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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신과함께>가 역대 흥행 top 3 반열에 올라섰다. 지난해 12월 20일 개봉해 무서운 속도로 관객을 쌓아올린 <신과 함께>는 15일 만에 1000만 명의 선택을 받았다. 이는 <명량>(2014)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속도다. 누적 관객 1300만 명을 넘긴 16일에는 역대 흥행 5위의 <도둑들>(2012)을 끌어내렸고, 지난 주말 36만 관객을 추가하면서 <아바타>(2009)와 <베테랑>(2015)을 제친 <신과 함께>는 대한민국 역대 박스오피스 3위에 안착했다. 가히 파죽지세다.

 

 <신과함께>의 흥행은 또 다른 괄목할만한 기록도 세웠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처음으로 1000만 관객 고지를 넘었다는 것. 2016년 1100만 명을 넘긴 <부산행>과 관련된 애니메이션<서울역>이 있긴 하지만, 영화의 앞 이야기를 다룬 ‘프리퀄’이었으므로 만화 원작의 영화화로는 <신과함께>가 첫 번째 메가 히트 사례로 기록되었다.

 

 만화 특히 웹툰의 영상화는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매주 호흡을 끊어가며 진행하는 웹툰의 서사를 영상의 협소한 러닝타임에 구현 해내야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진짜 애로사항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각색의 고통’은 영상이 아주 오랫동안 훈련해온 영역이기 때문이다. 뤼미에르형제가 성서를 영상화하면서 시작된 ‘문학의 영상화’와 그에 수반되는 ‘각색의 고통’은 새삼스러울 것 없는 영상의 숙명이었다. 오히려 컷으로 분절되어있는 웹툰은 촬영 콘티와 닿아있기 때문에, 이미 그것에 능통한 영상 제작자들에게 웹툰의 각색은 쉽진 않을지언정 낯설지 않은 고통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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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옥자> 스토리보드

   

 

장인어른, 시어머니 관객

 

진짜 고통은 ‘웹툰’(Web toon)이라는 한국만의 독특한 웹 플랫폼 문화에서 시작된다. 2000년대 주요 포털들이 웹툰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본격화 된 ‘웹툰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작품이 업로드 되는 동시에 소비되고 댓글로 즉각적인 피드백이 일어나는 ‘스낵 컬쳐’라는 데에 있다. 주목할 점은 그 피드백이 단지 작가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같은 작품을 즐기는 이들끼리 상호작용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댓글을 통해 매주 작품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공통의 공감지점에 모여 견고한 팬덤을 형성해간다. 

 

삘 꽂혀 웹툰 판권을 덜컥 사버린 영상 제작자들이 마주해야하는 진짜 고통은 이들을 설득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한 ‘원전(原典)의 지지자’들 앞에 감히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다는 것은, 영 마뜩치 않아 하는 예비 장인어른에게 결혼 승낙을 받아내는 것만큼 어려운 도전이다. ‘치어머니’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 아니다. (치어머니: ‘치즈인더트랩’과‘시어머니’가 합쳐진 단어로, 네이버 웹툰 '치즈인더트랩'의 드라마 캐스팅과 제작과정에 대한 원작 독자들의 열렬한 관심에서 만들어진 신조어)

 

 

<신과함께>의 흥행: 원소스멀티유즈 영화의 약진

 

자식과도 같은 원작 웹툰을 격하게 아끼는 ‘장인어른’과 ‘시어머니’들의 매서운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영상이 웹툰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담아내고 있는 시선과 소재가 어느 소스보다 힙 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댓글과 뷰(view)같은 실질적인 데이터들을 분석해 예상 관객층을 용이하게 노려볼 수 있기 때문에, 영상 제작자들은 가시밭길인줄 알면서도 흐르는 군침을 숨길 수가 없다. 독이 든 성배 인 것이다.   

