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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 스코틀랜드의 왕이기도 한 제임스 1세가 영국의 국왕 자리까지 차지하자 가톨릭 진영에서는 난리가 났어. 왜냐고? 제임스 1세는 개신교 신자였기 때문이야. 우리는 천주교 신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했다고 불교 신자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2017년에 살고 있지만, 1603년의 영국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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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신자인 제임스 1세가 복잡하게 얽힌 대내외 정치 문제 +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가톨릭 진영을 강력하게 탄압할 거라는 건 3살 꼬마도 알 수 있을 정도였지.

 

‘내가 스코틀랜드 왕 출신이기 때문에 나를 무시하는 가톨릭 네놈들의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이 몸이 그리 녹록한 사람이 아니란 걸 제대로 보여주마. 마침 우리 영국이 가톨릭을 지지하는 에스파냐와 전쟁 중이니, 네놈들 조지기에 이만한 명분이 없지. 적국의 종교는 탄압받아 마땅하다. 으흐흐흐’

 

제임스 1세는 재임 1년 후 에스파냐와의 전쟁을 마치지 마자, 1605년에 첫 의회를 개원한다고 선포했어. 영국 내 가톨릭 진영에서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확실한 대비책을 마련해 놓은 상황은 아니었어.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습니다.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는데 지금까지 대비책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에잇!”

 

“내년에 첫 의회가 개원되면 제임스 1세가 가장 먼저 우리 가톨릭의 탄압을 천명할 것입니다. 가톨릭이 국교인 에스파냐와 전쟁을 하느라 마침 국민들의 정서도 우리에게 불리한데 이것 참 큰일입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가톨릭 진영 내에서는 대안 없는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을 때, 케이츠비라는 자가 무시무시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어. 오늘날까지도 일명 ‘화약 음모 사건’이라고 회자되는 일인데, 웨스트민스터 궁 지하에 폭약을 설치하여 궁 전체를 날려 버리려는 계획이야.

 

웨스트민스터 궁은 영국 왕 제임스 1세가 내년(1605년)에 취임 후 첫 의회를 열기로 한 장소야. 이날 왕은 물론 온 나라의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로 했어. 한 마디로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하기로 한 날 국회의사당 전체를 날려 버리겠다는 계획을 짠 거야.

 

‘가톨릭을 탄압할 것이 뻔한 왕과 그 족속들을 그대로 살려 둘 순 없지. 이미 너무 멀리 왔고, 영국에서 가톨릭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겁쟁이들이 책상 앞에서 노닥거리며 대책 회의를 하는 동안 난 이 한 몸 바쳐 우리 가톨릭을 지킬 것이다.’

 

가톨릭 내 급진 행동파인 케이츠비의 아이디에서 시작된 영국 국왕 및 의회 몰살 계획. 마치 왕좌의 게임의 서세이가 적들이 모인 성 지하에 폭탄을 설치한 후, 한 방에 날려 버린 장면을 떠올리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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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주요 가담 인물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할게.

 

<주요 가담자 리스트>

 

케이츠비 : 화약 음모 사건의 최초 설계자

 

원투어 : 하나투어의 영문판 이름? 쿨럭. 화약 전문가인 가이 포크스를 섭외하는 역할

 

가이 포크스 : 이번 미션의 실무 및 온갖 잡일까지 도맡음. 훗날 가이 포크스 데이까지 만들어지게 되는 장본인

 

토마스 퍼시 : 왕실 근위병. 작전 수행을 위해 안가를 마련하는 복덕방 업무 담당

 

케이츠비는 먼저 자신의 계획을 원투어와 상의를 하였고, 원투어는 여행사를 거치지 않고 자유여행으로 즉시 네덜란드에 가겠다고 말했어. 이유는?

 

“제가 군사지식도 풍부하고 무엇보다 화약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다루는 전문가를 알고 있습니다. 지금 그 자는 네덜란드에 체류 중인데 제가 가서, 이번 작전의 취지를 잘 설명하면 우리 팀에 합류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 누구보다 신실한 가톨릭 신자니까요. 헌데 왕과 의원들을 모두 날려 보낸 후에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정권이 바뀐다고 금방 가톨릭의 세상이 오겠소? 정권의 바탕이 되는 민심을 얻어야지요. 말을 타고 전국을 돌며 토크 콘서트 형식을 빌려 우리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설파하고, 가톨릭 신자들의 봉기를 이끌어 내야지요.”

