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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1984, 드래곤 라자. 언뜻 연관 없어 보이는 이 세 소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작가가 창조한 인공어가 소설 내에서 쓰인다는 것입니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요정들의 언어인 '퀘냐'와 '신다린'이 유명하고, 1984에서는 주민들의 사상을 통제하기 위한 '신어(Newspeak)'가 등장합니다. 소설뿐 아니라 스타트렉이나 스타워즈 같은 SF 영화에서도 인공어는 외계인들이 소통하는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물론 그 언어들은 영화의 각본가에 의해 창조되었을 겁니다.

 

인공어가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유명한 에스페란토어는 국제적 의사소통을 보조하기 위해 등장한 인공어죠. 학자들의 학술적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인터링구아’라는 언어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세상에는 수많은 인공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체계를 가진 언어를 창안한다고 하면, 그것도 인공어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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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건 좀 곤란하겠습니다만..

(급 진지모드로 말씀드리자면, 이런 ‘한본어’ 류의 언어 사용 방식은 코드 교환이라고 불리는데, 후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해 인공어(Artificial language)라고 하면 프로그래밍 언어와 같은 기계 언어도 포함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언어학에서 다루는, 역사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자연어를 제외하고 의사소통 혹은 예술적·심미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어(constructed language)에 대해서 다뤄보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현대적 개념의 인공어 이전에도 인공어는 존재했습니다. 12세기에는 가톨릭의 성녀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 ‘링구아 이그노타’라고 하는 인공어를 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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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구아 이그노타 문자

 

이 언어는 라틴어를 기반으로 독일어와 섞은 형태의 언어였는데, 결국 그 모습은 라틴어 문법에 새롭고 비밀스러운 철자와 단어가 섞여 들어간 형태로 존재했습니다. 최근의 연구자들은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 신성한 영감을 위해 이 언어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초기 형태의 인공어긴 하지만, 언어 사용자 간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요.

 

그 외에도 발라이발란(Balaibalan), 보이니치 문서에 사용된 언어, 17~18세기의 철학용 인공어 등을 거치며 의사소통에 사용되기 위해 태어난 인공어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제일 유명한 예로는 다들 잘 아시는 에스페란토어가 있겠지요. 이런 목적을 위해 태어난 언어를 국제보조어(International auxiliary language)라고 부릅니다. 인공어 사회도 점차 발전하여 인공어 매거진이 발간되고, 인공어 포럼 등이 전 세계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술적 목적의 인공어 역시 계속 생겨났습니다. 서두에 언급한 <1984>의 ‘신어’나 톨킨이 창조한 여러 인공어처럼요.

 

이렇게 현대에 들어 인공어의 종류가 늘어나자, 체계적으로 분류하려는 노력 역시 생겨났습니다. 원래 존재하는 언어 기반의 인공어인지, 아예 새로운 범주의 언어인지에 따라 나눠볼 수 있습니다. 전자는 후험적인 언어(a posterioiri), 후자는 선험적 언어(a priori)로 분류됩니다. 위에서 말한 링구아 이그노타나 인도유럽어족의 언어에서 유래한 에스페란토어는 후험적 언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많은 SF나 판타지에 등장하는 인공어는 선험적 인공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성격에 따라 세 가지 분류로 나뉘게 됩니다. 공학 언어(Engineered languages)와 보조어(Auxiliary language), 그리고 예술어(Artistic language)가 그 분류입니다. 공학 언어는 언어의 작동에 대한 이론을 증명하거나 시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입니다. 모호하게 들릴 수 있는데, 쉽게 설명하자면 ‘언어’라는 물건이 어디까지 정교해질 수 있는지를 실험하듯 만들어진 언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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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로지반’이라는 유명한 인공어가 있습니다. 로지반은 그 탄생부터 굉장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 상대성 이론’을 실제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글란’이라는 언어를 더 논리적으로 다듬은 언어입니다. 즉, 이미 존재하던 인공어를 더 다듬고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얼마나 정교함을 추구할지 상상이 되는 대목입니다. 사실 로지반 같은 경우는 의사소통용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보조어의 성격도 같이 지니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예술어는 심미적 만족감을 위해 만들어지는 언어입니다. 공학 언어나 보조어와는 다르게 불규칙적인 문법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 세계보단 가상 세계에서 사용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지요. 일반인들이 예술적 만족을 위해 만드는 많은 인공어가 여기 포함될 수 있겠습니다. 대개 미학적 목적을 띄거나, 불규칙한 문법이나 언어 법칙을 추구하는 인공어 또한 여기 포함됩니다.

 

보조어는 앞 대목에서 나왔던 국제보조어와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영어나 프랑스어 같은 수많은 화자를 가진 강대국의 언어를 대체하기 위한 움직임에서 출발한 언어입니다. 역시 대표적으로 에스페란토어가 있습니다. 에스페란토어는 전 세계적으로 약 200만 명의 제2언어 화자들과 약 300여 명의 모어 화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런 보조어는 자연어에 비해 배우기가 쉽습니다. 또한 언어에서 비롯되는 유대감과 동질감을 형성하기 외국인들 간에도 형성하기 쉽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물론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단 것이겠지요. 아마 이것이 보조어가 보조어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로 생각됩니다.

 

인공어에 대한 이해를 좀 더 돕고, 국제보조어의 기본적 사상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에스페란토어의 탄생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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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

 

에스페란토는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라는 폴란드의 의사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루도비코는 ‘전쟁 없는 세계’라는 이상을 꿈꾸고 있었는데, 전 세계가 공유하는 단일한 국제보조어의 존재가 이를 도울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1887년 Doktoro Esperanto라는 필명으로 Unna Libro란 책을 통해 에스페란토를 세상에 알립니다. 첫 이름은 단순히 국제어(international language)였지만, 초기 에스페란토 화자들이 필명을 마음에 들어 했기에 에스페란토로 굳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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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토의 상징

 

20세기 초반의 에스페란토어는 커다란 수난을 겪습니다. 1908년에 국제 에스페란토 협회가 세워지고 세를 불려 나갔습니다만, 나치 독일의 커다란 박해가 있었던 것입니다. 히틀러는 대놓고 에스페란토를 사멸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으니까요. 루도비코 박사가 유태인이라는 점과 맞물려 에스페란토 박해는 전쟁 기간 내내 이어졌습니다.

 

다행히도 전쟁이 끝나자 에스페란토는 20세기 내내 세를 불려갑니다. 여러 작가들이 에스페란토어로 된 저작물을 출판하기도 합니다. 현대에 와서는 인터넷의 발달로 에스페란토를 접하기 쉬워졌기 때문에 에스페란토 화자는 약 200만 명 정도로 늘어난 것으로 추산되고, 에스페란토를 모어로 사용하는 화자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의 기반이 되는 정신에 공감하지 못했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공어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는 인공어라는 말조차 생소합니다. 에스페란토어를 제외하면, 다른 인공어는 아예 관심이 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전 세계적으로 봐도 마이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고, 그것이 세계 사회에 뿌리내리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겠지요. 그렇지만 인공어를 만들기 위한 노력, 그 노력에 담긴 철학 등에는 분명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어는 계속 발전될 것이고, 명맥은 계속 이어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