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 검경 수사권 조정안

 

201806220921292119_t.jpg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정,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리로서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

 

한국의 현행 형사소송법 196조 1항이다. 낯선 말이 연달아 나와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대략 “경찰은 모든 수사에 있어서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뜻이다. 같은 조 3항은 “사법경찰관리는 검사의 지휘가 있는 때에는 이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현행법 상 범죄 수사에 관해서 검찰관이 지휘를 하고 경찰은 그 지휘를 받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경찰이 수사 활동에서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196조의 각 항 외에 구속영장 집행에 관한 81조1항, 압수・수색영장 집행에 관한 115조1항, 경찰이 압수물 등을 환부・가환부할 경우에 관한 218조의2, 경찰이 압수물의 보관 및 폐기, 대가보관, 피해자환부 등을 할 경우에 관한 219조도 참조).

 

현행 제도상 검찰이 막강한 권한을 누리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범죄 수사의 주도권을 검사에 주는 이런 제도 자체는 순기능을 발휘해 주기만 하면 반드시 나쁜 제도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수사 계통의 통일성이라는 면에서 효율이 높을 수도 있다. 어떤 범죄에 대해 범인과 증거를 확보한 뒤, 재판에서 범죄의 성립을 입증, 형을 구하는 당사자가 검찰관이기 때문이다. 또한 형사 절차의 일관성, 합법적 수사 활동의 담보라는 관점에서 시종일관 검찰이 수사를 이끄는 제도가 바람직할 수도 있다('합법적 수사 활동의 담보'라는 건 경찰이 법을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수사의 일선에서는 범인이나 증거 확보에 열중하는 나머지 자칫 불법적인 신체구속이나 폭행 등에 의한 자백 강요, 불법적인 증거수집을 할 우려가 있고, 그렇게 되면 최종적으로 범죄자에 대해 정당한 벌을 주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공소를 제기・유지할 의무가 있고, 상대적으로 수사의 합법성을 세게 의식하는 검찰관이 상시 수사의 합법성을 확보하도록 지휘・감독하는 것이 낫다는 취지다).

 

물론 검찰이 늘 성실히 법과 정의에만 입각해서 수사를 하는 건 아니다. 특히 정치인이나 재벌가가 범인으로 지목되거나 연루된 사건의 경우 이른바 편파수사, 봐주기 수사의 우려가 있고, 정치투쟁의 여파로 이른바 표적수사가 행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 경찰이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으면 검찰이 덮어 버리거나 숨기려고 하는 범죄 사실을 밝히고 제대로 처벌할 수 있는 기회가 미약하게나마 생긴다. 종전부터 경찰에 주도적으로 수사 활동을 할 권한을 주어야 된다는 주장이 있어 왔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럼 어느 수준으로, 어떤 방식으로, 경찰에 대해 독자적・주도적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합의문.jpg

 

그간 갑론을박했던 이 대목에 대해, 지난 6월21일 정부가 해결안을 발표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다. “조정안”의 최대 키워드는 바로 “대등”과 “협력”. 현행법이 상정하는 검찰・경찰 사이의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 “수사와 공소제기, 공소유지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상호협력하는 관계”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골자만 적시해보자. 먼저 경찰에 “1차적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부여한다. 경찰이 1차적 수사권을 부여받으면 일반 형사사건에 대해서 독자적으로(검찰의 지휘를 안 받고) 수사할 수 있다. 이로써 검찰이 경찰의 수사를 막아서 사건을 무마시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한편 수사종결권은 경찰에 의한 1차적 수사 과정에서 혐의가 없거나 재판으로 넘길 만한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됐을 경우 검찰로 사안을 보내는 절차(“송치(送致)”라고 함)를 하지 않고 1차적 수사 단계에서 사건을 종결시키는 권한이다. 다만 법원에 공소를 제기할 권한(기소권)은 여전히 검찰이 독점하며, 비리, 부패, 경제・금융, 공직자, 선거범죄 등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직접 수사할 권한을 갖고 있다. 또한 경찰에서 송치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할 수 있고, 경찰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으며, 경찰이 수사권을 남용할 경우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등 경찰에 대한 통제권이 부여된다. '자치경찰 제도 도입을 위한 일부 지자체에서의 시범실시'도 주목할 만 하다. 현재는 중앙정부가 경찰력을 통괄하는 게 기본구조인데 지자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경찰활동을 주체적으로 실시・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도 말했듯이 이번 “조정안”은 완벽할 수는 없다. 국민의 지혜가 더해져 보완될 것이다. 웬만하면 하루 빨리 국회의 심의를 거쳐 관련 법령이 제정・재정되야 할 텐데 유감스럽게도 현재 국회가 휴면상태에 있어 이번 “조정안”의 내용이 일부라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그래도 이걸 계기로 논의가 더 구체적이고 가시적으로 벌어지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21370_12190_27.png

 

이번에는 “조정안”의 내용에 지혜를 더하기 위한 하나의 실마리로, 일본의 검경 관계와 일본 경찰의 설치・운용(자치경찰 도입과 관련해서)에 관해 알아보고자 한다. 큰 대목인 만큼 체계적으로 서술하기보다 독자 여러분이 궁금할 거라 생각하는 포인트에 대해 질의응답(Q&A) 방식으로 설명하기로 한다.

