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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입니다 추천25 비추천0






살면서 호구 아니었던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봐라.
아니, 도로 들어가세요. 별로 보기 싫으니까.


세상 살다 보면 복 받았구나,

정말 귀티 나네, 싶은 사람이 가끔은 있다.

내가 마음이 덜컥, 하고 불편해질 때는

그 사람들이 동그랗고 천진한 눈을 뜨고 불행이란 것을 믿지 않을 때.

돈 때문에 사람이 어디까지 끝없이 떨어질 수도 있고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 어디까지 천해질 수 있으며

가장 잔혹한 폭력은 흔히 가족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사실.


누구의 벽장에도 해골이 들어 있다는 사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 해골에 대해서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그 해골들은 풍화된 후

가끔 재미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통에 시간이 더해지면, 코미디가 된다.

우리 모두에게 시간의 축복이 있기를. 특별히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의 해골에게도.  

 




스물두 살이었고 생활에 지치고 십대 후반부터 앓던 우울증에 시달리던 나는 확실히 마음이 병들어 있었다. 그때 우연히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이 떠오른 나는 곧장 푼돈을 모으고 모아 어느 체육관에 등록했다. 정신건강, 그것이야말로 당시의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었다. 주 3일 회사에 출근하고 남은 시간을 몰아서 강의를 들으면서, 내 마음은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갈비뼈 사이로 모래가 우수수 떨어질 만큼 바싹 말라 있었다. 그 체육관에서 만난 게 그 남자애였으니 결국 몸은 좀 건강해졌을지언정 건강한 정신을 갖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물론 모든 사랑을 기억하는 인간은 이기적이다. 나 역시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그 연애를 이야기하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몇 년 후 연락이 온 그 애는 "누나 덕분에 여자가 어떤지 잘 알았어요"하고 비꼬듯 말했으니까. 아니, 넌 아직 모를 거야. 여자가 얼마나 간혹 물기 하나 없는 시든 나뭇가지처럼 와사삭, 하고 부서지고 마는지. 아마 그 애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내가 그 애를 일방적으로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도 하고 싶지 않아 모든 연락을 끊어 버렸다. 


마음이 시든 나뭇가지처럼 부러지기도 전에 목부터 부러질 뻔한 일이 있었다. 체육관에서 함께 운동을 하다 말고, 공원에 나간 강아지처럼 한창 신이 난 그 애가 어릴 때부터 배운 각종 무술의 시범을 나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나를 재료로 해서. 웬만한 건 견딜 만 했지만 파일드라이버를 한답시고 나를 머리부터 바닥에 내리꽂는 바람에 아무리 매트가 깔렸다 해도 목에서 빠지직, 하는 소리가 났다. 몸을 일으키자 당장 구역질이 났다. 화를 내려고 해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말한단 말인가. 너는 어떻게 나에게 파일드라이버를 걸 수가 있니? 라고. 대신 초크슬램이나 스완턴 밤, 최소한 저먼 수플렉스로 갚아 주고 싶었지만 내게는 차마 그럴 능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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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토하면서 집에 간신히 가서는 다음 날 바로 병원에 갔다. 왜 다쳤냐고 묻는 의사에게 남자친구가 저에게 파일드라이버를 걸었지 뭐에요, 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남자친구에 의해 다친 모든 여자가 하는 바로 그 말, '계단에서 떨어졌어요'를 써먹었다. 다행히 심하지는 않았지만 뇌진탕이었다. 한동안 걸어다닐 때 몸이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구역질이 나서 전신주 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쪼그리고 앉아 쉬어야 했다. 그 애에게 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라고 하자 그 애는 천진하게 웃으며 도장에서 그 정도 다치는 건 되게 흔해요, 뇌진탕 안 걸리는 사람 없어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걸리고 싶지 않았단 말이다, 이 자식아. 그것도 내 남자친구의 손으로 바닥에 내리꽂혀서 뇌진탕에 걸리고 싶진 않았다고. 남자친구에게 맞은 여자는 많지만 파일드라이버 걸려서 뇌진탕 겪은 여자 있으면 한번 나와 봐라. 박복규수 타이틀을 기꺼이 헌납하겠다. 초크슬램 같은 건 가끔 당하는 여자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러나 내가 그 아이에게 기가 질려 완전히 모든 연락을 끊고 내 인생에서 철저히 배제한 것은 기껏 뇌진탕 때문이 아니었다. 내 뇌가 소중하긴 하지만 완전히 맛이 가게 된 것도 아니고 그 정도는 용서할 수 있을 만큼 그 애를 좋아했다. (연하잔혹사 2편에서 어느 독자가 그렇게까지 남자를 만나야 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그랬다. 그래서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 분이 외로움보다는 괴로움을 견디는 게 나으셨나 봐요, 라 하셨다. 이건 뭐 지나가는 현자를 만난 격이었다. 딱 그 말대로, 나는 뇌진탕에 걸릴지언정 외로운 건 싫었던 거였다.) 


