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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니 총선

 

북미 정상회담-지방선거-월드컵 쓰리쿠션에 다소 묻히긴 했지만, 지방선거 중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번 재보선에 걸린 의석은 총 12석. 역대 3번째 규모로 큰 ‘미니 총선’이었다.

 

민주당의 공천 전략은 크게 두 가지였다. 문재인 정부와 함께 일할 사람. 험지에서 오랫동안 고생해 온 사람.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대표에게 전권을 주었고, 그는 자신의 권력을 맘껏 활용하여 전략공천을 내리꽂았다. 홍 대표에게 어떤 전략이 있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튼 공천을 했고, 우리는 투표를 했다. 표도 깠다.

 

표 깐 김에, 결과를 지역구별로 디비봤다.

 

 

2. 더불어민주당 11 : 자유한국당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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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산 해운대구을 / 경남 김해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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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그토록 바라왔던 영남권 벨트에서 얻은 압도적인 승리다. [김해시 을]은 정당과 후보 차이에서 압도적인 강세가 예상됐지만, [해운대 을]은 결과를 낙관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보수표가 분열되며 민주당 윤준호 후보가 과반 득표에 성공했다.

 

[해운대구 을]은 선거구 변경으로 보수 강세 지역이었으나 자유한국당 배광덕 의원이 엘시티 비리에 연루돼 자진 사퇴했고, 그에게 아깝게 졌던 민주당 윤준호 후보가 기회를 잡게 되었다. 윤준호는 지역의 콩라인으로 세 번 낙선했으나 드디어 승리라는 것을 해보게 되었다. 한국당은 김대식 전 여의도연구원장을 야심차게 전략공천으로 내려보냈다. 하지만 한국당이 자랑하는 여의도연구원의 수장도 보수표의 분열과 엘시티 여풍을 이겨낼 순 없었다. 

 

[김해시 을]은 지방의 다른 선거구와는 달리, 한국 정치의 큰 맥락을 짚는 묘한 선거구다. ‘친노의 성지’라는 표현이 자주 붙지만, 경남지사 리매치를 벌인 김경수 의원의 지역구면서, 이전엔 그 친노를 이기며 올라온 김태호 후보의 지역구였다. 양 측의 주자는 노무현의 시작과 서거 이후까지도 함께한 김정호, 그리고 김태호의 후원금 모집 대장인 도의원 서종길이었다. 따라서 이 지역은 2012년 김경수vs김태호의 리매치면서 2018년 경남지사 선거의 대리전이라 할 수 있었다. 결과는 양쪽 모두 여당의 완승.

 

 

 (2) 울산 북구 / 인천 남동구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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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지역은 ‘노동자의 도시’로 불리는 지역이며, 한나라당과 민주당, 여기에 진보 정당까지 엎치락뒤치락하던 지역이다. 이전 같았으면 단일화의 요구가 강력히 빗발쳤겠지만, 그런 거 없이 민주당이 여유 있게 승리했다.

 

[울산 북구]의 경우, 민중당 계열 무소속 의원이었던 윤종오 전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짤리면서 재보궐이 치러졌다. 민주당은 2000년 이후 오랫동안 민주당의 울산 지역위를 책임져오고, 때론 진보정당과의 단일화에도 응해왔던 이상헌 후보가 등판했다. 한국당에선 비서관에게 1,500만 원을 삥 뜯어 유명해진 박대동을, 민중당에선 민주노총 울산지부장인 권오길을 공천했다. 즉, 진보표가 나눠졌으나 민주노총과 민주당의 대립 양상을 드러내듯 둘의 단일화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표가 꽤 갈렸음에도 이상헌 후보는 과반에 약간 못 미치는 득표로 승리했고, 30여 년간 지속된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역시 보수 강세 지역이었으나 도지사로 나선 박남춘 의원이 두 번의 승리를 가져온 [남동구 갑]에 민주당은 국토부의 에이스 공무원, 맹성규를 전략 공천했다. 가뜩이나 열세인데 ‘이부망천’ 드립까지 더해지며 6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했다. 한국당의 윤형모 후보는 ‘이부망천’을 덮기 위해 한국당을 열심히 비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인천연합이라는 기반을 갖춘 정의당은 바른미래당과 도토리 키재기로 3위를 차지했다. 정의당 입장에선 신경 쓰일 만한 결과라 할 수 있다.

 

 

 (3) 천안시 갑 / 천안시 병 / 충북 제천시단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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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도지사의 나가리로 다소 혼란해 보였던 충남지역은, 민주당계에서 최초로 충남지역 내리 4선에 성공한 양승조의 등판으로 한 큐에 정리됐다. 천안의 두 지역구 모두 양승조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며, 본선은커녕 경선에서도 계속 져 온 이규희 후보와, 문재인 대통령의 자문의 윤일규 후보가 양승조의 추천을 받아 공천됐다. 이에 맞서는 한국당은, 세월호 보도개입으로 유명한 길환영 전 KBS 사장과, 추억의 이름인 심대평의 후계자 이창수 후보를 공천했다.

