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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소셜테이너

 

이효리. 거꾸로 해도 이효리. 그 이름 석 자 모르는 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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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아이돌 그룹의 리더, 정점을 찍은 가수, 예능 프로그램의 블루칩, 섹시 아이콘, 패셔니스타, 그룹과 솔로 활동 모두로 가요대상을 받은 유일한 가수, 가요대상과 연예대상을 모두 받은 최초의 연예인. 그녀를 수식하는 단어는 너무 많아 붙일수록 장황해질 뿐이다. 이효리는 시대를 풍미했다.

 

그녀를 수식하는 또 다른 단어가 있다.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밝히고 참여하는 소셜테이너. 유기된 개와 고양이를 돌보고, 고통스럽게 길러지는 동물과 오염되는 지구를 위해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작곡가에 의한 4집 표절사기사건 이후 활동을 자제하며 보인 그녀의 행보에 진정성을 의심하며 새우눈을 뜨고 보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효리의 힘은 대단했다. 그녀의 활동을 나르는 기사들 덕에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라는 동물보호 슬로건이 세간에 올랐다. 그녀가 입양한 유기견 순심이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강아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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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나비기금’의 1호 기부자 이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눈길>의 티저 뮤직비디오에 참여하기도 했다. 2014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모금 운동에도 제일 먼저 기부했다. 덕분에 모금 운동은 큰 화제가 되어 목표액을 달성할 수 있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전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는 전인권-이승환과 함께 국민 위로 송 '길가에 버려지다'를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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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활동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적어도 이제는 그녀의 사회적 활동에 대해 잠깐의 ‘이미지세탁’이라 흘겨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선택들은 연예인으로서의 상품성이나 생명력을 걱정했다면 쉽지 않았던 것들이다. 스타 이효리는 신념을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기꺼이 활용하는 소셜테이너의 길을 선택했다.

 

 

저는 궁금해요. ‘왜 나는 좌효리라고 불릴까. 자기 생각을 밝히면서 다 같이 사회에 관심을 갖자고 말하고 돈보다 생명이 먼저라고 말하면 좌인가? 그럼 나는 좌가 맞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죠. 정치색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동물 보호를 하고 하는 게 아닌데, 그런 면이 좀…억울했어요.

이효리, 한겨레 인터뷰 <약자 멸시하면 화 솟구쳐…고공농성 두 분에 힘 됐으면> 中

 

 

분리되고 싶지만 소외되기 싫은 소길댁

 

한동안 그녀가 사라졌다. 롤러코스터의 기타리스트와 연애를 한다고 했고, 조용히 결혼했다 했으며, 제주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는 이야기들만 남긴 채. 쏟아지는 세상의 관심과 유명인의 일상에서 누적된 피로감이 있기에, 조용한 삶을 원했고 그것을 찾아 떠났다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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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효리를 궁금해했다. 신혼의 일상을 담은 개인 블로그 ‘소길댁’은 개설 하루 만에 70만 명이 방문했다. 셀럽 신혼부부의 전원생활을 담은 블로그 덕분에 부부가 사는 제주의 집 주소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비밀이 되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트위터에 "친애하는 제주 관광객 여러분들, 죄송하지만 저희 집은 관광 코스가 아닙니다."라고 호소도 해봤지만 초인종을 눌러대는 불청객은 늘어만 갔다. 결국, 이효리는 블로그를 닫았다. 그녀에겐 좀 더 조용한 휴식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랬던 그녀가, 아니 이효리 이상순 부부가 다시 사람들 앞에 돌아왔다. 뭇사람들을 궁금해 못 견디게 했던 제주 애월읍 그들의 시크릿 가든을 활짝 내보였다. 그것도 생면부지 손님이 머물다 가는 민박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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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앵커가 오랜만에 돌아온 이효리를 인터뷰하면서 그녀가 예전에 썼던 모순적인 글을 언급하며 묻는다.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지만 잊히기는 싫다.” 뜻은 알겠는데 불가능한 일이 아니냐고. 여기에 이효리의 대답은 이렇다.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천하의 손석희도 당황하게 만드는 걸작이었다. ‘한도 끝도 없이 품고 있는 나의 바람이자 욕심’이라는 이효리의 설명에 머쓱해진 손석희도 “그렇습니다. 가능한 것만 꿈꾸는 것은 아니니까요.”라고 미소를 지었다.

 

이효리 내면의 모순은 톱스타에서 소셜테이너로의 성장 중에도 세상에 자주 드러났다. 화려한 패셔니스타에서 동물보호운동가로의 변화는 많은 것을 성찰하고 되짚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 역시 20~30대 또래 여자들처럼 가죽으로 만든 가방에 열광했다. 잇 백(It Bag)이라며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저거 하나쯤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며 지갑을 열었다. 남들보다 비싼 가방을 들고 잘난 척 으스대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겠지만, 특히 부드럽고 질 좋은 가죽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양질의 가죽은 송아지가 태어나자마자 모공이 채 열리기도 전에 벗긴다는 사실을 안 뒤 생각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런 가방들을 볼 때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겠는가. 나도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여자다.

씨네 21 칼럼 [이효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엣지와 에코 사이 中

 

한우홍보대사를 그만두고 SNS에 돌연 채식주의를 선언하기도 했다. 말이 많았다. 영향력이 막대한 스타의 행보가 너무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효리는 이렇게 답한다.

 

그때 제 가치관에서는 고기를 먹을 거면 한우를 먹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그때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한 거죠. 그리고 (채식주의를 결정한) 지금은 (환경과 동물권을 위해) 고기를 안 먹는 게 옳은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저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많은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야 했어요.

