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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식에는 “테이쇼쿠(定食)”라는 카테고리가 있어요

 

요리에 국적이 있을까요? 있다 치면 기준이 뭘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이 요리는 오이스터 소스를 사용하니 중국요리” 아니면 “이것은 파스타를 쓰는 요리이기 때문에 크게 말하면 이탈리아 요리” 이런 식으로 조미료나 식재료를 기준으로 은근히 그 요리의 국적을 나누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별로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고요, 요리의 국적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기준을 제기하려는 겁니다.

 

일본의 식문화를 보면 “定食(테이쇼쿠)”라는 분야가 있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쟁반에다 메인요리, 공깃밥, 미소시루(된장국) 등 국물류, 츠케모노(김치)류 한두 가지가 제공되는 세트 메뉴죠. 한국어로 말하자면 “백반”에 가까운 개념일 건데, 신기하다 할까 이상하다 할까 일본인들은 백반이 되는 순간 어떤 요리든 일식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 습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햄버그스테이크가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하고 있다면 100명 중 100명이 양식으로 여길 건데, 쟁반 위에 공깃밥과 된장국, 츠케모노나 샐러드에 둘러싸여 있다면 사정이 달라지는 겁니다. 이제 100명 중, 음… 일단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람이 “이거는 뭐… 일식이겠지요” 정도의 답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식 백반은 쟁반 위로 올라가는 음식을 그 원래 국적과 상관없이 다 일본화시켜 버리는 마력을 갖고 있는 겁니다. 그 증거로 ‘백반’으로 제공되면 햄버그스테이크든, 새우튀김이든, 오므라이스든 젓가락으로 먹는 데 위화감을 전혀 안 느낍니다. 물론 오므라이스 같은 것을 숟가락으로 먹을 때도 있지만 그건 그냥 먹기 쉬워서 그렇지, 옆에 일식의 상징인 된장국이 있는 것을 어색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테이쇼쿠(백반)”는 모든 요리를 일식으로 변신시키는 마법사라 할 수 있겠지요.

 

이번에는 이런 어마어마한 마력을 가진 일식 백반, 테이쇼쿠(이하 그냥 “백반”이라 할게요) 전문 체인으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야요이켄(やよい軒)”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2. 야요이켄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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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켄(やよい軒)은 주식회사 프레나스가 운영하는 백반 전문 체인으로, 일본 국내에 331점포, 국외에 186점포를 운영하고 있답니다(2017.6 기준). 백반 전문 체인으로서 “후발 주자”임에도 다른 체인(오오토야(大戸屋)나 마이도오오키니식당(まいどおおきに食堂))을 제치고 업계의 리더격이라네요. 프레나스가 도시락 전문 체인인 “홋토 못토(Hotto Motto)”를 운영하는데 쓰는 유통망이나 노하우를 야요이켄에서도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네요. 사실 저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반 체인이라 하면 오오토야가 먼저 떠올랐었는데 지금은 야요이켄이 먼저 생각나는 것 같아요(오오토야도 괜찮다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기회가 되면 소개할게요).

 

야요이켄 운영 회사인 프레나스는 원래 태양사무기(太陽事務機)라는 기계회사였다가 1980년에 식품산업에 진출했습니다. 식품업계에 뛰어든 배경에는 창업자인 시오이 스에유키(塩井末幸) 전(前)사장(재작년 별세)의 아버지와, 더 거슬러 올라가선 할아버지가 훌륭한 요리사였다는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야요이켄이라는 체인 이름도 현 시오이 사장의 할아버지가 1886년 도쿄・카야바쵸(茅場町)에 연 양식 레스토랑 “彌生軒(야요이켄)”을 본뜬 것이라고 하네요. 시오이 전사장 아버지도 훌륭한 요리인이었다고 하는데, 해방 전 한때 부산에 있는 진해수교사(鎭海水交社 ; 당시 일본 해군성(海軍省)의 외곽단체로 해군장교들을 위한 친목단체)의 레스토랑에서 프랑스요리 셰프를 지낸 적이 있다네요.