 

빅 픽쳐가 그려지고 네덜란드에서 가이 포크스까지 합류하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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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완수를 위한 정예 멤버가 모인 후 클레멘트 법학 기숙사 근처의 오두막에 모여 도원결의를 맺었어. 이 맹세를 더욱 굳건히 다지기 위해 예수회의 신부에게 성찬까지 받았다고 하니 성전을 위한 첫 발을 무사히 뗀 거지.

 

“토마스 퍼시 자네는 왕실 근위병이니까 웨스트민스터 궁 주위를 아무리 다녀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자네가 궁과 가까운 가정집 하나를 장기 렌트 하게.”

 

“집... 집을 렌트해서 머 하시게요? 아하! 우리 아지트 같은 거군요."

 

“아지트는 아지트인데, 더 놀라운 일을 할걸세. 그 집에서부터 땅굴을 파 궁의 아래쪽까지 갈 걸세. 그리고 궁 아래 화약을 설치하여 의회가 열리는 날. 쾅!”

 

“오! 기발합니다.”

 

“아 그리고 화약을 보관할 집도 한 채 더 렌트 해주게. 두 집의 열쇠 및 화약 관리에 대한 일체의 권한은 가이 포크스, 자네에게 일임하겠네.”

 

이들은 1604년 12월부터 땅굴을 파기 시작했어. 하필 겨울이었고 제한된 인원을 가지고 땅굴을 파니 속도가 나지를 않았어. 그렇다고 인력시장에서 인부를 사 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 이런 일은 시작이 반이 아니라 비밀 유지가 성패를 좌우하는 일이고, 소수로 움직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긴 해.

 

“도저히 못 해먹겠습니다. 아니 두 분은 귀족이라 이런 막노동은 못한다고 하시고 토마스는 궁 경비 선다고 맨날 빠지고! 저 혼자 땅굴 파느라 육체적으로 탈진하고, 막대한 양의 화약을 챙기느라 정신적으로 지칩니다. 사람을 더 구해주세요. 전 오늘부터 파업입니다. 파업. 거사 치르기 전에 과로사 할 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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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인력 보충은 불가피한 일이었어. 땅굴을 파고 옮겨진 화약에 최종적으로 불을 붙일 가이 포크스가 저리 나자빠지면, 제대로 시작도 못할 노릇이야. 이때부터 본격적인 인원 충원이 이루어졌고, 사람이 많아지다 보면 의견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게 세상 이치 아니겠어?

 

추가 멤버 중 한 사람인 귀족 프랜시스 트레셤이 거사 날이 다가오자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어.

 

“꼭 모두를 몰살시켜야 하겠소? 의회에 참가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 가톨릭 신자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소. 그들에게는 최소한 귀띔을 해줘야 하지 않겠소?”

 

“흠... 우리도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대의를 위한 작은 희생은 피할 수 없는 일이오."

 

그의 의견은 매번 묵살되었어.

 

‘이러다 우리 처남까지 죽게 생겼구만. 그리고 모든 내각을 몰살 시켜 버리면 국정 공백은 어떻게 메우겠다는 거지? 나라가 혼란에 빠질 수도 있겠어.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프랜시스는 마침내 왕에게 투서를 보내는데! 그냥 자기 친척이나 빼내던지! 그래도 배신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 같은 투서를 보냈어.

 

“이 시대의 악을 벌하려고 신과 인간이 마침내 뜻을 모았다. 너희는 끔찍한 화를 겪을 테지만 누구의 소행인지는 끝내 모를 것이다.”

 

이 정도면 다 알려 준 거 아닌가? 그러나 왕과 대신들은 이 투서에 대해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어.

