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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세계통일규격으로 기상관측을 시작한 1907년 이래 가장 더운 여름을 나고 있다. 8월 1일 서울은 섭씨 39.6도를 기록했고 강원도 홍천은 41도를 넘어섰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은 올 상반기가 1880년 기록 측정 이후 역대 네 번째로 높은 평균기온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올해보다 기온이 높았던 해는 2016, 2015, 2017년 순으로, 최근 4년이 138년 중 가장 더웠다는 말이다. 기후변화가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7월 초의 장마 이후로 계속되는 무더위는 선풍기와 냉방기 없이는 못 사는 세상을 만들었다. 7월 하순부터 시작된 열대야로 밤새 냉방기를 켜는 가정이 부지기수다. 사정이 이러하니 연일 언론에서는 전기요금 폭탄이니 누진제 폐지니 하며 속속 날아드는 전기요금 고지서 걱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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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는 한 달에 얼마의 전기요금을 내고 살고 있을까.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그의 이름은 전기가 아니라 전기요금이 맞다. ‘국가나 지방 단체가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국민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돈이 아니라 가정이나 기업 등에서 사용한 전기에 대해 한국전력공사에 그 값을 지불하는 것이니 '요금'이다. 썼으니 그 값을 치러야 한다. 비싸냐 적정하냐는 따져볼 문제지만 적게 쓰면 적게 나오고 많이 쓰면 많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우리 집은 지난해 총 2,422kWh의 전력을 사용해 217,150원의 요금을 냈다. 공동전기와 엘리베이터 전기료까지 합치면 268,350원이니 한 달에 약 210kWh의 전기를 쓰고 23,000원의 전기요금을 낸 셈이다. 두 식구 사는 작은 아파트에 냉방기는 물론 텔레비전도 없으니 평균보다 적게 나왔다. 한국전력 빅데이터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평균은 가구당 월 221.24kWh 23,938원의 요금을 냈다고 한다. 이 수치는 1인 가구를 포함한 것이므로 보통의 가정은 300kWh 안팎이 평균이다.

 

적게 쓰면 조금 내고, 많이 쓰면 더 내는데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런데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줬다. 가정용 전기요금엔 누진제가 적용된다. 원성은 누진제로 몰렸고 마침내 8월 1일 자유당 조경태의원은 누진제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동네북이 된 주택용 누진제

 

현재 우리나라 가정용 전기요금은 누진제로 이루어져 있어 사용량이 많을수록 단위 당 요금 수준이 높아진다. 누진제는 1차 석유파동을 겪은 뒤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1974 12월부터 가정용에 대해 3단계, 최저구간과 최고구간 요금 비율 1.6배로 처음 적용되었다. 1979 2차 석유파동 후에는 12단계, 누진율이 19.7배까지 벌어졌다. 이후 1989 4단계 4.2, 1991 5단계, 1995 7단계 13.2배로 축소와 확대를 오간 주택용 누진제는 국제유가가 급등했던 2000년에 누진배율이 18.5배까지 확대되었다가 2004 6단계 11.7배로 완화돼 2016년까지 운영되었다.

 

전력요금표 (2004~2016.11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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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진제에 대한 반발은 꾸준히 있어왔다. 기후변화 영향인지 여름철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냉방기 설치 가정이 늘어나면서 언제부턴가 전기요금 폭탄이라는 말이 소비자들을 자극하였다. 2012년 한전은 누진제 개편 요구에 대해 주택용 고객의 약 87%가 원가 대비 낮은 판매단가를 적용 받고 있으며, 월평균 전력사용량이 375kWh 이상인 고객 13%만이 원가를 상회한다고 방어하면서도 누진제의 3단계 3배수 축소 등 개편 가능성을 내비쳤다.

 

2013 8월엔 새누리당 에너지특별위원회에서 당정이 누진제의 단계와 누진율 축소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막상 완화하려 하니 오히려 적게 쓰는 서민층 부담은 커진다는 반발이 만만치 않은 데다, 가정용과 산업용 전기료 차이가 부각되면서 결국 개편안을 내놓지 못했다. 20148월엔 한전이 가정용 전기로 거둬들인 부당이득을 반환해달라는 소장이 곽상언 변호사의 주도로 법원에 접수되었다. 누진제가 법을 위반했다는 취지였다.

