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개헌이 간간이 소재로 등장하기에
한일양국이 함께 헌법에 관심을 가지는 보기드문 시기입니다.
(아베 총리는 개헌 추진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고
야권과 양심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평화헌법 9조 수호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에 평소 한일언론의 보도와 양국의 헌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 필자와 함께
'이번 기회에 일본 헌법을 해부해보자.
한국법과 일본법은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고
그 역사와 내용을 알아보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 될 거야'
라는 취지로
일본 헌법 시리즈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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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일안전보장조약
출처 - 자주시보(링크)
지난 회에서 언급했듯이, 일본국헌법의 평화주의를 생각할 때에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미일안전보장조약에 기초한 동맹체제, 소위 말하는 “안보체제”의 문제입니다.
미일안전보장조약은 안보체제를 뒷받침하는 조약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 이죠. 이 조약이 처음 체결된 것은 1952년이었습니다. 마침 유엔군이 일본 점령을 마칠 때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동시에 체결 되었습니다 (이른바 구 안보조약). 그 후 1954년 미일상호방위원조협정(MSA협정, 일본의 방위력 증강 의무를 규정함)을 거쳐 1960년에 새로 체결된 것이 현행 미일안보조약(신 안보조약)이며, 지금 미군이 일본에 주류하고 있는 법적 근거입니다. 신 안보조약이 새로 체결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주된 것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구 안보조약에서는 일본 국내에서 일어난 내란에 대해 미국이 "원조"(실질적으로는 개입이겠죠)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른바 "내란 조항")이 포함되어 있던 점(신 조약에서 삭제). 또한 미군의 일본 주류를 인정하면서 미군에는 일본 방위 의무가 인정되지 않았던 점(신 조약에서는 제5조가 그 의무를 규정한 것으로 해석됨), 그리고 조약의 갱신에 미일 양국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규정하던 점(신 조약에서는 10년의 존속기간을 정하고 10년 경과 후 한쪽 당사국의 일방적인 통보로 파기 가능) 등등입니다.
현행 안보조약 중 헌법 제9조와의 관계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주요 내용은 ①한 쪽 당사국에 대한 무력 공격에 공동으로 대처한다고 규정한 제5조, 그리고 ②미군을 일본 국내에 배치할 권리를 미국에 인정한 제6조입니다(조약 전문-링크).
日本国とアメリカ合衆国との間の相互協力及び安全保障条約
第5条(제5조)
各締約国は、日本国の施政の下にある領域における、いずれか一方に対する武力攻撃が、自国の平和及び安全を危うくするものであることを認め、自国の憲法上の規定及び手続に従つて共通の危険に対処するように行動することを宣言する。
각 체약국은 일본 국 시정 하에 있는 영역에서의, 어느 한 쪽에 대한 무력 공격이 자국의 평화 및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을 인정하며, 자국의 헌법 상 규정 및 절차에 따라 공통적인 위험에 대처하도록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前記の武力攻撃及びその結果として執つたすべての措置は、国際連合憲章第五十一条の規定に従つて直ちに国際連合安全保障理事会に報告しなければならない。その措置は、安全保障理事会が国際の平和及び安全を回復し及び維持するために必要な措置を執つたときは、終止しなければならない。
위 무력 공격 및 그 결과로서 취한 모든 조치는 유엔헌장 제51조의 규정에 따라 즉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통보하여야 한다. 그 조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 평화 및 안전을 회복시키고 또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한 때에는 종지하여야 한다.
第6条(제 6 조)
日本国の安全に寄与し、並びに極東における国際の平和及び安全の維持に寄与するため、アメリカ合衆国は、その陸軍、空軍及び海軍が日本国において施設及び区域を使用することを許される。
일본 국의 안전에 기여하며 또한 극동에서의 국제 평화 및 안전 유지에 기여하기 위하여 미국은 그 육군, 공군 및 해군이 일본 국에서 시설 및 구역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 받는다.