 

 

2. 일본의 검경 관계

 

Q1. 일본의 검찰과 경찰의 관계가 어떻게 되나?

 

A. 협력관계다.

 

일본 형사소송법 192조는 검찰관과 도도부현(都道府県 ; 일본의 광역자치단체)공안위원회 및 경찰관은 수사에 관하여 서로 협력해야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Q2. 경찰은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있나?

 

A. 경찰은 1차수사기관의 역할을 하며, 검찰관과 대등하고 독립된 관계에 있다.

 

제목 없음.jpg

 

애당초 경찰과 검찰은 맡고 있는 역할이 다르다. 사건 발생 시 먼저 움직이는 것은 경찰이며, 이른바 초동수사는 경찰이 한다(일본 형사소송법 189조 2항 참조). 사건 현장에서의 수사기술이나 감식기술이 없는 검찰관이 초동수사 단계에서 나서봤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은 수사 초기 단계에서 사건과 관련된 증거를 수집하는 동시에 피의자를 체포한 경우에는 체포 후 48시간 안에 서류 및 증거와 함께 피의자를 검찰관에게 보내야 하고, 피의자를 체포하지 않은 경우에는 서류만 검찰에 보낸다(일본법에서도 “송치”라고 부름). 이렇게 해서 사건은 검찰에 송치되는 것이 원칙이지만(전건송치(全件送致) 원칙), “검찰관이 지정한 사건”에 대해서는 송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일본 형사소송법 264조 단서). 이것은 경찰에 의한 “미죄처분(微罪處分)”이라고 불리는 제도. 현재는 관할구역마다 지검이 정한 기준에 따라 운용되고 있고, 경찰이 범죄의 종류, 피해의 정도, 피의자의 사정 등을 고려해서 “미죄(가벼운 죄)”로 판단하면 검찰로 송치하지 않고 형사사건도 아예 없었던 것이 된다. “범죄백서” 2015년도판에 의하면 미죄처분의 대상이 된 인수는 71,496명으로, 전체의 약 30%다.

 

송치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보통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하지만, 살인 등 중요성이 높은 사건이나 복잡한 경제 범죄 같은 경우에는 송치 전부터 검찰이 경찰의 보고를 받으면서 수사 방침을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공소를 제기하고 재판을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검찰관에게 인정된 권한인데,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경찰관은 검찰관의 지휘를 거부할 수 있다. 만약 정당한 이유 없이 검찰관의 지휘를 따르지 않을 경우 검사총장, 검사장, 검사정(檢事正)은 공안위원회에 해당 경찰관의 징계를 청구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194조 1항 참조, 경찰에 대한 검찰의 지휘에 대해서는 Q3, 검찰관이 송치를 기다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사를 할 경우에 대해서는 Q4를 참조).

 

 

Q3. 검찰관이 경찰관에 대해 할 수 있는 지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A. 일반적 지시, 일반적 지휘, 구체적 지휘,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 다만 위에서 나온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경찰관이 이를 거부할 수 있다(사실상 어렵겠지만).

 

형사소송법 193조 1항부터 3항의 규정에 기초한다. 일반적 지시는 수사에 있어서 일반적 규범을 정하는 것이고 서류의 작성방법이나 검찰로 송치할 사건의 기준 등을 정하는 것이다. 일반적 지휘는 개별 사건의 수사 전체를 지휘하는 것으로, 여러 경찰서의 관할구역이 수사 범위에 포함될 경우 복수의 경찰서를 묶어서 총괄적으로 지휘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구체적 지휘는 검찰관이 독자적으로 개별 사건을 수사함에 있어서 경찰관한테 보조를 시키는 것이다. 단순한 심부름꾼으로 쓰는 것은 당연히 허용되지 않고, 검찰관이 갖추지 못한 격투기술이나 운전기술, 기타 수사상 필요한 특수한 기술을 갖춘 경찰관으로 하여금 검찰관의 능력부족을 보충하게 하는 것이다. 이 때 경찰의 본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에 경찰관은 검찰관의 지휘를 거부할 수 있다.

 

경찰관이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된다고 규정된 목적은 사실상 경찰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수사에서 검찰이 경찰을 적절히 제어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공소 제기・유지에 책임지는 검찰관이어야 할 수 있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검찰에 의한 부당한 지시가 문제가 된 사례도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지방고검 검사장이 경찰서에 찾아가 사죄하거나 부당한 지시를 내린 검찰관이 징계받거나 지방검찰청장이 경질당했다.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무리 정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사실상 검찰에 의한 지시・지휘를 개별 경찰관이 거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Q4. 검찰관이 독자적으로 수사하는 건 어떤 경우인가?