 

 2006년 강풀의 <아파트>가 영화화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웹툰의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는 가는 길이 순탄치 않았다. 많은 작품들이 우왕좌왕하며 완성도는 완성도대로 놓치고 원작과는 괴리된 채,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2010년대 들어 <이끼>, <이웃사람>, <26년> 등이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시작했지만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나마 흥행이라 할 수 있는 스코어는 김수현이 하드캐리한 2013년 <은밀하게 위대하게>(696만명)정도이다. 2015년 <내부자들>(915만명)이 천만관객에 근접하긴 하였으나, 엄밀히 따지면 이 스코어는 추가로 개봉한 감독판 <내부자들:디 오리지널>(208만명)이 합산된 숫자이다. 게다가 원작인 윤태호의 웹툰<내부자들>이 미완결된 작품이었기 때문에, 영화로의 각색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영화 <신과함께>의 기록행진이 ‘웹툰 원작 영화의 약진’으로 평가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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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함께> 제작진도 처음부터 꽃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덜컥 집어든 것이 너무도 거대한 원석이었기 때문이다. 원작 ‘신과함께’가 어떤 작품인가. 연재하는 3년 내내 별점 9.9 유지하고, 완결 후에도 오랜 기간 네이버 웹툰 1위를 고수했으며, 신과 인간의 운명을 다룬 방대한 세계관 그리고 세상의 풍자, 게다가 각종 만화상을 휩쓸며 작품성까지 두루 갖춘 수작이 아니던가. 마침 네이버 <앙코르 명작 웹툰 7선>으로 선정되어 재 연재가 진행되는 최근은, 팬들의 원작에 대한 이해도와 애착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할 때였다.

 

 

작년 개봉을 앞두고 예고편이 공개되고 나서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다음은 예고편 공개 이후 재연재 중인 웹툰 댓글란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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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웹툰 신과함께(재연재) 37화 댓글

 

 

영화가 버린 것, 택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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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웹툰 <신과함께> 저승편 4화 캡쳐

 

영화에서 사라져 웹툰 팬들이 그토록 안타까워하는 인물이 바로 이 진기한 변호사다. 웹툰 <신과함께-저승편>에서 진기한은 주인공 김자홍의 49일 저승재판을 동행하며 그의 변호를 맡는다. 서릿발 같은 시왕의 추궁에 때로는 능수능란하게, 때로는 빛나는 기지로 각 지옥을 돌파해낸다. 주인공 김자홍에게 진기한은 메시아 그 자체다. 진기한과 김자홍의 ‘모험과 여정의 서사’는 원작의 가장 큰 줄기라는 점에서 진기한 변호사는 주인공과 다름없는 비중을 갖는다.

 

그런데 공개된 예고편에서,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의 역할은 강림차사(하정우 분)가 떠맡는다. 이승에서 죽은 영혼을 데려오기도 바쁜 차사가 말이다. 원작의 핵심 동력인 진기한 캐릭터가 상실된 것 하나 만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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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차이. 방화복을 꽁꽁 싸매고 땀띠 나도록 저승을 헤매는 이 남자는 원작에 없는 인물이다. 소방관인 그는 가난하게 태어나, 오직 어머니와 동생을 위해 소처럼 뼈 빠지게 일하다가 화재 진압 중 순직해 의인으로 저승에 입국한다. 원작에도 ‘김자홍’ 이라는 주인공이 있지만 이름만 같을 뿐 영화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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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웹툰 <신과함께> 저승편 8화 캡쳐

 

여기 이 얼빵하게 생긴 아저씨가 원작의 김자홍이다. 놀랍게도 위의 6컷으로 그의 캐릭터는 부족함 없이 설명된다. 이점은 원작에서 매우 중요한 장치다. 평범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부지불식간에 저지르는 과오와 죄를 저승의 법으로 심판받는다. 원작 전체를 관통하는 ‘착하게 살자’라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인공인 것이다. 이런 김자홍을 영화에서는 ‘순직한 소방관’이라는 살신성인의 화신으로 만들어 저승에 올려놨으니, 원작의 팬들이 멘붕이 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진기한이 없고 소방관 김자홍만 있는 예고편만 본다면, 원작의 중요한 두 축을 모두 드러낸 붕괴수준의 각색이었다.