 

이렇게 보면 야요이켄의 혈맥은 서양요리 쪽인가 싶은데 막상 내세운 컨셉은 좀 다릅니다. 양식 요소를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제일 강조하는 건 “일본의 전통 식문화”입니다. 일본에서 영양밸런스가 좋은 끼니 구성으로 “일즙삼채(一汁三菜)”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깃밥에다 국물 하나, 반찬 세 가지(그 중 하나가 주메뉴)의 조합이 좋다는 뜻이지요. 야요이켄은 이런 전통은 물론 양식과의 융합도 어필하는 전략을 취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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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켄은 “일본 전통 식문화”를 강조하면서 양식과의 융합도 어필하는 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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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켄 홈페이지 첫 페이지. 자연, 건강... 그런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야요이켄의 메뉴를 살펴보기로 하지요.

 

 

3. 야요이켄의 메뉴

 

메뉴 페이지에선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식재료를 포함하지 않는 메뉴'를 자동적으로 골라주는 기능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음식에 알레르기를 유발할 식재료가 포함될 경우 각 메뉴마다 표시해 주는 식당은 많지만 특정 식재료를 지정하면 자동적으로 그 재료를 쓰지 않은 메뉴를 뽑아 주는, 꽤 친절한 기능이지요.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백반이나 조식 메뉴의 공깃밥을 “십육곡(十六穀)밥”으로 바꿀 수 있는 점(단품으로도 주문 가능). 열여섯 가지의 곡물로 이뤄진 공깃밥이라는 뜻인데 영양가가 높고 밸런스도 좋은 밥이라 건강에 신경 쓰는 분들에게는 호소력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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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켄 메뉴 페이지. 피하고 싶은 재료를 체크하면 자동적으로 알레르기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뽑아주지요. 십육곡밥은 건강지향적 사회 분위기에 딱 맞는 메뉴라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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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가가 높은 십육곡밥은 요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나 보지요.

 

야요이켄의 중심 메뉴는 “백반”입니다. 누구도 일식임을 부정하지 않을 고등어구이 백반이 있는가 하면, 단품 메뉴로 보면 모든 사람이 양식이라 할 햄버그스테이크를 공깃밥・국물・반찬의 “일식화”가 억지로 일식으로 만들어 버린 각종 햄버그스테이크 백반까지. 물론 단골 백반 메뉴로서 전국민적 인기를 자랑하는 돈가스 백반과 쇼가야끼 백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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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켄의 백반 메뉴. 전형적 일식 메뉴는 물론, 백반이 됨으로써 일식이 돼 버린 메뉴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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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구이 백반. 누가 봐도 일식이라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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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치즈 햄버그스테이크 백반. 얼핏 보기에는 양식처럼 보이지만 백반으로 꾸며지는 순간에 일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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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백반 메뉴 넘버 원은 아무래도 돈가스 백반. 일본에서 돈가스 백반 없는 백반집을 찾기는 극히 어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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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가야끼 백반은 돼지고기의 생강구이 백반, 아니면 일본식 제육볶음 백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백반집을 자칭하는 야요이켄이지만 일본에 있는 모든 백반집이 그렇듯 돈부리류도 있습니다. 돈부리류에서도 역시 가츠돈은 뺄 수 없는 레귤러 멤버이지요. 가츠돈은 돈가스 자체는 물론, 소스가 미림의 단맛과 간장맛의 조화를 이루는 것, 그리고 돈가스를 덮은 계란이 절묘하게 익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 기회에 한 번 먹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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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켄의 돈부리(덮밥)류 메뉴. 종류는 많지 않으나 다 맛이 있어 보이죠. 특히 和風たれかつ丼은 야요이켄 오리지널 메뉴인 것으로 보이네요.