 

A. 중대한 범죄의 경우, 특히 규모가 큰 경제사건 등은 초동 단계에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다.

 

E6A49CE5AF9FE5BA81.jpg

 

검찰관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스스로 범죄를 수사할 수 있(일본 형사소송법 191조 1항)”으나 수사의 초기 단계에서는 경찰이 주도적으로 수사를 진행한다는 점은 이미 언급했다. 그러나 사건의 중요성이나 복잡성, 규모 등을 고려해서 검찰이 수사의 초기 단계에서 나서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위원회나 증권거래감시위원회, 국세청 등이 법령에 기초해서 고발한 사건 등 대규모 경제・탈세 사건, 정치인의 관여가 의심되는 비리・뇌물 사건 등은 처음부터 검찰이 수사를 이끌어 간다. 특히 도쿄, 오사카, 나고야에 있는 지검에만 설치된 특별수사부(통칭 “특수부”)는 정치인이 관여한 뇌물사건, 기업 범죄, 대규모 사기 사건 등에서 수사의 첫걸음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공소기관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센 곳에는 주요 지검에 설치된 특별형사부가 있다.

 

 

Q5. 일본의 경찰은 자치경찰인가, 국가경찰인가?

 

A. 자치적인 측면이 크다. 경찰 정책 전체를 책정하는 기관은 국가공안위원회(내각부 산하)의 특별기관인 경찰청이 맡고 있다.

 

일상에서 접하는 경찰은 거의 다 각 도도부현(都道府県 ; 일본의 광역 자치단체)에 설치된 도도부현경찰이다(일본 경찰법 36조 1항 참조). 그리고 도쿄도를 제외한 도부현경찰은 가 도부현 공안위원회가 관리하며 “본부”가 설치된다(일본 경찰법 47조 1항, 2항). 이런 점에서는 일본의 경찰은 자치경찰적인 색채가 강하다.

 

그러나 국가공안위원회(내각부 산하)의 특별 기관으로 경찰청이 설치돼 있고, 경찰청이 경찰 경책에 관한 전반적인 권한을 갖고 있으며(일본 경찰법 5조 4항 참조), 각 도도부현 경찰에 대한 지휘・명령권을 장악하고 있다(일본 경찰법 16조 2항). 또한 9개 있는 경찰관의 계급 중 경시정(警視正) 이상은 지자체에서 근무하고 있어도 국가공무원이다(일본 경찰법 56조 1항, 일본 경찰의 계급은 경시총감(警視総監), 경시감(警視監), 경시장(警視長), 경시정(警視正), 경시, 경부, 경부보, 순사(巡査)부장, 순사의 모두 9계급(동법 62조)). 이런 점은 감안하면 순수 자치경찰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굳이 말하면 자치경찰과 국가경찰의 절충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각 도부현 경찰은 각 지자체의 공안위원회가 설치・관리하는데, 도쿄도 경찰은 특별하다. 일반 지자체 경찰은 “○○현 경찰”이라고 불리며 그 본부는 “○○현 경찰본부”, 장은 “본부장”이 되는데 도쿄도만큼은 “경시청(警視庁)”이라고 불리며 그 장의 직함 역시 “경시총감(警視総監)”으로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또한 경시총감의 임명엔 도쿄도 공안위원회의 동의가 필요하나 중앙정부 기관인 국가공안위원회의 소관이고 내각총리대신의 승인도 필요하다. 경시청이 수도인 도쿄(참고로 일본의 수도를 도쿄로 규정한 명문의 법령은 없다)를 관할지역으로 함에 따른 것이다.

 

 

이상으로 간략하게 일본의 검경 관계와 경찰 조직에 관한 설명을 마친다. 검경 관계는 기본적으로 경찰이 잘 하거나 결찰만이 할 수 있는 일, 즉 초동수사 및 수사 초기 단계의 증거수집 등에 대해서는 경찰이 주도적으로 끌어갈 수 있도록 하면서 공소의 제기・유지라는 관점에서 검찰에게 감독・지휘를 받도록 규정돼 있다. 예외적으로 수사 초기 단계에서 검찰이 나서는 사건에는 정치인이 관여한 사건이나 대규모 경제 범죄 등이 있다. 국민의 인권이 부당하게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검찰과 경찰의 특성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살리려고 하는 노력은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자칫 검찰이 경찰의 수사 활동을 부당하게 방해할 우려가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경찰의 조직에 관한 설명도 포함해서 이번 “조정안”이 제기한 한국의 새로운 검경 관계를 모색함에 있어 미약하나마 참고가 됐으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