前記の施設及び区域の使用並びに日本国における合衆国軍隊の地位は、千九百五十二年二月二十八日に東京で署名された日本国とアメリカ合衆国との間の安全保障条約第三条に基く行政協定(改正を含む。)に代わる別個の協定及び合意される他の取極により規律される。
위 시설 및 구역의 사용 및 일본 국에서의 미국 군대의 지위는 1952년 2월 28일에 도쿄에서 서명된 일본 국과 미국 간의 안전보장조약(구 안보조약 - 필자 주) 제3조에 기초한 행정협정(개정을 포함.)(이른바 미일행정협정. 현재 미일지위협정으로 계승 - 필자 주)을 대신하는 개별 협정 및 합의되는 다른 약속에 의하여 규율 된다.
이 글을 읽어 주는 독자 중에는 어디선가 봐 본 적이 있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분도 있겠습니다. 그 기시감은 크게 보면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군의 동아시아 전략의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나오는 거겠죠. 물론 지리적 위치나 역사적 배경 등 한일 양국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 말입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그런데 안보조약 제6조를 보면 ‘극동’이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평소부터 흔히 입에 담기도 하는 말이니 거의 일반 용어처럼 생각하는데 이 말은 정확히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 걸까요? 일반적으로는 일단 ‘유럽을 중심으로 해서 맨 동쪽에 있는 지역’ 정도로 막연하게 이해하면 별 다른 문제 없을 겁니다. 그러나 안보조약 제6조에서 언급된 극동은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안보조약 제6조가 주일 미군의 목적을 ‘극동에서의 국제 평화 및 안전 유지에 기여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60년에 낸 공식 견해 이래 일관되게 ‘필리핀 이북과 일본 및 그 주변 지역이며, 한국, 대만 지역을 포함한다’는 입장에 서 왔었습니다.
그런데 주일 미군은 월남전쟁이나 걸프전쟁이 터졌을 당시 주일 기지를 출발해서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위 ‘극동’의 정의에 비추면 페르시아만은 두말 할 나위 없고 월남은 위도로 따지면 필리핀하고 거의 비슷하나 위 ‘극동’의 정의에 해당하는지는 애매한 부분이 남을 겁니다. 결국 일본 정부가 정의한 ‘극동’에서 벗어나거나 벗어난 것으로 이해되는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미군이 일본 국내에 있는 기지를 이용한 꼴입니다. 그래서 미군의 위 참전은 안보조약 위반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게 되었죠.
이와 관련 1996년 4월 일본하고 미국은 미일공동선언을 통해 미일 안보조약을 ‘재정의’합니다. 새로 다시 정의했단 말이죠. 이에 의하면 안보조약의 역할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며, 극동 유사 시 일본은 미군의 후방 지원에 적극 협조하는 것 등이 약속되었답니다. 한마디로 미일 안보체제가 시야에 담은 지리적 범위가 확대되었고 내용 면에서도 한층 더 강화되었다고 불 수 있는데, 그 협력의 내용에 따라서는 지구 상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될 가능성도 있어 걱정이 되는 바이죠.
2. 오키나와 대리서명 소송: 주일미군용지특별법의 합헌성
주일미군이 헌법 제9조를 위반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으로서는 이른바 수나가와(砂川) 사건 최고재판소 판결(最高裁判所昭和34年12月16日大法廷判決)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판결은 헌법 제9조의 취지와 자위권의 관계를 최초로 판단한 최고재판소 판결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판결에서 이른바 ‘통치행위론’, 즉 일본이라는 국가가 존립하기 위한 기초에 극히 중대한 관계가 있는 고도의 정치성을 가진 문제에 대해서는 ‘일견 극히 명백하게 위헌・무효’가 아닌 한 위헌인지 아닌지 여부는 사법적 심사의 범위에서 벗어난다는 논리를 편 부분이 후속 판결의 지침이 된 감이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통치행위론이라 함은 쉽게 말해서 정치성이 높은 대목에 대해서는 ‘일견 극히 명백하게 위헌・무효’가 아니면 사법부인 재판소는 행정부의 판단에 대해 운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쉽게, 속되게 말하면 너무 정치성이 강한 문제는 “나 몰라 식으로 그냥 넘어갈 게요, 단 누가 봐도 위헌이면 무효로 선언할 게…” 이런 셈이죠. 어떤 경우에 누가 봐도 위헌인지, 그 기준이 너무 애매해서 실질적으로는 미일안보조약에 대해서는 ‘정부가 알아서 해라’는 태도라 해도 무방할 겁니다.