 

 

영화<신과함께>의 승부수

 

원작의 스토리가 검증되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웹툰으로서의 스토리가 검증되었다는 것뿐이다. 제작자는 영상화에 앞서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원작에 충실할 것인가, 과감한 해석을 할 것인가. 한다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돋아 세울 것인가. 각색의 방향설정은 영화의 성패를 결정짓는 처음이자 끝이다. 

 

영화<신과함께>를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에 따르면, 작업한 시나리오가 30개 버전이나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는 변호사 진기한도 살아있었을 것이고, 평범한 소시민 김자홍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감독의 선택은 진기한 없는 소방관 김자홍이었다. ‘감히’ 원작의 축을 바꿔가면서까지 감독이 얻어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진기한의 역할을 강림치사(하정우 분)에게 흡수시킨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시왕들의 재판과정을 비교적 단순하게 묘사하려는 것. 각 재판과 지옥의 의미가 원작의 메시지를 강화하는 중요한 장치였음을 고려하면 이것은 분명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이유 있는 희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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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한이 내어준 자리는 소방관 김자홍, 억울한 죽음으로 한을 품는 군인 김수홍, 그리고 언어 장애가 있는 어머니, 세 모자의 이야기를 구동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잘되었기에 망정이지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었다. 잠깐 눈을 현혹하는 CG와 뻔한 신파가 얼버무려진 시시한 영화로 끝나기 딱 좋은 배열이었으니 말이다. 

 

신파에 대한 거부감은 설득되지 않은 감정에 관객을 밀어 넣으려 할 때 생긴다. 슬플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관객에게는 어떤 연기도 효과도 소용없다. 영화 속 세모자의 사연 자체만으로는 감동이나 슬픔이 증폭될만한 강한 설득력이 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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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렇게 신파의 클리셰를 서서히 뿌리며 관객을 방심하게 만들어놨다가, 김자홍이 염라대왕 앞에 다다랐을 때 숨겨둔 감정의 공이를 때린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던 소방관의 의인적 삶 속에 켜켜이 숨겨두었던 김자홍의 패륜적 과거가 드러나고, 어머니는 그것을 그저 품어준다. 영화는 여기에서 관객들 저마다의 효에 대한 죄의식을 자극한다. 모른 척 묻어두고 살지만 분명 만져지는 그것 말이다. 살면서 부모 속 한번 안 썩힌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보편성의 자극. 이 영화의 승부수는 여기에 있다.

 

 

성배를 든 자여, 독을 견뎌라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몇 번씩 왔다 갔다 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원동연 대표의 첫마디 였다. 티저 예고편 공개 후 쏟아지는 악플에 개봉일 까지 우울증 약으로 견뎌냈다고 한다. 진기한 변호사가 사라진 것과 김자홍에게 방화복을 입혀야했던 이유를 영화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까지 성난 관객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원작의 힘이 강할수록 2차 저작의 운신은 버거워진다. 그럴수록 각색에서 가장 우선 되어야 할 것은 당연히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다. 이전 웹툰 원작 영화들의 실패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충분한 숙고 없이 원전의 성공에 편승하는 데에 매몰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원작의 본질을 흔들어서는 안 되며, 그것과 거리를 둘 때는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영화 <신과함께>는 분명 흥행을 했다. 그러나 그것의 성공분석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여러 가지 과감한 각색들은,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다면 그것들 때문에 실패했다고 이유를 달아도 무방할 정도로 과감했다. 만약 30가지의 시나리오 옵션 중 다른 버전들이 선택되었다면 망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반대로 원작의 팬들까지 흡족하게 아우르는, 더 큰 성공의 옵션이 있었을 수도 있다. 

 

1300만명의 관객 중 원작과 관계없이 영화로서 즐긴 자도 있을 것이고, 웹툰과의 괴리에 아쉬운 뒷맛을 느끼는 사람들 또한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것을 ‘취향의 차이’로 남겨두는 것은 수용자인 관객이 할 일이다. 제작자들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 약진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관객들은 장르를 넘어 새롭게 해석된 이야기를 보기위해 원소스멀티유즈 작품을 선택한다. 물론 거기에는 원작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 원작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떤 소구력이 있었는가에 대한 분석과 고민, 그것을 어디까지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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