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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보면서, 위안부 할머니들 더 위대하게 느껴져

 

‘위안부 소녀상’으로 알려져,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평화의 소녀상’ 작가인 김서경, 김운성 부부는 꼬박 8년을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투쟁했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님의 ‘위안부(일본군 성노예)’ 피해 생존자로서 최초 증언이 있었다. 20년이 지나도록 가해국의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세월 앞에 피해 생존자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등지는 현실에 무엇이라도 하자 싶어,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게 되었다.

 

이후 소녀상은 수많은 우여곡절과 사연이 더해지며 전국 곳곳에 하나 둘 늘어갔고, 급기야 일본, 미국, 독일 등 전 세계로 진출하게 되었다. 그동안 국가와 정치에서 마땅히 감당했어야 할 일을, 예술을 통해서 묵묵히 오랜 세월 계속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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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평화의 소녀상과 이를 조각한 김운성, 김서경 부부

 

2015년 12월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비롯, 피해자들이 배제된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했다. 시민들은 합의 파기를 외쳤고,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지키기를 위해 엄동설한에 길거리에서 몇 달간 노숙을 불사했다.

 

촛불 혁명을 통해 탄생된 새 정부에서는, 이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의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외교부 내 T/F팀을 설치했고, 올 1월 진상 조사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다. 나아가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 불가와 함께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100억 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예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정부의 입장 번복에 완전히 만족한 것은 아니지만, 잘못되도 너무 잘못된 조치들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보자는 눈치다. 이렇게 하나 둘 제자리를 찾아가기까지 김서경, 김운성 작가가 만들어 낸 ‘평화의 소녀상’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들어 가면서, 침묵 속에 ‘큰 울림’을 만들어 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딴지마켓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후원을 위해, 평화의 소녀상을 그대로 재현한 작은 소녀상 피규어 판매를 시작했다. 작은 소녀상의 수익금 일부는 김서경, 김운성 작가들이 활동하는 정의기억재단에 기부되고, 2015년 12월 정부가 굴욕적으로 합의한 한일 위안부 합의 화해치유재단 기금 100억 반환 운동에 쓰일 예정이다. 작은 소녀상 판매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억하기 위한 바람과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동시에 1991년 가장 먼저 피해 사실을 증언하며 ‘미투(Me Too)’를 시작한 할머니들에게, 많은 이들이 잊지 않고 ‘함께 하고(With You)’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3월 22일 김서경, 김운성 작가를 만나 2011년 12월 14일 '수요 집회 1000회'를 기념하여 평화의 소녀상을 일본군 대사관 앞에 설치할 때부터 지금까지 소녀상, 그리고 위안부(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과 함께 한 세월을 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담은 딴지 필진 헤르메스 아이가 진행했다. 간간이 사진 찍던 딴지마켓 퍼그맨과 딴지마켓에 작은 소녀상 판매 사업을 제안했던 최휘선 ㈜에프‧디 크리에이트 본부장도 대화에 참여했다. 이들은 최근 미투 운동을 보며 할머니들이 새삼 더 위대하다고 느꼈고, 문재인 정부에서 한일 위안부 굴욕 합의 이행 불가 입장 천명에 안도하면서도, 화해치유재단의 건재함은 못마땅하다는 소견을 말했다. 이들과 나눈 대화를 올린다.

 

 

소녀상 태운 151번 버스 첫차 배웅할 때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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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 아이(이하 ‘헤’) : 작년에 151번 소녀상 버스 운용됐었죠? 그때도 한창 여기저기 방송에도 많이 나왔습니다. 반응이 어땠나요?

 

김운성(이하 ‘운’) : 반응이 두 가지죠, 뭐. ‘굉장히 신선하고 재밌다’고 하는 반응이 있는 반면 일본 쪽에선 완전히 난리가 났어요. 무슨 파쇼적인 행태냐 뭐 이런 식으로... 왜 파쇼인지 모르겠는데.

 

헤 : 일본 참 후안무치하네. 가만히 좀 있지.

 

김서경(이하 ‘서’) : 그래서 지금 계속 소녀상이 더 세워지고 있는 거 같아요.

 

운 : 후안무치의 곱하기 열은 더 해야 될 것 같은데. 정말 정말 나쁜 사람인 거 같아요.

 

헤 : 후안무치보다 더 심한 말을 하고 싶지만, 우리는 품격 있는 사람들이니까. 하하. 그 버스 직접 타보기도 하셨어요?

 

서 : 저희는 직접 타보진 많았어요.

 

운 : 실제로 소녀상 설치하고 보내고, 그렇게 떠날 때만…

 

서 : 새벽에 첫차 떠날 때 가서, 배웅하고 뭐… 그 정도까진 했어요. 근데 그걸 타고 가기에는 저희가 조금…

 

운 : 그건 시민들 몫으로.

 

헤 : 그때, 첫차 배웅할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되게 짠했을 거 같아요.

 

서 : 아! 눈물 나더라고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뭐랄까, 울컥하더라고요. 이런 경험을 소녀상이 할 수 있게 조건이 만들어진 것과 많은 운전기사분들이 굉장히 기뻐해 주시는 모습. 저희는 더 고마웠죠.

 

헤: 정권이 바뀐 것도 큰 원인이긴 했지만, 소녀상을 통해 신한일 위안부 굴욕 합의 문제점을 계속 상기시켰던 게 이번 정부 들어서 이행 불가 방침에 큰 부분을 차지했던 거 같아요. 그 추운 겨울날 학생들이 소녀상 지키겠다고 길거리에서 노숙하고. 지난번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 사실상 철회 방침 발표 보셨죠? 그때 감회가 남달랐을 거 같아요.