 

특히 [천안시 갑]은 전임 새누리당 박찬우 의원이 당선됐던 곳이어서 한국당의 은근한 기대를 모은 곳이었고, 길환영이 전략 공천됐다. 그.러.나. 한국당이 캐스팅보트라 주장하던 지역 두 곳 모두 60%가 넘는 득표율로 민주당이 승리했다. 지사 후보로 피닉제를 내보낸 것처럼, 길환영이나 심대평의 후계자 같은 인물로 상대했다는 것은 사실상 백기 투항에 가까운 행위였다.

 

[충북 제천시단양군]은 선거법 위반으로 짤린 한국당 권석창 의원의 지역구다. 총선에서 18대 이후로 늘 보수의 텃밭이었으나, 이번에 간신히 이겼다. 제천 화재 참사에서 권석창 의원이 여러 병크를 저질렀기에 단단했던 보수 지지층이 흔들렸다. 물론 미래당과 한국당이 받은 표를 합치면 민주당 이후삼 후보가 받은 표보다 많지만, 어쨌든 이긴 건 이긴 거다. 늘 꽁짜로 한 석 가져가는 곳이었던 한국당 입장에선 본진 털린 기분이 들 것 같다.

 

 

 (4) 서울 노원구 병 / 서울 송파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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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보궐선거에서 최고의 핫플레이스였다. 문재인,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가 경쟁한 19대 대선의 미니판이었으며, 동시에 현재와 미래 당권경쟁까지 그 향방을 가늠해볼 만한 선거였다. 또한, [노원 병]은 ‘철새’ 이슈, [송파 을]은 ‘언론 탄압’ 이슈까지 더해지는, 그야말로 전국구급 정치를 논할 만한 곳이라 하겠다.

 

정봉주 전 의원이 ‘도리가 아니다’며 출마하지 않은 [노원 병]은 참여정부 출신 김성환 구청장이 오랫동안 노리던 곳이다. 한국당은 한때 열린우리당 입당 전력도 가졌으면서 안철수계라 분류됐었던 강연재를 전략 공천했고, 미래당은 안철수계와 유승민계의 알력다툼 끝에 지역위원장 이준석이 공천됐다. [노원 병]은 매우 전략적인 투표를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삼성X파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노회찬, 지난 20대 총선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안철수의 지역구라는 점에서 그렇다. 오랫동안 지역구 관리를 충실히 해 온 이준석은 강연재를 크게 앞서며 2위를 거뒀고, 김성환은 과반이 넘는 득표율로 승리했다. 1위 후보와 2위 후보가 받은 모든 득표에서 안철수의 존재감은 너무나 미약했다.

 

[송파구 을]도 재밌는 지역이다. 17, 18, 19대 총선 모두 한나라당이 이겼으나, 19대에선 ‘무성이 나르샤’로 혼란한 가운데 후보를 내지 못해 민주당 최명길 의원에게 뺏겼다. 그러나 그 최명길 의원이 국민의당으로 빠졌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짤렸다. 바로 이곳에 문재인의 정치적 호위무사를 자임하는 최재성이 공천받았다. 홍준표와 한국당이 심혈을 기울여 포커스를 맞춰준 배현진을 크게 앞서며 당선됐고, 종편의 언론인으로 캐릭터 하나는 끝내주는 박종진 후보는 3위에 그쳤다. 언론인 싸움에서 배현진에게 지다니, 자존심이 좀 상할 것 같다. 우리 손학규 성님이 징크스를 깨고 성공적으로 등판했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실은 그의 징크스는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그를 지켜왔던 게 아닐까..

 

 

 (5) 광주광역시 서구갑 / 전라남도 영암군무안군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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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지역은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승리한 지역이다. 그리고 두 명의 의원은 각각 선거법 위반,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짤렸다.

 

이번 선거에선 민주당 송갑석, 서삼석 후보가 각각 80%, 70% 정도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호남 선거의 의미는 명확하다. 호남의 상처를 공략했던 국민의당의 똥꼬쇼를 호남은 용서하지 않았다.

 

 

3.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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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주야 언니는.. 

 

압승을 거둔 민주당의 전략은 매우 심플했다.

