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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독자: 이번 글은 이승환씨의 팬이 아닌 분들께 사실상 가장 큰 궁금증일, 그가 어쩌다 사회참여적 발언과 행동을 하게 되었나, 하는 의문을 다룹니다. 이번엔 다행히 짧게 쓴데다 초반 구간을 지나면 평화롭고 서정적이기까지 하니, 읽으면 독자들의 EQ 향상이 기대됩니다.)

 

 

 

노래 잘하는 가수들은 우리 인간종이 새들과 얼마나 비슷한가를 느끼게 해준다. 우리는 가수들의 노래에 얼마나 쉽게 매혹되나. 게다가 전에 말했듯 가수의 성공적인 열창은 예술적 감흥을 넘는 효과를 낸다. 노래만 잘해도 이성을 꼬실 수 있는 것은 물론 도덕적 감화마저 주는 것이다. 

아마 새들도 그럴 것이다. 걔네들도 노래 잘 부르는 다른 새를 보며 가슴이 뭉클하겠지. 그리고 볍씨 하나라도 더 갖다주려고 할 것이다. 

인간처럼 새들에게도 도덕적으로 감화를 주고 받을 능력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새들처럼 나는 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다만 우린 그걸 모르고 있을 뿐. 

 

새들은 도덕적이고 인간은 날 수 있다.

이게 내가 노래잘하는 가수들을 보며 내린 결론이다.
 

그런데 누구에게는 울나라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 중 하나인 이승환이 누구에게는 그렇지 않아서 벌어지는 문제가 지난 번에 말한 일련의 명예훼손행위들이다.(물론 법률용어로서 쓴 거 아님)

 

그는 활동 초기 분명 대중을 사로잡는 보컬이었다. 그러나 그가 방송활동 없이도 앨범을 백만장씩 팔아치우게 해주던 성공요인들을 버린 후 사정은 달라졌다. 그가 팬덤을 넘어 대중을 사로잡는 보컬로 계속 남았다면 그는 공연연출가로서도 송라이터로서도, 심지어 내가 여태까지 관찰한 바로는 예술전문직 중 가장 따기 힘든 자격인 듯한 롹커로서도 더 쉽게 인정받았을지 모른다. 아니 그가 연출가가 아니었다해도 사람들은 그의 공연을 보고 그가 연출했다고 믿고 싶어했을 것이며 그가 쓰지 않은 곡이라 해도 사람들은 몇 소절이라도 그가 쓴 곡이라고 우기고 우리는 방송에서 그가 송라이터로서도 얼마나 뛰어난가를 대중에게 알려주려 노력하는 음악평론가를 만났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래의 도덕적 감화력이고 이건 황우석 박사가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얻어내었던 바이니,  보컬은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노래만으로도 황우석 효과를 낼 수 있으니.


노래 잘하는 자의 힘이란 이토록 대단한 것이고 우리가 이토록 노래를 좋아하는 걸 보면 인간은 분명 새의 한 종류로서 날 수 있는 능력도 어딘가 감춰져 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대중에 비판적인 인간들은 노래잘하는 자의 힘이 이토록 대단한 걸 보면 인간은 분명 새의 한 종류일 것이므로 인간은 새대가리다, 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겠지만. 흠흠... 

 