 

야요이켄은 일반 패밀리 레스토랑과 달리 대대적인 행사는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기간한정으로 특별 메뉴 정도는 출시하는 것 같아요. 약간 비싸게 파는 모양인데 내용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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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켄 스페셜 메뉴. 일반 메뉴보다 비싼데 내용은 호화롭네요.

 

또 야요이켄은 런치(점심) 메뉴가 없는 대신, 조식이 따로 있습니다. 일본에서 일식 여관에 묵어본 적이 있는 독자분은 아시겠지만, 낫토(청국장) 백반이나 연어구이 백반은 마치 일식 여관에서 먹는 조식 같은 느낌을 주네요. 바로 “더 일식”이라는 분위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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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일식”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조식메뉴들.

 

그럼 슬슬 야요이켄에 가서 한 끼 먹어 볼까요.

 

 

4. 현장 탐방~야요이켄 오미야타이에이바시(大宮大栄橋)점~

 

이번에 찾아간 야요이켄은 오오미야타이에이바시(大宮大栄橋)점입니다. 오오미야타이에이바시점은 사이타마현에서 가장 이용자 수가 많은 JR・오오미야역에서 도보 5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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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놀랍게도 사이타마현입니다.

 

오오미야역은 신칸센(新幹線, 일본의 고속철도)을 포함한 JR 각 노선에 더해 토부철도(東武鉄道), 사이타마신도시교통(埼玉新都市交通) 등 민간 철도회사까지 해서 모두 12개 노선이 오간다고 하네요. 필자는 토부철도・에도가와다이역 근처에 살고 있어서 오오미야까지 갈아타지 않고 갈 수 있습니다. 당일은 오오미야 근처에서 맥주 축제가 있어서 친구랑 같이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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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부철도・노다센(野田線) 에도가와다이(江戸川台)역에서 오미야 방면 열차를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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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센은 단선구간(선로가 하나밖에 깔리지 않은 구간)이 많아 “급행”이라 해도 겨우 카수카베(春日部)~오오미야(大宮) 중 이용자가 적은 일부 역을 스킵할 뿐입니다. 에도가와다이-오오미야 간 소요시간은 10분 밖에 차이가 안 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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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와(柏)에서 운가(運河, 에도가와다이 다음 역)까지는 복선(선로가 2개 깔려서 열차가 서로 지나갈 수 있음)입니다.

 

에도가와다이에서 오오미야에 가는 도중에 카수카베(春日部)가 있습니다. 한때 한국에서도 인기였던 <짱구는 못말려>의 무대가 된 동네이지요. 열차 안에서 “짱구의 성지”의 하나인 이토요카도 카스카베점(イトーヨーカドー春日部店)이 살짝 보이네요. 그 날 갑자기 생각나서 한국에 있는 덕후 친구한테 카스카베에 가 본 적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이미 성지순례를 마쳤답니다. 필자는 몇 번 못 가 본 동네라서 당연히 그 친구가 필자보다 더 카스카베를 잘 알았었지요(덕후는 못 말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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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카베역은 토부철도・노다센의 주요 역 중 하나. 짱구가 사는 동네로 유명하고, 정차하면 이토요카도 카스카베점이 살짝 보입니다.

 

에도가와다이를 출발해서 약 1시간 지나면 오오미야에 도착. 종점 역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오오미야역은 JR선으로 갈아탈 수 있어서 토부철도의 개찰구를 나가면 바로 JR선이 나오지요. 그 날이 토요일이었던 것도 있어서 JR에서 누리에(塗り絵 ; 색칠을 하도록 윤곽만 그린 그림) 행사나 일반인이 응모한 철도사진전 등 각종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역시 이용객이 많은 역은 활기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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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부철도 오오미야역 도착.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서 내려 개찰구로 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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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에 행사. 누리에는 색칠을 하도록 윤곽만 그려놓은 그림이지요. 아마 어른들끼리 가도 하게 해 주겠지만 분위기상 어려울 것 같아 필자 일행은 하고픈 마음을 억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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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이 주최하는 여러 행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모양입니다. 앗, 철도사진전 사진을 찍는 것을 까먹었었네요. 너무 잘 찍힌 사진들 앞에서 마음이 위축됐던 모양입니다.