 

“문재인과 더불어, 국민과 더불어”

 

대통령 지지율이 천상계(70% 이상)를 맴도는 가운데, 1등 정당이긴 하지만 대통령 지지율에 비하면 20% 가량 떨어지는 당의 전략으론 매우 효과적이었다. 개인적으로 후보들이 대통령 이름을 걸지 않고 자력갱생으로 승리하는 것을 바랬지만, 효과적인 전략을 버리는 멍청이는 없었다. 치트키가 있었고, 치트키를 썼고, 게임을 이긴 셈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1년 평가, 앞으로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 이토록 압도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정리할 수 있다. 다른 언론에선 여당 승리의 원인으로 평화, 문재인, 홍준표를 꼽는데, 사실 세 가지 모두 '문재인 정부'라는 키워드로 묶을 수 있다. 19대 대선에서 다른 후보가 당선됐다면, 평화도 화려한 홍준표의 개드립도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좌우간, 문재인 정부는 지방선거에 많이 너무도 많이 개입했다. 정부가 제 할 일 '열심히 잘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선거개입이니까.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최재성의 당선이다. 그가 보수 우세 지역이면서 반문의 깃발을 들고 당선된 최명길의 지역구였던 [송파 을]을 뚫었다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 대통령 지지율이 계속 유지된다면 그는 어마어마한 빠워를 쥐게 될 것으로 보인다(이는 차기 대선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더불어민주당 (비밀) 선대위원장으로 불린 홍준표 대표가 전략공천은 곳은 모두 참패했다. 필자는 본인도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대선 때부터 홍준표는 보수의 '몸빵'이었다. 원래 그 역할은 김무성이 했어야 하나 그의 비겁함은 누구나 알지 않던가. 이번 선거에서도 김무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홍준표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뭘 어떻게 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선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홍준표 퇴장 이후에도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막후정치를 이어갈 김무성을 예의주시 해야 한다.

 

안철수는 김문수에게 밀렸다. 너무나 뼈아픈 결과다. 사실상 쎄굿바- 홈런으로 보이는데, 아련한 얼굴로 미국행 했다. 아직은 거취를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정치인생도 '미국행'이 예상된다. 유승민 대표도 바른미래당도 미래가 불투명하다. 

 

평화당과 정의당은 보궐선거에서 어떠한 특색도 보여주지 못했으니 논외로 둔다.

 

 

4. 그리하여 국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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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국회 의석 구도를 정리해보자. 

 

전체 288석 가운데 민주당 130석, 한국당 113석, 미래당 30석, 평화당 14석, 정의당 6석으로 재편됐다. 이를 다시 범여권과 범야권으로 구분해보자면, 민주당은 의결 정족수 148명을 상회하는 156석(이는 사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겠지만)을 가지게 된다. 이로써 민주당은 바른미래당을 설득하지 않아도 임명동의안, 예산안 통과를 위한 의결 정족수를 확보하게 되었다.

 

의회주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던 까닭은 지지율을 반영하지 못하는 의석 구도 때문이었다. 민주당은 집권 1년 이후인 지금에서야 드디어 여당의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매우 위태롭지만, 어쨌든 마련되었다. 표결을 막을 가능성이 더욱 떨어진 한국당의 아가리, 아니, 스피커는 더욱 거칠어질 것이다. 우리 모두 항암제를 위 속에 꽉꽉 채워 넣도록 하자. 

 

그리하여, 드디어, 어쨌든, 판은 만들어졌다. 그래서 민주당은 기뻐할 만한가? 결코 아니다. 그간 민주당이 보였던 추태, 이를테면 예산안 시급하다고 징징대면서 막상 표결 정족수는 스스로 미달시킨다거나, 원내대표가 한국당과의 협상이 잘 안된다며 눈물을 흘린다든가 하는, 고구마 백 개를 쳐묵한 것 같은 행위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유권자가 선사한 압승에 ‘압도적 감사’를 표하는 방법은, 여당으로서 산적한 문제들을 유연하면서 주도적으로 속도감 있게 처리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잘한 점도 있다. 경선과 공천 과정이 비교적 매끄러웠고(2014년 지방선거에서 안철수-김한길의 새정치민주연합이 무공천 드립을 철회하는 등 삽질 끝에 패배한 것을 기억하자), 여론조사 상 압승이 계속해서 예견됐음에도 자만하지 않았으며, 안희정의 나가리를 스무스하게 봉합하고, 특히 부울경 험지에서 고생한 사람들을 믿은 것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승리감에 도취되진 않는다.

 

계획대로라면 이번 선거에는 투표지 하나가 더 있어야 했다. 대선주자들이 약속했던 개헌 국민투표용지가 그것이다. 표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휴지통 속에 들어간 개헌안은 아무래도 총선 이후나 다음 정권에서나 가능할 것 같다. 민주당은 개헌안을 두고도 능동적으로 주도해 나가지 못했다. 개헌안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해 정부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 새로 짜여진 판에서는 없어야 한다. 언제까지고 대통령 지지율의 우산 속에서 아늑하게 숨어있을 수 없다. 앞으로의 최대 이슈는 경제 문제가 될 텐데, '유능한 경제정당'의 면모를 지도부에서 지역 의원까지 보여주지 못한다면, 권력 견제에 매우 민감한 우리나라의 유권자는 바로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거르고 거르다 보니 하나 남은 선택지가 정답이길 바라는 수험생의 마음으로 부탁한다.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수없이 많은 국민의 희생으로 만들어낸 판에서, 제발, 부디, 똥볼차지 말자.

 

 

 

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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