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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1. 2012년 영국의 기억

 

『살아있는 돼지에게 고의적으로 총격을 가해서 의도적으로 중상을 입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야만적인 행위이며, 최근 의공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체모형으로도 충분한 시뮬레이션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만큼 이런 부질없는 동물살상은 이제 끝내야 한다.』

 

동물 보호단체(PETA)가 2012년 발표한 성명이다. 이 성명이 나오게 된 계기는 조금 ‘황당’하다. 2012년 영국군은 외과 군의관들을 아프가니스탄에 투입하기 전에 고민을 하게 된다.

 

“총상환자들을 수술하기 위해서는 외과 의사들의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외과 의사들은 1년만 손을 놓고 있으면, 손이 굳어버린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봉합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러나 ‘총상’과 같은 비일상적인 상황을 현실에서 접해본 외과의가 얼마나 될까? 미국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영국이나 유럽은 그 빈도가 낮다)

 

결국 영국군은 덴마크와 공조 하에 코펜하게 근교의 NATO 훈련캠프에서 총상 치료 실습교육을 했다. 실습 과정은 간단한데, 돼지에게 진정제를 섞어 넣은 먹이를 먹인 다음 곯아떨어진 돼지를 마취시킨 후, 돼지 아랫배에 사격을 한다. 이때부터 훈련이 시작된다. 의무병들이 달려와 출혈을 막고, 앰뷸런스로 이송, 군의관들의 본격적인 총상 처치 훈련이 시작된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전장에서의 ‘환자 발생’의 대부분은 ‘출혈과의 전쟁’이다. 돼지의 출혈을 막고, 뒤이어 심장, 폐, 간, 비장, 췌장 등의 주요 혈관을 치료하고 봉합하는 실습을 계속 반복했다(이렇게 2012년에만 18마리의 돼지가 희생됐다). 이걸 두고 동물 보호단체에서는 ‘야만적인 행위’라며 규탄 성명을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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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영국군의 입장은 단호했는데,

 

『돼지와 인간 사이의 해부학적 유사성 때문에 이러한 실습 과정을 도입한 것이며, 전장에서 발생하는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 이런 과정은 필수적이다』

 

 

에피소드 2. 2012년 한국의 기억

 

2012년 6월 연천 모 부대의 GOP에서 총격 사고가 일어났다. 노 모 병장이 이등병이었던 김태일 이병에게 총탄 4발을 쏜 거였다(K-3 기관총으로 쐈다는데, K-3의 ‘위명’을 생각하면...).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김태일 이병은 군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군 병원에서는 수술할 수 없다는 통보가 돌아왔다. 군 병원인데, 총상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는 거였다.

 

전국 14개 군 병원에 근무하는 군의관의 숫자는 2천 5백여 명 수준, 이 중 총상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는 고작 2명이었다(2012년 기준). 결국 김 이병은 총상환자를 수술할 병원을 찾아 4시간을 헤맸고, 겨우 아주대 병원 응급센터로 들어가 수술을 받게 됐다(5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문제는 이 와중에 과다출혈로 죽을 뻔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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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미국 국방부는 ‘테러와의 전쟁’ 사망자를 분석한 논문을 하나 발표하게 된다.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사망한 병사들의 사망원인을 분석한 논문인데,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 사망자가 4,596명이다

- 이 중 73.7%가 폭발(IED: 급조폭발물)에 의한 사망, 22.1%가 총상에 의한 사망, 4.2%가 교통사고 등 각종 사고에 의한 사망이었다

- 사망자의 87.3%는 병원 도착 전 사망. 이 중 34.2%는 즉사, 52.1%는 응급조치 후 이송 중 사망이었다

- 병원 도착 전 사망자를 분석했는데, 이중 75.7%는 생존 불가능 부상자. 23.3%는 생존 가능한 상태였지만, 응급 이송이 늦어져서 사망(세계 최고의 응급이송체제를 갖춘 미군이 이렇다)

- 이라크 전장에서 병사들 사망원인을 분석했는데, 90.9%는 출혈, 8%가 기도폐쇄, 그 나머지는 긴장성 기흉으로 사망

 

(전장에서의 총상 환자와 다발성 골절환자의 처치는 비슷한데, 일단 기도확보, 그 다음이 출혈부의 처치다. 전쟁터에서 부상병 처치는 기본적으로 ‘출혈과의 전쟁’이다. 장기손상은 일단 출혈을 막은 뒤에 시작해야 한다. 70kg의 몸무게를 가진 성인 남성의 경우 약 5리터의 혈액을 가지고 있는데, 이 중 30%를 손실하면 과다출혈의 위험이 있고, 40%를 손실할 경우 저혈압 쇼크가 온다. 다시 말하지만, 전장에서의 부상병 처치는 출혈과의 싸움이다. 군대에서 괜히 압박붕대 사용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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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을 보며 느낀 한 가지가 있다.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면, 부상자들 대부분은 죽겠구나.”

