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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시위 당시 기무사령부가 작성했다는 문건은 이전의 국방부 위수령 문건과는 질적, 양적으로 다르다. “초병이 무기를 탈취당하는 상황에서 생명에 지장 없는 부위에 대한 발포”와 “ ‘종북’ 세력에 대한 군사 작전” 기획이 어떻게 같은 무게일 수 있을까. 

 

그뿐 아니라 기무사령부는 정보 수집과 정보 보고를 넘어 1980년과 같은 군대의 정치적 개입을 시사하는 대목을 여기저기에 노출시키고 있다. 악몽 같은 이름 ‘합수단’(합동수사단)이 그렇고 국회 봉쇄나 SNS 차단 등 단순한 질서 유지를 넘어선 행동을 적시하고 있으며 국민을 ‘종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기무사령부가 본연의 기능을 다 했다면 촛불 항쟁이 어떤 어둠의 세력의 배후 조종이 아니라 분노한 일반 국민들의 덩어리였고 누군가 그를 ‘지휘’하고자 해도 될 일도 아니었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만약 그걸 몰랐다면 무능한 정보기관으로 처벌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걸 알고도 국민을 ‘종북’으로 규정하고 군사 작전을 통해 진압한다는 보고서를 썼다면 그건 사악한 정보기관으로서 응징의 대상이 된다. 

 

그들의 보고서 문건을 보며 여러 차례 기함을 했거니와 그들의 이른바 계엄군 배치도를 보면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생각이 없단 말인가. 이유는 그들이 이리저리 던져 놓은 군부대의 이름들에서 너무나 많은 악몽들이 새어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부대들은 내 친구, 선후배와 그 자식들이 나온 부대고 나름의 긍지와 전통을 지닌 부대들이겠지만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씻기 어려운 오욕을 함께 짊어진 부대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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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공수부대부터 보자. 5.16 당시 쿠데타군에 공수단이 가담한 것을 시발로 공수부대는 대한민국 최강의 부대이면서 가장 정치적으로 오염된 부대였다.

 

1964년 데모 학생들에게 영장을 발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원을 습격해서 숙직 판사를 찾아내라고 난동을 부리고 급기야 판사의 집까지 찾아가 수류탄과 소총을 휘두르며 겁박한 ‘공수단 법원 난입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1공수여단원들이었다. 지도에 따르면 서울을 맡게 돼 있는 부대. 그리고 1979년 부마항쟁 때 투입돼 부산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그 부대이기도 하다. 광주항쟁의 전초처럼 그들은 시위대의 머리를 골라 때리고 다녔다. 

 

3공수여단은 1980년 7공수와 함께 광주에 투입된 부대다. 총에 대검 꽂고 사람들 푹푹 찌르고 단단한 몽둥이로 사람 머리를 수박 삼아 깨고 다녔던 부대다. 그리고 그 전 해 12.12 때 전두환의 수족이 돼 자기 부대 사령관, 즉 특전 사령관을 체포했던 ‘배신의 부대’이기도 하다. 7공수 여단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우리가 오늘날 보는 광주항쟁의 영상 초입에서 등장하는 군인들이 7공수였다. 이들은 강원도(3공수)와 경상도(7공수)를 맡게 돼 있었다. 

 

광주에는 11공수여단이 예정돼 있는데 피가 거꾸로 솟아도 모자란 일이다. 11공수는 시민군에 밀려 후퇴하던 중 아군의 오인 사격을 받고 희생자를 낸 부대였다. 그들은 눈이 뒤집혀 인근 마을 사람들을 끌어내 사살했고 미역 감던 아이들까지 오리 쏘아 죽이듯 죽여 버렸다. 바로 송암동 학살 사건이다. 

 

공수부대는 특수하게 훈련된 부대다. 즉 막강 전투력으로 유사시 적의 심장부를 강타하고 적의 후방에서 독자적으로 작전을 펼치는 국군 최정예 부대다. 그런데 이런 부대를 민간인 앞에 들이밀었던 것이 독재 정권의 다반사였다. 미국으로 치면 델타포스에게 민간인들을 상대하라고 한 격이다. 그것이 광주항쟁을 불러왔고 우리 역사에 어떤 생채기를 남겼는지를 5천만 국민이 아는데 기무사령부는 모른다. 아니 모르는 체한다. 또는 알면서도 저런다. 