 

오오미야역에 도착하면 서쪽 출구로 나갑니다. 오오미야역은 되게 큰 역인데도 높은 건물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압박감은 안 느껴집니다. 하지만 사람은 꽤 많지요. 사람이 좀 적어야 숨 쉴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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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미야역 서쪽 출구로 나가면 의외로 안 느껴지는 압박감. 높은 건물이 없어서 그렇지 않을까로 추측합니다. 그래도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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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마주친 가게. 일본 전통 녹차집? 전통 과자집? 츠케모노(일본 김치)집? 싶었는데 안경집이었어요.

 

오오미야역을 출발해서 한 5분이면 야요이켄 오오미야타이에이바시점이 나옵니다. 생각보다 조그마해서 약간 맥빠지기도 했는데 동행 친구에 의하면 야요이켄은 원래 이 정도 규모가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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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미야역 서쪽 출구로 나가서 왼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야요이켄이 나옵니다.

 

가게의 쇼윈도우에는 실물과 비슷하게 만들어둔 음식 모형이 있고, 가게 밖에는 메뉴를 확인할 수 있게 메뉴판을 놔두었습니다. 일반 메뉴까지 밖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해둔 경우, 식당이 인기가 많아서 줄을 설 때가 종종 있거나, 아니면 자리에 앉기 전에 입구에서 식권을 사야 하기 때문에 미리 메뉴 정보를 제공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어필하고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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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켄 오오미야타이에이바시점 외관. 리얼한 음식 모형을 보면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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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앞에 일반 메뉴까지 놓아두는 것은 “줄 서는 동안 미리 고르시오” 아니면 “들어오면 바로 식권을 사야하니 미리 고르시오”의 둘 중 하나로 보입니다. 열심히 보고 지금 결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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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깃밥은 무료로 리필할 수 있다네요. 먹으면서 남은 반찬과 공깃밥의 비율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만으로도 매우 고맙습니다.

 

가게 앞에서 메뉴를 열심히 보고 있다가 “백반 주문 시 공깃밥 무한 리필(십육곡밥 제외)”의 표시를 발견했지요. 당일은 가츠돈도 살짝 땡겼었는데 돈부리류는 밥을 리필할 수 없기 때문에 즉시 각하. 백반류를 고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제1후보는 역시 돈가스 백반이지요. 바삭바삭한 옷 안에 숨어진 달콤하고 쥬시한 육즙의 맛을, 가늘게 썬 양배추와 소스, 한 박자 늦게 입에 들어오는 밥이 어시스트하며 만들어내는 예술적 골. 한 입 마시는 된장국은 마치 그 골을 축복해 주는 관중 같고요.

 

하지만 고민이 됐습니다. 아까 막 가츠돈을 포기한 거 아닌가? 다 큰 어른이 무슨 미련이냐? 쓸데없는 자존심은 연애와 메뉴 선택을 잘못하게 만들기 마련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역시, 역시 돈가스 백반은 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후보는?

 

그렇습니다. 쇼가야끼 백반이지요(실은 동행 친구가 “기간 한정 메뉴도 맛있겠네요”라는 말로 동요작전을 벌였고, 필자는 감쪽같이 동요해 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까 봐 생략하겠습니다. 하여튼). 쇼가야끼는 말하자면 일본식 제육볶음입니다. 맛은 “일본식”인 만큼 간장과 미림을 적당한 비율로 섞은, 달고 짠 소스에 쇼가, 즉 생강을 갈아넣은 것이라 하면 상상하기에 도움이 될까요. 돼지고기를 볶다 딱 좋은 타이밍에 소스를 묻혀서 좀 더 볶고, 불을 끄기 직전 아니면 불을 약하게 하며 간 생강을 넣어서 버무리지요. 곁들이는 야채는 가늘게 썬 양배추. 생강 독특의 시원한 매운맛이 달고 짠 맛과 조화를 이룬 고기, 그리고 상쾌한 식감을 연출해주는 양배추가 “공깃밥아~ 우리랑 친구하자~”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식탁. 천국이지요.

