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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아이는 여자아이보다 덜 살갑기 마련이다. 남자답게 표현하는 법이 서툴다보니 더 그런 감이 있다. 생각과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오해와 충돌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마저도 간소화 하다보니 가끔은 조심스럽고 가끔은 안타깝고 아주 조금은 서운할 때도 있다. 기본적으로 각자의 인생이고 성인의 삶에 관여할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하사관으로 장기복무를 선택한 사내아이의 결정에 조금은 안도했다. 외강내유의 성격이다. 태생적으로 여린 마음을 감추려는 보호심리로 보인다. 소속감을 느낀다면 규율과 통제가 오히려 단단한 외피가 되어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에서 충동적인 부분이 자주 보이지만 아직은 그럴 나이다. 과하게 비싼 물건을 사지는 않으니 그저 지켜본다. 내 삶이 아니니 내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합리적 소비의 기준을 내 눈높이로 잡으면 대한민국 내수시장은 십분지 일 이하로 줄어든다.

 

중고차를 구입하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낼 때도 아직 이르다는 마음이 들지만 한켠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을 전재로 여자를 만날 나이고, 적금도 하고 있고, 빚을 지지 않았다는 말에도 아직 남아있는 충동적인 부분이 우려되었다. 아내는 운전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걱정했다.

 

동생은 장기복무를 선택한 사내아이의 결정을 걱정했다. 고등학교 동창이 같은 선택을 했다가 강원랜드에 빠져 자살한 경험이 선입견으로 남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건 맞지만 대체적으로 노고에 비해 보상이 적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여러가지 면에서 여유가 부족하다. 아직 어린 나이에 그런 문화에 물들까봐 우려하는 듯 했다. 우리나라의 군대가 하급 부사관에게 주체적인 무언가를 요구할 정도로  인격적 존중을 보이는 조직은 아니다. 일리 있는 걱정이다. 군대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은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잔소리로만 들리지 않기를 바려며 가끔씩 책을 읽으라는 말만 했다. 각자 더듬어서 길을 찾아가는 게 삶이다. 그렇게 더듬은 흔적들의 기록을 읽다보면 지혜가 자라고, 수시로 마주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조금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사소하지만 옳은 선택을 하는 데는 공감능력이 고장나지 않은 이상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도구나 단순한 이용물로 소진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지혜가 필요하다.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좀 더 좋은 차를 갖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던 것 같다. 제 나름의 필요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외견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타인의 평가가 아주 의미 없지는 않다. 집으로 날라온 우편물 사이에 차량구입을 위한 문의에 답변하는 금융사의 견적서가 있었다. 아내가 걱정을 했다. 아내는 빚을 무서워한다. 이야기를 할 필요를 느꼈다. 듣는 건 아이의 자유지만 말을 해야하는 건 나의 의무라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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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 차량에 욕심이 생겨서 한번 문의해 보았을 뿐 걱정하는 일을 한 건 아니라고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한다. 여기서 불편한 대화를 중단하자는 의미로 들렸다. 아이의 엄마가 걱정하고 내가 우려하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아이의 친아빠와 죽은 내 동생의 이야기를 꺼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에 억눌리고 다른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외면하고 싶은 과거겠지만 되풀이 하면 안 된다. 처음부터 감당하지 못할 만큼 큰 빚을 지는 사람도 없다. 자신이 감당할 만큼 빚을 지지만 안 좋은 일은 겹치기 마련이다.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빚은 불어난다. 네 성격에는 어떻게든 감당해 보려고 혼자 노력하다가 포기해 버릴 공산이 크다. 그때쯤엔 가족도 도움이 안 되던가 같이 수렁으로 빠져야 하는 상황이 되겠지. 렛지효과도 지렛대를 누르고 버틸 힘이 있을 때나 적용된다.

 

오랫동안 불편할 만한 이야기는 피해왔다. 어린 시절 못 볼 걸 본 상처가 제멋대로 아물어 흉이 되고 그 위에 앙금이 쌓여 있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그래도 운이 좋은 축에 속하는 거니까. 양쪽으로 버림받은 아이들이나 소년병으로 사람을 죽여야하는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에 비하면 말이다. 그래도 보통의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나는 적응력이 제법 대견했다.

 

불편한 이야기를 해서 마음이 조금 미안해지는 찰나 비트코인에 대해 물어왔다. 지금 한다면 도박이라고 잘라 말했다. 혹여 이익을 볼 수도 있지만 도박은 중독성이 마약이나 섹스보다 강하다. 아직 니가 그걸 극복할 정도의 의지는 없다. 그러니까 지금 들어가면 조만간 거품이 터져서 돈을 잃고 혹시 따면 거품이 터질 때까지 지르다가 더 크게 잃을 거라고 본다. 장난처럼 저도 자기가 그럴 거 같단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는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다시 비트코인에 대해 들은 건 며칠 되지 않는다. 처조카가 입대를 한다고 인사를 왔다. 밥을 먹이는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비트코인에 대해 말이 나왔다. 평소에 금융과 경제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비트코인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면 조만간 터질 때가 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거품이 발생하고 터질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에 튤립 광풍이 벌어진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예전에 신분제 사회에서는 생산하는 물품이나 세금을 지역의 영주가 정해버렸다. 경제는 정체되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로 모인 사람들은 경제에도 자유를 줬다. 이익이 되는 곳에 자본이 몰리고 주식회사도 만들어졌다. 여유가 있으니 유행이라는 것도 생긴다.

