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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딴지의 눈팅족으로서, 아니, 평생을 게시물 한번 올려보지 않던 저로서는 이렇게 키보드를 사용하여 글을 올리는 건 상당히 어색하고 긴장되는 일입니다. 필력이 모자라 글이 두서없더라도 잘 읽어주세요! 제가 지식이 짧고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고 문제가 많을 수 있으니 많은 조언과 지적 부탁드립니다.



1.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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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5> 중에서


혹시 위 그림이 익숙한 사람이 있는가! 아니라도 아직 나가지 말아달라. 필자가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를 즐기기에 한 번 넣어본 것뿐이다. <문명>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스크롤을 아주 조금, 아주 조금만 내려도 무방하다.


위 그림이 매우 친숙한 사람이라면 반갑다. <문명>, 참으로 잘 만든 게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데 <문명> 시리즈를 플레이하며 덴마크의 유닛에 왜 노르웨이 스키보병이 있는지 궁금해 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덴마크나 스웨덴의 지도자가 역사에서 남긴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해 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글이 그 대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문명>을 모르는 분들이라도 <맘마미아>, 이케아, 노키아, 에릭손, 하다못해 자일리톨 광고의 “휘바, 휘바”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으면, 오늘, 그리고 앞으로 이야기할 국가에 대해 조금이라도 접해봤을 것이다. 앞으로 이 글이 담을 내용이 스칸디나비아와 북유럽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스칸디나비아, 그리고 북유럽.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그리고 어디선가 어렴풋이 들어본 거 같은 이 두 단어는 사실 깊은 연관이 있다. 그리고 <맘마미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바이킹 하면 바로 떠올려야 할 단어이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두 단어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친밀도를 쌓아보자.



1) 스칸디나비아


‘스칸디나비아’ 어딘가에 있는 지역 같은데? 스웨덴, 덴마크, 뭐 그런 복지국가들이 많은 데 아닌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칸디나비아’는 단순히 지리적인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고, 역사‧문화‧언어적인 특성까지 담은 복합적인 단어다.


우선 이 ‘스칸디나비아’라는 단어의 범주 안에 속하는 국가는 단 3국가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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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으로 칠해진 곳이 스칸디나비아 지역이다.

초록색 부분 중 맨 아래, 유럽대륙과 붙어있는 지역이 덴마크,

위쪽에 위치한 초록색 반도에서 오른쪽이 스웨덴, 왼쪽이 노르웨이다.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위치한 반도가 바로 스칸디나비아 반도다.


‘스칸디나비아’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최근의 일이다. 스칸디나비아는 원래 로마제국의 관리였던 플리니우스에 의해 현재의 ‘스카니아[Scania/스웨덴어로는 Skåne(스코네)]’ 지방과 스칸디나비아 반도 남부를 모호하게 가리킬 때 사용했다. 시간이 지나 18세기 이 지역에서 범-스칸디나비아주의 운동이 진행되자 그제야 학생들에 의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그 후 이 운동의 결과로 ‘스칸디나비아’라는 용어는 스칸디나비아 3개국과 3개국의 다수 게르만계 국민들, 이들과 연관된 언어와 문화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종종 여기에 덴마크 왕국의 일부였던 아이슬란드나 페로제도, 핀란드를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뒤에서 언급할 ‘북유럽’이라는 단어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엄밀히 따지자면 부정확한 주장이다.


어쨌든 이 스칸디나비아에 속해있는 3국은 한-중-일과 비슷하게 예부터 티격태격했다. 세 나라 모두 비슷한 문화와 비슷한 언어를 구사한다. 세 나라 사람이 모여서 각자 자신의 나라말로 말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상도-전라도-제주도 사람이 모여서 얘기하는 느낌? 실제로 세 나라의 언어에는 서로 비슷한 단어들이 많고, 세 나라의 언어 모두 인도유럽어족의 게르만어파 중 북게르만어(語)에 속한다.(처-과)


후에 다루겠지만, 노르웨이는 나폴레옹 전쟁 전까지 덴마크의 땅이었으며, 그 이후엔 스웨덴의 땅이 되었고, 19세기가 되어서야 스웨덴에서부터 독립했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세 나라는 연합동맹 왕국인 ‘칼마르 동맹’이라는 연합왕국을 건설했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도 매우 가까운 국가다. 거기다 이 세 나라 모두 왕국으로,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렇듯 ‘스칸디나비아’라는 단어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이라는, 문화적, 역사적, 언어적 공통적 특성이 있는 지역을 말한다.