 

서 : 보람이나 감회보다는, ‘아! 이제 좀 변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도 미흡하잖아요. 일단은 직접 100억을 반환한 것도 아니고, 화해치유재단이 건재하잖아요. 그런 부분 때문에 못마땅한 게 더 많았죠. 미흡한 발표였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난 3월 1일 대통령이 하신 말씀을 듣고 조금 더 희망을 갖고 있는 부분들이 있어요. 앞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단호하게 ‘잘못된 합의였다.’는 것을 명시하고 제대로 할 수 있을 거 같은, 희망을 갖게 된 부분은 있어요. 작년에는 좀 어두웠죠.

 

헤 : 아베도 그래요. 어디서 허수아비 같은 사람이랑 밀실에서 그렇게 얼렁뚱땅 합의를 해서.

 

서 : 그래서 고마웠겠죠. 뭐.

 

 

이명박근혜 9년, 탄압받는 예술가들의 표현 주제 오히려 확장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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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 정치가 담당해야 될 영역들, 이를테면 국가를 생각하고 약자를 돌보고, 그런 부분들을 지난 9년 동안 예술의 영역에서 예술가들이 담당하고 끌어 왔던 거 같아요. 두 분도 그렇고요. 그런데 지난 정권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만들었잖아요? 정말 예술인들이 암흑기였는데, 지난 세월을 어떻게 지나오셨어요?

 

운 : 역작용이라고 그러나? 사회가 좋아지면 주제가 뻔해지잖아요. 하하하(웃음). 가난하고 탄압을 받더라도 비겁하게 물러서면 안 되니까. 표현할 수 있는 주제들은 많이 확장되어 버린 거죠. 인권, 평화, 통일, 탄압, 독재. 이런 것들에 대한 주제가 많이 나왔고,  오히려 예술가들이 그런 쪽에서 많이 힘을 낸 거 같아요. 본인들은 힘들었지만.

 

헤 : 예술의 영역이 저항권으로 가는 거 같아요.

 

운 : 네. 예술가들은 더 이상 물러설 데도 없잖아요. 직장에 매여 있는 것도 없지만, 그게 우리의 중요한 무기라면 무기죠. 창작이라고 하는 거. 창작이라 하는 것은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있지만, 또 하나의 정부를 생산하는 거잖아요. 그걸 통해서 사람들하고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그런 부분들이 예술가들의 힘이잖아요. 좋은 세상이 와도 힘든데, 부도덕한 자들과의 어떤 싸움 속에서 자기에 대한 확인을 하는 과정이 있었던 거죠. 시민들이 같이 호응을 해주니까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힘이 나고.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헤 : 2015년 12월 정부에서 위안부 합의를 했다고 기습적으로 발표하고, 소녀상 지키겠다고 학생들이 추운 겨울날 노숙할 때, 그 겨울에 어떠셨어요?

 

운 : 그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죠. 발표문엔 없는 이면합의가 있다는 의심. 두 가지 의심이 들었어요. 그 중 하나가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연구하고 자료를 모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했던 성노예와 관련한 자료들. 이런 것들을 ‘유네스코에 등재하지 않는 걸로 한다.’고 하는 것. 또 하나는 ‘소녀상을 철거한다!’라는 것.

 

청년과 학생들이 다 알고 소녀상으로 왔던 거고 저희들도 갔죠. 약속도 안 했는데. 전쟁을 막 치르는 순간 같았죠. 경찰들이 담요를 못 가지고 들어가게 했어요. 누군가 담요를 건네주는데 경찰들도 못 막더라고요. 그게 누구였냐면, 가수 이승환하고 주진우 기자였죠. 그분들이 얼굴에 마스크를 했는데도 거기 있는 일반 대중들은 누군지 다 알아. 경찰들도 알고 있고. 우리는 ‘누구지?’했는데.

 

서 : 그 사람들도 경찰이 막고 있으니까 던져줄 수밖에 없잖아요? 거기를 지키던 아이들이 그 담요를 더 많이 가지고 가려고 했어요. 추워서도 그랬지만, 이승환이 주는 담요니까.

 

헤 : 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위안부 굴욕 합의를 반드시 넣었어야 했다고 생각했어요. 제 지도교수님도 그러셨고.

 

서 : 그게 가능했던 적이 있었어요?

 

헤 : 그렇죠. 그거야말로 넣었어야 해요. 세월호도 들어갔잖아요.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으로. 이 한일 위안부 합의랑 개성공단 폐쇄 문제도 넣었어야 됐어요.

 

서 :  맞아요. 개성공단 폐쇄 문제도 너무 어이없네요.

 

헤 : 탄핵소추안을 두고 헌재에서 판단을 할 때 이것까지 판단해서 기록이라도 남겼었어야 되는데, 그 안이 안 들어가서 두고두고 아쉬웠어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 작성할 때 더불어민주당에서 학자들 불러서 좌담회를 했었어요. 참석했던 제 지도교수님께서 위안부 합의도 탄핵 소추 사유로 넣자고 했는데 그것까지는 안 받아들이더라고요. 그것까지 넣었으면 국회에서 의결이 안 될 거 같은지. 세월호 하나 들어가는 걸로만 만족했어요.

 

운 : 사실 들어갔었어야지. 세월호하고 이 문제하고.

 

서 :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네.

 

운 : 사실은 역사 교과서 문제까지 통틀어서 곪고 곪아가지고 한꺼번에 터진 건데.

 

 

소녀상 오역하던 박유하와 옹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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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 ‘제국의 위안부’ 때도 박유하 씨. 한참 문제가 됐었잖아요?

 

서 : 지금도 여전히.

 

헤 : 소녀상에 대해서도 그분이 궤변 아닌 궤변을 늘어놓았고, 소녀상에 대한 해석과 관련해서도 왜곡돼 있었는데... 그때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은데 제가 다 기억은 못해요. 그때 그 논쟁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실 수밖에 없었을 거 같은데 어떠세요?