하지만 결국 그 애가 곁에 있어서 생겨나는 외로움이 그 애의 크기보다 커진 날, 그리고 내가 받은 상처가 그 애를 향한 사랑의 크기보다 커진 날, 나는 도끼로 나무 찍듯 그 애를 찍어냈다. 이미 청소년 보호법이고 뭐고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나는 그 애의 첫 여자였다.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았고 그게 옳았다고 지금도 생각하지 않지만, 나를 바닥에 내리꽂아도 여전히 사랑했던 아이가 그처럼 바라는데 거절할 방도가 없었다. 그것도 응? 응? 응? 응? 응? 하며 마트에서 장난감을 요구하는 어린아이처럼. 이럴 때 연하의 연인은 참 나빴다. 남자 노릇도 하고 아기 노릇도 하려 하다니. 


나는 늘 섹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첫 경험도 아는 사람에 의해 얼결에 당한 강간이나 마찬가지였고, 노골적인 성추행과 성희롱의 경험이 그 나이에 이미 수없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하얀 눈밭처럼 깨끗할 것 같은 연하의 남자친구를 택한 것은 그런 걸 원하지 않을 것 같다는 기대가 아마도 은연 중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어린 남자친구도 남자라는 것을. 묘한 서글픔과 죄의식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거절하지 못했다. 서로의 집이 아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만날 수 없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앞에 썼듯 늘 종이박스보다 별반 나을 것도 없는 내 방으로만 그 애는 기어들고 싶어 했다. 한숨이 나오면 여지없이 그 소리가 들려왔다. 응? 응? 응? 응? 응? 삐친 그 애를 달래느니 10분쯤 참는 게 나았다. 그냥 그 애는 내 몸을 지나갔고, 나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 몸으로 돌아가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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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으로 연락을 끊어 버린 것은, 내가 이하선염에 걸려 다람쥐처럼 턱이 부은 채 40도가 넘어가는 열을 견디고 있던 어느 주말이었다. 나 지금 너무너무 아파서 못 만난다고, 앓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그 애는 기어코 나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 하도 고집스럽게 그렇게 말하길래, 내가 어지간히 보고 싶은가보다 했다. 하지만 그게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거였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못 오게 했을 텐데. 끝끝내 집에 온 그 애는 열 때문에 머리카락이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는 내 표정을 읽지 못하고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손을 쳐냈다. 나 오늘 진짜 아파. 이러지 마. 나 도저히 못 해. 진짜 너무해, 이러면서 그 애가 뭐라고 한참 소리쳤는데 열에 들떠 생각나는 것은 이 한 마디뿐이다. 


"나 다음 주에 중간고사 쳐야 되기 때문에 못 온단 말이야아......" 


