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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현실적인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드러나는 현실

 

“지난 4월 17일 서울 가든호텔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나두식 지회장과 삼성전자서비스 최우수 대표이사가 만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들의 직접 고용과 노조 활동 보장을 골자로 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놀랐다. 너무도 당연히, 그리해야 한다고, 미력이나마 그리 되는 데 내 힘을 보태겠다고 생각해 왔던 일이, 저 건조한 문장 속에서 현실이 되었노라고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며칠 뒤 있을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소식 못지않게 내겐 ‘비현실적인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드러나는 현실’이다. 말장난 같지만 딱 저렇게 느꼈다. 그리고 며칠 뒤 지상파 뉴스에서 들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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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에 출석한 염 지부장의 부친은 당시 삼성전자서비스의 집요한 회유와 금품 제공이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센터 사장의 요구로 노조장이던 장례를 가족장으로 바꾸는데 동의했고, 이후 삼성 측으로부터 6억 원의 돈을 건네받았다는 겁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리라 믿으면서도 막연했다. 저 추잡스런 삼성 재벌의 욕망에, 천륜을 저버린 아비의 욕망에, 재벌권력과 결탁한 경찰병력의 만행에 맞섰을 뿐이라 법정에서 외쳤으면서도, 공권력이 짓밟고 언론이 철저하게 외면하는 현실에 진실이 밝혀질 ‘그때’가 언제일지 막연하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나조차 몰랐던 ‘진실’들이 쏟아지고 있다. 비현실적인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드러나는 현실이다. 10년여 이명박근혜 정권하에서의 체험은 인식 체계를 어지간히 교란시켜 놓은 모양이다.

 

 

2.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의 조우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어도 나서길 꺼려하는 동료들과 폐쇄적인 조직문화에 가로막혀 시작조차 못 해본 채 좌절했던 기억이 있다. 혁명가를 자처하던 지인이 너 혼자라도 돈끼호테처럼 나서보라는 맘 편한 소릴 하기도 했지만, 노조를 혁명을 위한 조직화의 도구로 여기는 운동가와는 거리가 한참 멀기도 했거니와 에라 시발 그냥 될 대로 되라며 나설 만한 무모함도 없었다. 게다가 수구기생충들이 장악한 정권은 역사 서술마저 왜곡하도록 지시하여 내 업에 대한 자부심마저 앗아갔다. 어느 강연에서 노교수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일시적으로 역사가 퇴보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므로 좀 더 힘내보란 격려를 듣기는 했으나 마음은 이미 일터를 완전히 떠난 뒤였다.

 

현장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그렇게 들어간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당시에는 잘 몰랐으나, 시간이 좀 흐른 지금 되새겨 보면 암담한 시기, 가장 취약한 조건에 놓였던 비정규노동자들의 현장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던 최적의 단체였다. 인터넷 설치기사, 콜센터 직원, 사내하청 노동자, 청소 노동자, 학교 비정규직 등 다 망라하기도 힘든 간접고용 불법파견의 사례들을 접하며 21세기는 ‘신세기’가 아닌 새로운 ‘구시대’임을 절감했다. 그런 와중에도 ‘구시대’를 뚫고 나오는 ‘신세기’의 송곳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목격하며, 그 고단한 움직임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고 또한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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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이 갔다. ‘무노조 경영’이라는 반헌법적 가치를 금과옥조처럼 지니고 있는 재벌권력에 삼성전자 제품의 설치 및 AS를 담당하는 하청업체의 비정규노동자들이 맞선 구도. 도무지 승산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그 싸움을, 이들은 하고 있었다. 삼성에 정규직으로 들어가 고액 연봉을 받는 지인들에게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자존감이, 이들에게는 보였다.  

 

 

3. 4년 전, 그날

 

2014년 5월 18일 일요일이었다. 전날 술을 들이부어 숙취가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가운데 습관처럼 들여다 본 페이스북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 고 염호석 님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부고 소식에 올린 고인의 유서 내용도 보았다. 술기운 탓이었을까. 광주 시민들이 전두환 일당에 맞서 싸우다 산화해 간 5월 18일이라는 날짜와 지회의 투쟁이 승리하길 바라며 자신을 바친다는 유서 내용이 묘하게 화학 작용을 하더니만 나를 일으켜 세웠다. 평소 같았으면 숙취 때문에 드러누워 꼼짝을 안 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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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을 하며 고인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행여나 잊을까 저어하여 절을 하고 나서도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빈소의 분위기는 예상대로 상당히 무거웠다. 그런데 무겁게 깔린 슬픔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한 기운이 공존했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오가는 거 같았다.