2)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를 대략적으로 살펴봤으니, 이제 북유럽을 살펴보자. 물론 여러 시각에 따라 포함된 국가들이 다르겠지만, 필자가 사용할 ‘북유럽’이라는 단어는 북유럽 이사회의 회원국, 간단하게 얘기해서 스칸디나비아보다 조금 더 큰 범위면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역을 의미할 것이다. 여기에는 스칸디나비아 3국을 포함하며, 스칸디나비아와는 조금 다른 특성을 지닌 핀란드, 핀란드 자치령이지만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올란드, 덴마크 자치령인 페로 제도, 역시 덴마크의 자치령이자 큰 섬인 그린란드, 역시 덴마크의 속국이었으나 독립한 아이슬란드, 그리고 노르웨이의 영토인 스발바르 제도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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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 보이지만) 지도의 왼쪽 맨 위가 그린란드, 바로 아래 갈색 섬이 아이슬란드,
역시 안 보이지만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쪽에 있는 페로 제도,

그리고 맨 오른쪽 러시아와 가까이 있는 초록색 국가가 핀란드다.

핀란드와 스웨덴 사이에 있는 작은 섬들이 바로 올란드 제도.


위에서 설명했듯이 이들은 과거 스웨덴 혹은 덴마크 왕국이 지배했던 땅들이며, 현재에도 이들 국가에 속해있으나 자치권을 부여받은 곳이 많다. 이들 국가들 또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이 여기에 포함되기도 하는데, 그중에서 이들 국가와 긴밀한 곳은 에스토니아다. 에스토니아는 핀란드와 유사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국가로, 현재 북유럽 이사회에 가입을 신청한 상태이나 아직까지 가입은 되지 않았다. 더욱 자세한 국가들의 관계는 앞으로 역사를 다루며 차차 설명할 계획이다.



3) 왜 북유럽인가


사실 필자도 잘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꼽아 보자면, 이들은 스칸디나비아 모델 혹은 북구모델로 불리는 복지국가로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투표율(평균 60% 이상의 유럽에서도 높은 투표율을 보인다)과 정치참여, 그리고 샬트-셰바덴 조약으로 대표되는 노-사-정 간의 광범위한 협의, 남녀 평등의식이 높은 국가들이다.


변방에 위치해 있다 보니 그냥 저냥 조용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바이킹으로 시작해 여러 전쟁과 갈등, 협력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우리나라 대통령께서 드디어 국정교과서를 편찬하시어 한국의 국사가 바뀌게 될 지도 모르는 이 시점에서, 답답한 마음을 뒤로하고 이들의 역사를 살펴보며 유럽 변방의 자그마하고 인구도 적은 이들 나라가 어떻게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국가가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2. 북유럽의 역사: 바이킹부터 칼마르 동맹까지


1) 복습


자! 드디어 스칸디나비아와 북유럽 역사를 배우는 첫 번째 시간이다.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복습과 함께 사전지식을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앞에서 스칸디나비아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로 이루어진 문화적, 역사적, 언어적 공통적 특성을 갖춘 지역임을 알았다. 북유럽은 이들(스칸디나비아 3국)을 포함, 이들과 비슷한 문화적 특성과 역사적 관련을 가지고 있는 핀란드와 그 자치령 올란드, 아이슬란드, 현재 덴마크의 영토이나 자치령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린란드, 페로제도, 그리고 노르웨이의 영토인 스발바르 제도 등을 나타냄을 알았다.


이 수많은 국가들 중에서 앞으로 살펴볼 북유럽 역사의 큰 맥락은 주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그 중에서도 스웨덴과 덴마크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유럽 대륙과 의미 있는 접촉‧교류를 시작했던 10세기 이후로 북유럽 지역의 패권은 주로 덴마크와 스웨덴이 쥐었다. 노르웨이는 14세기 칼마르 동맹의 등장 이후부터 줄곧 덴마크의 땅이었다가 19세기 스웨덴에 잠시 이양되는 과정을 거쳐 독립한 국가이며, 핀란드 또한 18세기까지 스웨덴이 지배했다. 아이슬란드는 덴마크의 속국이었다가 20세기가 되어서야 독립했으며, 그린란드, 페로제도는 현재까지도 덴마크의 자치령이다. 이렇기 때문에 앞으로 언급할 역사의 근대 이전까지는 대부분 덴마크와 스웨덴의 역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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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겨울왕국> 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크리스토프는 사미족의 영향을 받아서 탄생했다.