 

였다. 작년 11월 북한 귀순 병사가 판문점을 통해 넘어왔다. 이때 집도의가 그 유명한 이국종 교수였는데, 그의 말이 충격적이다.

 

“귀순병을 살린 건 사실 미군이다.”

 

이국종 교수가 말한 건 미군의 더스트 오프(Dust off : 항공의무호송팀)다. 이 당시 더스프 오프팀은 헬기 안에서 흉관 삽입술로 폐에 나온 기체를 다 뽑아냈다. 즉, 헬기 안에서 1차로 압박성 기흉을 잡았고, 이 때문에 아주대로 넘어가 1차 응급 수술이 가능했던 거다.

 

미 국방부의 논문에서 보듯이 전장에서 사망원인 중 10% 가까이를 차지하는 게 ‘기흉’이다.

 

(영화 <우리 의사선생님>을 보면, 긴장성 기흉에 대해 잘 나와 있다. 경험 많은 의사라도 자칫 잘못해 기흉을 놓치면, 바로 사망이다)

 

까놓고 말해서 ‘헬기’의 등장과 활용으로 전장에서의 부상자 사망 숫자는 극적으로 떨어졌다. 2차 대전 당시 부상자 사망률이 29%였는데, 헬기가 사용된 한국 전쟁에서는 26%로 떨어졌고(그 유명한 드라마 ‘MASH’의 무대가 바로 여기다. 어르신들이 말하는 ‘잠자리 비행기’로 부상자를 계속 실어 날랐다), 헬기 전쟁이라 불렸던 월남전에서는 이 비율이 19%까지 떨어지게 된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이송체계는 고사하고, 설사 이송을 한다고 하더라도 총상 환자를 수술할 만한 인력이 없다는 거다.

 

 

한국군 병원은 어찌하오리까?

 

현재 군의관의 절대 다수인 2,299명(전체의 93.5%)은 단기 군의관이다. 계급은 장교지만, 일반 병처럼 의무복무(그냥 끌려온)일 뿐이다. 게다가 기간은 엄청나다. 무려 36개월... 어떤 동기나 성취감은 고사하고, 그냥 기회비용을 날리는 ‘늪’일 뿐이다.

 

만약 이들이 숙련된 기술을 가진 전문의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들은 그냥 의사면허를 가진 초짜 의사들이다. 게다가 ‘전공’이 아닌 과목을 치료하는 경우도 많다(내과 의사가 치통을 호소하는 병사를 진료해야 하는 상황이 수시로 벌어진다). 여기에 장비 부족, 인력 부족(의사만으로 병원이 돌아갈까? 간호사와 같은 의료보조인이 택없이 부족하다)이 겹쳐진다.

 

그나마 희망을 가져야 할 장기복무 군의관(한 줌도 안 되는)들도 대부분 행정직으로 빠져 있고, 그나마도 기회가 닿으면 민간으로 넘어갈 생각만 하고 있다.

 

이들을 탓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들도 피해자다. 군복무는 누구에게나 ‘비용’으로 다가선다. 자유를 억압하고, 선택의 기회를 박탈하고,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우리를 착취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취감이나 거창한 사명감을 말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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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의 문제는 시스템. 결정적으로 ‘돈’이 걸려 있다. 올해 우리나라 국방예산이 약 43조 규모인데, 이 중 의무예산은 0.6% 정도 수준이다.

 

이 정도면 그냥 ‘흉내’만 냈다고 봐도 된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병사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공짜이다 시피 막 부려먹는 병사들에게 어떤 ‘대우’를 해 줄 이유가 있을까?

 

문제는 여기까지도 이해의 범주 안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징병제를 하는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이고, 청춘들은 당연하다시피 군대에 끌려간다(별 저항도 없이).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군대에서 ‘병사’는 비용이 들어가는 인력이 아니라, 때 되면 알아서 들어오는 ‘노예’의 개념이다. 징병된 인력에게 어떤 사명감이나 성취감, 직무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주는 건 상당히 어렵다. 군대의 통제 자체도 어떤 ‘메리트’를 주는 게 아니라 디메리트를 안겨줘 움직이게 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게 사실이다.

 

(메리트라고 해봤자, ‘휴가’나 ‘외출 외박’이 고작이다. 결국 남은 건 사람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억압을 주고 이를 통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체계까지 신경 쓴다는 건 어쩌면 너무 많은 걸 바란 건지도 모른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전시 응급의료체계’와 ‘이송체계’까지 손봐 달라고 말한다는 건 현실을 외면한 이상적 주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시도 아닌 평시에 총과 탄약을 취급하는 병사가 60만이나 되는 나라에서 총상 처치를 할 수 있는 군의관이 고작 2명이란 건 뭐가 잘못된 게 아닐까? 총기 규제 국가에서 총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조직체가 군대다. 군대는 국가의 합법적인 폭력이다. 이 곳은 사람을 죽이고, 죽이다가 죽는 걸 가르치는 단체다. 당연히 ‘총상’과 화기에 대한 ‘부상’이 예상되는 조직이다.