SBS <힐링캠프> 中

 

 

<효리네 민박>: 이효리의 공감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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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방영된 <효리네 민박>은 이효리의 ‘분리되고 싶지만 소외되기 싫은’ 개인의 모순과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꿈을 실현한 예능프로그램이다.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고자 마련한 보금자리에 부부는 다시 카메라를 들인다. 화장기 없는 얼굴, 내밀한 생활공간, 일어나고 잠들고 밥을 먹는 일상을 담백하게 내보인다. 조용히 살고 싶어 떠난 부부는 스스로 다시 유명해지는 길을 택했다. 이효리는 마음에 또 어떤 바람이 불어 닫혀있던 소길리의 대문을 활짝 연 것일까.

 

<효리네 민박>은 여타 YOLO, 힐링 예능과 다른 점이 있다. 출연자들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무언가를 즐겨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민박집 운영이라는 공동의 업무가 있긴 하지만 <윤식당>처럼 본격적이지도 않다. 그저 부부의 일상에 몇몇 손님이 초대되었을 뿐이다. 아이유가 알바생으로 섭외되긴 했지만, 그녀 역시도 민박집의 고즈넉함에 젖어들어 쉬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효리네 민박>을 끌어가는 내용은 전혀 특별할 게 없는 손님들의 평범한 고민과 소소한 관심사 들이다. 면접을 마치고 온 취준생들, 노부부의 뜻 깊은 여행, 어머니 없이도 꿋꿋하게 삶을 헤쳐나가는 삼 남매 이야기, 우정 여행을 떠난 죽마고우들, 죽이 잘 맞는 직장 선 후배들. 육아에 지쳐있는 젊은 부부 등이 화면을 채운다. 오랜만에 만나는 예능프로그램의 이효리는 변해있었다. 재치 있고 익살스럽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저 손님을 받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갈 때가 되면 배웅해줄 뿐이다. 예능계와 광고계를 씹어 먹던 슈퍼스타의 민박집 주인 컨셉은 놀랍게도 위화감이 없다. 화려했던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알바생 아이유에게도 섣불리 조언하거나 위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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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작하는 순간 결과를 보고 싶어 한다. 조급증에 걸린 사회의 풍토가 뭐든 쉽고 빠르게 결실을 얻어야 한다고 우리를 몰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고층빌딩 꼭대기에 위치한, 전망이 끝내주는 헬스클럽에 가입한 뒤 오고갈 때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면 과연 살을 뺄 수 있을까? 조금 속도를 늦춰서 천천히 가보자. 삶도 슬로하게, 푸드도 슬로하게, 그리고 다이어트도 슬로하게.

씨네21 칼럼 [이효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진짜 다이어트, 내 손 안에 있소이다 中

 

많은 기획사들은 아이들에게 춤과 노래, 연기 등 스펙을 쌓아주려고 열중한다. 그런데 사회와 떨어져 생활하는 이 친구들의 인성교육은 누가 담당하고 있는 걸까? 이 친구들이 아이돌로 성공하지 못할 경우 사회로 다시 돌아가 적응하며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장치는 마련되어 있는 걸까? 눈앞의 돈을 위해 아이들의 스케줄을 마구 돌리기보다는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장기적으로 보자면 그건 아이돌뿐 아니라 기획사에도 훨씬 도움이 되는 일이다. 

씨네21 칼럼 [이효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아이돌, 아니 아이들에게 中

 

<효리네 민박>은 제주의 삶을 시작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이효리의 문제의식에 대한 성찰의 결과를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아픔과 고민이 있다는 것. 그것을 다스리는 데에는 충분한 휴식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 이효리는 제주에서 얻은 답을 들고 한결 원숙해진 공감 능력으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효리가 새롭게 찾은 ‘조용히 유명해지고 싶은 방법’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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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소길리에는 누가 찾아올까

 

촉 좋은 이효리가 시즌 2를 그냥 결정했을 리가 없다. 시즌 1의 흥행에 따른 관성적인 출연이 아닐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효리네 민박> 시즌 2에는 계절이 바뀌었다. 월요병에 시달리는 일요일 밤 시청자들을 몇 주 동안 제주의 포근한 겨울의 정취에 다시 한번 위로 받을 것이다.

 

여름내 머물던 아이유는 알바를 그만두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촬영 스케줄 때문에 민박집에 머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유는 올겨울, 드라마 촬영장에서 새우잠을 자야 하겠지만, 지난여름 소길리에서의 기억이 ‘인간 이지은(본명)’에게 ‘스타 아이유’의 이름에 짓눌리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기를 빈다.

 

빈자리는 소녀시대 윤아가 채울 예정이다. 이효리와 아이유가 ‘정상에 서 있는 솔로 여가수’의 고민을 나눴다면, 윤아의 새 직장에는 자기와 같이 어린 나이에 데뷔한, 잘나가던 아이돌그룹 멤버였던 사장님이 있다. 앞에 앉은 이가 이효리이기에 털어놓을 수 있는 윤아의 속 이야기는 오직 소길리 민박집에서만 엿들을 수 있는, <효리네 민박2>의 관전 포인트다.

 

그리고 또 하나, 뚜껑을 열기 전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효리네 민박2> 진짜 알맹이가 있다. 이번 겨울 소길리에는 누가 찾아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낯선 사람에 한결 익숙해진 이효리 부부가 손님을 만나 어떤 공감을 해낼까. 애정 있게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삶에는 저마다의 드라마가 있다는 것. 지난여름 첫 장사로 그것을 몸소 깨달은 제주 애월읍 소길리 민박집 부부는 겨울 장사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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