(화 <국>면)


이 글에서 많이 다루지는 못하겠지만, 이들 외에도 위 지역에는 사미족을 포함해 여러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특히 사미족의 경우 미국역사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과 비슷한, 핍박과 설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도 기나긴 투쟁을 통해 전보다는 여러 권리를 인정받고 있다.



2) 바이킹 시대, 3왕국시대


스칸디나비아, 북유럽 지역이 유럽과 접촉하고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를 보통 10세기~13세기로 본다. 처음 교류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기원후 800~1050년경의 바이킹 시대부터다. 이 당시의 북유럽 초창기 역사는 대부분 북유럽 신화 등으로 전해져 내려올 뿐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다. 하지만 아래에서 언급하는 정도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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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들이 얼마나 먼 여정을 떠났는지 감상해보자.

(출처-At the gate)


바이킹들은 특유의 배와 노련한 항해술을 바탕으로 유럽 대륙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바이킹은 크게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바이킹, 그리고 스웨덴 지역의 바이킹으로 나눌 수 있다. 덴마크나 노르웨이 바이킹들은 주로 서쪽, 즉, 영국, 그린란드, 심지어는 북아메리카로까지 진출하였으며, 스웨덴의 바이킹들은 터키나 러시아 등 주로 동쪽으로 진출하였다. 이들은 노르망디 공국이나 더블린 등과 같이 유럽 곳곳에 이들의 도시를 세울 정도로 유럽 대륙에겐 골칫거리였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세계 최초의 의회가 북유럽 국가들 중 하나인 아이슬란드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Þingvellir’라는 지역의 평원에서 930년 경 시작된 이 의회는 ‘Alþingi’라고 불린다(‘알팅’과 비슷한 발음이다). 이에 영향을 받아 스웨덴과 핀란드를 제외한 북유럽 국가들의 의회명칭은 원조 격인 아이슬란드의 ‘알팅’과 발음이 매우 유사하다. 덴마크는 ‘Folketing(폴케팅)’, 페로제도의 자치의회는 ‘Løgtingið(라그팅)’, 그린란드의 자치의회는 ‘Landsting(란스팅)’, 노르웨이는 ‘Storting(스투르팅)’과 같은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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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바로 알팅이 열린 Þingvellir이다.

(출처- heradsskolinn.is)


11세기 말, 소국으로 나뉘어져 있던 바이킹은 결국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의 ‘3왕국시대’를 연다. 이들 왕국은 수로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 때 노르웨이가 ‘북쪽의 길’이란 뜻의 국가 이름을 얻는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바깥이었던 아이슬란드, 페로제도, 그린란드는 바이킹의 정착으로 노르웨이 왕국에 편입되며, 핀란드는 그 후 12~13세기 정도에 스웨덴 왕국에 편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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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 때 이곳에 유럽 대륙으로부터 기독교가 전파된다. 이때 등장한 군주 중 한 명이 바로 맨 위에 나온 ‘하랄 1세 블로탄’이다. 그의 이름이 참 재밌는데, 덴마크어로 ‘Harald 1. Blåtand’인 그의 이름에서 ‘Blåtand’만 풀이해보자. ‘Blå’는 ‘파란’이란 뜻이고 ‘tand’는 ‘이빨’이란 뜻이다. 영어로 하면 ‘blue tooth’가 되는데, 바로 여러분이 쓰시는 블루투스의 어원 되시겠다. 앞으로 블루투스 기기를 쓸 때 이 왕을 한 번씩 떠올려 주시라.


잡소리 그만하고, 현대사회에서도 무선기기의 편리함을 보여주시고 있는 이 왕은 즉위시절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세례를 받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독교에 열성적이었던 이 왕은 덴마크와 노르웨이 지역에 기독교를 널리 전파시켰다. 이렇게 오딘과 토르 등 북유럽 신화의 바이킹들이 점차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유럽대륙과 동화된다.