 

공수부대뿐이면 말도 안 한다. 20사단은 광주 항쟁 최종 진압 작전에 투입된 부대다. 그래서 당시 사단장이었던 박준병은 광주 5적에서 빠지지 않거니와 도청 점령은 공수부대가 나섰지만 그 뒤 시신을 끌어내고 페인트로 시신 등짝에 번호를 매기던 이들이 20사단이었다. 30사단은 12.12 때 노태우 9사단장이 자신의 전방 병력을 서울로 불러들이던 길목을 활짝 열어주면서 반란군에 가담한 부대다. 20사단 30사단 그리고 관록의(?) 1공수여단이 서울을 맡는 걸로 돼 있었으니 탄핵이 기각됐다면 우리는 그들의 총부리 앞에서 몸부림치고 있었으리라. 

 

충청도를 맡은 11사단 역시 단연 두드러지는 흑역사를 지닌 부대다. 한국전쟁 중 공비 토벌 임무를 수행하던 11사단은 공비의 습격에 병력을 잃은 후 지옥에서 온 악마 부대로 변신한다.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수백 명의 민간인들을 죽이고 불태운 거창 양민 학살이 바로 11사단 13연대 3대대가 저지른 일이었다. 11사단 20연대 또한 뒤지지 않아서 전라도 함평 일대에서 대단한 민간인 학살을 일으켰다. 그 부대는 충청도에 배치되는 것으로 나온다. 경상도 전라도 찍고 이번엔 충청도란 얘긴가.

 

26사단은 전두환의 심복으로서 직속 상관인 특전 사령관을 배신했던 박희도가 사단장으로 있던 시절 삼청 교육대를 운용하면서 공식적으로 4명이 죽어 나갔던 부대다. 공식적으로 4명이지만 몇 명이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신을 팽개치는 바람에 민원이 발생하자 아예 사단에서 화장장을 운영해 시신을 불태워 버렸다는 제보가 있을 만큼 (사실은 미확인임) 살기 넘치고 그로 인한 피눈물도 그득했던 부대였다. 

 

기억하기 싫고 꺼내기 꺼림칙한 옛날 얘기를 왜 꺼내냐고 할 수도 있으나 그건 내 뇌리에 1980년의 추억을 상기시킨 기무사령부에게 더 큰 책임이 돌아가야 한다. 이렇듯 우리 역사에는 군의 정치 개입으로 인한 상처와 국민보다 정권에 충성했던 배신의 기억이 어떻게 치워 버리기 어려울 만큼 널려 있다. 그 부대들이 왜 다시 ‘종북’을 상대하기 위해 전국에 뿌려져야 하며 대관절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이력에 다시금 시커먼 흑자탑이 쌓여 우뚝 솟았을 것이 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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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천번을 양보해서 이를 유사시의 시나리오라고 쳐도 용서받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국민들에 대한 ‘종북’ 규정이다. 이는 정권에 적대하는 국민을 적, 또는 이적행위 옹호자로 치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군의 흑역사는 바로 그런 악랄한 전제 위에서 벌어졌다. 빨갱이기 때문에. 죽여도 되기 때문에. 사회악이기 때문에. 우리에 반대하면 적이기 때문에 . 그래서 광주 사람들이 죽었고 부산 마산 사람들 머리가 깨졌고 삼청교육대 끌려간 이들이 피를 토했다. 그런 류의 ‘죽음의 찜’ 같은 규정이 다시 우리 눈앞에 들이밀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기무사 문건은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철저한 조사를 바란다.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면 명령의 발화자를 찾아 처벌해야 옳다. 애매한 참모들 때려잡지 말고 어느 높은 자리에 전달됐고, 얼마나 수용됐는지, 국민을 종북으로 규정한 이는 누구이며, 누구의 비위에 맞추기 위해 그렇게 쓰여졌는지. 아울러 그들이 이리저리 장기판의 장기처럼 움직인 부대들의 역사도 좀 공부하기 바란다. 

 

훈련병의 아버지로서 나는 대한민국 국군을 존중하고 싶다. 국민을 존중하고 국민의 안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며 정확한 정보와 판단을 추구하는 양식 있는 군대. 결코 지난 흑역사들과 닮지도 않고 닮을 수도 없고 닮아서도 안 되는 그런 군대 말이다. 기무사령부 문건은 그래서 탈탈 털려야 한다. 영혼까지 털려야 한다. 누구냐. 어느 놈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