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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게 있을까?

 

“군대 갈 땐 나라 아들, 아프면 너네 아들”

 

이라고 하지 않는가? 큰 병이 아니더라도 군대에서 아픈 거 만큼 서러운 게 없다. 그나마 내 경우에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중대 왕고였고, 군 생활도 나름 괜찮게 하던 참이었고, 군수병이라서 행보관이랑도 친했고, 행정반에서도 내가 왕고라 애들이 내 ‘편의’를 많이 봐줬었다(간부들도 내 편의를 많이 봐줬었다).

 

덕분에 다리를 다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배차를 내서 강릉까지 달려갈 수 있었던 건 내 ‘행운’이었다.

 

그렇게 2시간 가까이 강릉까지 달려가서 국군병원에 들어가게 됐다. 바로 정형외과에서 대기, 제대로 된(!!) 군의관과 만나게 됐다. 행보관이 신음하는 날 대신해 내 상황을 설명했고, 군의관은 날 보더니 바로 X레이를 찍었다. 그리고는 신음을 토해냈다.

 

“어떤 미친놈이 기브스를 이렇게 해?”

 

정적-

 

(그 미친놈이 군의관이었는데요...)

 

(1).jpg

 

윙- 하는 톱날이 내 다리로 향했다. 거칠게 기브스를 뜯어내던 군의관이,

 

“야, 너 피 뽑아야 해.”

 

“잘못들었습니다.”

 

“그냥 고개 돌리고 있어.”

 

“예?”

 

“그냥 돌리고 있어.”

 

행보관이 그제야 끼어들었다.

 

“XX가 증상이 심합니까?”

 

“그게... 인대가 찢어졌어요.”

 

“예?”

 

X레이를 보여주는 군의관. 나도 엉거주춤하게 누워서 X레이를 봤다. 명확한 일(一)자가 보였다. 무릎에 일자로 선이 가 있었다. 반쯤 찢어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브스가 오히려 독이 됐습니다. 무게 때문에 무릎이 더...”

 

군의관은 내 눈치를 보더니,

 

“그냥 고개 돌리고 있어. 금방 끝나.”

 

“예... 알겠습니다.”

 

위생병이 뭔가를 들고 오고,

 

“마취할 거야. 잠깐 따끔할 거야.”

 

“예, 알겠습니다.”

 

따끔. 뒤이어 서늘한 뭔가가 느껴졌다. 소독을 했는지, 이윽고 윙- 하는 드릴 뚫는 소리(진짜 드릴로 뚫었다). 드릴 소리가 멈추자. 행보관의 끄응- 하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살짝 실눈을 떠 내 무릎을 바라봤다.

 

구멍에서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헉-

 

군의관의 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애 잡을 뻔 했네.”

 

다시 서늘한 느낌, 그리고 무릎 근처에 붕대를 감았다. 뒤이어 허벅지까지 통으로 기브스를 했다.

 

“4주 있다가 다시 와 봐.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행보관님. 이 녀석 꾀병 부리는 거 아니니까... 아, 병장이지? 말년이면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지 어쩌다가...”

 

“유격 받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그래? 그럼 뭐 할 말 없고, 여튼 네 몸 네가 챙겨야지. 조심해. 조신하게 있고, 약 잘 챙겨 먹고... 진통제랑 소염제 줄 거니까 4일 정도 먹다가 그때도 아프면 다시 와. 근데, 이제 괜찮아 질 거야.”

 

아, 정말 살 거 같았다. 돌팔이가 아니었다. 그렇게 강릉 국군병원을 빠져나와 부대로 복귀했다. 행보관은 부대로 복귀한 뒤 본부중대장과 대대간부들을 붙잡고 군의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종아리까지만 기브스를 한 의무대의 군의관을 규탄하며, 까딱했으면 내 다리를 절단 할 뻔 했다는 투로 썰을 풀었다. 뭐, 과장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의료사고가 맞았다. 그것도 아주 ‘멍청한’ 의료 사고였다. 당시 행보관이 이렇게 ‘썰’을 푼 건 혹시나 간부들이 내게 눈치 줄까봐 미리 약을 쳤던 것 같았다. 그 전까지 날 바라보던 10~20프로의 의혹의 눈초리는 말끔히 사라졌다. 행정반에서 기브스를 한 채 엉거주춤 앉아 있는 날 바라보던 간부들의 눈빛에는 ‘연민’과 ‘동정’이 섞여 있었다. 압권은 대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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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반에 잠깐 들른 대대장이 날 보더니,

 

“xx 말년에 조심해야지!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그래, 전화는 드렸고?”