이 논리는 수나가와 사건 판결에 이어 나온 토마코마이(苫小牧) 사건 판결(最高裁判所昭和35年6月8日大法廷判決)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된 바 있고요. 물론 이들 두 판결은 다 중요하지만(기타 헌법 제9조 내지 평화주의와 관련된 중요 판결로서 에니와 사건 판결(札幌地裁昭和42年3月29日判決)이나 나가누마 사건 1심 판결(札幌地裁昭和48年9月7日判決), 햐쿠리기지(百里基地) 사건 최고재판소 판결(最高裁判所平成元年6月20日第三小法廷判決) 등이 있음), 이번에는 비교적 최근의 사건으로 주일미군용지특별법이 오키나와현에 적용된 사건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합니다.
아, 그러기 전에 먼저 한마디. 헌법, 게다가 국방에 관한 문제를 생각한다 하면 그것만으로 ‘복잡하고 어렵다’는 인상을 받을 겁니다. 필자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헌법 문제를 생각할 때의 기본적 틀이라 할까, 헌법 문제를 보는 시각을 먼저 머릿속에 갖도록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일단 옆에 두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정부나 지자체, 기타 공공기관 등이 어떤 행위를 할 때에는 꼭 법률이나 조례에 기초해야 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리고 정부 등에 의한 해당 행위가 국민의 인권이나 자유를 제한하게 될 경우가 있겠죠. 거꾸로 말해서 정부 등이 국민의 권리・자유를 제한할 때는 법률이나 조례에 근거하는 경우가 일반이라는 뜻입니다(정부 등이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그냥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때에는 국가에 의한 불법행위로서 헌법보다 우선 국가배상의 문제가 되죠). 그래서 “정부에 의한 해당 행위가 의거한 법이 헌법을 어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헌법 문제의 출발점입니다.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그 법률 등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국민은 정부에 의한 인권 제한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헌법을 위배한다면 정부에 의한 행위는 위헌・무효가 되죠. 요컨대 헌법 문제는 ‘행정기관에 의한 행위가 의거한 법률이나 조례가 과연 헌법을 위배하는지’를 가리는 것이라 생각해 두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각만 유지하면 다소 복잡한 사안이라도 핵심 내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오키나와 대리서명 소송을 살펴 보죠.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어디까지나 ‘개요’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판결문 원문을 참조). 미군 오키나와 기지는 민간인이 소유하는 땅에 위치했었는데 그 일부는 1995년에 사용기한이 만료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때 마침 미군 병사에 의한 소녀 폭행 사건이 털어진 것도 있어서 땅 소유자와 합의 해서 사용권한을 새로 취득할 것은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러자 무라야마 수상(당시)은 주류군용지특별법(이하 “특별법"라고도 함)에 기초해서 그 땅을 강제적으로 거둬들여 미군이 사용할 수 있게 하도록 결정했습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후텐마 비행장 (출처-연합뉴스)
그런데 말이죠. 일본 정부가 미군에 토지 사용을 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한 절차가 있는 겁니다. 당연하죠. 토지 수용(収用)이라고 해서, 국가가 민간인 소유의 재산을 강제적으로 거둬들이는 거니까요. 이 사안의 경우 특별법 제14조에 의해 나하방위시설국장(那覇防衛施設局長, 일단 정부 측 대표라고 생각하면 돼요)이 토지 소유자의 서명날인을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토지소유자가 서명날인을 거부할 것은 명백했지만 정부에는 취할 수단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리서명’이죠. 특별법 규정에 근거해서 토지 소유자를 대신해서 해당 지자체의 지사가 토지 사용을 허락하는 서명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라야마 수상은 오오타 마사히데(大田昌秀) 당시 오키나와현 지사에게 서명사무의 대리 집행(대리서명)을 명했습니다. 오오타 지사는 거부했죠. 그런데 지자체의 장이 집행하는 사무의 일부는 지방자치법 상 "기관위임사무(機関委任事務)"라고 해서, 본래 국가의 일인데 이를 지자체가 대신 행하는 것이었고 본건에서 문제된 대리서명도 그 기관위임사무에 포함되었고, 지자체의 장이 실시하지 않을 경우 지방자치법 상 정부가 집행을 명할 수 있었습니다(현재는 지방자치법이 개정되어서 기관위임사무 제도 자체가 없어졌음). 그래서 무라야마 수상은 오오타 지사에 대해 서명날인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재판을 통해 대리서명을 강제시키려고 한 거죠. 그리고 원심인 후쿠오카고등재판소 판결(福岡高裁那覇支部 平成8.3.25.)이 오오타 지사한테 대리서명 등의 집행을 명하는 판결을 내리자 오오타 지사는 최고재판소에 상고했습니다.
