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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에게 연락이 왔다. 최근 화제(?!)인 기무사와 관련해 기사를 써달라고 했다. 몇 분 고민하다 그러겠다고 했다.

 

까놓고 말해서 ‘기무사 쿠데타 모의 계획’을 보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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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소추 당했을 때, 지금은 사라진 매체에서 기자를 하고 있었다(첫 출근인가 그랬는데 1주일간 퇴근을 못 했다). 그 당시 보수 단체 집회에서 계엄령과 함께 ‘군대여 일어나라’ 등등의 구호를 외치던 게 떠올랐다(압권은 당시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였던 김용서 교수의 ‘쿠데타 선동 발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국면이 수습되고 나서 <월간중앙>에 기사 하나가 실렸다. 현역 육군 사단장(모 소장)이,

 

“이제 한국에서 군사 쿠데타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라고 선언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단장은 그 이유로 5가지를 내놓았다.

 

 

첫째, 휴대전화 때문에 보안 유지가 불가능하다.

 

예전에는 통제만 하면 보안유지가 가능했는데 요즘은 휴대폰 때문에 어렵다는 거다.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박정희의 5.16쿠데타 당시 장면 정부는 미국을 포함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쿠데타에 대한 경고를 받아왔다. 역시나 보안도 보안이지만, 더 중요한 건 최고의사결정권자의 ‘결정’이라고 본다.

 

 

둘째, 교통체증.

 

장비와 물자, 인원을 통제해 ‘거사’를 결행하려고 해도 교통체증 때문에 병력과 장비가 신속히 이동할 수 없다는 거다. 그때도 이 부분에서 시큰둥했는데, 출퇴근 시간대에 군사 쿠데타를 결행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이번 문건에도 나와 있지만 새벽에 출동하면 다 해결될 문제다. 그리고 일단 포스트를 점거하면 크게 병력이나 장비를 움직일 이유가 없다. 군 마음대로 통제가 가능하기에 교통체증은 논외의 문제다.

 

 

셋째, 국민을 설득할 방도가 없다.

 

‘옛날에는 언론통제를 하면 됐지만, 지금은 휴대폰과 인터넷이 있다. 국민들이 서로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쿠데타군을 응징할 것’이란 주장이다. 인터넷의 위력은 인정한다. 그 때문에 몇 년 전에 있었던 터키 쿠데타에서도 그렇고, 이번 기무사 문건에도 인터넷을 통제하고 SNS를 막겠다는 안이 있었다.

 

 

넷째, 군은 더이상 한국사회 최고 엘리트 집단이 아니다.

 

전두환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육법당陸法黨’이란 말이 있었다. 전두환이 만든 민정당을 지칭하는 것으로, 서울대 법대와 육군사관학교를 의미한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의 손발이 되어준 게 서울대 법대란 의미도 있지만, 육군사관학교와 서울대 법대로 구성된 정당이란 의미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 때는 육사 출신과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육사는 엘리트란 이미지가 있었으나, 이제 그 이미지는 많이 퇴색했다. 못 배우고 못 살던 시절에는 군인에 대한 이미지가 ‘엘리트’와 가까웠으나 지금은 다르다는 거다. 다른 분야를 제압할 정도의 실력과 명분을 자랑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란 소리다.

 

 

다섯째, 이 모든 걸 군인들이 알고 있다.

 

기무사 문건으로 이게 ‘개소리’ 임을 확인했다.

 

 

이건 15년 전 나왔던 기사다. 15년 전에도 ‘쿠데타’란 단어가 한국에서는 ‘역사’이거나 이미 사문화된 단어라 생각했다. 그런데 2018년, 또다시 쿠데타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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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을 심각하게 열었는데, 별 거 없다. 이번 시리즈는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내키는 대로, 손 가는 대로 써보겠다.

 

 

 

문건을 처음 본 순간

 

(세부 실행계획이 담긴) 문건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낀 감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군인들은 박근혜를 무시했다.

