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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에 한글 프로그램이 없었다. 그간 불편할 일은 없었다. 딴지에 글 쓰다 날아간 경험을 몇 번 한 후로는 비공개로 만든 다음 블로그에 글을 쓰고 옮겨왔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한번 검수를 하지만 오탈자를 잘 몰라서 틀린 맞춤법은 항상 있었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원래 소리 나는 대로 쓰라고 만든 게 한글이다.

 

메일로 받은 파일을 열려면 한글 프로그램을 다운받아야 했다. 아무거나 받다가 바이러스에 걸렸다. 삼 년 전 데스크탑을 밀고 다시 깔았던 컴퓨터 수리점에 갔다. 다행히 아직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가격은 삼 년 전 그대로였다. 작업하는 동안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잠시 대화를 나눴다. 결국 사라질 운명일지라도 때로는 조금 더 머물러줬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책을 만들자고 말은 했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암담했다. 긴 시간 형편대로 상황에 따라 감정의 기복조차 중구난방인 글 묶음이었다. 양으로만 하면 열권 분량이라고 했다. 일단 솎아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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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터넷에 글을 올린 건 다음 아고라였다. 그곳에서 글을 쓰는 버릇을 들이고 한토마를 거쳐 딴지로 넘어왔다. 불기둥과 짐멜이라는 아이디를 기억한다. 세상에 별난 사람도 많다는 걸 느꼈다. 한동안 지켜보았다. 글들이 재기발랄했다. 가끔 날선 듯 벌어지는 다툼의 심각함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타인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더불어 나에게 중요한 것들이 타인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필명 먹물의 가출 소녀와의 동거라는 기사를 봤다. 수원역 근처에서 15살 먹은 가출 소녀가 폭행에 의한 장 파열로 죽었다. 살인 용의자들은 강압 수사에 의한 허위자백이라고 했다. 중첩되는 자극으로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할 마음이 생겼다. 독투불패에 지난 기억과 감정을 더듬어 글을 올렸다. 마빡으로 간 첫 글이었던 것 같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다. 그 시절을 기록하던 서버도 날아갔고...

 

행방불패에 자리를 잡았다. 여러 카테고리 중 내가 쓰는 글을 무엇으로 규정할까 생각하다 방향을 정하기 어렵겠다 싶었다. 자랑할 만한 글은 아니고, 정치적 신념이나 지향점을 가진 것도 아니다. 범상치 않은 아웃사이더들이 모인 곳에서도 외곽쯤이 어울려 보였다. 카테고리의 벽은 견고하거나 높지 않았다.

 

버거운 하루하루를 토하기도 하고,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빨래처럼 널어놓기도 했다. 가끔은 글을 쓰면서 생각의 가닥을 잡아가기도 했다. 조회 수에 비해 악플은 드물었다. 기억에 남는 악플이라야 되지도 않는 노동쟁의 집어치우고 택배라도 하라는 빈정거림 정도였다. 지금은 정규직 경찰 공무원이었다고 판단되는 진리경찰도 심한 악플은 달지 않았다. 지난 정권에서 인터넷 댓글 작업을 하던 경찰이 1800명 정도라고 들었다. 하위직 경찰에 대한 징계는 없을 거라는 정부의 발표를 들었다. 이번 정권에서도 크게 밥줄에 대한 위험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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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 조금씩 성장했다. 아마 딴지스들과 주고받은 피드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열린 공간에 쓰는 글은 혼자서 일기장에 쓰는 것과는 다르다. 피차 닉네임을 사용하지만 서로 간에 진실할 거라는 가정을 하고 대화를 주고받는다. 가끔은 보이고 싶은 모습대로 연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긴 시간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보이고 싶은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실수를 하고 본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다.

 

편집되어 묶음으로 주어진 글은 주고받은 댓글까지 살아 있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주고받은 짧은 대화들이 선명했다. 지난 시간들이 새로웠다. 일희일비하며 비틀거리던 시간들에 위로를 해주던 사람들의 기억들이 반갑고 고마웠다. 수고로운 작은 마음 씀씀이 고마웠던 사람들을 잊지는 않았지만, 하루하루를 항상 되새기며 사는 건 아니다.