 

그런데, 이런 군대에서 총상환자를 처치할 수 없다? 웃기지 않은가? 의료 체계만 보면, 대한민국 군대는 싸울 수 없는 군대다.

 

(2020년까지 외상병원을 만들겠다고 국방부가 말하는데, 현실성이 있을까?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군 의료체계를 개혁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런 게 한두 번인가? 언론이 떠들면 그제야 면피용으로 개혁을 말하고, 보완계획을 내놓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으로 돌아가는 게 군 병원이다. 까놓고 말해서 송영무 국방장관이 내놓은 군의료체계 개선 방안도 난 믿지 않는다. 실현 가능성은 둘째 치고, 그 예산을 어디서 어떻게 조달한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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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간단하다.

 

“돈”

 

돈을 투자하면 된다. 돈을 투자하고, 시스템을 개선하고, 병사들을 ‘노예’로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군 복무기간 동안 최대한 알뜰하게 뽑아먹고, 비용은 최대한 덜 들이겠다는 인식 자체를 버려야 한다. 이제까지 보여준 군 의료체계의 핵심은,

 

“우리도 ‘의사’란 게 있어.”

 

라고 흉내를 내는 것이지, 제대로 된 ‘치료’의 개념이 아니었다. 군인 신분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싸제’ 병원으로 가야 한다.

 

나 역시 내 이빨이 깨졌을 때 싸제 병원으로 갔다.

 

저녁점호를 받을 때 당직이었던 인사장교가 내 얼굴을 때렸다. 나름 ‘분위기’ 잡아보겠다고 왕고인 날 팬 거였는데, 내 이빨 하나가 부서졌다. 나도 황당했지만, 때린 인사장교도 당황했다.

 

(당시 인사장교는 본부중대 분위기를 틀어쥐겠다고 쇼를 한 거 같은데, 병사 폭행이 된 거였다. 만만한 게 왕고였다. 기억을 떠올려 보니 내 말년은 참 파란만장했다)

 

결국 다음 날 난 외출을 끊어 싸제 치과를 갔다. 이빨은 부서졌다. 군대에서 해 넣을 수도 없고, 해 넣을 돈도 없었다. 지금 같으면 바로 헌병대에 연락 넣고, 대대장 면담하고, 언론에 찌르고 했을 테지만, 그때는 순진했다. 아니, 제대 날짜만 손꼽던 시절이었다.

 

“더러워서 빨리 제대해야지.”

 

군대에 ‘치과’를 보는 과가 있는지도 몰랐고(설사 있다 해도 제대로 치료해줬을까?), 이것 때문에 군병원을 보내 줄 거 같지도 않았다. 결국 난 부서진 내 이빨을 ‘재수 없다’로 포장하고는 치과에서 받은 소염진통제 몇 알로 삼켜버렸다.

 

대한민국 군대에서 사병은 몸이 아프면 100% 손해 보는 시스템이다. 국가는 외면하고, 내 몸을 치료하려면 내가 돈을 들이는 게 훨씬 더 이익이다(군 병원을 믿을 수도 없고, 지휘관이 대신 내줄 거도 아니다. 민간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치료비 청구하지 않겠단 서약서를 쓰고 나갈 수 있다). 돈을 들여도 밖에 나가서 치료하는 게 이득이다. 아니, 나갈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그건 故 홍정기 일병의 사례만 봐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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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군대를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말하지만, 사병을 노예가 아니라 사람으로, 고용한 직장인으로(제대하고 우리 사회의 ‘시민’이 되는 존재로 봐야 한다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봐야 한다. 이 관점이 변화하지 않는 한, 군 의료체계에서 사병은... 말 그대로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이제 ‘흉내’는 그만 내자. 청춘이란 시간에서 2년이란 기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시간이다. 이걸 국가가 뚝 베어 간 지 벌써 70여 년이 돼 가고 있다. 너무도 당연하게 우리의 인생을 착취해 갔다. 빼앗아간 시간을 돌려 달라는 게 아니다. 가져갔으면, 그 시간 동안이라도 사람대접해주고, 아프면 치료시켜주고, 끌고 갔을 때처럼 건강한 몸으로 돌려주라는 거다. 공짜로 부려먹는 노예가 아니라, 제대하고 돌아가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이 된다는 걸 국방부가 이해했으면 한다.

 

시작은 여기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