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김현진입니다 추천7 비추천0







살면서 호구 아니었던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봐라.
아니, 도로 들어가세요. 별로 보기 싫으니까.


세상 살다 보면 복 받았구나,

정말 귀티 나네, 싶은 사람이 가끔은 있다.

내가 마음이 덜컥, 하고 불편해질 때는

그 사람들이 동그랗고 천진한 눈을 뜨고 불행이란 것을 믿지 않을 때.

돈 때문에 사람이 어디까지 끝없이 떨어질 수도 있고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 어디까지 천해질 수 있으며

가장 잔혹한 폭력은 흔히 가족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사실.


누구의 벽장에도 해골이 들어 있다는 사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 해골에 대해서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그 해골들은 풍화된 후

가끔 재미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통에 시간이 더해지면, 코미디가 된다.

우리 모두에게 시간의 축복이 있기를. 특별히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의 해골에게도.  

 



지난번 밀양 글을 보고 많은 딴지스들이 도움을 주셨다 하여 마음이 심히 따끈따끈한! 대책위를 맡고 계시는 이계삼 씨가 보내온 문자메시지, 그리고 해외에서 후원하고 싶다는 분을 위해 해당 정보를 그대로 옮깁니다.


딴지스 오빠 언니 동생 여러분, 나 대신 밀양 어르신들 조반 드시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한번씩들 안아줄래. 꼬옥~


--------------------------------------------------------------------------------------------


밀양대책위 이계삼입니다. 답신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선생님이 쓰신 글 보고 많은 분들이 후원해 주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농협 상담원 분이 전해준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해외로부터 송금 받으실 때 필요한 정보입니다.

- 농협 영문명 (수취은행명): NongHyup Bank
- SWIFT CODE (농협 SWIFT CODE): NACFKRSEXXX (11자리) / 8자리 입력시 NACFKRSE (XXX제외)
- 농협 본점 주소: 75, CHUNGJEONGRO-1GA, JUNG-GU, SEOUL, KOREA
- ZIP CODE (우편번호): 04516 (새우편번호) /
100-707 (구우편번호)

- 수취인 계좌번호: 301 0164 5386 11
- 수취인 영문명: Miryang Songjuntap
- 수취인 연락처: +82)10 9203 076510 9203 0765
  농협은행, 농축협 입출금이 자유로운 통장 (요구불 계좌)

- 외화 그대로 입금 원하는 경우, 해당통화 외화계좌로 송금받아야 함




물론 그 아이가 청소년보호법에 의거하여 나를 고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스물 두 살의 나는 모든 것이 버거웠다. 그 때로부터 10년 후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 못했던 아버지는 여전히 천진하고 무능한 상태였고, 엄마가 아웃백이나 tgi 프라이데이 같은 곳에서 설거지하는 걸 보자니 도무지 마음이 편치 못했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이건 패밀리 레스토랑을 폄하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밝혀 둔다. 속이 상해 아버지를 붙들고 제발 경비 일 같은 거라도 주일날만 빼고 할 수 있는 일이니 좀 구해 보시라고 애원했지만,


“나는 레위 지파(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레위 지파만 소출을 얻을 땅을 갖지 못한다. 이는 그들이 성전과 예배를 관리할 특별한 책임을 지는 족속이기 때문에 다른 지파들이 바치는 제물에서 자신들의 먹을 것을 얻고 노동하지 않는다)다!”


라는 말로만 일관하시는 아버지에게 결국 분노해 빼액-하고 소리를 쳤다.


“여기가 무슨 팔레스타인 줄 알아요? 당신 경북 영양 출신이잖아! 거기 레위 지파가 어디 있어! 김녕 김씨 씨족 마을 아니유!”


이렇게 항의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엄마는 내 나이만한 매니저의 눈 밖에 나 구박을 받으며 하루 종일 설거지를 하고, 레위 지파께서는 집에서 한게임 장기를 두고 있는 게 보기 좋지 않았다. ‘목사가 성경이나 볼 것이지 한 번만 더 한게임 하는 거 걸리면 파워 써플라이를 뽑아버리겠다’는 협박을 거듭했지만, 아이들이 게임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학부모용 차단 프로그램을 찾아서 깔면 아빠는 어떻게든 그걸 풀고야 마는, 일진일퇴의 날들이었다.


그 와중에 어린 남자친구는 ‘출세할 젊은 나에게 잘해라’는 태도로 초지일관했다. 아, 그래? 출세할 거니? 나는 어쩐지 그 덕을 전혀 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산지 오래된 놀이동산의 은박 풍선처럼 내 영혼은 점점 바람이 빠지고 쪼그라들며 지쳐 갔다.


잠깐 칙칙한 분위기를 바꾸보겠다. 얘 다음에 만난 연하의 고교생은 친구들이 “어머, 쟤 동방신기의 최강창민 같아!”라고 호들갑을 떨고야 마는 미소년이었다. 나보다 더 말랐던 것만 뺀다면. 그런데 얘는 하루에 한 번, 한 알 씩 꼭 파란 약을 먹었다.


tablet-428328_640 copy.jpg


그거 무슨 약이야? 하고 물어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먹으라고 해서 먹는 건데 무슨 약인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럴수록 나는 도대체 그 약이 뭔지 궁금했다. <매트릭스>의 파란 약인가. 집에 가서 엄마한테 좀 물어보고 오라고 하자 알았다며 집에 가더니, 다음날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왔다.