 

조문을 마치니 다시 숙취가 온 몸을 덮쳤다. 그 와중에 또 버릇처럼 소주를 깠고, 조문을 온 지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기운이 숙취를 몰아내기 시작할 무렵 빈소를 놀이터 삼아 뛰어다니는 아이가 보였다. 일행에게 저 아이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별이’라고 했다. 염호석 님에 앞서 세상을 등진 고 최종범 님의 딸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당시 100일이 채 안 된 딸을 둔 나로서는 별이가 너무 가여웠다. 천진난만한 모습이 더 애잔하게 느껴졌다. 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를 남겨둔 채 항거의 수단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최종범 님의 고통은 또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슬픔이 서서히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다. ‘협력사’라는 허울 좋은 말로 착취의 구조를 은폐하는 삼성전자와 하청업체 사용주들. 또 그들을 비호하는 법과 권력.

 

소주를 두어 병 비우고 담배를 피우러 장례식장 1층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데 희한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모두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아버지!”를 외치며 오열하고 있었던 거다. 조합원들 앞에는 노인들 몇몇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혹시나 했다.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지회가 시신을 맡아달라는 고인의 유지를 생부(生父)가 거부하는 것일까. 앞선 정황을 모르니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하며 담배를 피우러 길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 사이 노인들과 조합원들은 어디론가 가고 없더라. 천천히 다시 발길을 돌려 장례식장으로 들어가려는데 이번엔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목도하였다. 장례식장에 경찰 병력이 쳐들어오고 이를 조합원들이 막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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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장례식장에 공권력 투입이라니. 그것도 21세기 백주대낮에 말이다. 대체 3개 중대나 되는 경찰 병력이 무슨 이유로 이런 상식 이하의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선으로 달려가 쳐들어오는 전경들을 몸으로 막으며 진압 목적을 밝히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하나, 둘, 셋, 밀어!”였다. 머리 위로는 채증을 위한 카메라들이 난무하고 아래로는 전경의 방패가 쉴 새 없이 밀고 들어오는 가운데 나는 경찰들이 연행을 위해 일부러 낸 틈에 빠져 별다른 저항도 못 해 보고 연행되었다. 20대에 집회 자리에 나가 전경들과 부대껴 본 적은 몇 번 있어도 연행된 것은 처음이었다.

 

 

4. 생애 첫 연행과 구속 위기

 

처음 연행되었고 경찰들을 쳐들어오지 못하게 밀기만 했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 일 없이 나올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1차 조사 후 나를 포함한 15명이 강남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되었고, 다음날 2차 조사가 끝난 후에는 15명 중 12명이 석방되었으나 나는 석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얼핏 듣기로는 원래 15명 모두 석방될 상황이었는데 검찰에서 늦은 시간에 강남경찰서로 연락을 해서 나를 포함한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니 더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라고 한 모양이었다. 이미 2차에 걸친 조사를 받았음에도 경찰들이 다시 물어왔다. 혹시 쌍용차 어디 지부장이신가요?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직원이셨지요? 조서를 보면 다 나와 있는 정보는 셀프 리셋하고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던지는 상황은 대체 뭘까. 어떻게든 삼성 재벌권력의 구미에 맞게 꿰어 넣으려는 공권력의 몸부림이었을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구속영장 내용을 보니 나는 졸지에 ‘전(前) 삼성전자서비스 직원이었던 자’가 되었으며, 노조원도 아닌 주제에 범행에 적극 가담하여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였고, 경찰관들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기 위해 경찰관을 막은 행위가 정당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며 조사태도 또한 극히 불량한 자’로서 ‘또 다른 집회현장에 참가하여 재범의 우려가 높은’ 베테랑 데모꾼이 돼 있었다. 급을 높게 쳐 준 거야 고맙기도 하지만, 인신을 구속하려는 공문에 사실관계조차 엉망으로 써 넣는 저 무능함은 어찌할까. 혹시나 의도적이었다면 뿌리 깊은 조작질의 역사가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탓일 거다.(당시 담당 검사는 서울지방검찰청 공안2부 서경원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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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나두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수석부지회장(현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 이정구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천분회장 두 형과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고, 인간적 유대감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유대감은 단지 두 형들과의 유대뿐만이 아닌, 인간임을 온몸으로 외치는 비정규노동자들과의 유대감이기도 했다. 그래서였나. 나란히 포승줄에 묶인 채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돌아온 유치장에서 석방 대상에 두식 형이 제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도감보다 미안함이 훨씬 더 컸고, 두식 형만 덩그라니 남겨두고 유치장을 나설 땐 형언할 수 없는 온갖 감정이 겹쳐 제대로 얼굴을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5. 합의는 이행되고 진실은 밝혀지고

