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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를 수도로 둔 칠레. 동서의 길이는 서울에서 대전까지보다 조금 더 긴 175km인데, 남북의 길이는 동서 길이의 무려 25배가 되는 몹시 길쭉하게 생긴 나라야. 악명 높은 지진 다발 국가이며, 전 세계 구리 매장량의 25%를 보유하고 있어. 이 풍부한 천연자원은 결국 독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야.

 

자! 한때 우리나라보다 나은 경제력을 가지고 있던 미지의 나라 칠레의 1970년 9월 4일 뉴스를 잠시 들어보자고.

 

“국민 여러분!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현재 6개당 통합 후보로 나선 살바도르 아옌데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만약 이대로 선두 자리를 지킨다면 최초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사회주의 정부가 탄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포퓰리즘이라는 기득권층의 집중적인 공세를 받으며, 3차례나 대통령 선거에 낙방했던 살바도르 아옌데 후보가 과연 칠레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탄생할 수 있을까요? 지금 막 개표 최종 결과가 제 두 손에 전달됐습니다. 60초 후에 결과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결과는 36.2% VS 34.9%.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민주적인 사회주의 정부가 탄생하는 순간이야. 민주적이라는 단어와 사회주의라는 단어의 융합에 괴리감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겠지. 사회주의하면 북한을 떠올릴 수 있는데, 북한은 사회주의가 아니고 졸라 큰 조폭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1970년에 들어선 칠레의 사회주의 정부를 그 깡패 집단과는 비교하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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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정부의 행정수반인 살바도르 아옌데에 대한 인물 브리핑부터 시작할게!

 

출생 : 1908년 7월 26일. 60대 초반에 대통령이 되었군.

 

학생 기록부 : 칠레 제2의 도시 발라파라이소에서 태어나. 의대 시절 사회주의에 심취. 아버지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빨갱이가 됐다고 펄쩍 뛰었다가 대통령이 되니 좋아하셨겠지?

 

정치 경력: 30세에 하원의원을 시작으로 보건사회부 장관을 거쳐 45살부터 무식하게(?) 대통령에 도전하여 3수 끝에 합격!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기 전 5,60년대 칠레의 정치 경제 상황을 잠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칠레인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밟고 서 있는 땅에 전 세계 구리의 25%가 매장되어 있었어. 5,60년대 보수 정권들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자며 외국 자본에게 문을 활짝 열어줬어. 이 결과 아옌데 정권이 들어설 즈음엔 칠레 기업의 절반 이상이 외국 자본에 이르는 지경이었어. 이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지.

 

이게 무슨 문제냐고?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 후진 나라가 금방 멋진 선진국으로 탈바꿈하는 마법이 일어나지 않냐고? 어떤 마법이 일어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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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출신 운동권 대통령 아옌데는 정권을 잡자마자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에게 많은 양은 아니지만 무상 분유 제공을 약속했어. 칠레의 유아 사망률은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정책이야. 하지만, 기득권층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반대를 쏟아 내지. 그들의 충실한 견(?)인 언론들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이 정책을 비방했어.

 

"포퓰리즘의 전형"

 

“아이들 살리려다 청장년층 다 죽이겠다.”

 

“노인을 위한 정책은 없다.”

 

아옌데는 기득권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공약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며 밀어붙였어. 심지어 측근들의 반대도 있었다고 해.

 

“이 정책이 어떻게 포퓰리즘입니까? 아이들이 없는 칠레에 미래가 있다고 보십니까? 내가 모든 비난을 맞겠습니다. 네슬레 본사 회장과 미팅을 당장 주선하세요.”

 

“저기… 그게… 이유는 밝힐 수 없지만, 칠레 민주정부의 어떠한 정책에도 협조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네슬레 본사의 입장이라고 합니다.”

 

“흠… 결국 뒤에 미국이 있는 겁니까?”

 

분유를 무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칠레의 축산농장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네슬레의 협조가 절대적이었어. 네슬레에게 분유를 강제로 내놓으라고 한 것도 아니고, 아옌데 정부가 돈을 주고 산 분유를 무상공급하겠다는데 이를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뒤에 미국이 있다는 아옌데의 말은 무슨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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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옌데가 취임하고 2달이 지난 11월 6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에서 칠레를 겨냥해 아래와 같이 말했어.

 

“우리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그 길을 갈 수 있다고 믿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이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보호세를 걷는 시장 깡패도 아니고 라틴아메리카가 자기들한테 무슨 대가를 왜 내라는지.

 

이런 발언의 배경에는 분유 무상공급 정책과 함께 아옌데가 미국으로 대변되는 외국 자본이 칠레의 등에 꽂은 빨대를 제거하기 위해 실시한 구리광산 국유화 정책 때문이야. 미국은 예전부터 이런 식이었어. 석유를 강탈하기 위해 없는 화학무기도 있다고 바득바득 우기며 폭탄을 퍼부어 멀쩡한 민간인들까지 죽이는 나라잖아. 아옌데는 이런 미국으로부터 자신들의 자산인 구리를 지키기 위해 국유화를 한 거야. 그러니 덩치만큼이나 큰 욕심만 가진 역사 열등국 미국이 단단히 화가 난 거지. 미국은 애초에 자기들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 뻔한 사회주의 정부의 탄생 자체를 원하지 않았어. 제2의 쿠바는 상상도 하기 싫었던 거지.

