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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요리와 중화요리

 

“오늘 중국요리나 먹을래?”라는 물음에 “그래, 나도 오늘은 짜장면이 땡겨”라고 답하면 어떨까요? 이상한 대답은 아니지만 “그거 말고, 좀 본격적인 중국요리 말이야”라는 응답이 돌아올 가능성 역시 있을 것 같지요.

 

일본에서는 은근히 ‘중국요리’와 ‘중화요리’를 구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굳이 ‘쓰촨(四川)’이나 ‘광동(広東)’ 등 지명을 붙여서 부르면 “본격” 중국요리를 일컫는다는 느낌이 들지만, ‘중화요리’라고 하면 중국에 기원이 있지만 로컬라이즈된 부분이 많은 “현지식” 중국요리 같은 느낌 아닌가 싶습니다. “본격” 중국요리 같으면 약간 고급스러운 느낌, 한편 “현지화”된 중화요리는 대중적, 서민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가요?

 

대략 이렇게 구별해놓고 어디 적당한 체인 레스토랑이 없나 생각해봤는데요, 역시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서민파. 즉, 낮은 가격대라 고객층이 비교적 넓은 중화요리 체인이 떠오르지요. ‘교자의 오오쇼(餃子の王将)’, ‘히다카야(日高屋)’ 등은 필자네 집 근처에도 몇 군데 있을 정도입니다. 반면, 본격 중국요리 체인은… 글쎄요, 가난한 필자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겨우 ‘긴자 아스타(銀座アスター)’이네요.

 

아니, 하나 더 떠오르는 체인점이 있습니다. 바로 ‘바미양(バーミヤン)’이지요. 스카이락 계열의 체인점으로, 오오쇼 같은 서민파 중화요리 집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렇다고 본격 중국요리집도 아닌, “고급 중국요리집 만큼 문턱이 높지 않으나 서민파 중화요리 체인보단 좀 본격파 냄새나는 패미레스('패밀리 레스토랑'의 일본식 표현)”라고 할까요. 나쁘게 말하면 본격 중국요리집인 척하는 어중간한 패미레스이지만, 좋게 말하면 그저 저렴할 뿐인 중화요리 체인과는 선을 그은, 중국요리에 자신들의 특색을 조합한 중국요리 패미레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독자 여러분이 바미양을 어느 쪽으로 볼지 궁금한데요, 이번에는 중화 레스토랑, 바미양을 소개해 보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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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미양은 스카이락 계열의 레스토랑으로 “중화”를 자칭하고 있는 모양.

 

 

2. 바미양 기본 정보

 

‘바미양(バーミヤン)’이라는 이름은 아프가니스탄의 옛 도읍, ‘바미양’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실크로드의 중계도시이자 대상(隊商 ; 낙타나 말에 상품을 싣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상인)의 휴식처이기도 했던 고대도시죠. “중화요리를 통해 쉼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계지이고 싶다”는 소원을 담아 따왔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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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미양은 스카이락 계열의 패미레스로 1986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2005년에는 아오모리・토와다(十和田)점을 열고, 47개의 도도부현 전부에 출점했으나 영업실적이 안 좋은 점포를 가스토(ガスト, 이미 필자도 소개한 바 있지요)로 전환해서, 현재는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방, 나고야를 포함한 중부지방, 오사카나 고베, 교토가 있는 관서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에 332점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2018.4 기준).

 

공식 홈페이지에도 나와있듯이 바미양은 중화요리 체인임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오쇼나 히다카야와 달리 일본인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중화요리집과는 분명히 다르지요. 스카이락 계열의 패미레스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먼저 오오쇼나 히다카에는 없는 드링크바(음료수 무한리필)가 있고, 결제수단이 다양합니다. 특히 신용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점이 패미레스답지요. 특정 메뉴에 대한 추천을 벗어난 수시로 이벤트를 하는 점 역시 바미양이 패미레스임을 상기할 수 있는 부분이겠네요. 무엇보다 바미양이 다른 중화요리 체인과 확연히 다른 대목은 메뉴가 “본격 중국요리인지, 이색 중화요리인지 좀 모를” 정도로 흔한 중화요리집 개념에서 벗어난 점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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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미양이 패미레스임을 상기케하는 드링크바. 바미양에서는 ‘바이킹’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네요. 일본에서는 뷔페 형식을 “바이킹”이라고 불러온 역사적 배경이 있어서 “바이킹” 하면 “뷔페” 형식을 떠올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3. 바미양의 메뉴 구성

