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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세대 탐구생활

 

고등학교 다닐 적, 젊은 국어 선생님이 자신들의 세대를 일컬어 88만원 세대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과거 길을 걷다 이 모든 것이 386세대 때문이라며 소리를 높이는 대학생들의 집회를 본 적이 있다.

 

특정 시기의 20대, 엄밀히 따져서 사회 초년생들을 묶어 XX세대라고 흔히들 표현을 한다. 대개는 특정 숫자를 앞에 붙이는 것이 대부분인데, 196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 30대였던 이들을 우리는 386세대라 칭하며,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20대의 비중이 높았던 당시의 세대들을 우리는 88만원 세대라 칭한다고 하더라.

 

386세대는 방년 23세인 나에게 부모님들의 세대인 것이고, 88만원 세대는 학원 선생님들이나 젊은 학교선생님들의 세대이다. 선동열 학점(대학교 학점 평균 0점)을 받아도 대기업에 취업이 되었다는 386세대와, 뼈 빠지게 스펙 쌓고 공부해도 정규직은커녕 비정규직 자리도 유지하기 어려운 88만원 세대.

 

386세대 때의 이야기는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이야기 마냥 말도 안 되는 신화 같이 들리는 이야기인데 반해, 비교적 같은 공간에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가 많았던 88만원 세대들의 비극적인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들렸었다. 그럼 나중에 내 또래 세대들은 세상에 어떻게 기억이 될까? 의문을 갖던 중 최근 나는 나의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세상은 우리를 밀레니얼 세대, 혹은 1934세대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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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넨 누구니?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반 생들부터 2000년대 초반 생들을 지칭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1984년생부터 2000년생 까지를 밀레니얼 세대라고 칭하도록 하겠다. 이들이 현재 19살부터 34살에 해당하는 이들, 1934세대라고 일컬어지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96년생인 나는 초등학생 때, 애니콜과 싸이언 핸드폰을 사용했었다. 중학생까지 폴더 폰, 슬라이드 폰을 만지작거리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지금까지 스마트폰 없으면 생활이 안 될 정도로 모바일 통신의 발전과 같이 생활했던 것 같다. 어릴적 초등학교 컴퓨터 시간에 한컴 타자 창을 올려놓고 빠르게 버디 버디를 다운 받아 당장 옆에 있는 친구들과도 채팅을 주고받던 기억, 최근 버디 버디의 서비스 종료 소식을 듣고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더라.

 

그러다 버디 버디를 대체하는 싸이월드가 등장했다. 교회에서 달란트 모아 문화상품권 5천원으로 바꾸고 도토리를 충전하던 기억 다들 있지 않은가? 그렇게 충전한 도토리로 키네틱 플로우의 몽환의 숲이나 프리스타일의 Y를 사서 미니홈피에 따악 장착해 주면 그렇게 만족스러웠다. 중학교 수련회 때 부모님께 생일선물로 받은 닌텐도DS (당시 나 같은 경우에는 PSP를 받았던 걸로 기억난다)에 불법이지만 R4칩을 탑재하고 버스 안에서 친구들이랑 함께 마리오 카트를 했던 기억들. 이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스마트 폰이 등장하자 모두 카카오톡과 페이스 북을 통해 한참 멀리 전학 간 친구들과도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에 온 요즘 교수님들은 단체 카톡방에서 공지나 과제를 내주시며, 어느새 카톡 없이는 생활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갑자기 무슨 추억 팔이냐고 묻겠지만, 이것이 바로 1934 세대 그러니까 밀레니얼 세대들이 자라난 배경이다. 우리는 통신 기술의 발달의 흐름과 함께 성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급격한 통신 기술의 발달에 비해 원시적인 정부의 정책과 사고를 경험하며 10대를 보냈다. 그리고 20대가 된 지금 대한민국은 우리들의 세대를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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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치관의 변화

 

나 개인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 참 많은 압박을 받으며 살았던 학창생활이었던 것 같다. 대개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주었던 압박이었다. 좋은 학교, 좋은 성적, 좋은 직장에 대하여 분명 가족들이나 선생님들은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지만, 은연중에 퍼져있는 사회적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압도되어 스스로를 속이거나 채찍질 했던 기억이 있다.

