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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이트 마사이>는 백인 여자가 마사이 부족 남자와 사랑에 빠져 딸을 낳아 아이를 키우며 생활 한, 한동안의 부족 생활을 담았다.

 

남자 친구와 세계 여행을 하던 중 만난 오지의 남자에 특별한 감정을 느낀 여자는 자신의 감정에 따라,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부족으로 들어가 남자와 가정을 꾸린다.

 

말이 통하지 않는 젊은 남자와 여자. 백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왜곡된 여성관을 가진 남자에게 사랑하는 법부터 하나씩 가르치고 설득하는 여자는, 행복했다. 그들의 결말은 결국 파국을 맞는데, 돈을 벌기 위해서 마을에 상점을 내고 손님을 맞이하는 여자를 질투한 남자 때문이었다. 

 

왜 모르는 사람에게 웃음을 파는가.

 

술에 빠진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기에 이르자, 설득에 지친 여자는 딸을 데리고 고국으로 귀환한다. 도시에 사는 남녀가 서로의 조건을 비교하거나 감정을 낭비하는 모든 과정을 사랑으로 포장하여 시간을 소비하는 것과 달리,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두 사람이 매우 동물적인 감각으로 서로를 찾고, 매력을 느끼고, 한 몸이 되는 장면은 뭐랄까.

 

신비롭고 아름답다. 

 

다만, 일상이 자리 잡으면서 가정 경제라든가, 주도권이라든가, 서로의 문화 차이라든가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 앞에 강렬했던 사랑은 소멸된다.

 

덴마크 작가, 페터 회의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도 이글루에 사는 원주민 여자와 백인 지식인이 사랑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소설에서도 거부할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 자신의 근거지를 떠나 옮겨오는 사람은 백인 남자였다. 아이를 둘이나 낳고도 여자의 원시성을 정복할 수 없는 것에 절망한 남자는 다시 도시로 돌아와 젊고 어린 여자와 살지만, 아이들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현재의 젊은 여자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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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에서 묘사된 아직 도시화되지 않은 오지의 원주민들은 그들끼리만 살아갈 때는 충분히 건강하고, 아름답고, 풍요롭다. 백인과 자본주의가 침투하여 그들에게서 자원과 인력을 빼앗고 그 대가로 알량한 돈 몇 푼을 쥐여 주기 시작하면서, 부족은 친일파처럼 발 빠르게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부류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양극화되고, 대부분의 부족민은 비극적인 가난에 빠진다.

 

미국 내 인디언 보호 구역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이등 국민처럼 열등한 대접을 받는 인디언들. 특히 젊은이들은 마약이나 도박, 범죄의 소굴에 빠지거나 도시 하층민에 편입되어 불행해진다. 서부인들이 침략하기 전 드넓은 평원에서 주변 환경에 큰 피해를 입히지 않고 충분히 자생적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도시 빈민과 사회 문제로 전락하는 과정은 마치 어머니를 잃은 고아가 제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떠도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마음 아프다.

 

왜 그 아이들이 제 나라에서 거지처럼 살고 있을까. 석유나 금, 각종 자원을 빼앗으려고 서구 열강이 앞다투어 무기를 들고 아프리카나 아메리카를 침탈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여전히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부족의 미래로 잘 살았을지 모른다.

 

돈이 될 만한 것들을 가져가고, 그 결과로 열악하게 사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며 영상을 찍고 후원금을 모은다.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으면 벌어지지도 않았을 비극에 대해서 잘못을 인정하지는 않고, 과거를 묻어둔 채 오히려 휴머니스트의 명예마저 가지려고 한다.

 

사람이 동물을 거두는 것도 아니고, 같은 사람들끼리 마치 귀족이 노예에게 은사를 베풀듯이 나만큼 못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셀러브리티들은 카메라 기사를 대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장을 누비는 것이 나쁠 건 없는데, 현장을 다니면서 동시에 역사도 공부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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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니까 같이 동참하자고 광고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 나눌뿐, 원래 그들의 것이었던 걸 돌려주는 획기적인 발상은 찾을 수 없다.

 

세계 최대 갑부 순위를 발표하고 기부 많이 하는 재벌들 순위를 발표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쁜 음식과 지나친 과로로 암에 걸린 환자를 양산하고 한편으론 그들을 고쳐 준다며 패가망신할 정도로 병원비를 앗아가는 의료 집단 역시 재벌의 소유임을 생각해 보면, 사람은 없고 끊임없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오가는 자본의 이동만 보인다.

 

그것만이 진정한 주인공인 것처럼 어색하다.

 

그런 의미에서의 휴머니스트, 인권주의자는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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