 

메뉴 페이지의 대분류를 보면, 단품 요리류, 면류, 밥류로 등이 나와 있지요. 여기까지는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바로 그 옆에 전채・딤섬(點心 ; 주요 메뉴 옆에 같이 나오는 중국식 반찬)류와 가라아게류와 오츠마미(おつまみ ; 안주류)가 나란히 있는 겁니다. 교자가 딤섬에 분류되는 환경이라면 가라아게도 오츠마미도 다 쉽사리 딤섬으로 포함할 수 있을 텐데… 벌써 바미양이 다양함과 애매함을 살짝 보이고 있지요. 더 자세히 들어가면 그 다양・애매함이 화끈하게 어금니를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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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의 대분류. 본격 중국요리 냄새나는 것 같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가라아게류. 중국요리집인지 중화요리집인지, 어느 쪽도 아닌지 헷갈리지요.

 

먼저 일본식 중화요리의 대표선수, 교자(餃子)가 나와 있는 것은 딤섬류. 교자는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면 군만두 정도 될 것 같은데 일본 교자는 만두의 바닥만 구워서 나머지 부분은 반죽의 부드러움이 그대로 남아 있지요. 일본 교자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 것은 만두 튀김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암튼 이 교자가 바미양에서는 딤섬류에 분류돼 있어요. 이것엔 이론이 없는데 같은 분류에 샤오롱바오(小籠包)나 샤오마이(焼売), 급기야 베이징 오리구이까지 있는 상황. 샤오마이는 일본의 일반 가정에서도 종종 먹기는 하지만 샤오롱바오, 베이징 오리구이는 중국요리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말이죠, 샤오마이 바로 옆에 테바사키(手羽先)가 있습니다. 완전히 일본 이자카야 안주 메뉴지요. 감자튀김까지 나오니 얼핏 보면 중국요리인지 중화요리인지 이자카야인지. 보는 시각에 따라 ‘중화이자카야’처럼 느낄 수 있을 정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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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채・딤섬 메뉴. 언뜻 정통 중국요리집의 메뉴 같지만, 자세히 보면 교자, 테바사키, 급기야 감자튀김까지. 무슨 종류의 패미레스인지 모를 정도네요.

 

그래도 단품 요리류는 비교적 본격 중국요리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만, 잘 보면 “たっぷり野菜炒め(듬뿍 야채볶음)”이 있습니다. 야채볶음은 일본 중화요리집의 단골메뉴입니다. 다른 메뉴도 정말로 이런 요리가 중국 현지에 있는지 알 수가 없지요. 단 중국에서 온 친구가 친자오로스(青椒肉絲)랑 유린기(油淋鶏)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먹던 것보다 괜찮은 거 같다”고 그랬어요. 이 말을 “맛이 있는 본격 중국요리다”로 해석해야 할지, 아니면 “현지화에 성공한 중화요리”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의문은 깊어지는데 맛이 있으면 일단 오케이라는 넓은 마음으로 계속 메뉴판을 체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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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품 요리류. 본격 중국요리인지는 애매하나 친자오로스랑 유린기는 일부 중국인도 인정하는 맛. 필자도 좋아합니다.

 