또한, 이 때 어마어마한 손길이 유럽 대륙으로부터 뻗치고 있었으니, 바로 ‘한자동맹’이다. 한자동맹은 ‘뤼베크’란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독일의 대규모 상공업 조합이다. 이들 한자동맹이 들어옴에 따라 북유럽지역의 교역거리는 더더욱 늘어났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많이 있는 목재나 철광석 등을 수출한 뒤 소금을 들여오는 등의 교역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한자동맹의 진출은 이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점차 유럽 대륙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곧 북유럽 사회가 유럽대륙의 사회와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칼마르 동맹


스웨덴, 노르웨이 그리고 덴마크 3왕국은 정치적으로 매우 가까운 상태를 유지했다. 왕가는 교역도 많이 했고, 서로 혼인도 맺었다. 이러한 왕가의 혼인은 결국 여러 정치적 대립과 복잡한 왕위계승으로 이어지며, 바로 뒤에 나올 칼마르 동맹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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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마르 동맹의


1397년, 노르웨이 국왕이자 덴마크 여왕의 남편이었던 호콘 6세의 죽음 등이 영향을 미쳐, 세 나라는 덴마크의 마르그라테 1세를 군주로 삼아 ‘칼마르 동맹’이라는 하나의 연합왕국이 된다. 칼마르 동맹 하에서 각 왕국은 각자의 법률을 유지했으며, 중앙 왕권보다는 각 지역의 귀족들의 권력이 강했다. (농민의 권력은 매우 약한데 반해 각 지방 귀족들의 권세는 매우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세계사에서 흔히 발생하듯 권력다툼과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싼 분쟁과 갈등으로 인해 칼마르 동맹은 덴마크-노르웨이 왕국과 스웨덴 왕국으로 분리된다.


스웨덴의 독립 과정에서 ‘구스타프 바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스웨덴의 '바사' 왕조의 시조가 되는 인물로, 덴마크 군대의 추격을 피해 90km가량을 달아나며 겨우 목숨을 구했다. 도주방식이 매우 독특한데,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말이나 소, 혹은 걸어서가 아닌, 북방인 답게 놀라운 스키 솜씨를 보여주며 도주한다. 이를 기리기 위해 스웨덴은 ‘Vasaloppet’라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대회를 만들었는데,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대회로 손꼽힌다. 이 구스타프 바사가 스웨덴 왕조를 세우며 북유럽은 덴마크-노르웨이, 스웨덴의 2왕국 체제로 접어들었다.



4) 2왕국 시대


칼마르 동맹이 무너진 이후 북유럽은 덴마크-노르웨이 왕국과 스웨덴 왕국으로 나뉜다. 노르웨이는 덴마크와 연합 왕국이라고 하나 덴마크의 종속국가에 가까웠다. 이외에도 당시 노르웨이의 영토였던 아이슬란드, 페로제도와 후에 다룰, 현재는 독일의 영토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까지 덴마크의 영토였다. 당시 그린란드는 사람이 살기 매우 척박하여 사람이 살지 못했으며, 현재의 핀란드 지역은 스웨덴 왕국이 차지하고 있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각 지역 농민들의 지위와 정치형태의 변화다. 북유럽에서 상대적으로 비옥한 땅을 갖고 농업 위주 사회였던 덴마크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은 유럽 북부 사회의 영향을 받아 지주는 강력했지만 농민의 지위는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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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demar Atterdag holding Visby to ransom, 1361 -  Carl Gustaf Hellqvist (1882년 작)


반면 농업보다는 철광석이나 목재생산이 주를 이뤘던 노르웨이와 스웨덴 지역에선 상대적으로 농민의 지위가 강했다.


덴마크와 스웨덴 양국 모두 당시 왕권의 힘이 강한 중앙집권적 국가였으나, 위에 언급한 농민들의 지위차이로 권력기관의 구성이 달라진다. 덴마크 왕국은 ‘추밀원’이라는 귀족 중심의 권력기구를 갖추고 있던 반면, 스웨덴에는 귀족, 성직자, 상인과 농민으로 구성된 ‘4부회’라는 권력기관이 있었다. (4부회는 후에 스웨덴의 의회가 됨) 한편,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스웨덴과 덴마크 왕국은 신앙의 수호자로서 왕권의 정당성을 확립시킴과 동시에, 교회의 부를 국가에 귀속시킴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후 스웨덴에 ‘사자왕’ 구스타프 2세가 왕위에 즉위하며, 북유럽은 또 한 번 변화의 시기를 겪는다.


다음편에 계속.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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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트보트레야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