 

역대 지구 평균 기온 기록을 경신한 2015년 여름, 우리나라에서는 냉방기 사용으로 전기요금이 늘어난 가정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마침 2014년 하반기부터 유가가 급락하여 발전원가도 내려간 상황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주택용 4구간에 대해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3구간의 요금을 적용하고, 산업용은 8월부터 1년간 요금 경감 특례를 시행하기로 하였다. 당시 주택용 4구간 301~400kWh에 대해 280.6/kWh이 아니라 그 아래단계인 187.9/kWh을 적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7~9월 사이 한 달에 300kWh 이상을 사용한 가구는 최고 9,270원을 할인 받는 셈이다. 전체적인 예상 비용으로 하면 주택용에는 떡 하나, 산업용에는 떡 세 개를 준 명백한 끼워팔기였지만, 소비자들에겐 전기요금을 깎아줄 수도 있다는 선례가 되었다.

 

2016년 입하가 막 지난 5월 12일 산자부는 언 발에 오줌누기식의 한시적 요금 인하는 없다고 미리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전력 수요는 사상 최대 기록을 연일 갈아치웠다. 소비자들의 불만은 더위만큼이나 뜨거워졌고, 8월 12일 새누리당이 항복을 선언했다.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각 구간의 상한을 50kWh씩 올려 약 20%의 전기료를 경감하기로 한 것이다.

 

개정을 시행한 지 10년이 지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누진제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당시 누진제는 100kWh 단위로 구간이 나뉘어져 300kWh 이상에 대해서는 총괄원가 이상의 요금을 부과하고 있었는데, 가정의 전기사용량이 늘어나 그 대상자가 2011년에 이미 33.2%를 넘어서 있었다. 2013년 감사원에게 개선하라는 지적을 받고도 정부가 밍기적거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국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3~4단계 1.4~6.9배로 개편하는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였다.

 

201612월 13일 산자부는 마침내 누진 구조를 3단계 3배수로 대폭 완화하는 한국전력의 전기공급약관 변경안을 승인하고 12월부터 소급 적용하기로 하였다. 쟁점은 중간요율을 평균 판매단가인 130원으로 할 것인가였으나, 1단계의 요율은 이전 1, 2단계의 평균으로 하고 3단계는 이전 3단계 요율을 적용하는 절충안으로 결정되었다.

 

전력요금표 (2016.12~ 시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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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얼마나 내세요?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상대방에게 한 달 전기요금이 얼마나 되는지 묻게 된다. 그런데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런 이들은 대개 세 부류다. 가진 돈이 많아 나가는 돈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거나 가진 건 많지 않아도 그저 지출에 계획성이 없는 사람, 아니면 보긴 했으나 그리 크지 않은 액수라 곧 잊어버리는 사람이다. 당신은 어느 경우인가? (이 글을 읽을 정도면 물론 잘 알고 있는 분일 테지만…)

 

현행 누진제로 전기요금을 계산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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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세(10%), 전력산업기반기금(3.7%) 포함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월 300kWh 가정이 한 달에 내는 전기요금은 약 45,000원이다. 요즘 별다방의 커피 평균값이 5천원이니까 커피 9잔 값인 셈이다.

 

우리는 보통 가정에서 전등으로 불을 켜고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하며 세탁기로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려 청소를 한다. 매일 시청하는 텔레비전은 물론 기호에 따라 음향기기를 장만하기도 한다. 이제 컴퓨터는 생활필수품이 되었으며 스마트폰은 수시로 충전한다. 난방까지 대체하여 전기장판, 온수매트 등을 쓰는 가정도 늘어났다. 이 밖에 집안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냉방기, 조리기구, 공기청정기 등 각종 전기전자제품이 추가된다. 우리는 이 다양한 생활의 편의를 한 달에 별다방 커피 10잔 값도 안 되는 돈으로 누리고 있다.

 

여름철 냉방은 평소의 전기사용에 추가되는 요소다. 당연히 날이 더워 냉방기 사용 시간이 길어질수록 전기요금은 많이 나온다. 그리고 누진제 단계를 넘어서면 요금은 할증된다. 냉방기의 사용에 따라 늘어나는 전기 사용량은 얼마나 될까?