면류에 이르면 한층 더 중국요리인지 중화요리인지 헷갈립니다. 탄탄멘(担々麺), 마라탄탄멘(麻辣担々麺) 정도는 좀 중국요리답게 보이기는 하는데 단언은 못 합니다. “博多(하카타)”나 “喜多方(기타카타)” 등 일본 지명이 붙어 있는 메뉴는 일본화된 중화요리임이 분명해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한데, 고모쿠야키소바[五目やきそば ; 딱딱한 볶음면 위에 야채볶음을 앙카케(탕수육 소스와 비슷하지만 맛을 전혀 다른 걸쭉한 소스)로 덮은 야끼소바]나 츠케멘(つけ麺 ; 면과 육수가 따로 제공되며, 면을 육수에 찍어 먹는 것)은 중국에도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라멘 분야에서도 정체성을 찾기 어려운 바미양이지만, 다른 중화요리 체인하고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오오쇼나 히다카야를 가본 적 있는 분은 느껴봤을지 모르겠지만 라멘류 맛이 약간… “케미컬”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직접적이라 할까요. 조미료가 혀를 바로 자극한다고 할까, 여튼 맛에 조화가 없고 짠맛과 매운맛이 입안에서 사이 좋게 지내주지 않는 느낌이 있습니다. 반면 바미양의 라멘류에는 그런 인상이 없어요. 조미료가 맛의 본체를 이룬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맛의 “조(調)”율을 위해 쓰여서, 식재료의 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많은 한국분들이 호소하는 “일본 라멘은 짜다”는 감상은 바미양의 라멘에는 해당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필자가 일본 라멘에 익숙한 일본인이기 때문에 비교적 그렇다는 이야기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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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류 메뉴 역시 바미양의 다양・애매함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면류와 비슷하게 밥류에도 일본식 개조 메뉴가 많은 느낌입니다. 원고를 쓰면서 살짝 알아봤는데 텐싱한(天津飯 ; 중화풍 앙카케 덮밥)이 완전 일본식 중화요리였더군요. 전혀 몰랐던 이야기라서 좀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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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류 메뉴는 상당히 적은 편. 앙카케를 좋아하는 필자의 눈은 역시 중화덮밥(中華丼 ; 고모쿠멘에 얹혀 있는 앙카케를 밥 위에 얹은 것) 쪽으로 흘러갑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바미양은 중화요리집인 동시에 패미레스이기도 하지요. 다른 중화요리 체인의 후식(디저트) 메뉴는 종류도 적고, 내용도 중국은커녕 중화도 못 느끼는 수준인데, 바미양은 다릅니다. “중국에도 똑같은 것이 있을 만할” 정도의 풍미를 풍기고 있어요. 후식(디저트)류의 이름부터가 “甜品”. 이 한자어를 읽을 수 있는 일본인은 중국어 경험자 말고는 없을 겁니다. 중국어로 대충 “티엔핀”이라 읽는다던데 독자 여러분 중에 읽는 법을 아는 분이 얼마나 있을지…. 라인업도 블랙 타피오카의 딸기 우유, 후르츠(과일) 오교치 등 일식 중화요리집에서는 먹기 어려운 메뉴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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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읽는 법을 모르는 甜品(디저트) 메뉴. 다른 중화요리 체인에서는 볼 수 없는 본격 중국요리인 듯 아닌 듯 보이는 후식 메뉴들이지요.

 

그렇다 해서 바미양이 패미레스임을 포기한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수시로 치러지는 행사가 그런데요.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시점에는 “BM급 구르메(미식) 축제”를 개최중. “BM급”이 뭐지? “B급 구르메”는 들어 본 적이 있어요. 고급스럽지 않고 싼데 맛이 괜찮은 음식 정도의 뜻일 거예요. 근데 “BM급”은 처음 듣는 말. “싸고 M스런...”이라 중얼중얼… 도저히 생각 안 나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바(B)미(M)양급 구르메”랍니다. 이걸 알고는 글자로 쓰기가 좀 그런 말을 외치고 그랬는데 막상 메뉴를 보니 매우 맛있게 보여서 허락(그런데 아직까지 “바미양급”이 뭔지 모르고 있네요). 특히 이것 역시 일본식 개조 중화요리로 알려진 “히야시 츄카(冷やし中華 ; 일본식 중화냉면?)”가 있는 거를 봐서는 원고 따위는 그만 쓰고 바로 바미양으로 달려갈 뻔했습니다. 영웅적 사명감이 저를 말리고 계속 글을 쓰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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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뜻인지 아직도 정확히 모르는 바미양급 구르메(미식) 축제. 뜻이 어떻든 일단 맛이 있어 보이니 허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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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미양급 구르메 축제의 히야시 츄카. 일본인들은 중국집들이 “冷やし中華はじめました(히야시 츄카 시작했습니다)”라는 전단을 달아야 여름이 왔다는 걸 실감합니다. 느낌상 기상청이 선언하는 여름보다 더 권위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런치 메뉴를 마련하거나 해피아워(술 가격이 싼 시간대)를 설정하거나, 심지어는 샤브샤브 무한리필 코스까지. 패미레스, 이자카야, 무한리필 전문점 등 여러 요소를 복합적으로 갖춰버려서 뭐가 뭔지 정리가 안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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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미양 런치 메뉴. 이제 본격 중국요리냐, 일본식 중화요리냐는 문제제기 자체가 허무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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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아워도 있네요. 해피아워라는 말은 영어 “hour”랑 일본어 “泡(아와 ; 거품이란 뜻으로 맥주를 연상시킴)”가 겹친 것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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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브샤브 무한리필까지. 필자도 몇 번 시켜 봤는데 되게 괜찮더라고요.