대리서명을 거부한 오오타 마사히데 지사
출처 - 한겨레(링크)
최고재판소가 내린 결론은 "기각". 오오타 지사가 패소당한 셈이죠. 쟁점은 무라야마 수상이 내린 직무집행명령의 근거가 된 주류군용지특별법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여부였습니다. 판결문의 핵심 부분은 이렇습니다. 좀 길지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미일안전보장조약 제6조, 미일지위협정 제2조 제1항이 정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미일지위협정 제25조에서 정한 합동위원회를 통하여 체결된 미일 양국 간의 협정에 의하여 합의된 시설과 구역을 주류군이 사용하도록 제공할 조약 상 의무를 지는 것으로 해석된다...(조약 준수의무(헌법 제98조 제2항)를 이행하기 위하여)...당해 토지 등을 주류군이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적정하고 합리적임을 요건으로(주류군용지특별법 제3조), 이를 강제적으로 사용하거나 수용하는 것은 조약 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며, 또한 그 합리성도 인정되며, 사유재산을 공공을 위하여 이용됨에 틀림없다고 하겠다. 정부가 조약에 의한 국가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필요하고 합리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헌법 전문, 제9조, 제13조을 위반한다면 그것은 당해 조약 자체가 위헌이라고 하는 것이 되는바, 미일안전보장조약 및 미일지위협정이 위헌・무효임이 일견 극히 명백하지 아니한 이상 재판소는 이것이 위헌임을 전제하여 주류군용지특별법의 헌법 적합성에 대한 심사를 할 것.
최고재판소는 위와같이 주류군용지특별법이 헌법 전문, 제9조, 제13조, 제29조 제3항을 위배하지 않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필자는 판결문을 읽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했죠. 이럴 때야 헌법 문제를 생각할 때의 기본 시각인 ‘행정기관에 의한 행위가 근거한 법률이 헌법을 어기는지’를 상기해 보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본건에 있어서는 수상이 오키나와현 지사한테 대리서명 집행을 명한 근거가 된 주류군용지특별법이 헌법에 위배하는지, 이겁니다(물론 재판 전체적으로는 좀 더 복잡하기는 했지만). 다만 이 사건의 경우 주류군용지특별법이 미일안보조약이나 미일지위협정이라는 조약에 기초해서 제정되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오오타 지사 측은 그들 조약의 위헌성까지는 주장하지 않았던 모양인데 재판소로서는 일단 특별법이 의거한 조약이 위헌인지 여부에 해대 언급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말이죠. 원래 조약의 위헌성과 법률의 위헌성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안보조약 따로, 특별법 따로 별개의 문제로 검토해도 무방하다, 아니 오히려 그러는 것이 논리적으로 깔끔하지 않을까요? 본건에 있어서도 우선 미일안보조약이 헌법을 위배하는지 여부를 따진 뒤, 위배한다는 결론이 나오면 그런 위헌적인 조약에 의거한 특별법도 위헌이 되고, 미일안보조약이 헌법을 위배하지 않는다면 별도 특별법이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따지게 되죠. 그렇지만 말입니다. 우선 재판소라는 데는 원래 ‘수동적’인 기관입니다. 소송의 당사자가 된 사람이 주장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적극 나서서 판단하지 않는 거죠. 게다가 수나가와 사건 판결 이래 확립된 ‘일견 극히 명백하게 위헌・무효’가 아닌 이상 미일안보조약이나 미일지위협정의 위헌성에 대해서 재판소는 행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속되게 말해 ‘난 몰라’)는 원칙에 서 있어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본건에 있어서는 미일안보조약이나 미일지위협정의 위헌성 자체가 주요 쟁점이 되지 않은 채 종전의 ‘나 몰라’식 판단에 입각해서 판단하게 되는 모양새가 된 것입니다.
