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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경제>에 맥주 관련 기사가 하나 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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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지난달 27일, 기획재정부에서 주재한 한 간담회의 내용을 담고 있어. 마트나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500ml 맥주 4캔 1만 원’ 같은 수입 맥주 할인 행사를 규제할 계획이라는 것이 간담회의 중요 내용이었는데, 단통법, 담통법, 책통법, 딸통법에 이어서 이른바 맥통법의 예고인 셈이지. (뭔가 이상한 게 보였다면 순전히 기분 탓입니다) 다른 X통법들은 ‘소비자를 위한다’는 구라성 명목이라도 있었지만 맥통법은 소비자는 완전히 배제하고 업체의 의견만을 채택했다는 것이 조금 다르긴 해. 결과적으론 비슷하겠지만.


국산 맥주 업체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을지 아니면 그나마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수입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안타까움 때문인지, 맥통법은 극딜을 맞았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선 비슷한 반응을 보였어.


“이런 씨바”


맞아. 씨바스럽지. 합리적인 소비 좀 해보겠다고 마트에서 할인 행사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다 맥주들을 골라오던 재미가, 맥주들을 냉장고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작은 행복을 느끼고자 할 때 하나씩 꺼내서 마시는 즐거움이 확실히 줄어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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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런 거 못 즐긴다는 거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 딜링이 계속되었고 어제는 전병헌 의원이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맥통법을 두고 “한심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지. (중앙일보 기사 링크)


16일, 기세에 밀린 건지 아니면 뭔가 억울했는지 기획재정부에서 보도자료를 냈어. 해명이라거나 반박은 하지는 않고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는 취지의 보도자료였지. 문장을 보는 순간 느낀 감정은 애매함이었어. '이게 무슨 소리지?' 하겠다는 건가 말겠다는 건가. 기사의 내용이 맞다는 건가 틀리다는 건가. 삽질해놓고 오해라던가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던가 하는 류의 변명을 너무도 쉽게 하는 집단임을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애매하게 말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 “그런 적 없다”는 식의 확고한 발뺌을 선보일 거라 생각했지, ‘확정된 것이 없음’이라…. ‘그런 류의 의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가장 근접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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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확정된 바 없음


그런데 궁금해. 왜 27일에 있었다는 간담회의 내용이 13일 금요일 오후에 기사화되었을까? 그것도 오직 <서울경제> 단독으로 말이지. 다음날인 14일에는 거의 모든 이슈를 한동안 잡아먹을게 분명할 광화문 민중총궐기 투쟁대회가 있었지. 아니, 뭐 별 다른 뜻은 없어. 그냥 다음날이면 모든 이슈를 잡아먹을 큰 건이 있었다는 것뿐이야. 누구도 예상 못 했겠지만 그 시간이 오기도 전에 이슈들은 사라졌어. 다들 알고 있겠지만 13일 저녁에 파리에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잖아.


난 이렇게 생각해. 맥주 업계의 로비가 있었고 기획재정부에서는 간담회를 통해 그것들을 어느 정도 수용할 뜻을 내비쳤지. 그리고 그것을 언론을 통해 살짝 드러내 보인거야. 큰 이슈가 안 될 타이밍을 골라서 말이야. 파리 테러사건과 광화문 집회로 인해 어느 정도 시야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소비자들이 소주와 맥주의 가격에 갖고 있는 민감성에선 벗어나질 못했는지 보도자료를 연막탄 대신 던졌어. (어쩌면 처음에 준비했던 계획 자체가 연막탄일지도 몰라) 그리고 다시 고민할거야. 처음에 준비했던 계획대로 끌고 갈 것인지 아니면 조금 변화를 주어서 덜 까일 수 있는 방법으로 갈 것인지. 아, 물론 소설이야. 높으신 양반들이 설마 내 생각대로 움직이겠어?


1번 소설이 끝나니 궁금한 게 또 있네? 사실 이게 중요한 거야. (중요한데 답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난 병신짓임이 명확한데도 병신짓을 하는 정부를 보면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누군가가 있다고 확신해. MB가카를 통해서 얻은 삶의 지혜지. 고마워여, 가카.


이번 병신짓에는 누가 이득을 볼지 생각해보자. 먼저 떠오르는 건 당연하게도 로비의 주체로 의심되는 국산 맥주 생산 대기업이야. 오비, 하이트진로, 롯데. 3개 기업 전부일수도 이중 일부일 수도 있어. (뜬금없지만 3사중 외국기업은 몇일까? 1? 아니면 2?)