 

필자가 본격 중국요리를 아예 몰라서 바미양의 정체성을 애매하게 여기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맛이 있으면 괜찮다” 원칙을 유지하고 먹으러 갑시다.

 

 

4. 현장 탐방~바미양 나가레야마아오타(流山青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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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치바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찾아간 바미양은 치바현 나가레야마시에 있는 나가레야마아오타(流山青田)점. 역시 친구 한 명과 같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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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미양 나가레야마아오타점의 외관. 이번에도 가족 손님들이 없을 시간대를 노려, 좀 늦게 갔습니다.

 

가게에 들어서면 종업원분이 일행의 인수와 흡연 여부를 물어옵니다. 둘이서 왔고 담배를 피우는 이가 있다고 전하니 바로 흡연석 쪽으로 안내해줬어요. “감사합니다” 하면서 자리에 앉자마자 필자 일행을 당혹에 빠뜨린 것은 바로 세 권이나 되는 메뉴판. 저녁용 기본 메뉴판에 더해 샤브샤브 무한리필용과 “BM급 메뉴 축제” 메뉴가 식탁 위에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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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으니 세 권이나 되는 메뉴판이 환영해줬고 필자 일행은 당혹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렸지요.

 

패미레스답게 처음부터 다양함의 세례를 받았는데, 메뉴를 선택할 때 가장 컸던 갈등은 이랬습니다. 먼저 바미양을 소개한다는 차원에서는 기본 메뉴판 위주로 바미양이 본격 중국요리집과 일식 중화요리집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다는 걸 생생하게 체험하는 게 낫습니다. 하지만 무려 999엔이라는 싼 가격에 술 무한리필을 추가할 수 있는, 샤브샤브 무한리필이 있는 상황. 직전에 샤브샤브 레스토랑(샤브요)을 소개한 것을 감안하면 이번에는 이리저리 고민할 것 없이 일반 메뉴판에서 적당히 골라서 바미양의 애매한 정체성을 리포트해야 마땅하지요. 그렇지만 순수 취재를 위해 먹었던 음식값을 하나도 돌려받지 못하니 기사를 써봤자 얼마 안 남는 슬픈 처지를 생각할 때 전에 소개했다는 이유만으로 샤브샤브 무한리필과 저렴한 술 무한리필을 쉽사리 포기할 수가 없는 겁니다(설마 일본에 사는 일본인인 필자가 이런 식으로 갑질 당할 줄은 상상치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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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미양의 특색을 제대로 전하려면 역시 일반 메뉴판에서 선택하는 것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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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미양의 샤브샤브 무한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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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브샤브 무한리필에는 술 무한리필을 추가할 수 있어요. 999엔이란 싼 가격임에도 생맥주가 기린 이치방시보리. 이것만으로도 대박급인데 일본 소주나 중국 술인 소흥주(紹興酒)까지 포함돼 있어서 가성비 짱입니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사명감이 앞선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서투른 글을 읽어주는 독자분이 한 명이라도 계시는 한, 언제든 사심을 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겁니다(술 무한리필의 유혹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팔아버릴 뻔했던 것이 부끄러운 바입니다). 이렇게 의리, 사명감, 책임감에 살아간다는 것에 취하면서 메뉴판을 바라보았는데, 방금 막 포기한 “술 무한리필”의 표시가 다른 데서도 보이는 겁니다. 응? 이거 뭐지? 했더니, 맙소사. “중화연회코스”를 시키면 999엔짜리 술 무한리필을 할 수 있다잖아요. 코스는 “お気軽コース(부담없는 코스)”, “団欒コース(단란코스)”, “満喫コース(만끽코스)” 세 가지. 가격도 2인분에 각각 2,998엔, 3,998엔, 4,998엔으로 상당히 합리적이지요. 필자 일행은 중간인 ‘단란코스’를 시키기로 하고 술 무한리필도 추가했습니다. 8가지 요리(디저트 포함)에다 술 무한리필까지 해서 1인당 약 3만 원이면 꽤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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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연회코스. 이름에 “연회”가 들어간 만큼 술 무한리필 추가도 가능합니다. 이런 코스가 있단 걸 알고 정말 감동했지요.

 

첫 번째로 마실 술을 생맥주로 지정했더니 생맥주가 먼저 나옵니다. 일본에는 생맥주를 시켰는데 바로 나오지 않으면 난동을 부려도 된다는 규칙이 있어서 생맥만큼은 바로바로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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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면 즉시 나오는 생맥주. 999엔짜리 술 무한리필에 생맥주가 포함되는 것은 찾기 어렵지 않나 싶네요. 엄청난 가성비라 할 수 있습니다.