암튼 일련의 명예훼손 행위 중 하나가 이승환씨의 사회참여의 계기에 관한 억측들이다. "강동모임이 이승환을 바꿔놓은 듯,", "마왕이 승환이형을 깨웠다” 혹은 다른 진영에서 말하는, "김제동의 속삭임으로 이승환이 빨갛게 물들었다"는 설까지... 이 모든 것은, 이승환은 스스로 깨달아서 비판적인 행동을 할 수 없었을 거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가수는, 다른 사람들의 영향 하에 의식화되었을 거라는 결론을 한두 번의 클릭질로 확인해 볼 생각도 없이 믿고 또 전파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선 그가 이런 설을 믿는 사람들을 노래로써 감화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니라면 가창의 황우석효과로 인해 이런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들도 그걸 애써 부정하려 들었을 것이다. 또 하나는 그가 발라드가수로 인식돼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워낙 대중음악에 무지했던 나로서는 이번에야 깨달은 사실이, 락과 발라드 간의 도덕적 예술적 위계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발라드는 대중에게 아부하여 노래를 파는 상업인 반면 락은 독자적인 주장(내지 성질머리)를 표현하는 예술이라서 진실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아님 역사적인 연유에서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음악평론가와 음악사학자 분께 답을 구하고 싶다. 다만 이승환씨가 그들에게 락커로 인식돼 있었다면, 혹은 사회나 세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담고 있던 그의 락넘버가 그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면 그런 설을 망설임없이 제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가지,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공연의 신이나 뛰어난 가수가 아니라 피규어를 수집하는 오타쿠였을 수도 있으므로 이런 자가 정부를 비판할 만한 지식과 의식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의 사회참여에 관한 폄하는 그가 받아온 다른 모든 저평가가 그렇듯이 자연스럽다. 다만 옳지 않을 뿐.  

 

나는 다음에서 우선 위의 타력설(다른 이들로부터 배웠다, 의식화되었다)가 옳지 않음을 간단히 밝히고 이승환씨가 사회참여형 가수된 것은 그의 소년이 MB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려 한다.  

(사회참여란 말이 좀 이상하단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달리 뭐라 할지...)

 

팬질 며칠이냐 사십 몇일 됐을텐데...이젠 팬이었다는 기억을 안고 죽은, 근데 죽지도 못하고 수요일 밤마다 밤을 새는 좀비가 풀어봅니다. 마지막 미스테리, 그의 사회참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 그를 일깨운 건 그 분들이 아님.


강동모임이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2013년과 신해철씨의 사망사고가 있었던 2014년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통해 이 "왕년의 발라드가수"가 의식화세력을 만나기 전에 어떤 사회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는지를 엿보고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하면 될 것 같다.     

 

1.  2009년

공연 ‘차카게살자’수익금 4천3백여 만원을 전액 기부한 게 3월,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에서 “어릴 때 배운 대로 위로가 되어 주는 사람의 도리를 다하려고 이 자리에 섰을 뿐이니 팬들도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던 건 4월, 새만금 록페스티벌은 소신과 맞지 않는다며 출연을 번복해 8백만 원을 물었던 건 6월이었다. 11월의 인터뷰에선 “‘부딪치되 흔들리지 않고, 조용하되 침묵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이승환이 말하길 “그야말로 잔잔한 삶”이었던 2009년의 일부다. (GQ 2009 기사 축약)

 

 

2.  2010년

이승환으로 하여금 상당기간 준법조인으로 살도록 한 법적 분쟁의 경험이 담긴 노래가 10집 수록곡 <단독전쟁>. (추신에 동영상.)

 

좋은 놈이 이기는 게 맞는 거지 그치

나쁜 놈이 끝에 가선 지는 거지 그치

 

 

3.  2012년

그 분 암살을 다룬 영화 <26년>에 최초로 투자. 강동모임의 시발점.

 

 

4.  15년 전으로 돌아가 2001년

한국자선공연의 조상이자 비공식적으로 국내 최장수공연인 <차카게살자>는 공연의 수익금 전액을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기부하는 콘서트로 지금까지 15년째 지속되고 있는데 1회는 2001년에 열렸다. (이 분은 한번 하면 뭐든 참 오래하심.)

참고로 2015년에는 강동모임 다섯명이 함께 <차카게살자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추신에 동영상)

 

 

 

Ⅱ.소년이 MB를 만났을 때

 

1.귀신소동

 

“'애원'의 뮤직비디오는 지하철역에서 오랜 시간 촬영을 했었다. 그 때 귀신으로 보이는 형상이 카메라에 잡힌 거다...얼마 후 영향력 있는 일간지의 사회면에 '일본패션잡지를 오려 합성'이란 기사가 떴다.” (이승환)

 

1997년, 5집 앨범을 더 팔기 위한 노이즈마케팅으로 뮤비를 위한 촬영 필름에 귀신이미지를 합성해 넣었다는 언론의 공격을 받은 이승환씨는 해명을 하려고 기자들을 모아 촬영 원본을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참석하는 기자들은 거의 없었다.