그러니까 지금 안 하면 2주를 못하니 지금 해야겠다는 거였다. 어차피 아프기 때문에 힘도 없었지만, 그 애가 결국 제 뜻을 푸는 동안 나는 제멋대로 남이 바닥에 내려쳤다 메어쳤다 하는 헝겊 인형이 된 것 같았다. 그러면서 좋았느냐고 물어봤던 것도 같다. 대답할 힘도 없었다. 누나 정말 많이 아픈가 보네, 그럼 쉬어, 하며 그 애는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옷을 제대로 추스를 힘도 없이 싸구려 스프링이 삐걱대는 매트리스 위에 널브러진 채 간신히 찬 수건을 만들어 스스로 이마를 식혔다. 뭔가 내 안에서 아주 소중한 게 빠져나간 것 같았다. 빼놓아서는 안 되는 어떤 것이. 내가 그 애와의 연락을 끊어버린 것은 그다음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몇 번이나 그 애는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마 그는 아직도 내가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 이유를 알지 못할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아쉽게도 별로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싫다는 말과 밀어내는 손을 좀 격렬한 전희 정도로 생각하는 남자를 꽤 많이 보았다. 아마 그렇게, 젖어오지조차 않는데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헝겊 인형처럼 내어 주는 여자가 적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계속 섹스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만취했다가 깨어났을 때 누군가 나를 '사용'해 섹스를 하고 있는 상황을 몇 번 경험했다. 그러면 당장 밀쳐낼지 어정쩡하게 장단을 맞춰야 할지 늘 혼란스러웠다. 아마 내가, 소라넷에서 말하는 '골뱅이'였던 모양이었다. 그때는 그런 사람들에게 함께 술에 취한다는 것은 섹스를 허락한다는 의미로 통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의식이 없는 사람을 '사용'해 섹스를 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그 애를 떼어내고 난 후 그 아이의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누나, XX이가 학교에서 뛰어내렸어요." 뛰어내렸다고? 어떻게 됐다고? 종이박스 같은 방에 앉아 나는 한참이나 스스로를 탓했다. 끝까지 싫다고 할 것이지. 화를 낼 힘도 없었지만 끝까지 싫다고 할걸. 아냐, 그렇다고 그 애가 내 말을 들어 주었을 리가 없어. 아무리 냉철하게 그때를 복기해 봐도, 아마 그 애는 제 뜻을 이루고야 말았을 것이다. 아마 내가 '골뱅이'가 되어 주어 즐거웠던 남자들이 그랬듯이. 


여전히 삐걱대는 매트리스 위에 앉아 혹시 죽은 거 아닐까, 하고 싸늘해진 손을 떨고 있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그 애가 뛰어내린 건 2층이었고, 워낙 배운 가락이 있어 순간적으로 낙법을 쳤다고. 그래서 십자인대만 끊어졌을 뿐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이 일 때문에 그 애는 후에 군 면제를 받았다. 논산훈련소 조교를 했던 사촌 동생은 그 이야기를 듣더니 훈련소 입대 첫날에 도저히 군 생활 못하겠다, 싶은 애들이 발에 수건 감고 뛰어내려서 면제 판정받고 그러는데 그 방식이랑 똑같은 것 같은데, 하며 묘한 표정을 했다. 결론은 어쨌거나, 나만 썅년이 된 거였다.


그래도 나는 그 애에게 차라리 썅년이 되면 썅년이 됐지, 그 무참하고 무력했던 시간을 돌이켜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설명한다고 해 봤자 알아들을 거라는 확신이 단 1%도 없었다. 그 덕분이라고 할까, 결국 연하 남자친구에 대한 환상은 깨끗이 사라졌다. 그들은 나를 징검다리처럼 밟고 더 어린 여자에게 가는 거였다. 나는 그러기 위한 가교였다. 내가 어떤 이들을 밟고 다른 사람에게 갔듯이. 


남자든 여자든 좀 더 스산함이라는 것을 아는 쪽이 더 많이 연애를 견뎌야 하고, 대부분 그건 나이가 많은 쪽이라는 사실을 나는 몇 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그때의 나는 혼자서 고즈넉이 있을 수 있는 숲 속보다 둘이 있는 벌판이, 그것도 당장 자그마한 불씨를 댕기기만 해도 금세 활활 타올라 버릴 위험이 있는 허허벌판을 기꺼이 택하는 쪽이었다. 내가 있는 숲 속은 내가 뱉어내는 이산화탄소만 해도 금방 꽉 차 버려서 나는 늘 숨을 헐떡였다. 지금은 숨을 조금 아끼면 된다는 사실을 안다. 괴로움만큼이나 외로움도 뭣 같지만, 그나마 이제는 외로움이 더 견디기 쉽다는 사실도 안다. 그건 그냥 혼자 고즈넉한 숲에 앉아 숨을 조금씩 참으면 되는 일이니까. 홀로 견디면 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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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는 비겁한 어른이 되었고 그 애에게는 길이길이 썅년으로 남았다. 십 년 전의 나에게 얘 차라리 외로운 게 낫단다, 라고 말을 해 봤자 스물두 살의 피가 펄펄 끓던 여자애는 곧이듣지 않고 오직 외롭지 않기 위해서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녔을 거란 사실도 이제는 안다. 시간이 흐른 뒤 서울에서 몇 가지 말로 설명할 수도 없는 일들을 겪고, 차라리 외롭기 위해서 서울을 떠나 천안까지 가 버린 나는 익숙한 외로움이 찾아오면 예전에 그걸 내쫓기 위해 했던 파리채를 가져오고 힘껏 밀어내고 약을 뿌리는 것 같은 일을 모두 때려치우고 그저 가만히 앉아 숨을 천천히 쉰다. 조금만 숨 쉬면 되는 거야. 아주 조금 숨 쉬고, 이산화탄소를 조금만 뿜어내는 거야.