 

운: 책의 전반적인 내용들은 일본하고 박유하 씨가 말하는 내용이 거의 같은 내용인 거 같아요. 두 가지에 대한 타깃을 갖고 있는데 한 가지 타깃은 지금까지 이 운동을 끊임없이 진행해 온, 수요 집회를 계속 진행해 온 이 정대협에 대한 타깃이 있어요. 그 활동으로 생산된 소녀상을 공격하기 위한 부분들로 맞춰져 있는 거 같아요.

 

‘일본의 국격을 해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박유하의 코드대로 해석해서 "이게 왜 소녀여야 되냐?", "소녀는 순결한 처녀여야 한다". 이 소녀는 그런 식으로 보면 ‘소녀가 이렇게 표현되어지면 안 된다.’ 즉, 말하는 건 순결과 불순에 대한 부분들을 끌어들이면서 얘기했는데, 우리는 그런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정대협과 같이 소녀상을 제작하면서도 어떻게 제작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계속 토론을 했어요. 소녀라는 부분을 끌고 나오면서 그렇게 얘기하더라고. 한번은 우리가 일본에서 강연하는 중 질의응답하면서 "당신들 봐. 이게 어떤 내용 어떤 곳이 일본을 공격하는 내용인지 설명 좀 해봐라."라고 물었어요. 이게 어떻게 일본을 공격하는 내용인지 설명을 해봐라. 그런데 아무 얘기도 모르는 거예요.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얘기를 하신 때가 91년도에요. 46년간 이 말을 못했던 거에요. 이 내용은 그것이 중심인데. 일본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데, 왜 그 사실을 안 보냐. 박유하 씨 같은 경우도 말하려면 (소녀상)조각가의 의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작가의 의도는 전혀 고려를 하지 않고… 그동안 편하게 지냈던 디자인 평론가 최범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1956년생인가 그래요. 이 사람이 갑자기 토론하기 전에 그러더라구요. "김 작가, 내가 여기 비판을 해야 하는데, 미안해" 이러면서 시작을 하는데 그 소녀에 대한 내용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 소녀상은 순결해야 되는 거고 이 순결한 것이 일제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 그 피해자는 다시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공격자가 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소녀상은 파시즘이다" 이렇게 얘길 하는 거예요.

 

헤 : 의도된 오역이에요. 그 오역 자체가 의도가 있는 거예요.

 

운 : 이거는 정말 논리를 만들어 내는 자기 식의 짜맞춤이고, 누구를 보호한다고 하는 것이 결국은 박유하를 보호하는 것이고, 그 자체는 다시 일본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돼 버리는 거예요. 지금도 진보적 디자인 평론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 근간을 보면 내용들 자체에서 '일본의 논리를 아주 충실하게 따라주는 사람들이구나.'라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박유하 책에 대해서 피해자 할머님들이 고소를 한 게 아니고, 내용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먼저 하셨죠.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취재할 때도, 아주 무례하게 해서 쫓겨났었어요. 일본 기자들이 (허락도 안 받고)사진을 막 찍고 그랬었어요. 나눔의 집 관계자들도 깜짝 놀라서 누구냐, 무슨 의도로 하는 것이냐고 물었어요. 그거 (취재를)하려면 사전에 나눔의 집 관계자들과 조율을 하고 할머님들하고 이야기를 한 후에 해야 하는데, 실무자들을 빼놓고 갑자기 해버린 거에요.

 

(박유하와 일본 기자들이)사전에 몇 번 (나눔의 집에)자원봉사를 와서 (나눔의 집 실무자들하고 할머니들을)틈을 만들어 놓은 게 있었던 거 같고, 그 속에서도 (박유하 책의 내용 중)사실과 맞지 않은 부분들은 할머님들이 삭제해달라고 얘길 했고요. (나중에 이 책 내용과 관련해서 법정 소송 가기 전에)이런 사실들을 규정하기 위해서 검찰이 할머님들 몇 차례씩 부르고, 박유하도 몇 차례씩 불렀는데, 할머님들은 한 번도 안 빠지고 다 가셨어요. 박유하는 한 번도 안 왔어요. 그래서 검찰에서 고소를 한 거예요. 그런데 이걸 가지고 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면서 진보적 문화‧예술인들이 박유하를 보호하는 선에 서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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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 반인륜적 범죄를 옹호하는 자들을 독일에서는 형사처벌하거든요. 나치 범죄 옹호하는 자들은 기본권 제한도 하고. 우리도 그런 거 있었으면 좋겠어요.

 

서 : 어~ 맞아요.

 

운 : 이번에 헌법 개헌안에 들어가 있는?

 

헤 : 안 들어갔어요.

 

서 : 안 들어갔어.

 

헤 : 강력하게 주장해야 했어야 했어.

 

운 : 어! 어! 그거 해야겠다.

 

퍼그맨(이하 ‘퍼’) : 독일은 가해자잖아요. 가해자가 스스로 그런 걸 만들어서 하는데.

 

서 :  맞아요.

 

퍼 : 사실 그대로라면 일본이 그걸 해야 되잖아요. 우리나라가 지금 이 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한 거 같아요.

 

운 : 그 얘기를 약간 다른 식으로 받아서 얘기하면, 사실은 이거 미국하고 러시아하고 국제법에 제소를 해야 돼요. 얘네들을. 일본은 가해자였는데 식민지였던 우리를 분단시켰잖아요. 여기에서 법적인 부분들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라고 해야 했고, 잘못을 인정했을 적에 걔네들이 (남북)통일을 반대 못하는 게 되는데, 왜냐면 자기네가 잘못한 걸 인정했으면 여기에서 평화를 다시 메꿔 줘야 되거든. 이 부분에 대한 운동을 시작해야 될 거 같은데 그 얘기는 거의 안 나오더라구요. 역사를 좀 보면.

