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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드라마 보지 않던 사람들도 <스카이캐슬>은 많이 보았다고 한다. 그 폭발적인 반응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던 장면들의 힘이 아닐까 한다. 과장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인물들의 행동에 드러나는 욕망에 우리 모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는 거다.

 

나 역시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한테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또는 내 친구에게 일어났던 일인데)라고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스카이캐슬>이 끝난 후, 그 공감은 용기가 됐고, 내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야 말았다. 현실에서 <스카이캐슬>을 찍게 된 거다.

 

“어머니, 저 대학에 사직서 냈습니다. 이제 어디 가서 내 아들 대학교수라고 자랑 좀 하지 말아주세요. 제 인생은 어머니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만 진절머리가 납니다. 그 놈의 자랑 때문에 50년 제 인생 사는 동안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하세요?”

 

스카이캐슬 종영 일주일 후에 벌어진 일이다. 마음이 씁쓸하다. 이 불효자 돌 쌍놈 같으니라고. 팔순 노모에게 이제 얼마나 더 사신다고 꼭 그렇게까지 말씀을 드렸어야 했나. 글쎄, 반대로, 이제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꼭 드리고 싶은 말을 더 늦기 전에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어머니의 반응은  강준상 교수 어머니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이 도저히 통하지 않았다. 어차피 어머니를 변화시킨다거나 설득하려고 말씀드린 게 아니다.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건 그냥 하나의 “선언”일 뿐이다. 그래도 속은 편하다. 이제 아들이 곧 백수가 되고 식구들 먹고살 것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는데 민망하고 부끄러워서라도 어디 가서 자랑은 더 이상 안 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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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고의 효도는 서울대 

 

나는 주눅이 많이 든 아이였다. 집안 분위기가 좀 그랬다. 국민학교 때에는 딱히 재주가 없었다. 그런데 사춘기를 지나면서 재주를 하나 발견했다. 공부하는 것.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험 잘 보는 재주. 일단 공부를 잘 하고 보니, 아니 시험을 몇 번 잘 보고 나니, 학교 생활이 많이 편해졌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별로 나쁘지 않았다. 우리 집에 돈이 많다거나 부모님에게 권력도 없는데 밖에서 남이 나에게 함부로 못 한다는 게 괜찮은 것 같았다.

 

시건방진 소리도 많이 하면서 사춘기를 보냈다. 고2 때까지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공부도 학교 성적도 하찮게 생각했었다. 공부란 하고 싶을 때 하는 거고, 성적은 신경 써서 시험 준비를 하면 괜찮게 나오는 거고, 신경 덜 쓰면 덜 나오는 것, 정도. 다행히 수학, 과학, 영어는 워낙에 재미있어했기 때문에 그 “하고 싶을 때”라는 게 꽤 자주 있어서 그랬지만, 공부는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게 고2 때까지 내 철칙이었다.

 

이대로면 카이스트는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당시 카이스트에서 학사과정을 뽑기 시작한 지 2~3년 된 시점). 등록금도 국가에서 대준다고 하니, 돈 걱정할 필요도 없겠다는 마음으로 고3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심심풀이로 본 모의고사 점수가 꽤 잘 나왔다. 그러자 사방에서 회유, 압력, 설득 작업이 들어왔다. 서울대가 과기대보다 왜 좋은지 어른들이 설명했는데, 어리버리한 18세 소년은 저항할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이 말에 넘어갔다.

 

 “야 너 효도해야지. 네가 서울대 가면 그게 부모님께 얼마나 큰 효도인지 알아?” 

 

그놈의 효도. 그럼 KAIST 간 애들은 다 불효자인가? 40년이 지난 지금, 똥오줌 정도는 가릴 줄 알고 보니 터무니없는 말이라는 걸 알겠는데, 그때는 그냥 그런가 했다. KAIST를 가면 불효자구나.

 

인생 잠깐만 희생한다 생각하고(하루 대부분을 공부하는 데에 썼다), 학력고사 준비만 했다. 결국 서울대 공대, 이름 좋~은 과에 합격하게 됐다. 