어린 남자친구는 어른이 되어 군대를 면제받고 순조롭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전해 들었고, 나는 나대로 설명할 수 없던 몇 가지 일들로 만신창이가 되어 아직 일어나지 못한 채 그 숲 속 넓적한 바위 위에 앉아 천천히 숨을 쉬려 애쓰는 중이다. 마치 수영을 배우는 것처럼. 음-파, 음-파. 조금은, 더 이 숲 속에서 견뎌야 한다. 제멋대로 다뤄지는 헝겊 인형이 되도록 스스로를 놓아둔 자신을 조금 용서하기도 하면서, 음-파. 음-파.




P. S. 1


콜트-콜텍이란 회사가 있습니다. 유명한 기타를 만드는 회사죠. 120대 재벌에 들어갈 만큼 흑자를 내는 우량기업이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외국으로 공장을 옮기고 하루 아침에 공장 문을 닫아 버려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했습니다. 딴지 기사 '콜트콜텍 농성장에 따뜻한 온기를'을 읽어 보시면 잘 아실 수 있습니다.'먹튀 자본'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오게 된 것이죠. 한때 몇십 명이었던 조합원들은 이제 단 4명이 남아 9년째 싸우고 있습니다.

 

부당해고를 인정했던 원심을 파기 환송한 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래에 있을 경영위기에 대비하여 한 해고이므로 정당하다." 아니, 무슨 거북이 등껍질로 점쳐서 판결내리나요? 이 판례가 그대로 내려지면 다들 아시다시피 선례를 참조하는 법적 관행에 따라 앞으로 회사가 마음대로 사원을 해고할 수 있게 됩니다. 화이트칼라, 블루칼라 할 것 없이 말이죠. 그 와중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우량 회사를 강성 노조가 다 망쳤다"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습니다. 노조원들은 면회를 요청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지금 4일째 머무르며 취재하는 중입니다. 열심히 글 써서 여러분께 보여드릴게요. 김무성 의원실에 전화해 취재 때문에 공식적 입장을 밝혀달라고 부탁했더니 나중에 알려달랍니다. 나중에 언제? 안 알려준다는 뜻이죠. 결국 끝장 싸움이라는 마음으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간 58세의 노조원이 40일 넘게 단식하고 병원에 실려갑니다.

 

이후 골다공증을 앓고 있고 14일 민중총궐기 때 경찰에게 떠밀려 늑골 7번에 금이 간 노조원이 단식을 이어받아 7일째를 맞고 있습니다. 네 사람 모두 하나같이, 함께 있어 주는 것만 해도 큰 힘이 된다, 후배 노동자들을 위해 결코 지고 싶지 않다, 함부로 해고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부터 릴레이 단식 농성을 시작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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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취재하면서 제가 하고 있으니 1번을 먹었네요. 2번 주자를 찾습니다. 등수놀이 하실 분 급 신청하세요! 단 하루 단식하며 마음을 함께 해주시면 돼요. 회사 다니시는 분은 셀프 단식하시고 퇴근 후 현장에 와주시면 좋을 것 같고, 지방에 사시는 분은 인증해 주셔도 돼요. 아직 공식 플라이어가 나오지 않았으니 이 글의 댓글에 신청해 주시면 확인해 볼게요. 트위터 @neopsyche112에 신청하셔도 됩니다. 몇 날 며칠에 가겠다, 하는 부킹도 물론 받습니다! 


이번주 금요일에 하시면 저는 붙박이로 있고 검찰이 사랑하는 예술가 이하 작가와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장소는 여의도 새누리당 바로 옆입니다. 동조단식 안 하셔도 잠깐 들러 주시는 것만으로도 이 오래 싸워 온 50대 노동자들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몰라요. 이 싸움은 우리를 위한 싸움이기도 합니다. 이제 영하로 떨어진다는데 비닐 천막에서 노숙 농성인 것도 걱정입니다. 전기가 안되거든요. 난방전문가들 고견을 주시면 좋겠어요. 딴지일보 독자들과 딴게이들을 믿습니다!!!!!



P. S. 2


10월에 책을 하나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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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탓인지 책이 더럽게 안 나가네요. 좀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기사


나는 박복한 년이다




김현진입니다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