이 회사 또는 회사들이 자사의 국산 맥주 판매를 늘리기 위해 대체재라고 볼 수 있는 수입 맥주들을 견제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증대한다는 건데, 나는 작은 의문이 생겨. 정말 맥주 할인 행사를 견제하면 3사의 이득이 증가할까? 이대로 맥주 할인 행사를 방치하면 3사가 큰 피해를 입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해. 우선 3사는 모두 음식점과 술집 등에 자신의 맥주를 유통할 수 있는 유통망과 영업능력을 갖추고 있어. 그에 반해 수입 맥주 업체들은? 비교할 수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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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비자가 즐겨 찾는 아사히,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 기린 이치방 등 인기 수입 맥주 대부분을

국내 맥주 3대 기업인 OB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아사히주류가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입맥주 열풍에도 국내 맥주사들이 당황하지 않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서울경제>


그리고 3사 모두 맥주를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어. 그리고 이 맥주들 중 상당수는 맥주 할인 행사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 (롯데의 경우 아사히 맥주 수입사인 롯데아사히주류의 지분을 어느 정도 정리해서 현재 롯데아사히주류의 경영권은 일본 아사히에 있어. 그래서 직접 판매한다고 보기는 조금 애매하지만 그래도 지분의 49%정도는 롯데에서 가지고 있는 관계로 아사히 맥주의 판매가 롯데에 이득인건 변함이 없으니 넘어가기로 해) 오히려 무서운 건 자사의 유통망과 시장을 뺏어갈 지 모르는 경쟁사의 영업능력일거야.


수입 맥주 시장의 성장을 오롯이 3사가 가져가는 게 아니니 국산 맥주의 판매 저하로 인한 손실을 완전히 복구하지는 못하겠지만 수입 맥주로 인해 시장을 ‘잠식’당한다는 표현같은 건 지나치다고 봐.


국내 맥주 시장 전체에 대한 통계가 있어서 음식점, 술집에서 판매되는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의 총 매출액, 마트와 편의점 같은 곳에서 판매되는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의 총 매출액 같은 자료들이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찾질 못했네. 개인적인 생각으론 마트에서 판매되는 수입 맥주의 매출이 엄살을 부릴 정도로 많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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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의 통계는 가져와봤어

<서울신문>


로비의 주체들도 확실한 이득을 볼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다면 그럼 누가 이득을 볼까? 사실 잘 모르겠어. 맥주 3사 뒤에 있는 누군가일 거라 생각하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네. 국세청 같은 곳에 근무하다 은퇴 후 주류 관련 업체로 넘어간 전직 공무원 어르신들이 아닐까 싶긴 한데 자신은 없어. 이 어르신들이 주류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더군. 세금에 죽고 사는 업계이니 그것들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들이라면 신에 가까울지도 몰라. 이 존재들이 어떤 창의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창조해낼지도 잘 모르겠어. 그냥 수입 맥주 할인을 규제하는 걸로는 수익이 날 구조를 상상도 못하겠네. 금융결제원이나 인터넷진흥원 같이 자신들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구조이려나? 모르겠다. 상상해낼 수 있을 정도의 창조력이 내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서 나는 기사에 나온 내용으로는 맥통법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일단 너무 허접해. 어디서 수익이 날지도 잘 모르겠고. 박근혜 무려 대통령님이 주창하신 ‘규제 길로틴론’에 기반한 뭔가 창조적인 방법을 들고 나오겠지.


세수증대를 위한 정부의 계획일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아직까진 아닌 것 같아. 맥주 할인을 규제한다고 해서 세금을 더 뜯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물론 앞으로 맥통법의 세부 내용을 바꿔서 세수 증대로 이끌어갈 순 있어. 잘 준비했다가 2016 총선이 마무리 된 이후에 올리면 될 테니까. 아, 그러고 보니 내년 6월쯤에 관련법이나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기사에 나와 있는 것 같은데, 잘 준비하면 총선 끝나고 바로 증세를 적용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 역시 꼼꼼한 집단들인 건가.


피해자는 누굴까. 그거야 쉽지. 너와 나, 소비자 그리고 수입맥주 할인행사에 자주 참여했던 중소규모의 수입업체들. 거기다 행사를 열던 대형마트도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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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글을 마무리 해야 할 것 같은데 빼먹은 게 있네. 현재의 수입맥주 할인행사에 정말 역차별적 요소가 있을까? 응, 맞아.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에 적용되는 주류세법이 갖고 있는 차이점과 <주류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 위임 고시개정안>의 관련 내용 때문에 국산 맥주들은 수입 맥주만큼 적극적으로 경품 증정이나 할인 행사를 하질 못해. 잘못된 규제로 인해서 국내 맥주 업체가 피해를 입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인거지. 그렇다고 그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잘못된 규제를 없애기는커녕 상대방에게 새로운 규제를 덮어씌우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야.


가뜩이나 막 쓴 글에다가 우리의 앞날에 맥통법이 있을지 모른다는 <서울경제> 기사로 기분이 많이 나빴다면, 홍종학 의원한테 힘내라고 한마디씩 해 줘. 맥주 시장 개선시키려고 제일 열심히 일하는 의원이야. 힘내라고 말할 곳은 알아서들 찾아보길 바라.



뱀발


1) “자유로운 시장 경제 체제에서 국가가 가격을 결정하려 한다니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형들이 있을지 몰라. 근데 우리가 정말 자유로운 시장 경제 체제였어? 난 잘 모르겠네.


2) 기재부고 국세청이고 뭐건 간에 간접세 좀 고만 만지작거리고 직접세를 올리라고 개색히들아.


3) 아, 18일 현재 기획재정부에선 맥통법에 관해 사실과 다르며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다시 보도해명자료를 냈어. 처음부터 이렇게 나오는 게 일반적인 흐름인데 왜 (16일에) 아직 확정된 게 없다고 보도자료를 냈는지는 잘 모르겠네. 다 우리의 오해인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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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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