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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살며 지하철 타고 양복 입고, 실상은 도시근로자 최저 생계비도 못 벌면서 남 보기엔 그럭저럭 도시 빈민은 아닌 척하며 살기도 숨 가빠져 귀농 귀촌으로 어수선한 틈에, 역시 귀농도 귀촌도 아닌 농촌 빈민으로 편입하여 산 지도 벌써 십여 년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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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지나 촌이나 사람 사는 곳 다 거기서 거기니, 무슨 유별난 시골살이의 낭만 따위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그저 좋은 것이라면 한참 전부터 계획 세우고 예매하고 먼 길 달려 하룻밤 겨우 단풍 든 산을 보는 대신 그냥 집 밖으로 운동화 짝 끌고 나와도 근년에 드물게 장한 단풍을 볼 수 있다는 정도와 오밤중에 딴지질 하다 입 궁금해지면 밤 12시에도 불 밝힌 편의점이며 오뎅집에서 떡볶기 튀김 오뎅에 치느님을 맘껏 섭취하여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두툼해지기만 하던 뱃살이, 오후 7시가 되면 계엄령 떨어진 동네마냥 사람 꼴이 드물고 불 밝힌 집이 귀한 탓에 강제 금식을 통해 뱃살의 증식속도가 둔해졌다는 정도가 달라진 것이라면 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무슨 일이 터져 사람들이 떼로 거리에 쏟아지는 철이나 선거 벽보가 골목마다 나붙을 때나 내가 민주공화정의 국가에서 사는 정치적 행위를 하는 척해야 하는 공민임을 느낄 수 있었던 도시에서와는 달리 겉으로는 정치가 뭐래유? 먹는거래유? 하는 식으로 돌아가지만 논두렁에서 감 따는 과수원에서, 읍내 노래방과 오리집에서 철을 가리지 않고 때를 챙기지 않고 돌아가는 정치판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입니다.


고향동네로 들어와 살다 보니 서발 막대기를 휘두르면 걸리는 게 다 선배 후배고 동창이며 사돈네 외사촌에 당숙 처조카입니다. 외지에서 들어와 몇 년 살지 않은 사람을 빼고 나면 전부 '아는' 사람이지요.


동네 정치판이다 보니 밑장을 빼지도 감추지도 못하는 것이고 군의원이건 도의원이건, 군수 자리건 국회의원이건 간에 이미 '선수'와 '후보'는 다 아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그 선수의 '매니저'며 주전자 들고 다니는 '가방모찌'와 그 뒤에서 돈을 대는 '전주'까지 조금만 읍내 목욕탕 출입을 하고 이발소 의자를 엉덩이로 덥혀주는 수고를 하면 금방 파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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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촌에서 대학물을 먹었고 전직이 나름 '펜대'를 굴리던 사무직이었다는 경력은 정치판 선수들에게는 꽤 수요가 있는 상품인 모양입니다. 그것도 내동 보던 그 물건이 아니라 서울서 내려온 지 얼마 안 되는 소위 '신상'이다 보니 괜히 평가에 거품이 처음부터 좀 낍니다.


거기에 그저 옛 인연이 있는 놈이 촌에 집이 있으니 팬션비 아끼고 밥값 덜겠다는 계산이 반쯤은 먹고 들어가는 셈속으로 휴가철이면 더러 찾아오는 얼굴 중에 방송이나 신문에 나오기도 하고 해서 신문쪼가리라도 가끔 보는 촌의 소위 '여론주도층' 사람들이 어디서 들은 이름이라도 한둘 섞박지로 섞이면 그 거품은 헬륨 낭낭하게 넣은 풍선마냥 부풀기 마련입니다.


해서 딱히 선거철도 아닌데 뜬금없이 새치 흰 머리카락 마냥 가느다란 인연을 붙들고 불청객들이 집을 찾아옵니다. 이분들이 찾아오시는 모습은 마치 그런 시행규칙이라도 있는 듯이 참 전형적입니다.