 

“아... 놔... 무슨 큰 행사만 한다고 하면 꼭 이런 관종들이 나온다니까. 그나마 SNS이 없는 시대이니 망정이지. 이런 허위 협박에 일일이 출동하다 보면 엄청 피곤할 뿐이야.”

 

“맞아. 이런 걸 다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왕께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시니 우리 치안 팀에게 걸린 테프콘 1이 곧 해제되겠지.”

 

제임스 1세는 위험한 불꽃놀이에 희생될 운명이 아니었어. 지난밤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그는 치안판사를 급히 불렀어.

 

“지난밤 꿈에 쥐새끼 한 마리가 궁의 상수원으로 사용되는 곳에서 더러운 분탕질을 얼마나 해대는지... 아 글쎄 궁 인근 하천이 죄다 녹조 라떼로 변했지 뭔가. 기분이 영 좋지를 않아. 자네가 철저히 궁 주변을 수색 좀 해주게."

 

치안판사는 개신교 신자라면서 꿈자리가 사납다고 궁 수색을 지시한 왕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왕명이니 어쩌겠어. 행운의 여신은 언제나 우리 주위에서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치안판사는 궁 지하에서 대형 쥐 아니 가이 포크스를 발견했어.

 

‘오 마이 갓! 이게 웬 로또래. 이건 빼도 박도 못할 현장 검거로구나. 내가 왕의 목숨을 구했어. 이제 내 앞길은 탄탄대로구나~ 얼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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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엄청난 양의 폭탄 앞에서 성냥을 들고 큐 사인만 기다리던 가이 포크스는 너무나 허망하게 현행범으로 체포가 되고 말았어.

 

‘아니, 이것들이 어찌 알고 여기를? 그동안 몸 고생 마음 고생 다했는데, 결국 이 많은 화약에 불 한 번 못 댕겨 보고 내 인생이 이리 끝나는구나.’

 

가이 포크스 입장에서 더욱 안타까운 건 의회가 열리는 11월 5일 하루 전날인 11월 4일 한밤중에 잡혔다는 거야. 관련자들은 대부분 사형이 되었고, 왕은 최종 보고서를 본 후 등 뒤에서 한기를 느꼈어.

 

“와우! 이놈들이 하루 차이로 잡힌 거구만. 치안판사를 당장 특진 시키고, 내 제삿날이 될 수도 있었던 11월 5일을 국경일로 정해서 이 날을 영원히 기리도록 하라.”

 

개신교 신자들 입장에서는 왕과 의회를 날려 버리려고 한 악당들을 검거한 날이라 신이 났고, 가톨릭 신자들 입장에서는 겉으로는 내색할 수 없지만 다른 의미로 이 날을 기렸어.

 

‘아깝다. 단 하루 차이로 저것들을 아주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는데...’

 

가이 포크스를 형상화한 가면이나 인형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11월 5일 밤에 불에 태워 버렸는데, 할로윈 데이처럼 영국민들은 아직도 가이 포크스 데이를 기념한다고 해.

 

그런데 말이야. 역사는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크게 달라지게 되어 있어. 일본은 임진왜란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의 도자기에 빠져 일으킨 도자기 전쟁이라고 일컬으며 그 전쟁의 잔혹함과 조선의 피해를 퇴색시키려고 해.

 

가이 포크스도 개신교 입장에서는 IS 같은 일개 테러리스트일 뿐이지만, 당시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제도권에 의해 억압받던 가톨릭 신자들의 관점에서는 투사로 칭송받을 만한 인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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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미국의 만화가 데이비드 로이드는 가이 포크스를 테러리스트로 보지 않았어. 그가 1982년 출간한 ‘브이 포 벤데타’에서는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주인공이 저항의 아이콘으로 등장을 해. 이 만화를 원작으로 2005년 나탈리 포트만이 주연으로 나온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여 가이 포크스 가면이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더욱 익숙해지게 되었지.

 

가이 포크스 가면은 이후 2011년 월가 시위 때는 물론이고 위키리크스의 줄리안 어샌지도 이 가면을 착용함으로써 그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 최근엔 대한항공 직원들이 이 가면을 쓰고 조 씨 일가의 전횡에 맞서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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