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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한다(링크)

 

글 쓰기에 앞서,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지난번에 세월호가 지겹다는 사람들에 대해 말할 수 있었던 건, 내가 그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서 한 게 아니라는 것 말이다. 또 나는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역시 먼 훗날 지금보다 상황이 나빠지면 무슨 일을 하고 살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돈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사이비 종교단체에 가입할지도 모르고 가스통을 메고 광화문 집회에 나갈지도 모르겠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연유에서 연재를 하자던 딴지 측의 제안이 처음엔 좀 부담스러웠다. 내 주제에 무슨 글이란 말인가, 대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한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른 건 모르겠지만 어쩐지 내가 겪은 불행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그런 얘기들이 지금 이 순간 불행의 늪에 빠져 간신히 코만 내놓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뭐가 됐든, 쓰기로 결심했다.

 

나도 안다. 잘 안다.

 

타인의 불행과 내 불행은 철저히 별개라는 것.

 

그리고 또 가끔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타인의 고통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1995년에 나는 스무 살의 나이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연이어 겪었다. 어느 집이나 누구에게나 흥망성쇠의 역사가 있겠지만, 우리 집은 유독 그 부침이 심했고 그 과정에서 불행하게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바로 내 아버지였다. 또 같은 해 6월 나는 삼풍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고를 당했고 그 과정에서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어찌어찌 살아나왔다. 하지만 너무나 슬프게도 그 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덕분에 오랜 세월 파란을 겪었다.

 

사실 내가 겪은 일들을  '불행'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규정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해서 나는 누군가 내게 '널 이해해'라고 하면 겉으로는 고마운 얼굴을 했지만, 속으로는 되게 같잖아 했다. 아니, 무슨 수로 내 마음을 알아? 뭘 어떻게 알아? 그래서 꽤 오래도록 이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면 세상이 모르고, 세상이 모르면 그 일은 없던 일이 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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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얘기지만, 그러는 사이 몹시 아팠다. 밖에서는 멀쩡히 웃고 떠들고 잘 지내고 돌아와 가만히 손목을 긋기도 했고, 일하다 말고 갑자기 집으로 가 수면제를 한 움큼 집어삼키고 누워있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 분열이었다.

 

그 후로 오랜 시간 치료를 받았고 더 이상 나를 해치는 짓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요즘은 대낮의 커피숍에 앉아 처음 본 사람들이 물어와도 웃으며 말해줄 수 있다. 세상에 그런 일들이 다 있었다고, 그런 일들을 겪어왔다고. 덕분에 매일 밤 부표하나 떠 있지 않은 망망대해를 떠도는 기분으로 살았지만 아주 가끔은 좋은 사람들이 둘러앉은 따뜻한 저녁식사에 초대받기도 했다고. 그러니 당신도 살아 있으라고, 살아 있으면 다 살아진다고. 괜찮다고.

 

앞으로 나는 이런 식의 얘기를 할 생각이다. 지난날의 내 상처를 통해 내가 무엇을 보고 또 느꼈는지. 특히 삼풍 사고가 내 생의 지축을 어떻게 뒤바꿔 놓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곧 다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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