일본 최고재판소 (출처-위키피디아)
그래 놓고 판결문은 안보조약하고 미일지위협정의 합헌성과 특별법의 합법성을 일체・불가분한 것으로 논합니다. 조약과 법률을 서로 나눠서 별도로 논하지 못한다는 거죠. 판결문 중 “정부가 조약에 의한 국가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필요하고 합리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헌법 전문, 제9조, 제13조을 위반한다면 그것은 당해 조약 자체가 위헌이라고 하는 것이 되는바”라는 부분이 바로 그거죠. 한마디로 말해서 특별법이 위헌이라고 판단하게 되면 조약 역시 위헌이라는 논리입니다. 사실 민간인이 소유하는 땅을 강제적으로 수용해서 미군이 사용하도록 해주는 행위에 대해서는 안보조약이 일본의 토지 등의 강제적인 사용・수용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특별법은 안보조약을 실시하기 위한 세칙이나 절차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실시법”적 성격을 띠게 되죠. 따라서 안보조약의 위헌성 여부를 일단 옆에 둔 채 토지의 강제 수용을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데에는 역시 무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이런 시각에서는 일단 미군의 일본 주류를 합헌이라 치는 이상, 주류미군용지특별법에 기초해서 강제 수용을 실시한 행위는 조약의 합헌성을 바탕으로 합헌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도 일단 수긍할 만한 것 같습니다. 다만 반세기 이상 전, 냉전이 한창이었을 때에 맺힌 조약에 대한 재검토를 할 기색이 하나도 없이 ‘나 몰라’식 태도를 유지하는 모습은 약간의 아쉬움을 금할 수 없는 것 같네요.
그런데 위에 인용한 판결문 중 ‘사유 재산을 공공을 위하여 이용’이라는 문구가 나왔습니다. 본건에서 문제된 ‘맨 사실’은 국가가 사유재산인 땅을 강제적으로 거둬들였다는 거죠. 재산권을 제한한 것입니다. 물론 공익을 위해 재산권이 제한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종종 있죠. 헌법도 국가에 의한 재산권 침해를 금하면서 “사유재산은 이를 정당한 보상을 주며 이를 공공을 위하여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29조 제3항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논점 역시 조약은 합헌(정확히는 ‘나 몰라, 그러니까 일단 합헌이란 전제로 할게’)이고 특별법에 의거한 수용 조치도 필요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니까 위헌적인 재산권 침해는 없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미군 기지에 땅을 제공하는 땅 주인은 액수만으로 따지면 엄청난 보상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오키나와에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미군에 땅을 대여해 주는 집의 특히 장남은 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계속 막대한 월세금이 들어오니 일은 전혀 안 하고 놀기만 한답니다. 파친코에 빠진 분도 많다네요. 안락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일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는 관점에서는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닐 수 있겠죠. 오키나와는 미일안보조약이라는 큰 국제정치적 문제를 상징하는 동시에 “거부하고 싶으면서도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어 버린” 지역 주민들의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어쨌건 널리 경제적 자유권에 관한 문제는 후일에 새로 다루게 될 겁니다.
여기까지 일단 헌법 제9조를 중심으로 한 안보체제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도록 합니다. 좋아하든 말든 미국과의 동맹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우려되는 것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미국이 실제적으로 군사력을 행사하게 되는 사태입니다. 그 때 일본이 맹목적으로 미국 뒤를 따라가지 말고 자체적 판단 하에 냉정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맹목적 동맹관계에서 벗어나 일본 독자적인 평화관과 그에 입각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을 겁니다. 현행 헌법이 개정될 경우 제9조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9조에 담긴 이념은 잊어버리지 않도록 명심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일본국헌법의 기본원리 중 국민주권과 평화주의에 관한 이야기가 (반드시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있겠지만) 다 끝난 것으로 하고, 다음 회부터 드디어 기본적 인권의 보장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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