 

졸지에 나는, 천하의 효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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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업그레이드된 껍질

 

내가 서울대생이 되자, 고등학교 때까지 “저놈 도데체 뭘 믿고 저러냐” 하던 사람들이 “아, 저 정도 되니까 저랬구나” 했고, 한 술 더 떠서, “인제 저놈 옆에 붙어가자”하는 것도 보였다. 사람들이 인정해준다는 것이 참 달콤했다. 때마침 과외금지가 해제되었고, 나도 과외를 뛰게 되었다. 부모님 연배의 어른들이, "선생님 우리 애 좀 잘 부탁드립니다~" 하면서 머리를 숙이시는데, 처음에는 겸연쩍었지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새로운 다이내믹을 즐기게 되었다.

 

돈을 버는 것이 쉽고 재미있었다. 한 학생을 두 달 가르치면 한 학기 등록금이 나올 정도로 받았는데, 그걸 두탕, 세탕까지도 뛰었다. 아버지께서는 경제활동을 더이상 하지 못하던 상태였는데, 과외 덕분에 그 지긋지긋했던 우리집 빚은 조금씩 줄어갔다. 돈 걱정을 안 하게 되니 인생이 달라졌다.

 

물론 대학생활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맘 놓고 공부할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전공 공부는 정말 재미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알바하러 가야 했으니, 반쪽의 행복이었다. 또 하나의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였다. 사실 겉으로는 자신감 있게 행동했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주눅이 들었었고 그것이 은근하게 열등감으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서울대에 들어가면 열등감이 해소될 거라는 소망은 착각이었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마음속에 자리 잡은 주눅은 깨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강남 8학군 출신들은 넘사벽으로 느껴졌다. 그땐 의미 없는 계급의식에 사로잡혀 그런 학생들을 친구로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그들은 경쟁해서 이겨내야 할 대상이고, 내가 얘네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실력을 쌓는 것이라고 계속 자기최면을 걸었다. 알바 하느라 시간을 뺐기는 게 뼈 아프지만 두고 보자. 난 이렇게 하고도 너희들을 이길 수 있다. 이런 식이었다.

 

어릴 적 친했던 친구와 중학교 때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8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 친구 아버님께서 “동교동 김 선생님”과 70년대부터 자주 만나셨는데, 아버님이 그 친구에게 김 선생님의 말씀을 많이 전해주셨나 보다. 한번은 그 친구와 가난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야, 김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가난은 올바른 성격 형성에 방해가 된데.”

 

실제로 DJ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가난은 죄가 아니다 단지 불편할 따름이다 라는 신조를 갖고 있던 나는 그말을 듣고 무지하게 서운했다. 아마 한바탕 싸웠던 것 같다. 

 

그런데 어쩌냐, 그 말이 맞는걸. 바로 내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빈곤의 문제가 아니고(돈이 없어서 밥을 굶은 적은 없으니까), 집에 돈이 몇 푼 없음으로 인해서 어린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되었느냐, 그 상처가 얼마나 보듬어졌나, 가난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 아이의 자존감이 얼마나 존중되었고 개발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부모님으로부터 적절한 양육을 받지 못했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얼마나 마이너스였는지 내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니 이제사 보인다. 그런 쓰잘데기 없는 열등감을 커버하기 위해서 나는 더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한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보도록 하는 결과를 계속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압력을 가해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도데체 왜 이렇게 살아야 했나. 그동안 참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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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입신양명, 충효예, 체면, 감투

 

나는 열심히 살았다. 하라는 대로 했다. 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려고 했고, 부모님께는 좋은 아들이 되고 싶었다. 어딜 가더라도 우러러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건 함정이다. 이런 식의 삶이 사회에 보탬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런 길을 따르는 것이 내 개인의 행복을 담보해준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그건 별개의 문제이다. 이런 삶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고, 언제나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내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최고 지향주의 (1등, 아니면 1등"급", 그것도 아니면 1등급 "대우")라는 그릇된 가치관이 나를 지배해서 난 노예처럼 끌려갔다는 사실이 아쉽다는 것이다. 그냥 적당히 하고 인정받으면 안 되었을까. 아니, 남한테 왜 인정을 받으려고 했을까, 고2 때까지의 내 가치관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왜 그 이후에 유지하지 못했을까. 