 

언론과 방송에서는 나를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웠고, 난 실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조작이 아니란 걸 아는 기자들도 많았지만 조작이 아니라는 기사는 낼 수 없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의 적극적인 태도때문이었는지 좀 잠잠해지는 듯 했던 언론에서 다시 그 사건을 크게 보도하고 이에 동조하는 여론을 보며 괴로워하던 그는 언론과 대중의 곁을 아예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살짜쿵 사는게 싫어졌어 큰 걱정거리가 생겼거든

나는 양치기 소년 아냐 본 걸 봤다고 했을뿐야

 

귀신소동(1999) 

 

그리고 그는 팬들에게 고하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심하게 아름다운 선율과 중학교 국어책에 나올 법한 가사에 담는다. 

 

머지않아 그대와 헤어지게 될 거요

슬프겠지만 그립겠지만 부디 노여워 마오

가난한 마음이야 위안을 바라지만

우리인연의 끈이 다하니 어찌할 수 없나보오

못된 못된 나를 잊어주기를...제발 제발 눈물로 앓지말기를

어서 어서 나아지길 비오

 

당부(1999) (추신에 동영상)

 

예정대로라면 팬들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주었을 이 노래는 오늘날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노래 중 하나로 남았다. 그가 은퇴하기 전 마지막으로 올린 1999년 <무적> 콘서트를 통해 그는 이 재밌는 일을 자신이 그만둘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재기발랄한 대형 콘서트는 울나라 공연의 신기원이 되고 그는 은퇴 대신 드림팩토리에서의 은둔으로 방향을 튼다.

 

 

2. 1.소년 

이 귀신소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언론기피의 한 원인이 되어 대중가수로서의 커리어를 고난에 처하게 한 이 소동.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정말 드물게 나오는 예능에서마저 그가 자신이 겪어본 가장 억울한 일이었다고 토로하여 대범치 못하고 어른스럽지 못한 그의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심어준 이 소동.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이 해프닝때문에 은퇴를 고려했다거나 언론을 더욱 기피하게 되었다는 스토리를 의아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것은 언론과 대중이 한때 들끓었다가 금방 잊어버리곤 하는, 그가 언급하지 않았다면 다 잊고 또다른 연예인에 대해 벌이고 있었을 그런 해프닝인데... 음반 더 팔아먹으려고 뮤비에 귀신을 넣었다고? 진짜든 아니든 뭐 그럴수도 있지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우린 관심도 없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사소한(!) 일을 십수년간 잊지 못하고 억울해하는 그의 모습에 역시나 그는 철이 없다고 결론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동이 있기 전부터, 그로선 따를 수 없는 관행으로 기자들과 갈등을 빚고 한 피디와의 언쟁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그는 자신이 언론에 밉보였던 게 그 소동의 원인이 아닌가 의심했고 언론은 여기서 그의 피해망상증을 진단해내었을 것이다.  

 

난 이 소동을 어떻게 보나.

언론인이 되면 보드카 몇 잔은 마신 상태가 되는 것을 주변인들을 통해 보아왔고 이 경험을 통해, 큰 힘을 갖는다는 건 가장 돗수 높은 독주를 들이켜는 것이라 추측한다는, 그래서 가장 단기간에 알콜중독자가 되는 길이 언론인, 정치인, 혹은 아마도 유명연예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그리고 권력자와 알코홀릭의 유사성을 전전두엽의 동일부위에 생기는 이상으로 뇌과학자들이 파악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러니 나로서는 언론인에게 진실을 추구하라고 하는 것은 술취한 사람에게 똑바로 걸으라고 하는 것과 같지 않나 싶다는... 그래도 그의 조작여부 검증 초대에 응한 두 명의 기자가 있었던 게 어디냐는 말을 어른스럽게 하고 싶고.