 

마침 딴지일보 마빡에 새다리님(twophase)이 수 년 전부터 측정해온 자료를 바탕으로 좋은 글을 올려주었다(링크). 그는 거실에 방 4개인 집에서 16평형 인버터 스탠드 에어컨을 실내온도 27, 풍량 강으로 설정하여 24시간 운전하였다고 한다. 지난 7월 하순 5일간의 측정치는 하루 6.41~10.30kWh를 보였다. 새다리님이 한 달 내내 24시간 냉방기를 가동한다고 하면 월 추가되는 사용량은 약 190~310kWh이다.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17평형 스탠드형 냉방기의 사용전력은 월 66~71kWh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7~8시간 26를 기준으로 한 예상이라고 하니 24시간 가동한다고 치면 약 198~244kWh된다. 새다리님의 실제 측정치가 냉방기에 표시되어 있는 수치와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새다리님의 집에서 추가된 사용량에 최고요율인 3단계 요금(280.6/kWh)을 적용해도 월 53,000~87,000원이 늘어난다. 24시간 한 달 내내 냉방기를 돌려도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에도 가급적 하루 종일 냉방기를 켜 두었는데, 여름 내내 냉방기의 전력사용량은 모두 256.7kWh였다고 한다. 최고요율을 적용해도 최대 72,030으로 한 달에 5만원도 안 되었다는 것이 새다리님의 실제 전기요금 납부 보고서 내용이다. (물론 각 주택의 단열 효과, 각 냉방기의 에너지 효율 차이, 설정 온도 차이 등에 따라 이보다 더 나올 수도 덜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개별 소비자가 감수해야 할 요인이다.)

 

지난 8월 6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전지구적인 이상 기후로 폭염도 상시적인 자연 재난이 되었으며 냉방기기 사용을 국민의 건강, 생명과 직결된 기본적인 복지로 보아 ‘7, 8월 두 달 간의 가정용 전기요금에 대해 한시적 누진제 완화와 저소득층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대한 전기요금 할인 확대 등 전기요금 부담 경감 방안을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

 

8월 7일 산자부는 당정협의를 통해 7, 8월 두 달간 주택용 1, 2단계의 상한을 100kWh씩 올려서 적용하기로 하였다. 1단계는 300kWh 이하, 2단계는 301~500kWh가 되어 가구당 19.5%가량의 요금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산자부의 설명이다.

 

요금혜택을 받을 여러분, 배달되는 고지서의 사용량을 보고 얼마나 줄었는지 꼭 살펴보시라. 기존대로 나왔을 때의 ‘전기요금 폭탄과 얻어낸 할인요금의 차이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자, 이제 누진제를 폐지하고 주택용 판매단가(2017년 108.50원/kWh)를 전체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때 사용량에 따라 현재 요금체계와 어떻게 다른지 보자. 단일 적용 시 기본요금은 현행의 중간값인 4,000원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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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50kWh 사용 가구까지는 지금보다 더 많은 요금을 부담한다. 270kWh를 넘으면 지금보다 요금이 적어지기 시작해 300kWh는 약 3000원이 줄어든다. 500kWh를 넘으면 눈에 띄게 줄어들어 800kWh를 쓰는 집 이상은 약 절반 이상 줄어든다. 여러분 가정은 어떠신가?

 

 

 

 

(뱀발)

 

2009년 한나라당 임동규 의원이 한국전력으로부터 최근 2년간(2007 7~2009 6) 최다 전기 사용 현황자료를 받은 적이 있다. 이 때 주택용 상위 20인의 사용량과 납부액이 드러났다.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면서 실명 자료는 자취를 감추었고, 그 뒤로는 발표된 적이 없음)

 

이 자료를 보면 이 분들은 정말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다. 폭탄의 뇌관(누진제)을 제거한 액수(2008년 주택용 판매단가인 114.97/kWh를 일률적으로 적용)와 함께 구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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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들이야말로 진정 누진제 폐지를 통해 전기요금폭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분들이다. 이 분들은 재작년 말에 누진제가 3단계 3배수로 바뀌면서 이미 많은 혜택을 보신 분들이다.

 

이상,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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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이토록 거침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 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