 

서 : 법적으로 이제 타당한지도 검토를 해야지.

 

 

“위안부 소녀상’ 아닌 ‘평화의 소녀상’으로 불러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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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 아까 소녀 어쩌구 순결 어쩌구하는 그런 말을 듣는 순간, 좀 후지다고 생각했는데. 원래 이게 ‘평화의 소녀상’이잖아요?

 

운 : 네.

 

헤 : 아 근데 명칭 자체가 ‘위안부 소녀상’으로 와서 그거에 대한 아쉬움은 좀 있어요. 네이밍에 좀 실패를 했다는. 왜냐하면 '위안부 할머님'들도 외국 위키피디아에서 sex slaves라고 표시가 되는데, 우리는 comfort women이라고 스스로 가해자들의 책임을 다운시키는 언어를 썼거든요.

 

서 : 할머님들이 위안부란 말이 익숙해지신 거예요. 그 부분은 너무 불편하신 거예요. 그래서 한동안 위안부라는 말을 쓰면서 따옴표를 썼어요. 지금은 바꿨어요. 올해부터는 ‘성노예’라는 부분으로 들어가기로 했어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적극적으로 쓰일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헤 : 왜냐면 가해자의 가해 행위에 대한 게 여기서 한껏 뒤로 물러났어요. 위장막 중 하나거든요.

 

서 : 일반 시민들도 많이 헷갈려 해요. 위안부 할머니라고 막 표현하고.

 

헤 : (일본군에 의한 피해 문제를)국제 사회에 여론을 조성하고 그 책임을 일본으로 가지고 가야 되는데, 외국에서 지칭되는 용어가 comfort women으로 가면 comfort 자체가 안락함 이런 뜻이니까.

 

서 : 우리는 전혀 위안부가 아닌데.

 

헤 : 그래서, 박유하도 자기 책에 제목을 ‘제국의 위안부’라고 갔잖아요.

 

서 : 박유하의 책은 대만에서도 번역이 되고 해서 문제가 좀 심각한 거 같아요.

 

운 : 독어, 영어, 일어 그리고 중국어. 이렇게 다 지금 번역해서 가요. 우리도 우리 책을 가지고 번역을 좀 하면서 얘기를 하는데 지금 외국 동포들은 그런 부분들이 불편한 거예요. 그거에 대한 활동을 해야 되는데 박유하 책이 먼저 이렇게 정리가 되다 보니까, 굉장히 불편해하고 있어요. 

 

헤 : 그래서 이 조각상도 명칭이 ‘위안부 소녀상’으로. 이제 거의 보통 명사, 대명사 비슷하게 되어 버렸는데 아쉬움 안 드세요? 원래 평화의 소녀상이라는 명칭에 대한?

 

운 : 우리가 위안부 소녀상으로 부른 적은 없고 계속 평화의 소녀상이라 얘길 했는데 여기서도 이야기가 나오는 게 있어요. 박유하식의 논리가 이 운동 단체에서도 살짝 들어온 게 있어요. 그래서 (이 평화의 소녀상 건립과 설치를 반대하는)거기서 왜 소녀상이라고 쓰냐는 부분들로 공격하고 있어요.

 

서 : 소녀만이 아니었는데 소녀상으로 해서, 그런 것들이 순결주의나 이런 것을 다치게 만들었다고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헤 : 어디서 그런 위악적이고 의도된 오염을 시켜서...

 

운 : 정대협하고 사이가 안 좋은 단체들이 있어가지고…

 

서 : 정대협 쪽에는 평화비를 세우려다가 이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기 때문에 평화비라고 얘기를 해요. 상임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부르려는 것은 할머님들이 염원했던 평화라는 글자와 소녀상을 같이 결합시켜서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소녀상이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논쟁을 해요. 말을 만들기도 하고. 박유하 같은 사람도 있고. 아까 평론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고 해서 소녀상 프레임에 계속 이걸 갇히게 만들려는 게 있어요.

 

근데 작가가 작품을 하는데 있어서 (작품에)정말로 모든 이야기가 담기면 좋겠지만, 그런 염원으로 만들긴 했지만, 정말로 그런 이야기들을 다 담으려면 이게 군상이 돼야 해요. 난징 대학살도 그래요. 난징 박물관에 있는 것처럼 그런 작업들이 되어야만 하는데 작품이… 이거는 작가가 상상력을 최대한 모아서 어떤 한 상징으로 만들었잖아요.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이 잘못됐다는 말을 하는 거는 아닌 거 같아요.

 

헤 : 작가가 본래 의도를 가지고 만든 작품이고 (그 의도를)밝혔으면 1차적으론 그 작가의 본래 의도에 맞게 봐줘야지.

 

서 : 네, 잣대를 자꾸 대니까, 작가로서는 참 불편한 부분도 있는 거 같아요.

 

헤 : 저부터, 지금부터라도 ‘평화의 소녀상’으로 조금씩 정정해서 불러주는 게…

 

서 : 예, 불러주세요.

 

운 : 또 하나는 왜 소녀를 가지고 (따지면서)성인 여성은 왜 안 하고, 왜 할머니는 안 하냐? 그래요. 그런데 우리가 할머니 한 거 맞거든요. 김학순, 길원옥, 김복동 할머님, 강서구에 황금자 할머님 이렇게 쭉 얘기했는데 그런 건 안 보고 소녀상이라는 이름만 보고 얘기를 하는 거지. 이 상의 그림자는 할머니잖아요?! 할머니가 소녀고, 소녀가 할머닌데 자꾸 둘을 떨어뜨려 보는 거야.

 

헤 : 네.

