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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일을 미화하다니?!

 

드라마 하나가 힛트치면 언제나 따라오는, 그런 시시콜콜한 논란에 그칠 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 왜곡 드라마 방영을 제도적으로 막아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오고 수많은 동의가 달리는 걸 보면서, 이것이 시시콜콜한 논란이 아닌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역사 담론의 표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스터 션샤인> (이하 <미션>)이 친일을 조장한다는 주장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구동매란 캐릭터가 흑룡회에 가담하게 되는 원인이 백정 계급에 대한 조선 사회 전체의 핍박에서 비롯되었다. 구동매 뿐 아니라 최유진, 이완익 등 조선의 독립이 아니라 타국에 몸을 의탁한 캐릭터들의 동기엔 '병맛나는 조선'에 대한 반감이 서려있으며, 이러한 전개는 결국 조선을 제국주의의 피해자가 아닌, '좃밥이었기에 그럴 만하다.'는 식의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자연스럽게 귀결된다."

 

예전 같으면 "아니 쉬벌, 그깟 드라마 가지고 왜들 지랄이여"하고 웃고 넘겼겠지만, 친일파로 강력하게 의심되는 사람들이 권력의 중심에 있었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도 시도했던 것이 고작 몇 년 되지 않은 일이다. 우리 사회엔 여전히 친일과 식민지배, 제국주의와 근대화 등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문제가 산적하니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긴 하다는 점을 우선 하나 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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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친일파요!"

 

얼마 전 팟캐스트 <입시왕>이란 프로그램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연자가 모 고등학교에 강연을 하러 갔는데, 아름다운 건물을 자랑하는 그 학교 한복판에 어떤 인물의 동상이 있다 카더라. 아이들에게 동상이 누구냐고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는데, 재차 묻자 한 학생이 구석에서 큰 소리로 "친일파요!"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동상의 주인공은 인촌 김성수. 성리학자 집안의 후손이자 금수저였으며 여기저기 사업을 많이 벌이고 초반엔 독립운동에도 깔짝대다가 친일파로 돌아선 인물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김성수나 김활란 같은 인물을 규정함에 있어 '논란'을 빚었었는데, 이젠 김성수 동상이 세워진 학교의 학생이 수줍은 듯 "친일파요!"라고 외치는 시대가 되었다(이러한 변화에 <친일인명사전>으로 대표되는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김성수의 친일이 논란이 되었던 점은, 본격 친일파 웨이를 걷게 되는 것이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총독부에 끌려가 참교육을 당한 뒤부터라는 점에 있다. 즉, 말년의 친일 행적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란 것이다. 그나마도 김성수의 친일 행적은 수십년 간 거의 문제 제기가 없다시피 했고, 문제 제기에 대응하여 '공칠과삼론'이 유행한다. "아니, 우리 성수형이 비록 막판에 창씨개명도 좀 하고 국방헌금도 내고 일본 육군 후빨도 좀 하셨지만, 그래도 민족의 교육과 언론을 위해 얼마나 공이 많은데! 그리고 그 시대 때는 친일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3.1운동에 깔짝 참여하고 이후 조선어학회 사건이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옥고를 치뤘으나, 또한 40년대 이후 적극적인 친일파가 된 그의 양면적 행적은 친일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즉 '어찌 됐든 적극적 친일파'와 '그래도 잘한 게 많으니까 봐 줘야지'라는 시선이 충돌하는 상징적인 지점이다. <미션>에서 김희동과 김성수의 배경은 비슷하다. 김희동이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진 모르겠으나, 역사에서 그런 류의 인물 열에 여덟은 친일파가 됐다.

 

김성수의 예에서 보듯, 일관되게 친일한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 판단을 어렵게 한다. 닝겐은 이분법적 사고에 특화되어 있고, 쉽게 니캉내캉, 혹은 선과 악을 규정짓고 이 둘의 대립으로 사건을 파악한다. 조선의 역사를 예로 들면, 노론과 소론,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 이황과 이이, 왕권과 신권, 사대주의와 자립주의 등 그 사이에 있는 미묘한 것들은 명왕성 바깥으로 빨려 가고, 둘 중 어떤 것에 정확히 포함되지 않는 것도 후려쳐서 이해한다. 친일파를 규정하는 일도 그렇다.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사이에 있는 수많은 스펙트럼은 두 개의 무거운 축으로 빨려 들어간다. 반면, 양자 사이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면 친일 행적이 합리화된다는 단점이 도사리고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20세기 전반 한반도의 역사는 대격변이었기에 모든 이가 그 관점에 동의를 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3. 누가 누가 친일파인가

 