 

쇼가야끼 백반이 백반킹의 자리를 둘러싸고 돈가스 백반과 치열한 싸움을 벌일 수 있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소스에 살짝 잠긴 양배추입니다. 아삭아삭 가늘게 썬 양배추에 달고 짠 생강 풍미 소스가 살짝 배어들어, 이것만으로도 하나의 반찬으로 인정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번에는 쇼가야끼 백반을 시키겠습니다.

 

나고야 출신인 동행 친구는 고향 맛이 그리워서 그랬는지 일찍 미소카츠니(味噌かつ煮 ; 된장 돈가스 전골?) 백반을 시키는 것으로 결정. 미소카츠는 돈가스에 된장 소스를 뿌린 것인데, 소스에 사용되는 된장이 좀 독특합니다. 나고야를 중심으로 한 도카이(東海)지방에서 많이 먹는 된장으로, 짙은 단맛이 특색이지요. 필자도 나고야에 가면 꼭 먹는 메뉴 중 하나입니다. 동행 친구는 그 미소카츠를 전골로 먹기로 한 거지요.

 

메뉴를 결정하면 식당 안에 설치된 식권판매기로 식권을 구매합니다. 식당 밖에 있는 메뉴판 그대로 분류된 화면을 보면서 조작하면 되니 어려움은 전혀 없고, 언어설정을 바꿀 수도 있기는 한데 한글 표기가 없네요. 한국 손님도 없지 않을 텐데 좀 의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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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들어가면 바로 식권판매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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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밖에 있는 메뉴판과 비슷하게 분류된 화면. 메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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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설정을 바꿀 수도 있는데 영어, 중국어, 그리고 태국어로 보이는 언어밖에 없네요.

 

보통 식권 형식의 식당은 식권을 사면 바로 점원분이 식권을 받으러 오고 손님은 점원분한테 식권을 준 후에 자리에 앉는 패턴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점원분이 알아서 앉으라고 하길래 일단 식권을 손에 쥔 채 자리에 앉았습니다. 자리가 정해지자 주문용 단말기를 손에 든 점원분이 주방에서 나와서 식권을 회수하면서 주문을 확인합니다. 점원분한테 식권을 주고 나면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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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권을 들고 먼저 자리에 앉습니다. 식탁 위에 차와 무슨 츠케모노(김치, 밑반찬?)가 마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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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지난 후에 갔기 때문인지 손님은 많지 않았습니다. 가게가 좁은 만큼 점심에는 매우 혼잡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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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권에서 점원분이 주방에 주문을 전달하는 식권 본체를 뜯어간 뒤 남은 부분. 야요이켄에서는 이 남은 부분이 영수증도 겸하는 모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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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의 츠케모노를 먹으면서 식사가 나오는 것을 기다립니다. 자리에 앉았을 때 차인 줄 알았던 보온병에는 물이 들어 있었네요.

 

정체불명의 츠케모노를 먹으면서 생각보다 오래 기다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복은 최고의 조미료이지요.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드디어 나왔습니다, 쇼가야끼 백반. 그런데 뭔가 임팩트가 모자란 느낌. 먼저 주메뉴인 쇼가야끼 그릇이 너무 작습니다. 그 결과 양배추의 양도 적을 수밖에 없는 거지요. 돈가스 백반도 마찬가지인데 쇼가야끼에 곁들여지는 양배추는 그 담백한 맛과 대조적으로 쇼가야끼 자체를 압도할 정도의 양이어야 합니다. 완전히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체인점의 한계라는 것으로 허용해 줄 수 있습니다. 허락은커녕 도저히 이해도 안 가는 건 제육볶음으로 하여금 쇼가야끼가 되게 만드는 원천, 생강의 맛이 전혀 안 나는 겁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김치찌개를 시켰는데 김치가 들어갔는지 않았는지 모르는 싱거운 찌개가 나온 상황을. 필자가 놓인 상황도 똑같았습니다. 분명히 쇼가야끼 백반을 시켰고, 눈앞에 있는 영수증에도 “쇼가야끼 백반”이라고 확실히 나와 있는데 정작 테이블 위에 나온 이 요리는 쇼가야끼로 인정할 수 없는 겁니다. 나름 교육도 받고 문명인으로 인정받아 살아가는 필자이지만 이때만큼은 글로 쓰거나 소리로 내기가 좀 곤란한 말을 중얼거리며 동행 친구한테 욕했습니다.