 

서 : 일단은 소녀만 봤지 이걸 전체적으로 보질 않고 얘기를 하는 거 같아요. (이와 관련한)박유하의 비판 자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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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 그들의 논리 자체가 상당히 좀 불순하네. 그리고 지금 미투(Me Too) 운동이 한창이잖아요? 제가 볼 때는 할머님들이 처음 90년대 초에 정신대 피해를 말씀하셨을 때가 미투 운동의 시초 같아요. 정말 이분들이야말로 자기를 드러내놓고 그렇게라도 말씀할 수밖에 없었는데, 요즘 조각가의 관점에서 미투를 보시면, 마침 딸도 키우시는 부모이고, 또 서경 작가님은 여성분이시니까 더 남다르실 거 같아요.

 

서 : 일단 요새 미투 운동을 보면서 할머님들이 더 존경스러워졌어요. 더 위대하게 느껴진 부분이 있고요. 그렇게 할머님들이 본인 이야기를 할 때 할머님들 자체가 어떤 힘을 갖고 하신 건 아니잖아요?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긴 했지만. ‘내가 시작을 해야 되겠다! 내가 이제 토해내야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그 자리에 계신 건데. 이 소녀상을 만들 때도 그 할머님이 남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으로 보이게끔 하려고 만든 거예요. 그래서 낮은 자리에 정말 이렇게 거리감이 없는 그 자리에 앉아서 누구나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그리고 누구나 함께 이 옆자리에 앉아서 이 소녀가 되어 보기도 하고요. 지금 있는 할머니가 되어 보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만들었는데…

 

미투 운동 자체도 그래야 될, 그렇게 시작을 해야 될 거 같아요. 그냥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고 남들 구경하듯이 하는 게 아니라 내 가족이 당할 수도 있고 어쩌면 주변에 있는 남자들이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가해자로 해서 벽을 만들고 이런 게 아니라 함께 이 부분들을 어떻게 극복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야 될 거 같아요. 우리나라는 솔직히 술 문화가 쫙 깔려 있잖아요? 잘못된 방식으로. 그리고 우리 문화 자체가 여성에 대한 비하와 편견이 좀 일반화되어 있는데. 여성은 본인이 자유롭게 옷을 입고 나가도 남성들한테는 이게 다르게 보일 수 있고, 그로 인해 폭력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바꾸기 위해서)함께 만들어나가야 될 거 같아요. 함께 보호해 주고. 저도 본의 아니게 엄마다 보니까 딸이 미니스커트 입으면 너 그럼 안 돼! 이렇게 되더라고요. 허허허.

 

헤 : 자유로운 영혼으로 미대를 나오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서 : 딸이 밤늦게 돌아다니면 그런 부분이 항상 걱정이 되는 거예요. 함께 지켜준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내가 나를 지켜야만 하고 우리 딸 자체가 스스로 지키기에는 너무 힘이 없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문화를 함께 만들지 않으면… 독일의 경우에는 성폭행 자체가 ‘나는 지금 하기 싫어.’라고 얘기하면 그다음에 강압적으로 뭔가를 하면 키스조차도 성추행, 성폭행이 된대요.

 

헤 : 우리 법도 그래요. 형법도. 노(NO!) 하는 그 순간부터.

 

서 : 그런데 술 때문에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다 무마가 되잖아요. 조두순 사건도. 저도 정말로 조두순이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 피해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헤 : 나오는 (징역 기간이 만료되는) 순간 방법이 있어요. 치료감호로. 재범의 위험성이 있고 하니 치료감호로 넣어버리는 거예요.

 

서 : 다시 넣을 수 있어요?

 

헤 : 치료감호. 치료감호는 징역이 아닌데 징역처럼 사는 거예요.

 

서 : 이 미투 운동 자체가 저희한테는 할머님들이 예전에 해 왔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볼 수 있게 된 기회인 거 같고요. 이렇게 피해자들이 나설 수 있는 건 촛불이 아니었으면 못했을 거 같아요. 주변에서 응원도 해 주잖아요. 옛날 같았으면 손가락질 받았을 거 같아요. 김학순 할머니 때도 그랬고. 일단 다 드러내놓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야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공론화 화면서 해결책도 마련하고 변화하는 계기도 되고. 지금 벌써 그렇게 가고 있잖아요?

 

퍼 : 그게 어떻게 보면 성공한, 성공했다는 증거죠. 인식이 바뀐 게…

 

헤 : 그렇죠. 곰팡이 쓰는 곳에 물먹는 하마 놓을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햇빛을 쬐어주면 되는 거죠.

 

서 : 그거 표현 좋다.

 

 

돈과 힘 앞에 세워지지 못한 수많은 소녀상들 제일 기억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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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 2011년도에 1000차 집회 이후, 일본 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세우시고 벌써 8년째잖아요? 그동안 많이 세워졌는데. 어디서 세워진 어떤 조각상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운 : 일본 대사관 앞. 하하하.

 

서 : 솔직히 2015년 12월 28일 이후에 더 많이 세우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이것도 그렇게 해서 시작을 한 거고. 그 이전에 학생들이 움직여서 세운 소녀상도 있고. 고등학생들이 온전히 본인들의 돈과 에너지로 장소도 마련하고. 본인들의 디자인으로 세운 게 고등학생과 함께 만든 소녀상이거든요. 그 소녀상이 많이 기억이 나요. 단계 단계마다 아이들과 같이 와서 정말 세세하게 ‘손은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극적으로 소통 하면서 풀어나간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 부분이 기억이 나고요.

 

지역은 지역마다 요구 사항들이 다른 곳들도 많았어요. 다른 요구 사항 때문에 세운 게 거제도에 최초로 서 있는 소녀상을 세우게 됐어요. 그때가 미국 글렌데일 시에 있는 소녀상을 철거해달라는 일본인들 서명운동이 있던 때였어요. 일본의 헌법구조를 없애려는 시도가 있었고. 우리 교학사 교과서에서 할머님들이 따라다녔다, 소녀들이 따라다녔다는 표현을 그때 쓰려고 했어요. 그래서 그런 것 때문에 안 되겠다! 좀 적극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평화를 수호하는 소녀가 되어야만 하겠다고 해서 일어나게 된 부분이 거제도에 있는 소녀상이에요.