그닥 아름답지 못한 중년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 주는 쫙 달라붙는 핏의 '아웃도어 기모 스판 바지'를 입고 그 위에는 노스페이스나 아이더, 혹은 코오롱 고어텍스 잠바를 걸치되, 그 색상은 보통 파랑색이나 노란색으로 입고 그 직업은 이 동네 경제의 핵심지역인 모 사찰 주변에 팬션을 운영하면서 그 명함 뒷면에는 00화재보험 00대리점 대표나 00위원회 총무 정도의 직함을 두서너 줄 넣은 40줄 후반의 아재가 나로서는 묵은 기억과 흐릿한 이미지를 한참이나 되새기고 시골살이에 필수적인 '사람 아는 척하기‘라는 올바른 정치적 행동을 풀가동시켜야 하는 인연을 들먹이며 뚜쟁이가 되어 문을 두드리고 나를 불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 사람 뒤에는 한눈에 봐도 동네 초등학교 운동회를 하거나 동네의 그저 그런 축제 때 귀빈석 한자리를 채우고 축사라든가 기념사라든가 환영사 같은 식순에 마이크를 들 사람으로 보이는, 딱 봐도 들에서 볕에 그슬리며 산 것 같지는 않은 중늙은이 하나가 무덤덤한 얼굴로 서 있습니다.


그 뒤에서 차를 부지런히 대고 트렁크에서 비타 500 같은 박스를 꺼내어 언제쯤 이 물건을 들이밀까 고뇌하는 표정을 감추지도 않는 30대 기사 겸 아마도 비서로 보이는 이가 서 있는 조합이면 100% 지방 정치가의 방문입니다.


사돈네 팔촌에 기억도 없는 선후배 연줄을 잠시 더듬어 수작질을 벌이고 마음에 들건 말건 찾아온 손님이니 문전박대를 할 수는 없어 안으로 들입니다.


21세기 이 헬조선 양식과는 좀 어긋나지만 시청료 내기 싫어 TV를 없애버리고 청소하고 먼지털기 귀찮아 자질구레 장식 따윈 애당초 들이진 않는 마누라가 이 인생에게 허락한 방은 평생 돈 될 일 없고, 애당초 돈과 거리를 멀게 했으면서도 아직껏 아궁이 불 쏘시개행은 어떻게 면한, 해가 묵을수록 곰팡내나 진해지는 책 나부랭이밖엔 없는데 기실 1년에 한두 번 열어볼까 말까한 이 책무덤이 초라한 방구석에 들어선 '선수'의 촉을 건드리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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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당 12,000원짜리 생두를 볶아 먹는 것이 읍내 농협마트에서 파는 커피믹스보다 싸고 커피 볶고 갈고 내리는 시간에 돈을 벌 만큼 바쁜 적이 없는 인생이라 내려먹는 원두커피와 곰팡내 나는 책, 전원을 넣으면 딴지나 둘러보고 더러 품번이나 쫓는 용도가 주된 용도지만 어쨌든 날마다 습관처럼 켜놓기는 하는 모니터에 화면보호기가 돌아가고 있으니 '선수'에게는 이 물건이 대충 어디다 써먹을 상품으로는 보이는 모양입니다.


오래전 관광버스 관광이 대세일 때 조성해서 한철 메뚜기로 재미를 봤지만, 이제는 거대한 슬럼이나 다름없어서 날고 기는 컨설턴드나 경영학자도 소용없고 편작화타가 붙어도 가망 없이 그저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관광지구를 활성화해야 하니 케이블카를 들여야 한다거나, 요새 도시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많으니 논바닥에 아파트를 세워야 한다는 정견을 열심히 발표하십니다.


어쨌거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고, 누군가는 총대를 메어야 하는 판이니 그의 함량과 품질은 일단 미뤄두고 누가 됐건 좀 낫게 해서 동네 사람들이 밥 안 굶으면 좋은 일이리 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 간을 봅니다.


대략의 정치적 판세와 세력을 점검해 보고 컨셉을 잡아봅니다. 가용할 수 있는 자원과 조직, 전략의 밑그림을 나열해 봅니다. 요령부득입니다. 일단 이분들, 팀으로 일하는 법, 참모와 리더의 역할 자체를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도 안 합니다. 후보의 이미지는 만드는 것이고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 못 합니다.


그저 ‘열심히 동네 애경사 찾아다니고 행사에 얼굴 내밀고 조직은 돈으로 굴리면 된다’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를 않습니다. 도대체 그럴 것이면 나는 왜 찾아왔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또 그런 것으로는 안되니 '나'같은 분들이 도와줘야 한답니다. 그래서 컨셉을 제안하면 그런 걸로는 안 먹힐 것이고 이를테면 '효도하는 군수' 뭐 이런 것으로 뽑아야 한답니다. 답이 없습니다.


