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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뉴스

 

워싱턴 D.C.의 세계에서 가장 큰 언론 박물관 '뉴지엄(Newseum)'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나오는 종교, 언론, 출판, 결사, 청원 등 5가지 자유의 가치에 대하여 전시하고 교육하는 곳이다. 그곳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어떤 나라에 갔을 때 그 나라의 신문들이 모두 좋은 뉴스로만 채워진 것을 발견한다면, 그 나라의 좋은 사람들은 모두 감옥에 있을 것이다

(“If a person goes to a country and finds their newspapers filled with nothing but good news, there are good men in jail.”)

 

이 글귀는, 2013년 연말 어떤 기자가 대학생들이 내붙인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에 부끄러움을 느껴, 무뎌진 언론의 비판 정신을 자성하는 칼럼 서두에 인용해 알게 되었다. 멋진 글귀는 한데 적어놔야 오늘 같은 날 써먹는다. SBS<김어준의 블랙하우스> 마지막 방송 소감을 쓰기 위해 오래된 메모를 뒤졌다. 덕분에 저 글귀가 담긴 칼럼을 읽은 날 아침 뉴스의 기록도 보게 되었다.

 

서울이 영하 8도 이고, 간밤에 런던에 한 극장이 무너졌고, 미국에서는 대형 쇼핑몰이 전소되었으며,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때 설레는 이유는 정신과적으로 ‘스키마’라는 게 작용되어서 이전 성탄절의 즐거운 감정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라는 의학전문 기자의 설명.

 

 2013년 12월. 최순실이 청와대 정원을 유유히 거닐고 있었고, 강원랜드 신입사원 518명 전원이 ‘빽’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대학가에 대자보가 나부끼던 그때, 우리가 보고 있던 뉴스의 풍경이다. 그로부터 4개월 후, 세월호가 침몰했다. 무뎌지다 못해 뭉툭해진 펜촉이 전하는 진도 앞바다의 소식은 참혹했다. 하인리히 법칙이라 했던가. TV에서 심심하고 좋은 소식들만 흘러나와 어느 순간 뉴스가 따분하고 평화롭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신호로 봐도 좋을 것이다. 뉴스들은 매일같이 시끄럽고, 격렬하게 부딪혀야 한다. 헤집고 문제 삼고 논쟁하고 결국엔 지지와 반론을 얻어내는 것이 뉴스와 언론의 본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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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편파적인가

 

공영방송은 방송의 목적을 영리에 두지 않고, 오직 공공의 복지를 위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뉴스를 전달한다. 한국방송공사 KBS, 문화방송 MBC, 교육방송 EBS가 그러한 명분으로 공공재인 지상의 전파를 사용한다. 민간상업 방송인 SBS는 조금 특별한 경우지만 지상의 전파를 사용하는 영향력 있는 방송사인 만큼, 다른 공영방송에 준하는 역할을 요구받는다. 

 

셋톱박스를 너머 모바일 기기로 언제 어디서든 방송과 뉴스를 소비하는 시대에 지상파 방송의 역할과 의무는 좀 따분한 소리일 수 있으나, 저 멀리 산간벽지에서 세상과 멀리 사는 이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의 창은 아직은 그래도 지상의 전파다. 맞다. 그러므로 지상파는 공정함을 지향하고 편파적임을 지양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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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6개월 만에 마지막 방송을 했다. 종영에 대한 당사의 공식 입장은 ‘진행자 김어준과의 재계약을 앞두고 프로그램 진행방식과 프로의 성격 등을 놓고 벌인 의견 차이’였다. 제작과정의 단순한 의견 차이 때문에 준수한 시청률의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경우는 드물다. 역시, 지난 3월 정봉주 전 의원 성추행 의혹에 관련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받은 중징계가 결정적인 명분이 되었을 것이다. 선별적 보도와 편파성. 그것이 그동안 방송된 25부 전체에 일반화되었다. <블랙하우스>가 더 이상 지상파방송에 담길 수 없는 이유다.

 

더한 선별과 더한 편파로 점철된 방송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매번 재 허가와 승인을 받아내는 방송사들을 굳이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무엇이 선별이고 무엇인 편파인지는 각자가 서 있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어떠한 의혹 제기와 그것에 제시된 근거는, 그 사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따라 타당한 질문으로 혹은 편파적인 매도로 다가올 수 있다. 그것이 과연 타당한 질문인지 편파적인 매도인지는 치고받으며 갑론을박을 해보면 알 일이다. 방송의 공정함은 그것을 다루는 과정에서 지켜져야 한다. 모든 질문은 의구심에서 시작된다. 의구심은 원래 편파적이다.  

 

 

블랙하우스가 남긴 것

 

SBS의 6개월간의 실험은 큰 의미를 갖는다. 다루는 내용, 그것을 다루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사람 모두 파격이었다. 국회 복도를 휘저으며 마이크를 들이대는 희극인 강유미의 노골적인 질문은 사안의 본질과 바로 닿아있다. 당황스러워하는 정치인들의 반응에서 시청자들은 생각해보게 된다. 국회의원에게 질문을 던지는 강유미의 당돌함과, 시민의 질문에 응하는 정치인의 불쾌한 태도 중 무엇이 더 무례한 것인지를. 정치와 시사를 다루는 엄숙함을 깨부수는 블랙하우스의 풍자코드는 우리가 위임한 권한을 가지고 일하는 자들에게 어떤 질문과 요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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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하우스>는 그동안 다루지 못했던 민감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슈들을 잔뜩 끌고 와 금요일 아침마다 관련한 검색어를 수놓았다. 이 문제적 프로그램이 팟캐스트 스트리밍이 아닌 지상의 전파를 타고 나갔다. 무려 반년 동안. 아주 짧은 족적이지만, 남긴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일어나는 세상의 어떤 일에 대하여 시청자들 좀 더 적극적인 의구심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다뤄져야 할 문제, 이 정도는 툭 까놓고 질문해도 될 문제의 반경이 넓어졌다. 지상의 전파에서까지 말이다. 산간벽지에서 세상과 멀리 살던 사람들마저도 이제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송곳의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한번 넓혀진 반경은 줄어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 아스트랄한 김어준의 클로즈업 화면을 볼 일이 없어졌지만, 이후의 방송과 뉴스들이 <블랙하우스>가 넓혀 놓은 반경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당신이 아침에 듣는 뉴스가 다시 따분하고 평화로워진다면, 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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