 

그리고 2015년 이후에는 작년에 세웠는데 익산역에 세웠어요. 우리의

 요구와 그리고 한일 합의를 파기하는 모습의 그 소녀상이 익산역에 있어요. 사실은 그전 정권에서는 코레일 역은 절대 안 된다고 했었는데, 익산 시민분들이 싸우고 이겨내서 그 장소를 쟁취했어요. 거기에 한일 합의를 파기하는 모습의 소녀상이 서 있어요. 이런 부분이 특별히 기억이 나는 부분이죠.

 

운 : 나는 역으로 그런 게 생각나는데. 무산된 지역들.

 

헤 : 어디 어디 있어요?

 

운 : 지금은 미국의 글렌데일 시에 세워졌는데, 그것보다 먼저 연락이 온 게 디트로이트였어요. 거기서 먼저 열심히 시작했어요. 거기에 오클랜드 주립대학이 있어요. 그 주립대학에 세우기로 했었는데, 이 이야기가 일본 정부의 귀에 들어가고 일본 대사가 그 대학 총장 부부랑 저녁 만찬을 한 다음에 그게 무산돼 없어졌어요. 그다음에 중앙 도서관 앞에 굉장히 좋은 자리, 거기 세우려고 했는데 갑자기 도서관 시설이 좋아지고 앞에 공원이 좋아지고 뭐 이런 식으로 된 거죠. 이런 게 한두 개가 아닌 거예요. 작년에 여름에 갔다 온 데가 어느 학교지?

 

서 : 솔즈베리 대학!

 

운 : 솔즈베리 대학에 세우기로 했었는데 거기 일본인 학생 두 명이 다녀요. 지도교수가 이 학생들이 역차별을 받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해서, 다들 찬성하는데 이 두 사람 때문에 무산됐어요.

 

헤 : 미국 솔즈베리에서 역차별 얘기하고 그러면 안 되지. 월가에 두려움 없는 소녀상이 서 있는데…

 

운 : 그러니까.

 

헤 : 그거 보면서 충격받고 슬펐던 게 소녀가 굉장히 쪼그만데 군화 신고 당당하게 서 있잖아요. 우리는 지금 ‘평화의 소녀상’ 하나 세우는 거 갖고선 왜 이렇게 무슨 말들이 많아! 되게 슬프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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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 이렇게 무산된 데가 엄청 많아요. 독일 프라이부르크 시와 수원시가 자매 도신데, 프라이부르크 시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기로 서로 얘길 다 했는데, 이 독일 시장이 ‘나 이런 거 한다!’라고 기자회견을 한 거에요. 그렇게 발표를 해버리니까, 일본 정부에서는 그때부터 공격을 하기 시작했어요. 일본 정부가 직접은 안 하고 일본인들 통해서 하는데, 하루에 민원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프라이부르크 시장이)업무를 못 보는 거에요. 그렇게 되니까 시장이 2주 만에 손을 들더라고. 그러면서 자기가 ‘세상에서 그 2주 동안이 제일 힘들었다.’고…

 

헤 : 독일이 그러면 안 되지. 자기들이 2차 대전의 역사를 기억하자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랑 아예 관광코스로 만들었으면서, 그것도 하나 못 세워주면 안 되지. 약속까지 해놓고…

 

운 : 그런 것들에 대한 내용만 묶어가지고 사실은 얘기를 더 많이 해야 될 것 같아요.

 

서 : 여하튼 독일에 간신히 세웠어요. 그런 반대가 있어서 그 장소에는 못 세우고 독일 분들이 어떻게 장소를 마련했어요(편집자 주 : 비젠트 시에 세웠다). 히말라야 무슨 공원이에요. 개인 공원인데 거기에 소녀상이 갔어요. 작은 도시에요. 제막식 때 안점순 할머님이랑 같이 갔는데 비문 놓고 왔어요. 근데 그다음에 일본 영사가 몇 번 거기를 방문했대요. 그 일본 영사가 ‘이 비문을 없애면 안 되겠냐.’고 하면서 ‘비문을 붙이면 그냥 철거하라.’고 해서 논의 끝에 그냥 비문을 철거해서 거기 있는 소녀상은 비문이 없어요. 곳곳에 이런 부분들이 있는데, 이게 외국에서만 있는 게 아니에요. 아까 어디가 기억나냐고 하셨죠? 부산이요. 부산 영사관, 거기가 극명하게 지자체장이 (소녀상을)치우는 그런 황당한 사건이 있었죠. 그 모습을 우린 다 실시간으로 볼 수 밖에 없었잖아요. 그 모습을 보면서 할머님들이 예전에 끌려갔던 모습이 이렇게 막 보이는 듯한 느낌. 더 마음이 아팠던 느낌이 있어요.

 

헤 : 서병수 시장이 그랬나요?

 

서 : 동구청장!

 

헤 : 명시를 반드시 해야 될 것 같아요. 동구청. 이런 분들은 기록해야 돼요.

 

운 : 또 문제는 뭐냐면, 세워지기로 해 놓고 지금 창고에 들어가 있는 소녀상이 두 갠가 세 갠가 있어요.

 

헤 : 왜? 왜요?

 

운 : 그러니까 얼바인. 미국 얼바인인데…

 

헤 : 캘리포니아 얼바인.

 

운 : 거기 의회에서 다 통과되서 (설치하자고 했는데) 압력을 받고선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창고에 있어요. 그런 게 지금... 이런 부분들에 대해 얼바인은 지금 끝났기 때문에 얘기를 하는데, 다른 곳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 이야기를 못하는 거예요. 되길 바라니까. 얼바인 건은 이제 딴 곳으로 갈 건데…

 

서 : 솔즈베리도 그때 길원옥 할머님이 제막식 때 가셨어요. 그런데 정작 시멘트만 보고 온 거죠. 제막식을 못하고. 어디 창고에 가 있다고.

