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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편집부는 일개 필진에게 대접을 융숭하게 해준다. 틈만 나면 식사와 커피를 사주며 자주 안부를 묻는다. 잦은 교류는 인간적인 정을 생성한다. 정에는 장사가 없다. 미주알고주알 개인사를 늘어놓다 보면, 필진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가 충정로 딴지 사옥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은, 어떤 이슈를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필진에게 기사를 배당하는 딴지 편집부의 필진 관리 노하우다. 관리의 삼성이라 했던가. 딴지도 만만치 않다.  

 

(인 - 딴지일보 기자 인지니어스, 근 - 딴지일보 필진 근육병아리)

 

인 – 2018 결산 기사 주제 뭐로 쓸지 생각해보셨어요?

근 – 음..네 일단 생각해본 게 있는데요...

인  (자연스럽게) 와 근병님, 머리 이제 완전 풍성하네요??

근 – (왠지 모르게 우쭐) 하하핫 이제 모자 쓸 일이 없죠.

인 – 이번 결산, 탈모에 대해서 씁시다. 2018년 탈모인의 탈모 극복기. 탈모인의 고충에 대해 쓴다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근 – 네? 그건 좀..

인 – 근병님. 생각해보세요. 저희가 그동안 얼마나 근병님의 자율성을 보장하며 집필을 응원해왔는지.. 

 

관리는 양날의 검이다. 따듯한 관심으로 필진이 편안하게 글을 낼 수 있게 하는 것도 관리지만, 꼼짝없이 글을 쓰게 하는 것도 관리다. 딴지의 방침에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쓰라는데 써야지. 그래서 꺼내 보겠다. 깊숙이 봉인해둔 탈모의 쓰린 기억들을.

 

 

앞으로 더 ㅈ 될 것이라는 공포

 

20대 끝자락 어느 날, 샤워를 하다 윗머리가 샴푸거품에 뭉쳐지는 느낌이 왠지 낯설었다. 어딘가 엉성하게 쓸리는 오래된 빗자루 같은 시원치 않은 감촉. 기분이 서늘했다. 머리를 말리고 찬찬히 머릿속을 들여다봤다. 이마 넓이는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머리칼이 얇아진 것 같기도 했다. 거푸 들춰봤던 앞머리를 꾹꾹 누르며 생각했다.

 

‘에이, 설마. 기분 탓이겠지.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그냥 요즘 좀 피곤했던 거야. 그래 맞아 스트레스가 많았어.’

 

하지만 늘 그렇듯,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다. 

 

탈모는 느지막이 감당해야 할 남자의 숙제로 알고 있었다, 팽팽한 피부에 헐거운 머리칼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비극적인 일이다. 20대 후반, 이미 앞머리와 정수리가 헛헛해진 친구들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었다. 또래 사이에서 두피의 휑뎅함은 놀림의 대상이었다. 그땐 나도 철모르고 그들을 조롱했다. 윗머리가 점점 얇아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아직 저들만큼 완연한 탈모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한 채, 나에게 그런 비극적인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며. 그렇게 30대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놀림을 멈추게 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조롱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비슷한 처지가 되어서야, 비로소. 

 

탈모는 어느 날 갑자기 덮치지 않는다. 두피의 황폐화는 서서히 진행된다. 탈모는 일순간의 수치심이 아니다. 조금씩 죄어오는 두려움, 앞으로 더 ㅈ 될 것이라는 공포, 그것을 아침마다 마주해야 하는 고통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머리가 빠지고 자라나기를 반복하다가 그 순환을 멈추는 것은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다. 문제는 그 속도와 양상이 평균보다 빨리 올 때 발생한다. 평균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공포다. 

 

나는 이마 양쪽 헤어라인이 후퇴하는 전형적인 M자 탈모였다. 서른이 넘자 머리카락들이 점점 얇아지고 주저앉기 시작했다. 처음엔 머리를 잘 만지면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외출준비가 길어졌다. 머리를 세우고 나가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이내 풀이 죽었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더운 날이면 차라리 모자가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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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무한도전에서 명수 형 민머리를 놀리는 유재석의 깐족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저 양반 머리 빠지는 게 무슨 죄라고 저렇게 조롱하는가. 우리 문화 속에서 탈모는 웃기고 정상적이지 않은 대상이다. 사회적으로 내재화된 그 희화의 대상으로 변모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세상이 무척 야속하게 느껴졌다.

 

혹자는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주드로나 제이슨 스타뎀 같은 배우들을 나열하며, 대머리를 당당하게 남성의 매력으로 내세워보라는 말을 한다.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주드로나 제이슨 스타뎀이 머리 빠지기 전 풍성했던 시절의 사진을 꼭 보여주고 싶다. 그들도 어쩔 수 없으니 그렇게 사는 거지 지킬 수 있으면 모든 것을 다 걸고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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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맞냐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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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야

 