 

대표적으로 학원이나 학교에 젊은 선생님들의 개인적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한민국 사회는 정말 정글 그 자체였다. 받아주는 회사 없어 자기소개 학원이나 공무원 시험 학원을 전전하며 아직도 직업을 구하지 못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여느 공포영화보다도 무서운 이야기로 다가왔었다. 88만원 세대의 실패와 386세대의 이에 대한 비난을 지켜보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도전하고 실패하면서 성장하는 거라는 386세대들의 말에 88만원 세대들은 반격하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반격할 힘과 그럴 여유가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위 두 세대가 겪었던 경험들을 돌이켜 보자. 386세대가 20대인 시절, 그들은 6월 민주화항쟁을 통해 전두환을 몰아내고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변화를 만들었지만, 이들은 무언가 아쉬운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이 세대들은 대한민국의 정치를 주도하게 되었고, 이 시기에 성인이 된 세대가 바로 88만원 세대다. 외환위기가 이미 한번 대한민국을 휩쓸었고, 수많은 실직자와 함께 대한민국은 취업하기 힘든 국가가 되었다. 확실히 데모도 하고 취업도 하고 연애도 할 수 있던 386세대와는 다른 그림이었다. 게다가 나라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그렇게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등장하게 되었고, 시간은 흘렀다.

 

내가 22살이 되던 해, 대한민국에서는 촛불집회가 있었다. 몇몇 친구들은 의경으로 복무중이라 당시 집회에 출동했었다고 한다. 몇몇은 보신각 근처에서 알바를 하는 도중 우연히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몇몇은 근처 거리를 지나다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에서는 촛불집회 뉴스, 기사와 관련하여 교수님들은 그 내용을 수업시간에 다뤘고 우리는 이를 통해 각자의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가졌었다. 이렇듯 대개의 20대들은 직간접적으로 촛불집회를 경험하였고, 그 결과 대통령의 탄핵과 새로운 정권의 등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분명한 건 촛불집회와 같은 이벤트가 우리들에게 참여를 통해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이었고, 이는 어느 세대의 20대도 배우지 못한 값진 교육이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중요한 무언가를 배우게 되었다.

 

최근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에서는 전국 900명의 1934 세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공개된 적이 있었다.

 

해당 설문조사는 “소신 표현 경험 여부”에 관한 설문조사로, 최근 6개월 이내에 소신 표현의 경험에 대하여 물었다. 이에 “소신 표현 경험이 있다”라고 답한 비율이 92.3%로 대부분의 20대들이 자신의 소신을 표현한 경험이 있다고 답하였다. 이와 더불어 어떠한 경로로 이들이 소신 표현을 하였는가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먼저 ‘청와대 청원 또는 서명운동 참여’를 통해서가 46.1%로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으로 ‘SNS 해시태그 운동에 공감표시’가 42.5%로 두 번째로 높았다. 이 뒤로 ‘SNS 익명 고발에 공감 표시’가 30.8%, ‘공감 가는 단체에 직접 후원’이 20.5%에 달했으며, 마지막으로 ‘공감 가는 단체의 굿즈 구매’가 16.4%라는 응답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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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및 사회인식에 대한 1934세대의 가치관 (원본 링크)

 

소셜 네트워크의 발전과 함께 성장한 경험과 정치 참여가 변화를 가져온 경험이 전체적 소신 표현 경험의 여부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각종 청와대 청원과 서명운동 참여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데에는, 변화의 결과인 현 청와대에 대한 신뢰에 기인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소신 표현이 스마트 폰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20대 중 다수가 소신 표현을 할 수 있는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말할 수 있는 창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소신 표현이 증가한 것을 설명하는 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설문조사 결과 역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불편한 것에 대해서는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긍정응답 65.6%

“나의 관심과 참여로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긍정응답 60.4%

 

(19세부터 34세 인구 900명 대상, 자료 출처: 대학내일 20대 연구소)

 

불편한 걸 불편하다 표현하는 것은 기존 대한민국사회에서 금기시 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개인보다 집단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있었던 과거, 개인은 ‘참아야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미투운동을 통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성폭행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를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 내가 표현해야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피해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현재 우리는 배우고 있다.