 

“연락 안 드렸습니다.”

 

“왜?”

 

“다 나으면 연락드리려 했습니다. 별 거 아닌 걸로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 병장이라 그런지 생각이 기특하네. 그래, 별 거 아니면 별 거 아닌 일이지. 한 달 정도 기브스하면 낫는다며?”

 

“예, 그렇습니다.”

 

“그래, 몸 잘 챙기고 일 쉬엄쉬엄 해라. 요령 피우라는 게 아냐. 지금은 네 전투력 회복이 최우선이야.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그랬다. 까놓고 눈치 볼 일도 없었다. 허벅지까지 통기브스를 했고, 겨드랑이에는 목발 두 개가 장착돼 있었다. 누가봐도 ‘환자’였다. 간부들도 인정했고, 병사들은... 인정 안해도 뭐 어쩌겠는가? 본부중대 왕고가 이러고 있는데?

 

씻는 거 빼고는 불편한 게 없었다. 구보도 열외, 아침 점호도 열외, 근무도 열외, 작업도 열외... 그냥 행정반에서 상황대기 아니면, 하던 일 하면 됐다(군수병 행정 업무만 봤다).

 

그렇게 4주가 흐르고 기브스를 떼기 위해 국군병원으로 다시 갔다. 간단히 x레이를 찍고, 무릎 상태를 살펴보던 군의관은,

 

“당분간 왼쪽 다리가 불편할 거야. 한동안 안 움직여서 힘도 붙지 않을 거고, 천천히 움직이면서 힘 붙여봐. 그래, 고생했다.”

 

“충성!”

 

병원에 들어갈 때처럼 닷지 뒤편에 앉아서 위병소를 빠져나오는데, 문득 ‘국군병원’이 고마워졌다(그렇다고, 군 병원이 잘한다는 건 아니고, 당시에는 내 다리를 살려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병소를 통과 할 때 위병소 아저씨들에게 외쳤다.

 

“아저씨들 고마워요! 고생하세요!”

 

이 말을 들은 위병소 아저씨가 씩 웃더니 팔을 흔들던 기억이 난다.

 

“아저씨도 고생했어요. 우리 다시 보지 맙시다. 여기 오지 마세요!”

 

나름의 인사였다. 내 다리는 정상으로 돌아 온 거 같았다. 그러나 정상이 아니었다.

 

 

 

나 병신 된 거야?

 

내 다리가 병신(?)이 된 걸 확인 한 건 기브스를 풀고 한 달이 지난 다음이었다. 이제 슬슬 움직여도 될 거 같아서 아침구보를 뛰는데, 조금 힘을 줬더니 무릎이 바깥쪽으로 꺾여 나간 거였다.

 

억-

 

하고 숨이 막혔다. 그리고 쩔룩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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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하고 나서 일반 병원에 가 진찰을 받으니, 반월상 연골판 손상이었나였다. 전방 십자인대의 찢겨진 부분 말고도 다른 데도 다쳤다. 수술 받기도 애매하다고 말했다.

 

“운동선수 아니면, 그냥 재활하시죠? 일상생활 하는데 크게 지장없다면...”

 

“무리 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100미터 달리기 하듯이 힘줘서 뛴다거나, 왼쪽 무릎에 힘 들어가는 무리한 운동, 스키 같은거요.”

 

“......”

 

뭐 그랬다. 원래 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 운동은 체질에 맞지 않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때부터 난 조금만 힘을 주면 무릎이 바깥쪽으로 꺾여나가는 ‘반병신’이 됐다. 나중에 ‘검도’나 ‘야구’를 할 때 이 대목이 내 발목을 잡았는데, 결국 무릎 보호대를 하나 사서 왼쪽 무릎을 감싸고 뛰는 걸로 타협을 봤다.

 

군 병원에 대한 의구심을 몸으로 체험한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군병원에 대한 인식은 석고가 부족해서 무릎 바로 밑까지 기브스를 한 군의관이다.

 

차라리 아무 치료를 안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그 덕분에 난 내 무릎에 구멍을 뚫고, 검게 썩어버린 피를 뽑아야 했다. 지금도 왼쪽 무릎 옆에는 흐릿하게 그때 당시 구멍을 팠던 흔적이 남아있다.

 

그 상처가 내게 말해주는 한 가지가 있다.

 

“평시에 무릎 인대를 다친 환자도 제대로 치료 못하는 군의관이 전시에 총상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까?”

 

이 당연한 의문의 결론은 한 가지였다.

 

“전쟁 나면, 우리 병사들은 그냥 방치되는 거다.”

 

농담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 심각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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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