“여쭤봤어?”


“응. 근데 안 가르쳐 줘. 그래서 내가 약국에 가서 물어 볼 거야! 그랬어.”


“뭐라셔?”


“그러니까 막 엄마가, 그거 알아봤자 너만 다친다! 이랬어. ”


도대체 무슨 약이길래 그러시나! 어떤 약이길래 알면 다치는 걸까. 설마 마약? 도대체 무슨 수상한 약일까! 약의 비밀을 알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나는 그 약을 한 봉 달래가지고 대학병원 앞에 있는 약국에 가서 물었다. 이거 무슨 약이에요? 숨을 헉헉 물아 쉬며 호기심에 차서 달려온 땡글땡글한 내 눈을 보며 약사님은, 나를 보다가 약을 보다가 잠깐 수상한 표정을 짓더니 물었다.


“이거 아가씨가 먹는 약이에요?”


“아뇨, 제 친구가….”


약사님은 흘깃 나를 보면서 약을 돌려주었다.


“이거, 간질약이거든요?”


간질, 간질이라니! 가까운 친척 중에 간질 때문에 고생한 이가 분이 계셔서 이 질병에 대해 폄하하고자 하는 뜻이 전혀 없음만은 독자 여러분께서 알아주시길 바란다. 다만 그때는 괴리감 때문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신은 이렇게 농담을 잘 친다. 내 친구들이 동방신기라며 호들갑 떠는 외모를 주심과 동시에 간질을 주시다니. 물론 상태가 심한 것은 아니라 그 파란 약을 꾸준히 복용하기만 하면 됐지만, 저렇게 코스모스처럼 가녀린 아이한테 간질보다는 폐병이 차라리 어울렸을 텐데. 얘는 1편에서 이야기한 ‘나이키 에어 맥스’를 원한 녀석보다는 여러 모로 나은 아이였지만, ‘빼빼로 데이’에 나를 실망시키고 말았다.


11월 11일에 학교를 다녀온 아이는 이상하게 우울해 보였다. 빼빼로를 건네주고 나서 왜 그렇게 우울하냐고 물어봤더니 대답이 가관이었다.


pepero-99626_640.jpg


“1학기 때부터 나한테 관심 있어 하던 애가 있었거든. 걔 꽤 괜찮은 앤데, 오늘 다른 애들한테만 빼빼로를 주더라.”


그놈의 손에 들린 빼빼로를 빼앗아 몽땅 또각또각 부러뜨려 버리고 싶었다. 제 놈하고 ‘썸’타던 여자애한테 빼빼로를 받지 못해서 기분이 축 처진다는 이야기를 제 여자 친구한테 하고 있는 꼴이라니. 할 말 안 할 말을 구분을 못했다. 이 때 알았다. 연하남을 사귀려면 애인이자 물주, 그리고 누나이자 엄마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썸타던 여자애가 빼빼로를 안 줬다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여자 친구란 얼마나 만만한 존재인가.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연하든 연상이든 남자를 만날 땐 누나나 엄마 노릇을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어 맥스 녀석 이야기로 돌아가서, 결국 내가 그 애와 헤어진 것은 허덕거리며 대던 데이트 비용 때문도, 제 친구들에게 연상을 능숙하게 다루는 매력남인 척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도 아니었다. 어느 날, 그 애는 나에게 나 자신을 미워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그 녀석은 아직도 그게 실수인 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 때 내가 살고 있던 자취방은 양문 냉장고보다 조금 클까 말까 한 자취방이었는데, 장마철이면 방에 연결된 다용도실에 물이 차올라 퀴퀴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양동이로 연신 구정물을 퍼내면서 양수기가 올 때까지 근근이 버텨야 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나는 될 수 있는 한 그 방에 들어가 있고 싶지 않았다. 학교, 회사, 집을 오가며 버스에서나 눈을 붙이던 나는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햇볕 드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방에서 창문을 열면 30cm 거리에 옆집 담이 있었고, 그 담을 만질 수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햇빛이 내 방을 찾아드는 날은 없었고 자꾸 시들어가던 나는 틈이 나는 대로 해를 쬐고 싶었다. 햇살 아래서 내가 아직 젊다는 것을, 꿈을 꿀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싶었다. 캔커피 하나 들고 공원에서라도 웃고 싶었다.


alley-984005_640.jpg


하지만 그 애는 만나면 항상 그 퀴퀴한 방으로 가자고 조르고 졸랐다. 연하의 남자애가 귀엽긴 하지만 한 번 안 된다고 거절해도 “누나아아아아아~”하고 졸라대기까지 하는 건 난감했다. 그 때 처음으로 연하는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남자 대접도 받고 다섯 살짜리 아이처럼 조르는 것까지 하려 하다니, 공평하지 않았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그 방에 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그 애는 꿀단지라도 숨겨 둔 듯 그 방에 가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 실랑이를 할 때마다 나는 그저 쓸쓸했다. 그 퀴퀴한 방에 그 애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것은 아마 독자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바로 그 이유였으니까. 이제 공소시효도 지났으니 털어놓을 수 있지만 나는 그걸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 그 애가 거기 가려 안달이 났던 바로 그 이유를. 하지만 그건 정말이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죽을 만큼 쉽지 않았다.





지난 기사


나는 박복한 년이다




김현진입니다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