심지어 그가 판 팔아보려고 조작했다며 그를 욕하는 사람들조차 전에 말했듯 그저 자리비운 이웃을 누가 먼저 욕하기에 따라했을 뿐, 그러니 그가 뭉클한 노래 한 곡으로 충분히 덮을 수 있었을 거라는, 그래도 물론 그 루머는 끈질기게 그를 쫓아다녔겠고 이런 루머로 누군간 생업을 버리고 또 누군간 세상을 버리며 우리를 놀래킨다는 걸 알고는 있다는 말을 역시 어른스럽게 하고 싶지만, 

 

다 필요없고, 그에게는 이 문제가 몹시 단순했을 것이다.

 

그로서는 본 걸 봤다고 했을 뿐. 아닌 걸 아니라고 했을 뿐.

그런데 핏발을 세우고 침을 튀기며 그를 욕하던 사람들이 사실은 진실여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그에게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묘하지 어른들의 세계란 건, 알 수 없지...

신문을 봐도 남일이라고만해

 

아이에서 어른으로2(1997)

 

아무도 관심이 없는데 아니라고 떠들어봐야...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자 그는 그런 어른들의 세계에 소속되지 않기로 한다. 스스로 표현했듯 “소년”으로 남기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철없다는 비판에 대해 그는 그렇게 살고 싶다고 대답한다.

 

"아직까지 철이 없고 아직까지 세상 물정 잘 모르고, 현실감각 없고, 특히 뭐 회사를 하고 있지만 콩가루 회사라고 늘 얘기 하듯이 아무것도 몰라요 제가. 그러니까 뭐 그냥 그렇게 계속 살고 싶어요." (2008 ebs스페이스공감)

 

자, 나도 어른스럽게 말하기를 집어치운다면, 돈 더 벌려고 뮤비를 조작했다는 오명을 씻을 수 없는 경우 난 확실히 대중문화계를 떠났을 것이고 그를 철없다 비웃는 사람들 중 상당 수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피해를 받아서 생기는 피해의식은 늘 피해가 없는 피해망상으로 진단된다. 타인에 의하면.

 

그런데 그는 음악과 공연을 떠날 수 없었고 그 세계에 투항할 수도 없어 대신 드림팩토리라는 딴 세상을 만들고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댓가인 고립을 치루면서 어른 세상의 언저리에 남는다. 그는 음악적으로도 드림팩토리 주소로도 주류 속의 비주류가 된다. 

 

참고로 작년인 2014년에도 애원 뮤비에 귀신을 합성해 넣었음을 이승환측(뮤비감독)이 인정했다고 방송에서 주장했다가 항의를 받고 철회하신 음악평론가가 있었던 걸로 안다. 정말 징하긴 징하다.

 

 

2.2.어린왕자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라는 정의가 맞다면 이 뭐, 회사라고 보기도 쫌 그런, 허구와 가상의 세계, 드림팩토리를 경영한 사장님은 그래서 자기 소행성에 거주하는 어린왕자를 자꾸 떠오르게 한다.

 

우리 유전자가 침팬지와 99프로 이상이 일치하듯 이승환은 침팬지 및 어린왕자와 유전자가 그만큼 일치하는 건 아닐까. 물론 그가 침팬지와 많이 다르듯 그는 어린왕자와 크게 다르지만 유전자의 유사도는 그 정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린왕자는 8테라 12테라까진 몰라도 틀림없이 야동을 좋아했을텐데. 어린왕자와 꽃 간의 질펀한 애정행각을 다룬 책도 있는데. 당신이 이걸 읽어내지 못했다면 생 텍쥐베리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인데...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가 '어린왕자'라는 별명을 몹시 싫어하며 그 별명으로 락을 하기는 곤란한 것도 사실이니 이따가, 비록 싱크로율은 좀 떨어지지만 다른 인물로 대체하여 얘기를 풀어보자.     

