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As9lK3A_o.jpg

 

 

최근 세계 경제의 뜨거운 감자는 단연 이탈리아발 정치 / 경제 위기이다. 사태를 문답형식으로 정리해 봤다. 

 

 

1. 이탈리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3 4 총선 이후, 이탈리아에는 아직까지도 내각이 세워지지 않았다(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 기간 무내각 상태에 해당한다). 어떤 단일정당도 내각 구성에 필요한 의원수 40%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5 중순경 정당인 오성운동과, 2정당인 동맹당이 연정에 합의하기로 함에 따라, 사태는 해결될 듯이 보였으나이들이 정한 내각 후보자에 대해, 지난 주말 대통령 세르조 마타렐라가 거부권(Veto) 행사에 나섬으로써 이탈리아 정치는 혼돈의 카오스로 빠져들었다.

 

 

2. 오성운동이 뭐냐

 

코미디언 출신 그릴로가 2009년에 창당한 정당이다. 그릴로는 온라인에서 키보드 워리어로 이름이 높은 사람이었는데, 2008년에 나라가 망가지는 걸 보고(정치적으로는 이탈리아 막장 정치인의 표본 베를루스코니가 3선에 성공했고, 경제적으로는 이탈리아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해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유신 + IMF 한꺼번에 온 셈), 현실정치에 참여하여 만든 당이다.

 

탄생 자체가 기존 기득권과 정치세력에 대한 저항과 반대에서 비롯되었다 보니, 영미권에서는 반체제(anti-establishment) 정당으로 가장 많이 소개된다. 오성(五星)이라는 이름은, 정당이 추구하는 5가지 핵심적인 입장 : 1)공공수도 2)지속가능한 교통수단 3)지속가능한 성장 4)인터넷 접근권 ( 정당의 태생 자체가 온라인이란 점을 감안하자) 5)친환경주의을 나타낸다.

 

들으면 알겠지만, 오성은 이탈리아 대중들을 겨냥해 만든 공약에 가깝지, 어떤 포괄적인 가치나 일관된 정치적 이념을 포함하고 있진 않다좋게 말하면, 좌와 우를 초월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정당이고, 나쁘게 말하면 근본이 없는 애들이다.

 

금융위기와 탄생을 같이한 신생 정당은, 이탈리아 경제의 혼란 속에 급성장을 거듭한다.

 

B9715044900Z.1_20180313183846_000+GFUASMSUT.1-0.jpg

 

 

3. 이탈리아 경제가 어땠길래

 

현재 이탈리아의 GDP 대비 국가채무는 132%이다. 이는 유로존 내에서 그리스에 이은 2위에 해당한다. 빚을 갚기 위해선 경제가 성장해야 하는데, 경제성장률 또한 2009년 이후 줄곧 연간 1% 밑돌고 있다. (2009년대 1% 성장을 한 것도, 2008년도에 5%대의 마이너스 성장을 한 덕이 크다)

 

64543233.JPG

 

_100237563_7---debt-nc.png

 

불과 년 전까지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으로 대표되는 유로존 경제 개노답4형제) 묶여서 까이던 스페인의 국가채무가 98%이고, 유로존을 웃도는 경제성장률을 거두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탈리아의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드러난다.

 

이렇게 경제 상황이 나빠지자, 돈을 빌려준 중앙은행과 독일은 이탈리아에게 긴축재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리스 사태 때도 그랬지만, 경제가 안 좋은 나라에 긴축을 요구하면 국민들 고통을 받는다. 당장 빈곤률이 치솟고 있다. 민주당 집권 이후 2014 일자리창출법안 등으로 실업률이 다소 내려갔으나, 아직도 두 자릿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경제적으로 낙후된 남부지역의 경우 실업률이 최대 29% 달한다.

 

_100237567_6---poverty-nc.png

 

_100237566_unemployment-nc (1).png

 

_100237565_3---employmenttype-nc.png

 

문제는, 그렇게 생겨난 일자리의 대부분이 파트타임 비정규직이란 점이다. 통계에 따르면 60% 신규 일자리가 파트타임인 것으로 드러났다.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성향의 정당들이 번갈아 집권하는 가운데에도 국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자경제적으로 소외되었던 이탈리아 남부지역 국민들과 젊은 세대들의 불만이 쌓여가게 된다. 오성운동은 이러한 불만들을 대변했다. 국민들은 기존 정당 및 유럽연합에 대립각을 세우고, 생활 밀착형 공약을 내세운 오성운동에게 높은 지지를 보냈다.

