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경, 삼성증권 직원의 오류로 배당금이 1000 “원” 이 입금되어야 하는데, 1000 “주”가 배당되었다. 전산 입력 중 단위를 '원'에서 '주'로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배당된 주식이 28억 3천만 주. 전날 삼성증권 주식이 한주당 3만 9천 원에 거래되었으니 단순 곱셈하면 112조6천985억이다. 29억 배당해야 할 걸, 112조를 배당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이 질문은, 삼성증권 사태에 알파이자 오메가 같은 부분이기 때문에 반복해서 제기할 것임을 미리 밝힌다.
일반 주주 배당은 예탁결제원 등을 거쳐서 지급되기 때문에 이런 어이없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 문제는 삼성증권 직원들이 받아야 할 배당은 회사 내부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물론 직원이 실수 할 수 있다. 흔히 팻핑거오류(손꾸락이 졸라 두꺼워서 자판을 잘못 치는 것)은 과거부터 무수히 있었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 내부규정도 강화하고 후속 조치도 할 테다.
하지만 그걸로 퉁치고 넘어가기엔 썩은 내가 진동을 한다. 오히려 이번 사태에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은 '단순 실수'뿐이라 해도 좋을 듯싶다. 이 우연한 실수 이면에는 한국 금융시장의 온갖 문제가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는 비유하자면, 영화 매트릭스 속 가상세계에 블루스크린 에러가 뜬 것이며, 트루먼쇼 촬영 중 띨빵한 스태프가 넘어져서 세트장이 내려앉는 순간과 같다. 블루스크린이건 세트장이건, 우리가 물어야 하는 건 단 하나다.
“이게 말이 돼?”
1. 28억 주, 112조
모든 주식은 최대 발행 가능한 주식 수가 정관에 박혀있다. 회사가 돈 필요하다고 주식을 막 찍어내서 기존 주주들이 피해를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주식은 정관에 정해진 수 만큼만 발행할 수 있고, 주주총회를 열어 정관을 고치지 않는 이상 이 수는 바뀌지 않는다.
삼성증권 정관상 주식 발행수는 약 1억 2천만 주. 그 중 8천 9백만 주는 이미 유통이됐다. 즉, 정관상 삼성증권이 발행 가능한 남은 주식 수는 3천만 주.
근데 씨바, 이번 사태 때 '28억 주'가 발행됐다. 28만이 아니라 28억. 정관상 최대치에 수십배를 아득히 넘어서는 양이다.
삼성증권은 직원 실수라고 해명했다. 물론 직원이 실수할 수 있다. 인간이니까. 근데 직원 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라 이렇게 크다면, 이건 시스템이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거다(한 사람이 핵미사일을 전 세계로 발사할 수 있으면 잘못된 것처럼).
정관을 뛰어넘는 주식이 발행돼 직원들 통장까지 꽂혔는데, 아무런 확인이나 제재가 없었다. 제도권 밖에서 유통되는 가상화폐도 일일히 채굴기를 돌려야 생성되는데, 거래소에 등록되고 예탁원에서 관리를 받는 상장사의 주식이 이렇게 야매로 유통이 된다는 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다.
2. 유령을 팔았다
삼성증권 직원 16명은 이렇게 발행된 유령주식 501만 주를 시장에 팔아치웠다.
나는 이들 한명 한명이 멍청했거나, 도덕적으로 매우 해이했던 거길 바란다. “아싸 아무도 모르는 꽁돈이 들어왔다! 팔자!”하고 대금을 챙겨서 튈 상상을 했던 거였으면 좋겠다. 눈앞의 큰돈에 눈멀어 억대 연봉 받던 직장에서 짤리거나, 부정이익이 환수될 수 있는 가능성따윈 생각하지 못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게 '고의에 의한 것'에 비하면 그나마 낫기 때문이다. 가령, 이들이 사전에 사태가 벌어질 걸 예상하고 부정이익을 환수당하지 않을 법리 해석까지 끝낸 상태로 덤벼든 거라면, 이는 주가조작 공모 혹은 내부자 범죄에 해당한다.
더 끔찍한 가능성은, 이들이 자기들 돈 벌려고 한 게 아닐 경우다. 여기서 삼성증권 사태가 보여주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다.
그것은 삼성증권이 그동안 통상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벌여왔을 가능성이다.
