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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밑이 되자 나도 남들 하는 것처럼 뒤를 흘깃흘깃 돌아보게 된다. 전 세계 증시가 폭락하고, 트럼프는 여전히 꼬장을 부리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는 걸 보며 세계, 국가 단위의 큰 이야기를 할까 싶다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으니 그런 이야기로 그 틈을 비집고들 필요는 없겠다 생각했다.

 

대신 내가 살고 있는 제주도의 10년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 작은 섬에서 지난 10년 동안 벌어진 이야기는 제주도만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정치 경제적 일련의 흐름을 매우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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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면적이 1,849 Km2 정도 되는 섬이다. 인구는 2018년 현재 약 62만 명 정도 되는데 역사상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오래전부터 제주도는 바람, 여자, 돌이 많다고 예부터 삼다도라 불렸다. 제주도의 가장 유명한 생수 브랜드, 삼다수가 여기서 나왔다. 다른 한편, 도둑, 대문, 거지가 없다고 해서 삼무도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이 별명들은 그렇게 불릴만한 이유를 갖고 있다.

 

대륙과 바다에서 만들어진 기압들이 부딪히는 길목이니 바람이 많을 수밖에 없고, 숱한 착취와 지난한 역사 때문에 육지에 비해 여자가 많았다. 화산 폭발로 생긴 비교적 젊은 섬이니 현무암 같은 화산암이 지천에 깔린 돌섬이기도 했다. 그래서 삼다도다.

 

반면 물이 항상 흐르는 강이 없어 토양이 퇴적되지 않으니 땅은 작물을 기르기에 척박해서 늘 먹을 것도 부족하고 가난한 섬이었다. 하지만 끊임없는 육지의 수탈은 사람들의 결속력을 높였고, 외부와 고립된 섬이라는 특수성은 어떻게든 섬사람끼리 서로 관계를 맺게 하였다. 소위 말하는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지는 ‘괸당’이라는 관계다. 괸당의 사회적 관계망은 요즘 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만큼이나 빠르고 조밀해서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람이 된다. 그러니 가뭄이 들어 모두가 굶을 수는 있어도 평소에 굶는 이들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았다. 이런 관계망 안에서는 도둑질을 하기도 어려웠고 구걸을 할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육지에서나 봄직한 육중한 대문이 필요하지 않았다. 긴 작대기 세 개, 정낭을 거는 걸로 족했다. 제주도가 도둑, 거지, 대문이 없는 삼무도로 불린 연유다.

 

해방이 되고 이승만 정권과 미 군정에 의해 중산간 마을의 95%가 파괴되는 질곡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박정희 시절 중문 같은 아름다운 자연이 계획도 없이 파헤쳐져 국적불명의 관광지로 개발이 되는 와중에도 제주도는 자신의 고유한 환경과 문화를 그런대로 지키고 살았다.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낮아지고 유동성이 풍부해지기 시작하며 신자유주의가 마지막 광기의 폭주를 하기 시작한 2000년에 들어서면서 제주도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골프장과 같은 대규모 위락시설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부동산 개발이 중심에선 관광산업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한때 전국 골프장의 10%가 이 작은 섬에 몰리며 제주도는 삼다도로 상징되는 고유의 정체성을 잃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후 신자유주의의 조종이 울려 그 속도가 늦춰지나 싶었지만 미국을 필두로 유럽, 일본, 중국, 미국, 대한민국 할 것 없이 어지간히 산업화된 나라들은 전대미문의 돈을 시장에 쏟아붓고 명목 이자율까지도 0%로 내리는 저금리 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위 ‘양적완화’ 정책이다. 그 덕에 이 작은 섬에도 살랑살랑 돈바람이 불어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을 덮는 돈 쓰나미가 덮쳤다. 변화의 속도가 늦춰지기는커녕 가속도가 붙었다. 돈의 쓰나미가 쓸고 가자 돌, 바람, 여자의 삼다도가 아닌 새로운 삼다도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삼무의 섬이 되었다.