 

헤 : 이게 돈이 되는 사업도 아니고 예술가로서 역사적 의미 때문에 한 건데 이렇게 벽에 부딪히고 할 때마다... 저 같으면 엄청난 회의가 들 거 같아요.

 

서 : 아뇨! 더 힘을 받죠. 우리가 진짜 해야겠구나.

 

운 : 우리가 지치면 안 된다.

 

서 : 진짜 해야 되겠구나. 전투력이 생기죠. 평화비를 만드는데 일본 정부가 세우지 말라고 우리한테 계속 압력을 가한 거예요. '안 되겠다! 조형물을 만들어야겠다!' 라고 생각해서 소녀상까지 만들어지게 된 거거든요. 이걸 세우지 말라고 하고 철거를 하겠다니까 더 많이 생겨버리고. 정말 저희뿐만이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다 그런 생각으로 하신 거 같아요. 나중에 이렇게 탄생하고 세워진 소녀상을 모아서 UN에서 전시회 한번 하려고요.

 

헤 : 내년이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니까 내년에 했으면 좋겠네요.

 

서 : 그럼 지금부터 준비를 많이 해야 하는데. 큰일났네…

 

 

100억 상징, 화해치유재단 빨리 없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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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 이런 역사적 피해에 대해서도 그렇고 지금 미투 운동을 봐도 그렇고 우리 사회에서는 그동안 제대로 된 반성과 용서를 해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가해자가 제대로 된 용서를 구한 사람도 없었고. 일본도 너무 쉽게 우리가 스스로 저 사람들을 덮어줬으니까. 저는 사실 이걸 보면서 제대로 된 가해자들은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 되는지 새롭게 배우고, 거기서 피해자가 용서를 할지 말지를 맡기는,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요.

 

운 : 아까 두 가지 이야기를 안 했는데. 문재인 정권에서는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문 파기하는 것과 화해치유재단의 해체 부분이에요. 합의문 파기는 어쨌든 걸어놓고 있어도 돼요. 그런데 화해치유재단은 없애야 돼요.

 

서 : 빨리 없애야지.

 

운 : 100억 원 유치해 놓고, 이건 없애야 되는 거거든요. 그래야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우리 할머님들이 보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할머님들은 '돈 안 받겠다!'고 그랬는데 일부러 할머님들한테 돈을 주는 게 아니라 할머님을 보호하는 사람 통장에 꽂아놓은 거에요. 안 받겠다는데도 가족들을 회유하고. 과거 독재정권이 했던 것과 똑같이. 할머님들은 더 화가 나는 거지.

 

헤 : 생활이 어려운 일부 개개인들은 (화해치유재단에서 주는 돈을) 받는 분들이 계신데, 그런 사람들한테 돈 찔러주고 '돈 받지 않았냐!' 하는 건 일제 치하에서 주로 쓰던 방식이죠.

 

운 : 주로 할머님들 가족들이 다 가난해요. 지금 할머님들이 치료비 받고 생활 보조금 받는 부분들이 그래서 걱정이에요. 몸이 아프셔도 돈 걱정은 안 하시는데, 멀리 있었던 가족이 와 가지고 (화해치유재단 통해 받은 돈) 그걸로 먹고 사는 경우가 많은 거예요. 그래서 1억 원이 없어졌다 하는 거예요.

 

헤 : 야비한 방식이고, 굉장한 인권 침해에요. 피해자들을 더 심하게 모욕하는 거고.

 

운 : 어떤 목사는 할머님들 대신 1억 원 받아 챙겨서 자기가 쓰기도 했어요.

 

헤 : 헐, 대체 그 목사가 믿는 예수는 어떤 예수랍니까?

 

 

작은 평화의 소녀상, 세월호 노란리본처럼 아픔에 공감한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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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 책상 위에 놓을 수 있는 소녀상을 만드신 것도 어떻게 보면, 이게 우리가 일상에서 피해 할머니들을 기억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잘 됐으면 좋겠어요. 기부 사업이라서 이게 좀 불편하고, 말하면 오해 살까 봐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을 텐데. 기존에 다른 데서도 판매를 하셨지만, 기금 마련 그리고 공익 사업 측면에서 딴지마켓까지 오게 됐어요. 이거 자체가 미투에 동참하는 거라고 봐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미투가 힘을 받고 유의미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위드 유(With You)가 철저하게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서 : 작은 소녀상이 제작된 게 그거에요. 2015년 한일 합의 이후에 많은 분들이 분노 했고, 나도 또 '내 이웃들에게 이것을 선물해서 기억하게 하겠다!'라고 생각한 그게 시작이었던 거예요. 위드 유가 거기서 그냥 시작되고 있었던 거죠. 그분들의 정성으로 이 소녀상이 만들어졌고 지금 딴지마켓까지 오게 됐잖아요. 우리 최 선생님이 여기까지 다리를 놔주셔서 전혀 기대도 안 했는데, 제가 사실 딴지의 김어준...

 

운 : 빠지 빠! 하하하!

 

서 : 빠는 아니고. 하하하하. 정말 소녀상 제작하면서 그때 김어준 방송을 많이 들었어요. 사실은 그 방송을 많이 듣고!

 

운 : 지금은 안 듣나? 지금 맨날 듣는데.

 

서 : 지금도 여전히 듣고 있지. 남다른 통찰력에 항상 감탄을 하고 있지. 

 

헤 : (옆자리 퍼그맨을 가리키며) 직원들은 별로 안 좋아할 거 같아.

 

서 : 아, 그거랑 상관없어요.