 

그는 “ㅋㅋㅋ”라는 표정을 지으며 아직 안 나온 미소카츠 백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나쁜 새ㄲ… 아니, 친구. 그러다 금방 미소카츠 백반이 나옵니다. 아까 막 가짜 쇼가야끼 백반을 욕했던 필자는 이번에는 메뉴판에 있는 사진보다 더 맛있게 보이는 실물 미소카츠 백반을 앞에 두고 메뉴판에 심각한 거짓이 있음을 강력히 주장하기 시쟉했습니다. 딱 하나 다행이었던 것이 있다면 식당 테이블이 바닥에 고정된 스타일었기 때문에 홧김에 테이블을 뒤집어엎고 싶다고 했어도 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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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카츠 백반은 메뉴판 사진보다 맛있어 보일 정도. 다음엔 야요이켄에서 꼭 이거를 먹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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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가야끼는 “생강 풍미 제육볶음” 정도의 뜻인데 그냥 간장과 미림을 섞은 소스로 볶은 달달한 제육볶음. 양배추의 양이 적은 것도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실망과 분노를 더하고 2로 나눈 듯한 기분으로 자칭 쇼가야끼 백반을 먹다가 왠지 그런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져 버렸었어요. 응? 이상하네 싶었더니 밥이 은근히 맛있는 겁니다. 야요이켄은 공깃밥을 무료로 리필할 수 있기 때문에 반찬을 조금만 입에 넣고 밥을 입이 미어지게 먹을 수 있지요. 아무튼 무료로 리필할 수 있는 밥이라 믿음이 안 갈 정도 이 밥이 맛있는 거예요. 딱히 비싼 쌀을 쓸 리는 없는데 맛있게 잘 지었나 봐요. 아마도 물기 조절이 절묘하고, 짓는 방법도 각별한 것 같지요. 이제 쇼가야끼는 그냥 단맛이 나는 돼지고기 볶음으로 치고 공깃밥의 맛을 즐기자고 작전을 변경. 말랑말랑하면서도 쫄깃쫄깃한 식감과 은은히 단 쌀의 독특한 맛을 즐기기로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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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너무 맛이 있었습니다. 무료 리필이 가능하므로 밥을 최대한 많이 먹기 위해 고기를 반찬으로 먹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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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한쪽에 있는 밥통에서 먹고 싶은 만큼 알아서 퍼가면 됩니다. 따뜻한 보리차(?)도 여기에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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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메인으로 먹기로 작전을 변경한 필자를 비웃듯이 끝까지 맛이 있어 보이는 미소카츠. 반숙 계란에 찍어 먹으면 아까미소(赤みそ ; 미소카츠에 사용되는 된장)의 자극이 완화되며,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어요.

 

결국 밥을 두 번 리필했는데도 고기가 조금 남아서, 마지막에 조금만 더 밥을 리필한 뒤 마무리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메인메뉴인 쇼가야끼를 포기함으로써 밥의 좋은 맛을 깨닫게 된 야요이켄. 다음에 또 찾아올 때가 기대됩니다(꼭 미소카츠니 백반을 먹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가면 무엇을 시킬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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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두 번째 리필. 첫 번째보다 조금 적게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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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조금만 남았기 때문에 한 입만 더 리필. 결과적으로는 대만족의 야요이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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