 

(가면 뒤에 숨겨진 미국의 진짜 모습이 궁금한 분들에게 세계적인 석학 노암 촘스키의 글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미국의 이런 의도와 이후 벌어진 각종 아옌데 정부 무너뜨리기 시책은 비밀문서 해지에 따라 사실로 밝혀진 점을 알려 드립니다.)

 

아옌데는 미국과 외국 자본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독자적인 칠레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실패와 난관을 뚫고 앞으로 전진해 나갔어. 하지만 적은 외부에만 있는 게 아니었어. 칠레의 기득권층은 그를 아예 대통령 취급하지도 않았어.

 

“빨갱이 새끼가 하는 짓이 다 그렇지. 애들은 강하게 키워야지. 배고프고 굶어 죽는 나약한 것들은 애초에 태어나지도 말았어야지. 분유가 없으면 빵을 처먹으면 되지. 개돼지들의 자식새끼 먹이자고 나라의 세금을 함부로 써? 안되지 암. 안되고 말고.”

 

“아옌데 그 양반. 세계적인 트렌드를 몰라. 민영화가 요즘 경제 트렌드인데 거꾸로 구리 광산을 국영화 시키다니. 딱한 양반 같으니라고. 이래서 우리 같은 유학파들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니까.”

 

여기에다 정부가 내놓는 안건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야당까지. 아옌데는 그야말로 손발이 묶인 채로 힘겨운 싸움을 이겨 나가고 있었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의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어. 칠레에 대한 모든 경제 원조를 끓고, 외국 기업을 움직여 산업 전반에 걸쳐 태업과 파업을 조장했어. 결정적으로 미국은 전 세계 구리 시장에 자신들이 보유 중이던 구리 재고를 풀어 버려서, 칠레의 주요 수출품인 구리의 가격을 대폭 떨어뜨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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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행정부는 일단 내부의 힘이라도 결속 시키기 위해 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어.

 

“흠... 야당에서 대연정을 끝내 거부했습니다. 제가 조언해 드린 데로 저들은 애초에 국민과 칠레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할 뿐...”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소. 마지막 승부수를 던집시다.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합시다. 재신임을 받게 되면 야당도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협조를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국민 투표 날짜는 9월 14일로 정하고 군부에도 통보를 해 놓으세요.”

 

“초강수이긴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저희는 선택할 다른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CIA는 국민투표 재신임 시뮬레이션을 졸라게 돌려 보았어.

 

“국장님! 위험합니다. 아옌데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아직도 높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산티에고에 비가 내립니다를 실행하세요.”

 

국장의 작전 승인 명령이 떨어지자 CIA의 공작금 천만 달러는 칠레의 탐욕스러운 군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게 전달이 되었어. 군인이 정치에 야욕을 드러내는 순간 그 나라의 운명은 어떤지 우리는 몸소 체득하여 잘 알고 있지.

 

최초의 민주적인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지 만 3년도 안된 1973년 9월 11일. 국민투표 실시 3일 전. 칠레의 911이 터졌어. 오전 8시 30분 갑자기 공영 라디오에서 이상한 멘트가 반복되기 시작했어.

 

“산티아고에 비가 내립니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립니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립니다”

 

이어서 칠레 군부에 의해 장악된 다른 방송들은 칠레 국가를 틀어대기 시작했어. 곧이어 쿠데타 세력은 성명서를 발표하는데, 사회주의에 물들어 위기에 빠진 칠레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며, 아옌데 대통령은 24시간 내에 대통령직을 내놓고, 외국으로 망명할 시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경고를 했어. 같은 시각 자국의 폭격기가 대통령이 있는 모네다 궁을 선회하는 기가 막힌 장면이 펼쳐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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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옌데는 여기서 대국민 연설을 한 후 곧 나갈 거라고 하고 가족과 측근들을 대피시켰어. 마지막까지 국민들을 향한 애정이 담긴 연설을 마친 아옌데는 똥고집을 부리며 그의 곁을 지키는 최측근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어.

 

“끝까지 나와 함께 하겠다는 거요? 미련한 사람들. 카스트로가 준 소총을 가져오세요. 마지막까지 함께해 줘서 진심으로 고맙소. 다음 생애가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들을 위한 삶을 반드시 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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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살을 했다는 설도 있고, 끝까지 저항하다 사살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지금 와서 뭐가 중요하겠어. 다음 날 미국은 도둑이 제 발이 저린 것 마냥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어.

 

“누가 묻지도 않았지만 이런 발표를 하는… 아니 마이크가 켜졌었잖아? 아아. 아무튼 이번 칠레 쿠데타에 우리 미국 정부와 산하 어떤 기관도 관계가 없습니다.”

 

훗날 비밀 해제된 기밀문서는 이 발표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명해줬어.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 키신저가 CIA 칠레 지부에 쿠데타를 지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48시간 내에 아옌데 정부를 끝내 버릴 수 있는 치밀한 쿠데타 계획을 보고하라.’

 

‘칠레 국내 경제 파탄을 위해 자금은 얼마든지 지원하겠다. 아옌데의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것에 최선을 다해라.’

 

미국은 칠레를 통해서 라틴 아메리카 다른 정부에 경고를 했던 거야. 우리 말 안 듣고 보호세도 안내면 대통령 놀이 못하게 할 거야!라고 말이야.

 

미국을 등에 업고 들어온 군사정부는 미국의 충실한 개가 되는 대신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어. 나라 전체를 외국 자본에 넘기기 시작했고, 군사독재에 반발하는 국민들에게는 총칼로 대답을 대신했어. 이거 왠지 익숙한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나라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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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