 

 

4. 동맹당은 누구냐

 

160051.jpeg

 

원래 북부동맹이란 이름으로 활동해온 극우 정당이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지지율이 4%밖에 안 되는 지방정당이었는데, 마테오 살비니(대학교 중퇴 후 밀라노에서 피자 배달을 하다가, 당대표까지 올라간 입지적인 인물이다체제 하에서 환골탈태하여 이탈리아 2당으로 거듭났다. 특히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27.5% 지지율이 나오면서 오성운동을 위협하고 있다.

 

동맹당의 지지율 급등에는 이민 이슈 선점이 공헌을 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년간 시리아내전 등으로 인해 중동의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해진 데다가, 길목을 막고 있던 리비아에서 카다피 정권이 몰락해버리자, 수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향하고있다. 이중 가장 많이 이용하는 루트가 리비아 이탈리아(시칠리아) 가로지르는 지중해 루트인데, 지난 5년간 무려 7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이탈리아로 유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migrant-refugee-rescue-map.png

 

이렇게 난민의 숫자가 급증하자, 유럽 각국에서는 반 이민정책을 추구하는 이민정책 / EU 정당 표방한 극우정당이 난립하고 있다(반이민정책을 제대로 시행하려면 국경을 막아야 하는데그러기 위해서는 EU 탈퇴해야 하기 때문). 프랑스에서는 국민전선이, 헝가리에서는 시민동맹이 성장했다.

 

이런 트렌드를 이탈리아에서 가장 캐치한 게, 살비니가 이끄는 동맹당이다. 살비니는 미국 대선에 앞서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고, 자국선거에서는 이탈리아 퍼스트 내세워 유럽연합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5.  오성운동은 동맹당의 손을 잡았나

 

지난 총선의 결과로 오성운동은 다수당이 되었지만, 내각 구성의 필요한 40% 의석 확보에는 실패함으로써 단독으로는 내각을 꾸릴 수 없었다. 이미 2013년도 총선에서 20% 이상 득표해서 원내 진입에 성공했으나, 독자노선을 걸음으로써 정치적 영향력 행사에 실패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오성운동은 연정을 통한 집권에 목이 말라 있었다.

 

결국, 민주당이나 동맹당의 손을 잡아 연정을 구성해야 했는데, 구 체제에 대한 반발로 태어난 오성운동입장에서는 집권당인 민주당보다는, 문제의식(난민 유입 반대, 유럽연합과의 대립각) 같이하는 동맹당과 손을 잡는 쪽에 부담을 느낀 것 같다.

 

오성운동이 개혁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반해, 동맹당은 극우를 표방한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이는 연정이 형성되기까지 세 달이나 걸린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성운동이 지향하는 건 '국민을 위한 개혁'이지, 진보적 이념이 아니었다. 동맹당 또한, 이민 반대와 유럽연합에 대한 강경 발언으로 극우 정당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뿌리를 따지고 보면 남부 이탈리아의 균형발전을 반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익집단이지, 정치적 신념이 강한 정당은 아니다.

 

, 양당 모두가 확고한 이념에 기반해서 성장해 온 정책적으로 준비된 정당이라기보다는, 특정 이슈, 정국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반짝 성장해 온 정치집단인지라, 손을 맞잡는 게 가능했다. 양쪽 다 집권 경험이 없어 확고한 정치기반이 없었고, 백지에서 연정을 논의하기 수월한 면도 있었을 테고.

 

_101661836_italian-government-breakdown_640v2-nc.png

 

 

6. 대통령 마타렐라는 퇴짜를 놓았나

 

오성운동과 동맹당은 연정을 구성했고, 총리를 추천했다. 대통령 세르조 마타렐라(민주당 출신)는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는 줄곧 딱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내각 인사에 찬성했다고 한다. 그가 반대했던 딱 한 명은 재무장관 후보 파울로 사보나였다.