둘째, 역사 공부는 중요하구나(작성자가 나름 역사인식을 갖고 있었다).

셋째, 제7기동군단의 진격이구나.

 

어떤 식으로 이 문건을 작성하라고 한 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당시 경호실장이었던 박흥렬이 기무사에 오더를 넣었다는 게 가장 유력한 설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박근혜는 허수아비다.”

 

엄밀히 말하면, 기무사의 쿠데타 모의 계획은 ‘친위 쿠데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수혜자여야 했던 박근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계엄문건에서 딱 두 번 나온다.

 

 

➀ 첫 번째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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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국회에서 위수령 무효 법안을 내놓으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해요. 알았죠?”

“위수령이요?”

“그게 당신 아버지가 잘 써먹던 겁니다. 거부권 행사해서 최대한 두 달 정도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면요?”

“촛불집회 한다고 몰려온 사람들 사이에서 분명 폭력사태가 일어날 겁니다. 그걸 빌미로 비상계엄으로 몰고 가야죠.”

“그건 나도 들어봤어요.”

“들어봤죠? 그럼 그렇게 가는 겁니다. 그냥 거부권만 기억하세요. 거부권!”

 

➁ 두 번째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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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이 나댈 수 있으니까 국정원장이 계엄사령관 말에 따르도록 해주세요. 알겠죠?”

“왜요?”

“일을 하려면 명확히 지휘라인을 정해놔야죠! 위에 있는 사람이 가르마를 제대로 타줘야 밑에서 일을 할 거 아닙니까? 국정원장 제대로 단도리 쳐주세요. 앞으로 정보라인은 우리 쪽이 다 잡는 겁니다. 아셨죠?”

“정보라인이 뭐죠?”

“...그냥 그런 게 있습니다.”

 

 

기무사 문건이 재미난 게 나름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서 합법적으로 ‘군’을 움직이려 했다는 거다. 나름 머리를 굴렸다는 거다. 이 문건의 핵심은 ‘비상계엄’으로 몰고 가서 어쨌든 시간을 30년 전으로 돌리겠다는 거였다.

 

애초에 계엄령의 수혜자는 박근혜가 돼야 하는데, 박근혜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에, 아무래도 새로운 ‘누군가’가 등장하려한 게 아니었던가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국정원장이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따르게 해달라.”

 

이게 무슨 의미일까? 정보라인을 모두 쥐겠다는 거 아닌가(경찰 쪽 정보를 제외하고는 국가의 모든 정보를 한 손에 움켜쥐는 거다). 1980년에도 이런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보안사 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도 겸임하면서 ‘체육관 대통령’을 향해 돌진했던.

 

군이 박근혜를 위해 친위 쿠데타를 준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생각을 품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질 만하다. 오버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계엄문건 속 박근혜는,

 

"수첩공주도 아닌 허수아비"

 

라는 느낌이다. 정확히 2번의 효용을 끝내고 나면 무대 뒤로 퇴장이다.

 

웃기는 게 계엄과 같은 중차대한 정치적 변화가 생긴 다음에는 외부에 이를 설명하는 ‘외교적 행사’를 치러야 한다(내부에서 얻지 못하는 정통성을 외부에서라도 찾아야지). 전두환이 그렇게 미국에 한 번 가려고 애썼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기다 한국은 세계 11위권의 경제대국이 아닌가? 주한미대사와의 면담이나 주한 무관단들에 대한 로비 활동 모두 대통령이 아니라 국방장관이나 군 관계라인에서 해결하고 있다.

 

즉, 박근혜는 전면에 나오지 않는다. 박근혜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는 게 아니면, 박근혜를 아예 권력 라인에서 배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를 위한 친위 쿠데타는 분명 아닌 것 같다. 아니, 실제로 박근혜를 위한 쿠데타였다고 해도,

 

“믿을 수 있어? 그냥 바지사장으로 세우는 정도에서 끝내자. 그게 쟤를 위해서도 좋아.”

 

이랬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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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