공매도란 쉽게 말해, 뻥카다. 갖고 있지도 않은 주식을 시장에서 내다 팔고 주식대금을 받는 행위이다. 일단 주식을 팔고 나서 주가가 내려가면 그 차액만큼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원에 딴지일보 주식을 팔았는데, 팔고 났더니 딴지일보 주가가 90원이 되었다고 해보자. 내가 90원에 딴지일보 주식을 사서 갚으면, 100원(매각대금) – 90원(매입대금)으로, 10원 이득을 본다. 여기까지가 공매도의 기본.
한국 자본시장에서는 차입 공매도만을 허용하고있다. 즉, 공매도질을 하고 싶으면 주식을 가진 주주에게 허락 받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뒤 공매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규정이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끊임없이 증권사들이 몰래 무차입 공매도를 해오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왔었다. 그러니까 증권사에서 고갱님의 주식을 알려주지도 않고 슈킹해 내다 팔고, 결제일(보통 거래일 +2일 정도로 알고 있다)까지 꿔다가 메꾸는 식의 주식깡을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번 유령주식 매도 사건은, 이러한 무차입 공매도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이것은 마치 “무차입 공매도 가능한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실증적 실험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완벽하게, 무차입 공매도의 가능성을 증명해낸 것이나 다름없다.
이 프로세스를 관리 감독해야 할 예탁원과 거래소는 손을 놓고 있었고.
3. 무차입 공매도로 써보는 소설
마지막으로, 무차입 공매도가 한국에서 가능하다고 해보자. 이게 뭘 의미할까?
이는 증권사가 대놓고 주가 조작을 할 수 있음을 뜻한다. 무차입 공매도라는 치트키를 써서 공매도를 마구 남발해서 주가를 낮출 수 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증권 사태로 삼성증권 주가가 떨어졌듯 말이다.
주가 조작을 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여기서부터는 백프로 뇌피셜, 소설의 영역임을 밝힌다.
아주 단순히 생각하면, 개미 털어먹기가 가능하다. 증권사는 이미 개미 고갱님들이 어떤 주식을 얼마 사고 보유 중인지 손바닥 안에서 보고 계신다. 힘겹게 개미들이 존버하고 있는데, 무차입 공매도로 공매도 물량을 쏟아내면 어떨까? 멘탈이 탈탈 털린 개미들이 패닉셀을 하게 된다. 증권사는 이 주식을 받아먹어서 빌려 간 공매도를 갚고 차익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물론 이런 노골적인 방법은 너무 티가 나니까, 머리를 조금 쓸 수 있다. 컨설팅을 하는 것이다. 가령 상속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기업 회장님이 있다 쳐보자. 증권사는 회장님께 접근해 “눈치 없이 주가 올린 개미들 털어버리죠 ㅎㅎ”하고 무차입 공매도를 마구 시전한다. 왜 떨어지는지도 모르고 개미들은 손절을 하게 되고, 주가는 내려가 증권사는 돈을 벌고(회장님께 이쁨도 받고), 회장님은 주가가 내려간 덕에 상속세를 적게 내고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된다.
한 발 더 막 나가볼까? ELS상품이란 게 있다. 투자 기간 동안 주가가 일정 수준 밑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약관에 보장된 높은 이자율을 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이다. 내가 ELS를 파는 증권사 사장이라면, 나는 아마 ELS만기일 직전에 주가가 졸라 떨어지길 간절하게 바라면서 굿이라도 벌일 것 같다. 왜냐면 그래야 내가 돈을 버니까. 근데 무차입 공매도란 주가 떨구는 버튼이 있다면? ELS 상품 산 사람들을 호구로 만들 수 있다.
물론, 앞서 말했다시피 이는 모두 소설이다. 하지만 제도적 장치도 없고 누가 말리지도 않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이미 벌어졌을지도 모르고. 항간에 떠도는, 간 크게 수십억을 매도한 직원들이 주가조작 부서에서 일한 거 아니냐는 의혹처럼 말이다.
만약 주가 조작설이 사실이라면, 이건 그 직원들 혹은 삼성증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자본시장이란 게 실은 야바위판이었단 소리고, 개인투자자를 호구로 육성하기 위한 매트릭스였단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리가 없으니까 증권사 전수조사 하자 씨바. 이번 사태, 절대로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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