 

 

산담, 밭담 대신 콘크리트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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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모이는 곳에는 자연히 사람이 모이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빈번히 일어난다. 무슨 이유에서건 사람이 모이면 돈도 몰려든다. 2000년 이후의 제주도는 후자의 경우다. 그 시작은 ‘치유' 혹은 '힐링’이라는 코드에서 시작되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영감을 얻어 제주도 올레길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이유로 제주도를 찾기 시작했다. 늘 관광버스에 몸을 실어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던 관광에서 이제껏 걸어 보지 못했던 제주도의 속길들을 천천히 걸으며 자신을 치유하는, 말 그대로의 ‘힐링 여행’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둘씩 모이자 매스컴이 가만있질 않았다. 세계적으로도 ‘빠름’보다는 ‘느림’, ‘새것’보다는 ‘옛 것’, ‘허영’보다는 ‘진솔’을 키워드로 하는 트렌드, 소위 ‘킨포크 Kinfork’라는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국내의 모든 매스컴들도 하나둘씩 그런 이유로 사람들이 찾는 제주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매스컴뿐만 아니라 블로그와 SNS라는 막강한 네트워크를 통해 제주도에게 새롭게 부여된 이미지가 광속의 속도로 재생산되어 유포되자, 무한 경쟁에 대책 없이 내몰려 지친 이들뿐만 아니라 자기 증식의 기회라면 놓치지 않는 자본도 제주도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져 절체절명의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서구의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투자이민법을 완화하기 시작했다. 투자 금액의 기준을 낮추고 자격을 완화해서 적극적으로 자국에 돈이 들어오도록 조치했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중국 자본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전 세계적 유명 도시들의 부동산 가격 급등을 추동한 자본은 중국 자본이었다. 제주도도 이런 국제적 흐름에 편승해서 일정 금액 이상의 제주도 부동산에 투자한 이들에게 영주권을 주기 시작했고 외국의 자본까지도 이 작은 섬에 몰려들 물고를 터주었다.

 

2001년부터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2008년까지 제주도의 건축착공면적은 약 830만 m2 정도 되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돈을 풀기 시작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건축착공면적은 2,100만 m2, 약 2.6배 정도에 이르게 된다.

 

제주시나 서귀포시가 신도시 개발로 급격하게 확장되어 전에는 제주도에서 보지 못했던 고층 아파트들과 호텔들이 들어서 도시의 병풍을 이루었다. 제주시나 서귀포시뿐만 아니라 읍면 소재지, 리 단위의 작은 마을에도 우후죽순처럼 공동주택들과 중소규모 호텔들이 어깨를 맞대 들어서 있다. 도시 주변이야 그렇다 쳐도 세계적으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식생을 자랑하던 곶자왈과 중산간이 마구 파헤쳐지기 시작하며 숲과 푸른 벌판이 아름답게 펼쳐 있던 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회색빛 콘크리트 더미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불쑥불쑥 솟아 있다. 오월이면 하얀 귤꽃이 코끝을 간지르는 미향을 뿜고 늦가을이면 야물어진 노란 귤들이 보석처럼 반짝거리던 귤밭들에는 전국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타일로 지어진 콘크리트 단독주택들과 타운하우스들이 들어섰고 그 대부분은 전 세계적 숙박업소 중계업자 에어비앤비를 통해 집을 통째로 빌려주는 숙박업소가 되었다.

 

그 결과, 2018년 12월 제주도는 현무암으로 쌓은 산담이나 밭담보다는 콘크리트 돌담과 시커먼 아스팔트 길이 더 눈에 띄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세계 어디에서나 흔히 불 수 있는 그저 그런 관광지로 변모했다.

 

 

바람 대신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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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예전부터 1인당 쓰레기가 전국 최고였다. 제주도와 수위를 다투는 지방은 강원도. 이 두 지역이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이 유달리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 산업에서 차지하는 관광업의 비중이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관광업이라는 산업 요인을 뺀다면 제주도와 강원도는 대도시를 제외한 타 지방의 배출량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의 경우 제주도의 관광객 수는 2010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제주도를 방문한 관광객 수는 4천4백만 명 정도 된다. 2009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제주도를 방문한 관광객 수는 1억 명으로 2배 넘어 증가했다. 제주도가 여전히 1인당 쓰레기 배출량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다.

 

급격히 늘어난 쓰레기양도 문제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쓰레기들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이 작은 섬에 있냐는 것이다. 현재 운영되는 동부, 서부 쓰레기 매립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 매립 쓰레기를 도외로 반출하기 바쁜 지경인데 육지 다른 지역들도 갈수록 아무도 남의 쓰레기를 받으려 하지 않으니 반출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매립장이나 소각장을 새로 지으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양적 성장에만 골몰한 현재의 관광정책이라면 이 작은 섬에 쓰레기 처리 시설을 얼마나 더 지어야 하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 더구나 제2공항까지 만들어 연 5천만 명의 여객이 드나들게 되면 아마 제주도 중산간 언저리는 하얀 연기를 내뿜는 소각장들이 들어서 제주도의 새로운 상징이 될 것이다. 섬 위에는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들이 쌓이고 제주 해안가는 한자와 일본어가 쓰인 쓰레기들까지 몰려오고 있다. 지금 제주도에는 바람보다 많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숨비 소리 대신 뽀글뽀글 하얀 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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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는 제주도의 상징이다. 숨비 소리를 내뿜으며 해변마다 물질을 하는 해녀는 제주도 사람들이 제주도라는 자연에 순응하며 만든 제주만의 문화이다. 하지만 이 모습도 조만간 보기 힘들어질 것 같다. 얼마 안 있어 해녀는 제주 바닷가가 아닌 섭지코지에 있는 동양 최대 수족관의 쇼에서나 볼 날이 올지 모른다.