 

찬 생맥주로 목을 축이는데 완탕스프가 나왔습니다. 코스의 첫 번째 메뉴지요. 육수가 짙은 것에도 호감을 느꼈지만, 놀랐던 것은 완탕이었어요. 완탕은 조그마한 만두라고 설명하면 일단 맞을 건데, 일식 중화요리집에서 먹는 완탕은 소가 너무 작아서 그냥 반죽을 먹는 느낌이 들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단란코스의 첫 타자로 등장한 완탕은 소가 충분한 볼륨을 갖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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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나온 완탕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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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완탕에서 반죽 밖에 못 느끼는 필자이지만 이번에 먹은 건 소가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서 깊이 감동.

 

두 번째로 나온 메뉴는 빵빵지(棒々鶏) 샐러드입니다. 야채 위에 찐 닭가슴살을 쪼개고 얹은 샐러드죠. 고소한 참깨드레싱을 뿌린 스탠다드한 스타일. 닭고기 옆에 첨부된 면두부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짙은 완탕스프로 무거워진 입안을 한번 가라앉히는데 큰 역할을 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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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지 샐러드. 완탕스프의 짙은 맛을 지워주고, 코스요리가 본격 시작되기 전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줍니다.

 

세 번째로 친쟈오로스(青椒肉絲)가 나왔네요(야호~!!). 어떻게 보면 한국의 중화요리집에서 먹을 수 있는 고기피망볶음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맛은 전혀 다릅니다. 먼저 친쟈오로스는 주로 오이스터(굴)소스로 간하기 때문에 한국의 중국집에서 먹는 고기피망볶음보다 덜 짜고 덜 매우며, 굴소스 맛이 센 편입니다. 이 점에서는 본격 중국요리에 가깝지 않나 싶네요. 다만 바미양의 친쟈오로스는 소고기를 사용합니다. 중국에서는 주로 돼지고기로 만들고, 소고기를 쓸 때는 “青椒牛絲” 아니면 “青椒牛”로 표기한다네요. 본격 중국요리인 듯 아닌 듯, 바미양을 상징하는 메뉴라 할 수 있겠지요. 일단 맛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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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쟈오로스. 예전에 중국 친구랑 같이 먹어본 적이 있는 메뉴로, 이걸 맛있다고 느끼는 진정 중국인이 세계에 적어도 한 명은 있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중국요리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네 번째로 나온 것은 이름도 모르고 애초 중국요리인지 아닌지조차 확연치 않은 것. 메뉴판으로 확인해 보니까 “ビンチョウマグロの秘醤ソース(날개다랑어의 비장소스)”라는 이름이네요. 날개다랑어 회에다 “비장(秘醬)”이라 부르는 소스로 간을 한 요리인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사진으로 보기에는 살코기인 줄 알았는데 설마 생선이 나오더니 참 의외였지요. “비장” 소스는 간장과 미림을 베이스로 한 것 같았고, 날개다랑어 회에 잘 스며들어 있어서 처음 먹어 보는 건데 매우 맛있었어요. 무엇보다 기름기가 많은 친쟈오로스 다음에 시원한 생선을 배치해둔 것은 패미레스답지 않은 고려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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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소스로 간을 한 날개다랑어 회. 굴소스의 진한 맛과 기름기를 즐긴 다음에 먹으면 생선의 시원함이 한층 더 두드러지네요.

 

스프, 샐러드, 고기구이(볶음), 생선에 이어, 다섯 번째로 등장한 것은 튀김요리입니다. 필자도 아주 좋아하는 유린기지요. 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 닭고기에 상큼한 소스를 뿌린 겁니다. 신 소스가 바삭바삭 씹는 식감을 더 잘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물론 그 안에는 육즙이 쥬시한 닭고기가 숨어들어 있는 거지요. 코스요리의 진면목은 식감과 재료의 다양함을 느끼는 것에 있다고 누가 말했다던데, 신맛이 필자의 감각을 좀 더 예민하게 만들었는지 유린기를 먹으면서 앞에서 먹었던 요리의 다양함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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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린기는 상큼한 신맛과 바삭바삭한 식감, 그리고 그 안에 숨어든 쥬시함을 즐길 수 있지요. 그런데 신맛은 인간을 더 예민하게 만드는가요?