 

2년간 검찰과 법정을 드나들었고 2심까지 간 재판에서 벌금 4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장례식 방해. 당시나 지금이나 난 저 판결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인의 생부가 삼성 측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아 챙겼다는 공공연한 사실이 낭설이길 바랐다. 삼성도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기를 바랐다. 공권력은 ‘기계적인 중립’이라도 지켜주었길 바랐다.

 

그러나 4년 전 그날 삼성은 일련의 노조 와해 공작에 따라 고인의 생부를 거액의 돈으로 회유하였고, 이에 따라 고인의 생부는 이미 노조와 합의한 사항이자 아들의 유지였던 투쟁 승리 후 노조장 진행 약속을 번복하였으며, 경찰은 가족장으로 마음을 바꾼 고인의 생부가 노조의 방해로 시신을 가져가지 못 하고 있다는 신고를 하면 신속하게 진압에 나설 수 있도록 3개 중대 병력을 장례식장 근처에 주둔시키고 있었단다(그러나 경찰 측은 최초 신고자의 신원을 외삼촌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법이, 판례가 그러해서 유족의 뜻이 고인의 뜻보다 우선하기에 당시 공권력의 시신 탈취 작전은 합법이 되고 조합원들과 조문객들의 시신 수호 작전은 불법을 넘어 장례식을 ‘방해’한 무도하기 짝이 없는 행위로 전락하는 모순. 죽음으로 항거하며 남긴 유지조차도 간단히 무시해 버리는 재벌권력과 공권력의 만행. 대체 고인은, 그리고 나는 어떤 시대를 살아왔던 것인지….

 

언젠가는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라 믿어왔지만 쉽사리 글로 남기기 쉽지 않았던, 쉽게 밝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사실이 공권력의 수사로 드러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며 4년 전 그때가 낯설고도 명징하게 다가온다. 어떻게든 노조 활동을 고사시키려던 무소불위의 재벌권력이 간접고용 비정규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고 노조활동을 보장하겠다는 합의서에 서명을 하는 이 상황은 여전히 낯설지만, 4년 전 내가 겪었던 그 사건과 그때를 전후로 지켜봐왔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의 끈질긴 투쟁은 보다 명징하게 되살아난다. 현 정세의 흐름이 변화에 일조했겠으나 그들의 투쟁이 없었으면 이 ‘비현실적인 현실’은 결코 실현될 수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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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조 활동을 인정받기 위해, 삼성전자서비스 원청의 불법파견에 맞서 진짜 사용자와 당당히 대화하기 위해 저임금 고노동에 시달리던 비정규노동자들은 싸워 왔고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소중한 생명이 스러지기도 했다. 4년 전 그때 조합원들이 고인의 생부 앞에 엎드려 굵은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아버지를 외쳤던 건 삼성의 회유가 있었다 해도 부디 아들의 유지를 지켜달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호소이자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 호소와 몸부림은 헛되지 않았다. 삼성은 노조 와해 공작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고, 고인의 생부는 검찰 조사에서 삼성 측으로부터 6억 원을 받았음을 털어놓았다. 당시 대규모 경찰 병력의 투입 역시 삼성과의 공모가 있었으리라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4년 전에도, 그 후로도 같은 소재로 글을 몇 번 썼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오늘이 가장 힘들다.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에게 워낙 오랜만에 원고 청탁을 받아서 그런가(물론 자주 받는 건 더욱 싫을 것이다). 쨌든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변함없이 지지하는 입장에서 합의 사항들이 반드시 이행되고 감추어졌던 진실은 더욱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기를 글로나마 기원한다.

 

 

 

 

쫄깃한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