끝내주게 말씀하신 (근데 빵꾸가 없어서 가오가 다소 상하고 만) 딴지스 TomasNam 님


여러분, (진지하게) 사랑합니다. 제가 복이 없긴요. 이렇게 복이 많은데.


50만원 아니라도 괜찮으니까, 맥주 한 캔 값 혹은 담배 한 갑 비용 보태실 마음이 있는 분들은 연대를 보여주세요.


계좌번호: 024801-04-403987 국민은행 황철우(비정규직노동자의 집)


연대, 뭐 그거 별거예요? 그냥 현금이죠, 뭐. 성서에도 돈 가는데 마음 간다고 쓰여 있잖아요. ‘네 재물이 가는 곳에 네 영혼도 있느니라’ 정말 오십만 원이라는 말에 하늘이 노래졌다가, ‘나는 비록 돈이 없지만 돈을 끌어올 수 있다!’고 모금책 노릇을 완수한, 여러분의 코찔찔이 김현진이었습니다.



약간의 소식:


첫 번째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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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왔건만 전혀 팔리질 않아! 제가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굳이 사주시라고는 염치가 없어서 말씀을 못드립…. 각급 대학 및 지역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하는 거 어렵지 않습니다. 도서관에 회원가입만 되어 있으시면 희망도서 신청을 누르셔서 블라블라 적으면 돼요.


제목: 육체탐구생활
사유: 얘가 뭐라고 하나 궁금해서


뭐, 이렇게?!


두 번째 소식


드디어 이를 갈던 딴지라디오 인터뷰 방송을 오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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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링크)에서 들으실 수 있고, 제목은 <김현진의 맹장전>입니다. 코에이사의 삼국지를 우려먹는 느낌으루다가 로고를 제작했어요. 무려 다음웹툰의 일요일을 책임지는 <캐셔로>(오지게 돈이 없는 슈퍼히어로가 주머니에 든 현금의 액수만큼 힘이 세지는, 당황스러운 히어로물입니다)의 글작가이자, 과이언맨의 청취자였던 laystall님이 그려주셨답니다.


저는 그냥 그럴 수도 있는데, 그동안 방송으로 잘 만나볼 수 없었던 노정태씨! 제갈 노정태씨! 데려오길 잘했어. 방송 취지는 들어보면 얘가 뭘 하려나 아시겠지만, 현재 변희재씨 전반부가 올라왔습니다. 아직 부족함이 많고 차차 나아지려고 애쓸 테니 똥 쌀 때 틀어놓는다거나 해주세요. 굽신굽신.





김현진입니다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