그래서 이제는 좀 더 디테일하게 친일파를 분류하고 있다.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시대 혹은 세대별로 구분하는 것과, 적극성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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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로 구분하면, 조선왕조 최후의 순간, 아직 일제에 병합되지 않았을 때에 소위 '나라 팔아먹은 놈들'이라 불리는 친일파다.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이 대표적이다. 다음은 문화통치를 전후하여 실력양성론 등에 입각해 3.1 운동 등에 참여하기도 하고 각기 분야에서 활동을 하지만, 일제 강점기 후반으로 갈수록 친일인사로 변하는 인물이다. 이광수, 최린, 최남선, 김성수 등 지식인 집단이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30년대 후반에서 광복까지 적극적인 친일한 사람들이 있다. 노덕술, 방응모, 박흥식 등 기업인이나 공무원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

 

다시 세대별로 구분하자면, 19세기 중반에 태어난 친일 1세대는 레알루다가 나라를 팔아먹었고,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 태어난 친일 2세대는 일제의 기업 혹은 총독부와 밀착하여 자신의 잇속을 챙기거나, 시작은 독립운동이었으나 일제의 회유, 협박, 혹은 자신의 사상 변화로 친일을 택한 이들이다. 이 세대가 우리가 생각하는 '친일파'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20세기 이후에 태어난 친일 3세대는 청년기에 광복을 맞은 이들은 태어나 보니 이미 일제강점기여서 기억 속의 조국이 희미해진 이들이다.

 

적극성의 차이에서 분류하는 법은 이보다 간단하다. 생존을 위한 친일 행위, 그러니까 서민들이 핍박받지 않기 위해 창씨개명하고, 어쩔 수 없이 일본어 교육을 받고 자라는 등 제도권에 포함되는 순간 행할 수밖에 없었던 친일행위와 그렇지 않은 친일행위를 구분하는 것이다. 당연히 김성수나 방응모, 최남선, 노덕술 같이 자신의 욕심을 실현하거나 일제의 요구가 강하게 쏟아졌던 이들일수록 적극적인 친일 행위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어쨌건 40년대로 들어서면 국내에서 활동하는 독립 운동가가 거의 없었고, 있어도 대부분 감옥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사회에 이름 석 자를 알리는 인물의 대부분에게서 친일활동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적극성의 차이로 친일 행적을 분류하는 것은 <친일인명사전>에서 택한 방법이다.

 

 

4. 금기가 되어버린 사실

 

<미션>이 그리고 있는 시대가 한일병합을 전후한 시대이므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1세대에서 2세대 친일파 사이에 각기 위치하고 있다. 이완익은 씹어먹어도 시원찮은 친일파로 그려지고, 구동매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에 좌절하여 선택한 친일파로 그려내고 있다. 사실 불편한 것은 구동매보다 이완익이다. 실제로 이완익처럼 대놓고, 신념에 가득 찬 친일행위를 벌였다면 김홍집처럼 광화문 앞에서 군중에게 돌 맞아 죽었을 것이다.

 

이완익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보이는 이완용은 친미와 친러, 종국엔 친일로 옮긴 태생적인 기회주의자였다. 오히려 구동매보다 이완익처럼 당대의 친일파 관료들을 플랫하게 그리는 것은 쉽게 악을 상정하게 되고, 당대를 이해하는데 고정된 관념을 갖게 한다. 드라마의 이완익처럼 일본의 고관대작과 라인이 있었던 갑신정변의 주역들, 박영효나 김옥균의 최종 목표는 '메이지 유신'이었지만, 그렇다고 조선을 팔아먹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박영효는 결국 "에라 모르겠다 친일할랜다."로 돌아서지만. 그래도 어쨌든 드라마라는 것이 원래 강렬한 캐릭터를 둬야 스무스하게 흘러가지 않겠는가.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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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불편한 것은, 최유진처럼 노비의 후손이라는 피지배적-피핍박 계급을 상정하고 부모의 억울한 죽음으로 어영부영 미국으로 간 뒤, 조선에 돌아와 나름대로의 복수를 실현하는 설정이다. 노비의 어린 자식이 최유진이란 그럴싸한 이름 석 자를 가진 것도 웃기지만, 못된 양반이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노비를 잡아 죽이고, 어린 노비까지 추노하는 수직적 전개가 더 불편하다. 도대체 19세기 중후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죽창의 시대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뒤로, 노비와 양반의 관계는 신분제적 수직관계가 아니라 자유시장적 고용관계로 상당히 변했다. 심지어 기득권이라 할지라도, 이미 느슨한 형태의 노비 노동조합이 가문, 혹은 마을마다 결성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드라마에서 그려내는 것처럼 '전형적인' 양반과 노비의 관계는 상당히 유연하게 변했다. 그렇지만 뭐, 이것도 그렇다 치겠다. 드라마라는 건 자고로 출생과 부모의 사연이 얽혀 있어야 캐릭터의 동기를 그려내는 데 쉬운 거니까.