조직을 점검해 봅니다. 핵심 조직과 움직일 사람이라고 내놓는 면면을 보니 상대 유력후보와 같은 조직이고 태반이 같은 사람입니다.


좁은 동네에서 은거하고 살지는 않지만 무색무취로 이쪽에 가면 이쪽 편 인양, 저쪽에 가면 저쪽 인양 모나지 않게 어느 구멍에 볕들지 모르는 험난한 한국 현대사를 견디고 살아남은 생존의 달인들 명단이 나옵니다. 그나마 숫자도 장부상 숫자일 뿐 정작 가동을 시키면 잘해야 그래도 예전에 챙겨 준 빚이나 갚자는 심정으로 자기 표나 던져 주면 고마울 사람들을 빼면 오리무중에 어디로 튈지는 우주가 답해줘도 알까말까 한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역시나 답이 없습니다.


딴에는 친밀감의 표시고 탈권위의 행동이라고 아무자리 에서나 아무나 보고 대충 반말로 툭툭 던지는 말투를 좀 바꿔보라고 하지만 그건 나름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자부심이 짱짱한 독창성이라 절대 수용할 의사가 없습니다. 젊고 자존심 있는 여자들이 얼마나 질겁을 하는 지, 그런 반말 인사 듣고 돌아서면 욕을 바가지로 하는 것은 절대 그럴 리가 없는 일이라며 손사래를 칩니다.


이건 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이 한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타나는 증상이 좀 다를 뿐 근본적인 발병원인은 모두 같고 모두 이미 발병이 되어 있습니다.


촌동네에서 정치는 그저 개인기이고 혼자 꾸려가는 가내수공업입니다. 작던 크던 간에 입법과 행정을 담당하겠다는 사람들이 법안 생산이나 행정관리를 위한 기본 소양이 바닥이면서도 외부 위탁을 해서라도 팀을 꾸리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 합니다. 아니 안합니다. 그저 농사짓듯 부지런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논두렁에 물꼬 보러 출근하듯 읍내 목욕탕 새벽 목욕을 나가서 유지들을 발가벗고 만나고 애경사에 찾아가 술잔을 비우고 봉투를 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농약치고 비료주듯 그렇게 유권자를 관리하면 표로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시골의 대다수 농업인들이 실상은 농업이 아닌 농사를 짓고 있고 그리하여 이제 농업으로 넘어간 극소수를 제외하면 이미 경영학적으로는 한계를 넘었지만 정서상, 그리고 비시장적 요인으로 인해 생물학적 도태라는 농사꾼들의 노화와 사망까지라는 시한부 생업으로 농사를 짓는 것처럼 촌 정치가들 역시 생산성이나 지속성 따윈 알 바 아닌 가내수공업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아무리 잘해도, 좋은 정책이 나와도 이 가내수공업 정치로 돌아가는 촌에서는 다 소용이 없습니다.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이해가 부딪치고 급격한 환경변화의 무풍지대일 수 없는 지역에서 발 빠르게 대처하는 정책을 생산하고 실행해도 따라잡기 버거운 상황에서 애당초 정책생산과 관리능력이 거세된 것에 가까운 사람들이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은 결국 인맥과 돈뿐입니다.


사람을 모으고 표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돈으로, 이권으로 엮인 인맥이 되고 그리하여 아무리 윤리적이고 싶어도 자리를 유지하려면 별수 없이 이권을 나누어주고 돈을 뿌려야 합니다.


이권을 나누고 돈을 만드는 가장 효율적이며 안전한 방법은 토건이고 그리하여 이 촌 동네도 국가경제가 어렵건 말건, 농사를 포기하건 말건 간에 으리번쩍한 군의회 건물이 올라가고 일 년에 서너 번 문 여는 문화예술회관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건물 유지비를 대느라 재정자립도는 해마다 낮아집니다.


입만 열면 여당은 좌경 용공 빨갱이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외칩니다. 아닙니다. 실은 이 나라는 이 어마무시한 자본주의의 시대에 아직도 여기저기 남아있는 자본주의를 배우지 못한, 시장 교환 경제에 가까운 가내수공업 체제의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망해가는 것입니다.


신자본주의를 외치면서도 실상은 전근대적 가내수공업을 유지해야 돌아가는 이 후져빠진 정치가 문제입니다.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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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