 

퍼 : 좋은 사장은 아니라서! (단호히)

 

서 : 그건 잘 모르겠어요. 못 만나 봐서. 만나 보면 어떨까? 하하하. 여하튼 사람에 대해서 좀 다른 방식으로 이 판을 읽는 것들이 생기는 거 같아요. 영, 달라요. 김어준 방송을 많이 들어서, 딴지는 왠지 남 같지 않은... 그래서 딴지에서 가끔 마켓을 이용하기도 하고.

 

퍼 :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서 : 네. 우리 집에 가끔 그런 물건들이 하나씩 둘씩 와 있기도 해요. 여하튼 그래서 딴지에 들어간다니까 고맙기도 하고 색다르기도 하고 딴지의 어수선한 마켓에서 '얘는 어떤 식으로 들어앉을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과연 소녀상이 그곳에서 '젊은 친구들한테는 어떻게 다가갈까?'라는 게 좀 기대되기도 하고…

 

헤 : 이거 판매금액으로 한 십억 엔 만들 수 없을까? 한 십억 엔 팔렸음 좋겠다.

 

최휘선(갑툭튀) : 제가 이제 설명 좀 드리자면, 저는 두 분을 햇수로 한 삼 년 전에 우연히 알게 됐어요. 저는 온라인 편집몰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펀딩 사이트를 보다가 이 소녀상을 발견 한 거죠. 그래서 먼저 프러포즈를 보내서 판매 하다가, 지금은 그 편집몰을 그만두고 저 혼자 자체적으로 움직여 소녀상을 판매하고 있는데 사실 생각처럼 쉬운 건 아니에요. 왜냐면 이 제품을, 피규어를 취급하는 데가 많이 없어요. 받아주질 않아요.

 

특히 대기업 연관돼 있는 CJ, GS 이런 곳들의 쇼핑몰은 보지도 않고 그냥 다 퇴짜에요. 교보는 잘 돼서 핫트랙스 오프라인에서 판매도 하긴 했는데, 다른 데는 거절을 많이 당했어요. 입점을 해도 메인에서 계속 멀어지고, 띄워주질 않아요. 노출도 안 시켜주고요. 일단 메시지가 너무 세기 때문에. MD들은 좋아하는데, MD들이 컨펌을 올리면 다 묵살되는 거예요. 저도 더 이거를 부각시키고 일반인들 우리 국민들한테 좀 홍보를 하고 싶어도 사실 힘들어요.

 

서 : 교보에서도 (평화의 소녀상 진열이)치워진 경험이 있어요. 좀 좋은 자리에 있었다가 구석으로 몰리게 된…

 

헤 : 아이고. 그래도 딴지는 메인에 있어요. 마켓에!

 

서 : 고맙습니다. 딴지는 예, 믿음이 있어요. 하하하.

 

헤 : 제 욕심으로는 이게 국가적인, 우리 민족적으로 따지면 의도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다 책상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다른 욕심은 국가 공공기관 학교들은 다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동네 주민센터 이런 곳도 좀 들어가고 하면 얼마나 무섭겠어요. 일본의 입장이나 외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저 국민들의 근성은 촛불로다가 정권도 몰락시키더니, 얼마나 무섭겠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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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 진짜로 반갑고요. 정말로 딴지의 '쫄지마!' 이 얘기가, 김어준의 '쫄지마!' 이 얘기가 진짜 힘이 된 적이 있거든요. 정말 쫄지 않고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이 세상에 맞서, 우리의 할머님들 또한 그런 모습의 여성이시고요. 우리 하나하나가 그런 모습으로 서 있는 과정인 거 같아요. 여러분들이 딴지일보는 그냥 팽해도 되는데... 하하하 아니, 잘못했습니다. 딴지일보는 잘 지켜봐 주시고요. 정말 딴지일보가 하는 많은 그런 부분들에 응원을 해 주시고요. 소녀상을 만들면서 할머님들을 생각하면서 '미투 운동이 정말 이제는 좀 제대로 돼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나마 우리나라의 이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에 대한 운동 자체가 다른 나라에 모범이 되고 있거든요. 우리 국민들조차도 모범이 되고 있고요. 특히 촛불이 하나의 축이 될 정도로. 거기에 솔직히 딴지가 큰 역할을 했거든요. 딴지일보에 너무 과한 칭찬을 하면 좀 그럴 것 같아서 안 하려고 했는데 딴지일보가 촛불을 만드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퍼 : 아유~ 감사합니다.

 

서 : 국민 하나하나의 의지도 있었지만 주진우, 정봉주, 김어준, 김용민 이분들이 딴지 팟캐스트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이 스스로 찾아서 볼 수 있는 거리들을 제공해주고 그게 공감이 되면서 촛불이 하나둘씩 늘었던 거 같아요. 저는 응원하고요. 지지하고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맙게 생각합니다.

 

헤 : 여기 딴지 마켓 수익에서 십억 엔 벌어서 우리가 줬음 좋겠네요. 아! 내년 3.1 독립 운동,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데, 100주년 기념 이벤트 해봐요.

 

서 : 아! 의미 있겠네요.

 

운 : 난 그런 거 같아. 지금 세월호 리본을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다니잖아요. 그걸 보면서 '아! 같은 마음이구나'라는 동지적 의식이 생겨나는데, 마찬가지로 작은 평화의 소녀상도 가지고 있으면서 '아! 이 아픔을 같이 이해하고, 같이 문제 해결하는데 같은 마음을 갖고 있구나!’라고 하는 동지적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우리 딴지일보 독자 여러분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어요. 이걸 가지고 있으면서 이 문제에 대한 본질을 더 많이 잘 알게 돼요.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되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하나씩 선물을 주면서 계속 일깨워나가는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헤, 서, 운, 퍼 : 감사합니다.

 

 

 

헤르매스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