올해 1월, 새로운 운명을 맞이한 그 날을 기억한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사정이 생겨 갑자기 뜬 시간, 나는 압구정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때 뜬금없이 모발이식 병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무작정 들어갔다. 그래 이 엿 같은 운명을 한번 직시해보자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야마사키 도요코의 소설<하얀거탑>에 나올 법한 거대한 위용을 내뿜고 있던 병원 로비에는  모자를 쓴 남자들이 빽빽이 앉아있었다. 모자를 쓴 사람들의 어두운 표정과 고급스런 인테리어의 휘황찬란함이 만난 끔찍한 혼종. 그곳은 머리 심는 공장 같았다. 접수, 상담, 진찰, 견적 문의를 모두 다른 층에서 다른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그 컨베이어 벨트의 끝에서 드디어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수술을 끝내고 나왔는지 지친 기색이 역력하던 그는 색연필로 내 이마 양쪽에 탈모가 진행된 부분을 표시했다. 뒷머리에서 뽑아와 여기에 이만큼 심겠다는 일종의 단호한 재개발 지역 선언인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그다음이었다. 색연필로 난자된 이마를 머리띠로 까 올리고 망연자실 앉아있는 나에게 코디네이터라고 불리는 여성분이 다가왔다. 그녀는 고해상도 디지털카메라로 360도를 돌며 내 머리를 밀착 취재했다. 그 사진을 바탕으로 향후 탈모 진행 예상도를 시뮬레이션해 주는 거라 했다. 엔터키가 한 번씩 눌릴 때마다 커다란 벽걸이 모니터 안에 내 젊은 얼굴 위의 머리가 점차 벗겨졌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마케팅이 다 있나. 이 시뮬레이션은 내 오열을 봐야 끝나는 것일까. 여기가 남산 밑 고문실이었다면 나는 엔터키를 멈추기 위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다 불었을 것이다. 

 

모든 상담을 마치고 하얀거탑을 빠져나오니 온몸에 힘이 빠졌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냥 막연한 두려움 정도였는데, 이젠 마치 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였다. 수술을 하더라도 이렇게 비인간적인 곳에서 내 머리를 맡기기 싫었다. 다른 병원을 알아보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한 탈모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다.

 

월 100만 명이 접속한다는 그곳은 무척 생경한 세계였다. 병원, 약물, 가발, 헤어제품 등 탈모를 극복할 수 있는 여러 방법과 후기들이 총 망라되어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내가 경험한 공포와 스트레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탈모로 고통받았던 경험, 극복한 경험, 대머리를 비웃는 야속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마음가짐 등 정말이지 인간극장 감독판을 보는 것 같았다. 매일 속세의 모진 풍파를 겪는 회원들이 모인 커뮤니티는 천국이었다. 트집 잡고 비아냥대는 싸움은 고사하고 악플조차 찾을 수 없는 곳. 그곳에서 회원들끼리 주고받는 인사말은 ‘득모하세요’다. 세상에 이렇게 따듯하고 인류애 넘치는 동지들이 많았구나. 묘한 안도감과 연대감이 들었다. 그곳은 각종 갈라치기로 유혈 낭자했던 2018년 대한민국 커뮤니티문화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희망의 모내기

 

따듯한 랜선 동지들의 조언을 참고삼아 한 병원을 찾았다. 간단한 설문지 작성 후에 바로 의사와 마주 앉았다. 무덤덤한 말투였지만, 확실히 전의 병원과는 달랐다. 탈모 극복의 첫 단계는 마음의 치료라고 했다. 진부하지만 와 닿았다. 이 정도 공감 능력이면 머리를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짜를 골라잡고 수술대 위에 올랐다. 2018년 정초에 그렇게 나는 희망에 씨앗을 머리에 품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를 심는다고 갑자기 머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영문도 모른 채 앞으로 강제 이주된 머리는 새로운 땅에서 생착하고 터를 잡아 서서히 세상 위로 올라온다.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때부터 이미 내 마음은 치료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수술과 함께 복용하기 시작한 탈모치료제는 사람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고 들었는데 나에겐 약빨이 끝내줬다. 있던 머리들은 하루가 다르게 튼튼해졌고, 심어놓은 녀석들은 조금씩 희망의 성장을 지속했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인간에게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외출 중에 거울을 찾아보는 시간이 줄어들 때, 모자 없이 가을 바람의 상쾌함을 맞이할 때 나의 짧은 콤플렉스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19년 나의 동지들에게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던 머리 사정은 더 이상 고민거리가 아니게 되었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의 지난 절치부심을 커밍아웃하고, 최근의 호전을 알려줬다. 너도 나아질 수 있다고, 슬퍼하지 말라고. (그래서 결국 이 글을 쓰게 되었지만..)

 

변화는 주변에서도 일어났다. 탈모의 공포와 고통을 혼자 끙끙 앓던 주변 사람들이 너도나도 자신의 비밀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만 머리가 빠지는 게 아니구나’라는 사실만으로도 서로 묘한 위안을 얻었다. 이제 친구들이 모이면 더 이상 탈모로 서로를 조롱하지 않는다. 약으로, 수술로 득모한 자들을 축하해주고, 머리카락을 지키는 정보를 터놓고 교환한다. 생착과 성장을 끝내고 겨울바람에 완연하게 찰랑거리는 내 머리칼에 희망을 품는 친구들과의 연말모임은 훈훈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남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탈모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는 재고 되어야한다. 확실히 더 많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탈모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박명수 민머리의 익살에 거짓웃음을 짓는지, 동시에 남몰래 프로페시아(남성형 탈모 치료제)를 먹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아무리 탈모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세상의 시선이 그렇지 않음에 홀로 맞서고 견디는 것은 힘든 일이다. 터놓고 이야기하면 견디고 극복하기는 한결 쉬워진다. 

 

2019년,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모두 득모 하시길, 힘내시길.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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