 

가장 크게 논란이 된 구동매에 집중해보자. 백정 계급이었던 그는 조선의 백정 핍박에 좌절해 친일을 선택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그런데 그가 핍박받는 과정, 즉 '죳망 조선'을 그리면 안 되는 걸까? 혹은, '죳망 조선'에 좌절한 후에 선택한 곳이 하필이면 일본이기에 안 되는 걸까? 러시아나 청, 미국이나 영국을 택했다면 괜찮은 걸까? 작중 미국을 택한 최유진의 행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의견은 적다. 결국, '죳망조선'에 좌절하여 일본을 선택했는데, 일본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너무나 잘 나가는 모습이 불편한 게 아닌가 싶다. 여기에 감정적인 불편함을 넘어, '죳망조선'에 좌절한 개인의 처절한 복수는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우리 측 요구에 일본 우익이 "그러니까 병합당하지 않았으면 좋았잖아요"라고 주장하는 것과 유사하게 귀결될 수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구동매 같은 캐릭터가 실제로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냐는 점이다. 백정이나 낭인이란 것을 걷어내고 친일파가 되기 이전까지는 여기저기 후달리는 신세였는데, 친일파가 되고 나서 여기저기 갑질하는 인물. 일찌감치 다른 세력을 택한 작 중의 캐릭터들이 그렇듯, 이러한 인생역전은 드라마뿐 아니라 당대에서도 고을마다 일어났을 법한 일이다. 실제로도 일어났고. 백정과 낭인은 드라마적 과한 설정일 뿐,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 역사왜곡이란 주장은 지나친 듯싶다.

 

한 발 더 들어가, 구동매 캐릭터에서 우려되는 "식민지배 당할 만도 했다"는 논리에 대해서 살펴보자. 우리 사회에 여전히 잔재하는, '조선은 죳밥이었기에 일본의 식민지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혹은 "당해도 싸다"에 대항하여 한 때 조선 후기, 혹은 대한제국, 혹은 민비나 대원군의 활동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거나 과도하게 긍정적인 해석을 하는 때도 있었다. 즉, '일본만 아니었으면 우리도...!' 라며 식민사관에 논리에 대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도 결국 제국주의적 레토릭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반감만 불러왔을 뿐. 실제로 개화기 조선의 모습이 죳망이 아니었다고 인식하는 이가 있는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대한 제국의 광무 개혁은 어느 정도 진일보한 성과가 있었다고 보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오히려 누가 제일 무능했냐며 고종, 민비, 대원군이 돌아가며 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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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금은 2018년이니까

 

닝겐의 사고가 서서히 근대에서 벗어나면서 '힘이 없는 나라는 개털릴 수밖에 없다.' 라는 논리는 근대까지만 진리로 통용됐다. 예전 같으면 "조선이 죳망이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 느그들이 그렇게 침략하면 안 되지"라는 말은 개소리로 치부되었겠지만, 제국주의, 세계대전, 냉전을 걸쳐 온 인류의 경험은 제국주의적 사고 방식이 인류의 공멸로 향하는 오류적 사고였음을 인식하고 반성한다. 물론 여전히 천조국의 경제적 깡패짓이나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혹은 중국 관료의 "소국이 대국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는 발언은 약육강식에 기반한 사고방식이 완전히 변화할 수는 없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닝겐들은 여전히 공존을 위한 답을 찾아가는 중이며, 그 노력의 결과로 현재는 지난 세기에 비해 확연히 나아졌다.

 

한국 사회가 일제 강점기를 인식하는 관점도 상당히 변화했다. 앞서 김성수를 "친일파요!"라고 외쳤다는 한 학생의 일화를 떠올려 보자. 대답에 앞서 약간의 침묵이 있었다는 것에서 여전한 불편함, 혹은 논란의 유무가 있지만, 김성수를 친일파라 외치면서 웃을 수 있는 역사적 인식이 쌓였다. 즉, 다수의 시청자들은 구동매의 스토리를 보면서 일본의 식민지배 논리에 동화되기 보다, "조선도 죳망이지만 일본 느그들이 더 극혐이야"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제국주의적 논리와의 결별은 사실 정서적으로 훨씬 일찍 일어났으나, 근대적 관념에서 머물러 있었기에 오랫동안 식민사관과 식민사관을 반대하는 식민사관적인 반식민사관이 대응하며 무한반복 해왔다. 청와대 청원도 이제는 '올드한'(실제로 젊은 역사 연구자들은 이러한 논리를 올드하다고 느낀다) 사관의 재탕처럼 느껴진다.

 

물론 어디까지나 해석의 차이임을 인정한다. 지금은 제국주의적이다, 혹은 올드하다 라고 느껴지는 개념들이 또 어느 날 진리와 더 가까운 것으로 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민주주의적 시스템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청와대 청원 공간에 드라마 규제로 표현의 자유를 줄이자는 청원이 올라온 것은 다소 괴랄한 맛은 있지만, 닝겐의 행동이 꼭 앞뒤가 맞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걱정하는 마음이 크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청원에서 지적한 것처럼, '국민들의 의식 수준'은 생각보다 제국주의적인 논리와 정서적으로 거리가 멀다. 물론 여전히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시각은 강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구동매를 보며 "음 역시 일본이 답이군"이라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노파심을 거두자. 우리 시대는 이미, "김성수는 친일파요!"라고 외치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p.s 나의 증조 할배는 친일파라 카더라!

 

 

 

 

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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