 

제주도의 또 심각한 문제, 섬이라서 육지보다 더 심각한 물 문제 때문이다. 제주도에는 지표를 흐르는 천이 없다. 비가 많이 와서 땅의 흡수 용량을 넘어섰을 때에만 물이 흐르는 건천 혹은 간헐천이다. 제주도의 지층구조 때문에 좋은 지하수 자원이 있지만 이 용량에도 한계가 있다.

 

몇 년 새 마른 장마가 이어지자 툭하면 중산간 마을에서는 해마다 제한급수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산간 지역이 물 부족으로 허덕이는 이유는 당연히 급격한 관광객의 증가와 함께 그 많은 관광객을 수용하며 대규모로 물을 소비하는 이미 개발되었거나 개발되고 있는 대규모 휴양, 위락 시설들이 대부분 중산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물을 사용하는 골프장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시설들 대부분이 제주도의 지하수를 사용한다.

 

제주도가 섬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산간 마을, 제주도 서부의 경우에는 해안 인접 마을에서조차 이루어지는 제한급수가 갖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것은 이미 제주도의 수자원이 수용할 수 있는 인구 수용성을 넘어섰다는 의미다. 더구나 기후변화로 장마철이 사라지고 아주 짧은 시간에 일 년 강수량에 버금가는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물 부족 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사용할 물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흥청망청 써버린 오폐수를 처리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최근 몇 년간 제주도는 축산 시설 폐수의 무단방류뿐만 아니라 도에서 운영하는 하수종말처리시설조차 밀려드는 오폐수를 처리할 수 없어 바다로 흘려보내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당연히 이런 무단방류는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해녀들의 생활터전인 바닷물을 오염시킨다.

 

지난 12월 17일 월정리 해녀들이 제주도청 앞에서 해녀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제주바다를 회복시키라며 집회를 가졌다. 제주도 동부지역의 오폐수를 처리하는 동부하수처리장은 월정리에 있다. 해녀들을 거대 수족관에서나 만날 날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코앞에 닥친 바로 내일 일이다. 제주 바다의 상징은 이제 해녀가 뿜는 숨비소리 대신 오폐수가 뿜어 대는 하얀 거품인 셈이다.

 

 

2018년 세밑 제주도

 

요새 높은 관광 비용과 서비스 정신 부재로 관광객이 줄었다고, 거래가 안돼 땅값이 떨어졌다고 이곳저곳에서 곡소리가 요란하다. 이에 관련된 뉴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7,300원짜리 항공권이 등장하고, 1인 하룻밤 호텔에서 자는 비용이 15,000원이며, 렌터카를 하루 빌리는데 기껏 만원 안팎인데 관광 비용이 비싸다? 관점에 따라서 서비스 정신이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다른 곳을 여행해보면 그냥 평균적인 수준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남아시아의 휴양, 관광지와 제주도를 비교한다. 하지만 제주도와 그곳들을 동일 선에 놓는 것은 부당하다. 국민소득이 몇 배 차이가 나고 사회 경제적 환경이 전혀 다른 두 지역을 그냥 비교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관광객이 줄었다는 현상은 지난 10년간 제주도가 의지한 관광산업 정책과 시스템이 효용 가치를 다했다는 것으로 읽어야 제대로 그 의미를 파악하게 되고 해법도 마련할 수 있다. 그동안 툭하면 사용했던 비용이나 서비스 정신을 키워드로 들여다보면 얽힌 실타래 끝도 찾을 수 없다. 지난 십 년간 1억 명 가까이가 찾아왔고 그 대부분이 내국인인데, 점점 제모습을 잃어가는 제주도를 더 많은 사람들이 찾길 원한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제주도도 이렇듯 매 순간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는 세상사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그냥 이대로 관성에 몸을 맡긴다면 제주도의 내일은 더 암울한 비관의 궤도를 달릴 가능성이 높아 우울은 깊어 간다. 그래도 이렇게 계속 떠들고, 만나는 이웃들에게 실현되지도 않은 돈다발에서 내려와 무엇을 지켜야 할지 심사숙고하라고 거듭 이야기하다 보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태양이 떠오르는 내일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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