 

언제나 최고의 노력으로 승리하고, 남보다 앞서고 남이 우러러 볼 정도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삶을 살았다. 끝이 없다. 목표 하나를 달성하면 그 다음 더 높은 목표.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사는 것이다(실제로 우리 할아버님,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형제분들, 모두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다). 나는 말 잘 듣는 아이, 노력하는 학생, 듬직한 청년이라는 껍데기 속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는데, 하라는 것 잘하려는 노력만 하다 보니,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차분히 생각을 해볼 기회가 없었다. 결국, 껍데기만 쫒는 인생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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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계급장 떼고 살기

 

한국은 성(姓)을 쓰는 사회고, 미국은 명(名)을 쓰는 사회다. 근데 성이 몇 개 안되니, “이보게 김” “예 부르셨습니까 최님” 이렇게 부르면 어색하고, 구분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그 사람의 직위를 갖다 붙인다. “박 부장님” “서 대리” “이 박사님” “권 교수님”. 재미있는 게 이런 호칭은 그 직업 환경 안에서만 쓰이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이 속한 거의 모든 사회에서 쓰인다. 김 사장은 원래 자기 직원들 한테서만 사장이어야 하는데 다른 데 가도 사장이어야 한다. 사장님 소리를 붙여주지 않으면 짜증낸다. 사장은 그래도 양반이지, 검사, 교수, 연대장, 장군 등 감투를 갖고서 헛기침하는 예도 많다. 완장, 계급장 다 띠고 볼까? 홍, 길, 동. 홍 판사님 말고. 그냥 홍길동. 넌 도데체 누구냐?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름으로 통한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얘기를 하다 보면 알게 될 수도 있지만 그게 서로를 부르는 호칭 속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일례로 내가 다니는 교회에 연방정부 고위직에 있는 사람도 있고, 군대에서 중요한 보직(?)에 있다가 은퇴하신 분들도 있고, 높은 계급의 현역 군인도 있다. 그런데 솔직히 누가 뭘 하는지, 내가 알 필요가 없으면 don’t care. 몇 번 들어도 또 잊어버린다. 그 분들 다 그냥 John, Tim, Jim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지, 공통 관심사가 있는지, 결국 그들이 괜찮은 인간인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그게 포인트다. 어떤 감투를 쓰고 있는지는 내가 알 바 아니다.

 

지금 이 교회 다닌 지 5-6년이 되었고 다들 서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얼마 전에도 내가 교수짓을 하면서 밥 먹고 살고 있는지 몰랐다는 분도 있었다.  숨긴 것도 아니고, 누가 물어볼 때마다 사실대로 얘기를 했는데, 이들도 역시 내 직업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언젠가 선생짓을 한다는 말은 들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고, 이 동네 학교 음악선생이언줄 알았다는 분도 있었다(성가대 피아노 반주로 봉사를 몇 년 했던 관계로). 다행이다. 아마 그분은 1년 뒤에, 잊어버리고 똑같은 질문을 할 텐데, 그때는, 예 동네에서 애들 피아노 가르칩니다. 라고 대답하면 되겠구만.

 

 

나는 대학교수를 관뒀다. 어머니의 자랑거리 아들이 되는 것도 관뒀다. 나는 이제 계급장을 떼고 사려고 한다. 나는 이웃에게 어떤 사람인지, 아내에게 어떤 남편인지, 자식들에게 어떤 아빠은지, 결국 스스로에게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절대자에게 어떤 사람인지. 정답은 모르더라도 고민하며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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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글을 쓰던 중 지난 주일 교회에서 불렀던 노래인데, 가사가 참 마음에 와닿았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들도 어느 정도는 공감하시길 바라면서 링크를 올려드린다.

 

https://youtu.be/05jKxv8ApuI

 
소리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