 

튤립이 유행했다. 특정한 무늬의 튤립은 더 인기가 좋았다. 인기가 좋으니까 가격이 비싸지고, 가격이 오르니까 튜립 자체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투자목적으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당연히 가격은 더 오르고, 자고 일어나면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벌어지니까 더 관심없던 사람들까지 관심을 갖게 되고 가격이 또 올랐다. 튤립 한 뿌리에 빌딩 한 채 값이 됐으니까. 어느 순간에 누군가가 이게 뭔 말이 안 되는 가격이냐고 깨달았겠지. 그리고 시장에 형성되었던 말이 안 되는 가격이 풍선이 터지듯 뻥 터져 버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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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대안화폐다. 화폐는 국가가 발권을 하고 보증을 하는데 비트코인은 그것이 없다. 국가가 해마다 찍어내는 화폐들은 흘러흘러 어디로 갈까. 적어도 찍어내는 돈 만큼 수거해서 폐기하는 건 아니니까 남는 돈은 어딘가로 몰리고 쌓이게 된다. 이 돈이 그냥 시장에서만 돌면 인플레이션이 된다. 그건 또 그 나름 대로 문제가 된다. 주기적으로 시중에 도는 돈이 없어져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야 시장경제가 돌아간다. 돈을 찍어내지 않고는 국가를 운영할 수 없는 현실이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서 돈을 흡수하던가 버블이 터지던가 해야 화폐경제가 돌아간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부동산이 터지면 답이 없으니까 이번엔 비트코인인가 보다.

 

더 이야기를 길게 가져가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아이를 보내고 돌아와 생각을 이어간다. 나는 아직 자본주의를 대체할 다른 경제제도를 모른다. 자본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본성인 욕심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욕심을 죄라고 보지 않고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인정했다. 각자가 각자의 욕심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발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건 대단한 일이다. 지금 이 복잡한 세상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거의 대부분은 타인을 목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 목적대상의 만족을 위해 물건을 생산하고 노동을 제공했던 건 신분제 사회에서 하층민이 하던 일이다. 타인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과 자신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의 생산력은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각자의 욕망이 타협하는 암묵의 선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하는 것 같다. 욕망만으로 움직이는 결과가 무작정 좋기를 바라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나무상자안의 생선처럼 흑인들을 화물칸에 채워넣고 삼각무역을 하던 배들을 움직인 가장 큰 동력은 선박회사에 투자된 주주들의 돈이다. 대항해시대의 선원들은 주주배당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결국 끔찍한 노예무역은 사실 선량한 중산층들의 소소한 욕심때문이기도 하다. 작은 욕심들도 합산이 되면 그 총량만큼의 에너지를 발휘한다.

 

많이 나아졌기는 한데 아직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기업에 투자한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경영진들은 최고의 효율을 구상한다. 이익을 극대화하고 위험을 아웃소싱한다. 몇년전 대기업 전자회사 협력업체로 불리우는 여러단계를 거친 하청업체에서 단가 차이가 나는 메탄올을 사용했다. 작업자들은 실명이 되고 소비자는 저렴한 휴대폰을 사용하게 되었다. 언론은 메탄올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상인들의 부도덕성을 지적했다. 대중들의 관심은 언론이 이끄는 대로 메탄올 워셔액으로 쉽게 옮겨졌다. 노동자들은 장애인이 되고 재판에 회부된 관계자들은 아무도 실형을 선고받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다시 같은 사고가 반복됐다. 이번에 언론에 이슈가 되지도 않았다.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은 생존욕구를 지원하고 삶의 활력소가 된다. 무분별한 욕망추구는 개인과 주변사람의 삶을 파멸시킨다. 욕망을 조율하기위해 사람은 이성과 도덕감정이 발달했다. 시장을 조율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손가락을 구부리면 주먹이 된다. 주먹은 평판이다. 평등적인 수렵채집사회에서 독선적인 리더가 출현하려는 징조가 보이면 구성원들은 무시, 비웃음 등의 전략을 사용한다. 몇 번의 사냥 성공에 흥분되었던 고양감은 냉혹한 평판에 꺽이고 집단에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보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평판을 담당하는 직업군이 있다. 학자와 기자며 언론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한때 의미가 있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며 바뀐다. 상인의 윤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대부분 자신의 이익만을 쫒는다. 사회 구성원 다수를 위해 작동해야 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교체되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 사회라는 게 꼭 생물 같은 속성을 지녔다. 역할로 존경받던 언론인은 기레기로 지칭되고 기술발달로 없어져야 할 직업군이 되었다.

 

가끔은 거시적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삶을 가로막는 난관과 어려움들이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고, 타인의 어려움을 위로할 여유가 생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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