 

싫어하는 것을 존중하는 문화. 억지 인간관계 혹은 과도한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 솔직히 이것은 특정 세대, 특정 계층에만 해당하는 것들이 아니다. 혼밥과 혼술 등과 같은 싱글 컨텐츠의 등장은 이러한 시대 흐름을 시장이 인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 모두 전보다 성숙해진 것이다.

 

 

 

3. 세대 갈등

 

예전 자기계발서에 대한 논쟁이 붉어졌을 2010년대 초반, 유병재 씨의 어록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야 개새끼야”

 

한때, 20대 개새끼론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

 

“어째서 20대의 정치 참여율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느냐, 너희들 때문에 이명박이 정권을 잡은 거다, 취업을 하려면 더욱 노력해라, 결국은 너희가 그것 밖에 안 해서 그런 거다.”..... 결국 대한민국이 지금 이 모양 이 꼬라지인 이유는 20대 때문이라는 논지다.

 

홍세화 씨의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이란 칼럼에서는 당시 20대를 이렇게 비난했다.

 

1. 니들은 주입식 교육 밖에 받지 않았고 그마저 사교육비로 부모님의 등골을 뽑아먹었으면서, 고전은 읽어본 적은 있니?

2. 니들은 대학에 놀러 갔잖아.

3. 대학에 등급을 왜 따지냐, 니들 적성에 맞게 가라.

4. 왜 현대사를 공부하지 않느냐.

5. 능력주의와 자본주의가 최고가 아니다. 철학이 중요하다.

 

이를 읽은 당시 20대들, 그러니까 88만원 세대의 입장에서는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정작 학벌주의의 사회 풍토를 조성한 세대가 이런 말을 하다니 말이다. 시대는 80년대와 많이 달랐다. 취업과 학업에 지친 20대에게 기성세대는 힐링이랍시고 우후죽순마냥 자기계발서를 팔아먹었다. 세대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 되었고 이는 감정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무능하고 버릇없는 것들 vs 꼰대’의 그림은 각종 선거철 20대 투표 참여율에 관한 이야기, 청년 정책에 관한 이야기에 어김없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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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밀레니얼 세대는 88만원 세대의 연장선 상에 있다. 386세대와 88만원 세대는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연결선이 끊어져 있는 반면에 말이다. 서로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에 갈등은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누구의 잘못은 없다. 물론 20대 입장에서는 불안한 직장생활과 불확실한 삶의 원흉으로 기성세대의 정치를 탓할 수 있다. 하지만 뭐 그들이 이렇게 될 줄 알았겠나? 결국에는 서로 이해하는 것 밖에 답은 없다.

 

88만원의 고통을 목도한 그 이후 세대는 그 안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가진 건 없지만 즐기며 살 수 있다. 솔직히 내가 취업을 준비하게 될 나이가 되었을 때의 상황이 88만원 세대가 겪었던 상황보다 좋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나’를 포기하기는 싫다. 그래서 싫은 것을 싫다 말하고, 나를 대변해 줄 누군가를 위해 투표할 것이다. 세상은 특정한 세대의 노력만으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나 혹은 내 조카, 혹은 내 자식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에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대 간의 갈등을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아마 그 시작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는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세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에 쫒기는 삶이 아닌 여가를 통해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는 삶이다.”

 

그리고 20대들이 특정 당에 우호적일 거라는 생각은 안 해줬으면 좋겠다. 내 주변만 보더라도 다들 저마다의 니즈가 달라, 각자의 필요에 맞게 투표하더라. 억울하면 이들의 니즈에 맞게 정치를 하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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