 

처음 일독은 지나온 시간에 대한 반추였다. 남겨두었던 글들을 매개로 되살아나는 기억과 사람들에 관련된 감정들이 뿜어져 나왔다. 딴지는 숨구멍 같은 곳이었다. 그간 남겨놓은 글들은 숨구멍에 토해놓은 숨들이었다. 두 번째 읽으면서는 댓글들을 지우고 중구난방으로 뻗어 나가던 생각들이 적힌 글들을 지웠다. 내뱉은 말에 가끔 구속되는 나에게는 그 시절 주고받은 대화가 의미가 있었지만, 그 시간을 공유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이해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노동쟁의의 기록 약간과 개인사를 남겼다. 군상극인 집단으로의 노동쟁의의 기록은 딴지에 글을 쓰기 전의 일이다. 결국 개인사의 연속에 다름없었다. 나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글을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다듬어야 했다. 글을 적은 연도와 날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준 마음도 생각해야 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사람도 조금 자라고 글도 조금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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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공진화라 생각한다. 그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 치열하게 살던 노무현이나, 그 치열함에 자극받아 적당히 선량한 모습으로 살지 못했던 문재인의 모습만큼은 아니어도. 꺾이거나 움츠러들 때마다 위로와 격려를 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보잘것없는 투쟁에서 하루 또 겨우 버텨냈음을 자랑하고 칭찬받을 때마다 삶의 방향이 조금씩 결정되었다. 부족한 글에서 위안을 받았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물뚝심송님이 반값등록금 투쟁을 하는 학생들을 위해 모금을 할 때 복잡한 마음이었지만 소액을 보냈다. 사람들에 대한 소속감이나 연결감보다는 딴지라는 공간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

 

어쩌면 삶이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은 버려지거나 포기하는 것들이 있다는 다른 말이다. 그것들에 미안하고 싶지도 않았다. 되돌아보니 용케 제법 잘 살아왔다. 그렇게 빛나지는 않아도 추해 보이지는 않았다. 요즘 시대 많은 사람들에게 납득 받을 만한 삶은 아닌 것 같지만 반대쪽으로 선택을 계속해 왔을 삶을 생각하면 제법 잘 살아왔다.

 

적당히 삼분지 일을 추렸다. 추리면서 보니 시간에 따라 글이 변화한 것이 보인다. 초기의 글은 문장이 난잡했다.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려는 마음만 앞섰다. 단어와 문장을 수식하는 글들이 어지러웠다. 감정이 격할 때는 비속어도 많이 사용했다. 문단 내에서도 시점이 자주 변했다. 주어를 자주 생략했었다. 주어를 생략하는 버릇은 자신을 내보이기만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으로도 보인다. 여러모로 진입장벽이 있는 불친절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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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치명적인 오류들만 수정하고 거칠게 교정된 원고를 봤다. 여전히 막막했다. 책을 엮는 것은 처음 하는 작업이다. 요즘에서야 좋은 책을 고르는 눈이 조금 생겼지 싶다. 문장을 보기도 하고 책 전체의 흐름을 보기도 한다. 읽으며 단순히 배움에 즐겁기도 하지만 저자의 의도와 시선의 방향을 가늠하기도 한다. 스스로 좋은 책이라 생각하는 글에 미치기가 힘들다. 그래도 아주 나쁜 쓰레기는 아니다 싶었다. 무작위로 책을 고르다 보면 가끔 저자와 출판사에게 분노하게 만드는 책도 만나게 된다. 안 하던 두뇌 노동에 탈진 비슷한 것이 왔다. 건설노동의 강도를 10으로 잡았을 때 공장의 노동 강도는 평균 7~8이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병행 작업에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했다.

 

김창규 편집장과 투아웃 님에게 거칠게 다듬은 원고를 보냈다. 전문가 혹은 유경험자의 입장에서 조언을 원했다. 투아웃 님이 부족한 부분과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 교정을 도와주기로 했다. 집안에 우환이 있는 건 그다음에 알았다. 그 와중에 원고를 수정해서 보내주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원해서 하는 작업이었다고 말하지만 스스로에게 질문이 던져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그럴 가치가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묵직한 부채감이 쓴웃음을 짓게 했다. 이후로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부채감이 느껴지는 한 나쁘게는 살지 못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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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님이 수정해 준 부분에서 그의 호의를 느낄 수 있었다. 문장마다 주어와 목적어를 구분하고 글을 치장해 주는 부사를 많이 삽입했다. 의미가 모호하게 읽히는 문단에는 타당한 질문을 던졌다. 그의 수정분을 토대로 다시 원고를 다듬었다. 그나마 초기 글에 비해 후기는 밑줄 친 부분이 줄어들어 있다는 것이 하나의 위안이었다.

 

겨우 어느 정도 작업을 끝냈다. 여전히 성에는 차지 않는다. 가진 재주에 비해 눈이 높다. 더 잡고 있어도 좋아질 것 같진 않았다. 원고를 다시 편집장에게 보냈다. 끝 공정이 아니라 전문가에 의해 또 거쳐야 할 과정이 있을 것이다. 힘든 일을 마친 나른함과 부질없는 짓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약간의 허무감이 있다. 인연이 이어진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의무감으로 경과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