 

요리 메뉴로서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수부타(酢豚)입니다. 튀긴 돼지고기와 잘게 자른 피망이나 양파를 볶아, 시면서도 약간 단 걸쭉한 소스에 감은 것이지요. 겉보기에는 한국식 탕수육과 비슷해 보이지만 신맛이 더 강한 것 같아요. 물론 유린기를 먹은 후이기 때문에 신맛을 그다지 세게 느끼지 않았어요. 식감은 유린기의 바삭바삭함과 대조적으로 끈적끈적한 느낌. 가게에 따라 파인애플 조각이 들어가는데 바미양 것은 파인애플은 안 들어가는 본격 중국요리식입니다(참고로 일본에는 수부타에 파인애플을 넣을지 여부를 두고 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적어도 비즈니스 자리에서는 수부타 이야기는 안 꺼내는 게 현명한 것 같습니다). 맛 자체도 괜찮은 데다 나오는 순서도 매우 좋습니다. 바미양,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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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맛과 조화해서 살짝 단맛이 나는 수부타. 유린기 다음에 나오는 것도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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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요리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짧아서 한 요리를 한두 입 먹을 때 그 다음 요리가 나온 점이 좀 아쉬웠어요. 그래도 사진 찍기에는 온 식탁이 호화롭게 보여서 좋을지 모르겠네요.

 

단품 요리가 다 나오면 이제 탄수화물로 마무리를 하는 차례죠. 챠한(炒飯. チャーハン)입니다. 한국에서 말하는 볶음밥인데요, 이거 은근히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만약 여기까지 와서 볶음밥이 볶음밥의 최소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되기 때문이지요. 볶음밥은 숟가락으로 제대로 걷어내지 못한 쌀이 중력을 못 이겨 그릇에 떨어질 정도의 절묘한 바슬바슬함이 생명이거든요. 단독으로 먹으면 찰기가 없지만 스프랑 같이 먹으면 천국에 데려다주는 절묘한 보슬보슬함. 이건 볶음밥의 생명이라 바꿔 말해도 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물기가 많아 축축한 볶음밥이 하나도 흠이 없던 중화연회 코스를 막판에 무너뜨리는 악마의 시나리오를요. 순간 기본을 잊어버린 볶음밥이 나왔을 때 터질 분노를 억누를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필자의 마음을 스친 겁니다. 친구에게 그 심정을 토로했더니 그냥 “ㅋㅋㅋ”라는 반응. 이제 얘랑 친구 그만 할까 생각하는 순간, 나왔습니다, 제대로 된 볶음밥(아싸~!!). ‘마무리’로 부르기에 하나도 부끄럼이 없는, 금빛 볶음밥. 아아, 친구여, 내가 정신없어서 아주 잠시라도 친구 그만할까 고민한 것이 이렇게나 부끄러운지 몰랐소. 이제 완벽하게 마무리 지으며 우리 위장을 만족시켜 준 단란코스를 칭찬하자. 이런 기분이었지요. 요약하면 그냥 맛있는 볶음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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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음밥의 필수요건인 바슬바슬함을 느낄 수 있는, 기본에 충실한 볶음밥입니다.

 

눈물까지는 안 흘렸지만 꽤나 맛있게 먹다가 종업원분이 “후식은 언제 갖다 드릴까요?”라고 물어왔습니다. 후식까지 무작정 제공하면 안 된다는 개념은 있는 모양이네요. 필자 일행은 테이블에 올라간 요리를 다 먹고 나서 시키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아, 맥주 하나 더 주세요”라고 술 무한리필을 까먹지 않는 자세를 과시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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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은 후르츠(과일) 오교치. 중국요리를 먹은 후에는 달달한 맛보다 상쾌한 맛이 더 좋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교치는 중국요리 후식으로 딱 맞네요.

 

웬만하면 이제 술은 그만 먹고 후식과 함께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면 좋을 텐데, 음료수를 마시려면 추가로 시켜야 했어요. 반면 술은 그냥 마실 수 있는 상황이라, 오교치를 먹으면서 맥주를 마신다는 참 이상한 일을 겪게 됐습니다. 후식까지 먹고 나서 결국 맥주로 마무리했지요. 생각해보니 무한리필에는 소흥주(紹興酒)도 포함됐었는데 계속 생맥주만 마셨네요. 살짝 반성하면서도 대만족한 바미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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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생맥주 노선을 관철한 필자 일행. 다음에는 소흥주도 마셔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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