 

파울로 사보나는 25년 전 산업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로, "독일은 나치즘 이후 유럽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포기한 적이 없다", "(독일이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재확인하기 위해) 그리스 사태를 이용하려 한다"고 독일과 유럽연합을 비판한 바 있다. 특히 유럽연합이 이탈리아의 높은 채무를 이유로 경제개혁을 계속 요구하면 유로존 탈퇴를 플랜 B로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일부 한국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직접적으로 탈퇴를 해야 한다고 한 건 아니고, 탈퇴를 옵션으로 고려해야 된다 정도의 발언만 했다)

 

반 EU체제 인사가 내각에 포함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마타렐라 대통령은 결국 거부권을 행사한다.

 

이미 1, 2당이 연정을 구성한 상태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상황이었는데, 마타렐라라는 사람이 살아온 궤적을 보면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마타렐라는 정계 입문 전 저명한 헌법학자였던 만큼, 유럽연합 체제를 전복하려는 인사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또한,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시칠리아 주지사였던 친형이 마피아에게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사건의 최초 발견자 중의 한 명이었던 마타렐라는  사건에 영향을 받아 매우 유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한 번 싸우기로 정하면 물러서지 않는 모습도 보여왔다고 한다.

 

 

7.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마타렐라 대통령은, 중립적인 성향의 IMF 이사 출신 코타렐리를 총리 후보로 내세워 내각을 구성하려 한다. 조기 총선 또한 승부수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대통령에게 빅엿을 먹은 오성운동과 동맹당은 당연히 길길이 날뛰며 대통령 탄핵론까지 들고 나왔다.

 

문제는 둘 다 현실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마타렐라 대통령이 추천한 후보가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거의 없고, 탄핵 또한 국가 전복사태에 준할 경우에만 가능하므로 통과되긴 어려울 것 같다. 결국 당분간은 뚜렷한 결론 없이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 편집자 주: 오늘 아침 마타렐라 대통령이 거부권을 철회하고 내각명단에 서명했다. 이로써 이탈리아 연정 정부가 탄생했고, 씻퐈님은 펠레로 등극하게 되었다.

 

1523438966_000_VG998.jpg

 

 

8. 세계 경제엔 어떤 영향이 있나

 

지난번 그리스 사태보다 나은 점은, 최근 문제들이 오로지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당장 대량의 채권 만기가 도래하거나, 이탈리아 경제가 회복 불능에 빠진 상태는 아니다. 또한,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EU탈퇴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그리스와 달리 이탈리아가 국제경제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당장 이탈리아는 유럽연합 내에서 독일, 프랑스에 뒤이은 경제 규모를 갖고 있다. 세계로 범위를 넓혀봐도, GDP규모상으로 세계 8위에 해당하는 경제 대국이다.

 

6542333344.JPG

 

그런데 이렇게 나라가 유로존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혹은, 극우파와 포퓰리즘이 판을 쳐서 좀 더 막장으로 치닫을 수 있다? 둘 다 매우 끔찍한 가능성이다. 더욱 암울한 건, 최근 이탈리아에서 조사된 정당 지지도에서 오성운동이 1, 동맹당이 2위를 차지하고 있단 것이다. (두 정당의 지지율을 합치면 60%에 육박한다)  조기총선을 치르더라도 더욱 강경한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단 소리다(이건 에일리언 VS 프레데터가 아니라, 에일리언 & 프레데터인 상황이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이탈리아의 미래는 없다).

 

64544.JPG

 

이탈리아 국내정치 문제가 대두되자, 2년 만기 국채 금리가 미친 듯이 치솟았다. 전날 0.94% 금리에 거래되던 이탈리아 국채의 금리는, 29 무려 2.42%까지 치솟았다. 하룻밤 사이 두 배 이상 금리가 뛴 것이다. 금리가 올라갔단 소리는, 시장이 이탈리아 국채 위험도를 높게 평가했단 소리다.

 

같은 날 세계증시 또한 요동쳤다. 미국 다우증시는 400 가까이 빠졌다. 이는 하루 중, 최근 2년 중 가장 주가가 많이 빠진 것에 해당한다. 아시아 주요증시 역시 약세를 면하지 못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