 

 

3. 어른

 

"어떤 사람들은 쉽게 가면서 더 잘되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양지에 있는 사람이 있으면 음지에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듯이, 나같은 사람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승환 2006매거진t)

 

그가 그의 커리어와 관련해 했던 말인 “이런 사람도 하나쯤은”이 그의 인터뷰에 자주 등장한다. 그것도 여러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팬클럽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팬클럽 없는 아티스트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따로 기획하지 않았다." (2014 블링)

 

정치적인 견해 표명에 대해서도

“전에는 사회 참여를 하던 연예계 친구들도 이제는 대부분 안 해요. 얘기를 들어보면 이해는 돼요. 그래도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한 명쯤은 깃발처럼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2014 한겨레)

 

이건 그 소년,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오길 거부했던 그 소년의 모습이 분명 아니다. 그는 어른들의 세계 한 복판으로 뛰어들어 깃발을 꽂고 아니라고, 적어도 자신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뿐이더라도. 그럼 "그런 것들을 '누군가는 하고 있구나' 동지의식을 느낄 거라고 생각해요." 

 

이 극적인 변화의 계기는 그가 명확히 밝혔듯이 MB의 출마.

허위에 대해 비위가 약하고 기만에 후각이 예민했던 이 소년에게 MB의 출마와 당선은 참을 수 없이 역한 부조리였고  

 

"자신들도 더 잘 살게 될 줄 알고 파렴치한 범법자를 찍어주는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그는 결국 흙탕물과 핏물의 어른 세계로 뛰어들게 된다.

 

그 소년은 평범한 어른이 되고자 이 세계에 뛰어든 게 아니니, 

우선, 저잣거리에서 깃발 꽂고 아니라 외친다고, 사람들의 흥정을 방해한다고 욕을 배불리 얻어 먹을 것이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겐 온 세상이 다 시장이니 그 욕은 다함이 없을 것이고... 하지만

 

“드림팩토리는... 자랑스러운 후회를 하는 곳이죠.”

그는 자랑스러운 후회를 예상하고 있을 지 모르겠다.   

 

 

4. 아이이면서 어른인

 

승환이 형을 보면 애기 같고, 어떨 때는 되게 어른스럽고 조화가 절묘해요. 정말 순수해 보였다가 세상에 대해서 모든 눈을 다 뜬 사람처럼 완숙해 보일 때도 있고. (유희열)

 

여러분이 혹시 그의 인간성 어딘가에 흥미를 느꼈다면 그게 그의 소년인지, 혹은 그의 어른인지?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그가 꽂은 깃발때문이었지만 나로하여금 이렇게까지 팬저널리즘을 개척하도록 한 건 사실 그의 소년이었던 것 같다. 난 나도 모르게 그 철없기로 각오한 소년에게 깊이 공감했던 듯. 그리고 어쩌면 내가 10대에 읽다가 유치하다고 집어던진 <호밀밭의 파수꾼>을 이제는 다시 읽어도 좋겠다고 느꼈달까. 

 

폴로경기를 하는 것처럼 광고하는 사립고에 다니지만 재학 내내 말꼬리도 본 적이 없는, 그리고 세상이 다 이런 식임을 알아버린 소년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체념하고 호밀밭에서 노는 아이들이 절벽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보호해주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세상은 다 그런식이다. 광고했던 폴로경기는 없지만 비싼 학비를 내야하고 귀신소동은 1997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중이다.

홀든 콜필드에 비한다면 이승환 소년은 지나치리만큼 선량하지만 둘이 매우 비슷하기도 했으니. 틱틱대기나 하다가 호밀밭의 베이비시터가 되겠다는 홀든이나, 주류음악을 드림팩토리라는 소행성에서 하고 있는 그나... 유치하고 철부지같고 무엇보다 그게 지속가능한가.

 

그러나 구정물에 목욕하며 비위 상해도 꾸역꾸역 밥먹고 살다 보면 나역시 가끔은 고통스럽고 뭔가를 하고 싶어진다. 이승환 소년처럼 주류에서 고립된 채 살고 싶지도 않고 이승환 어른처럼 저잣거리에서 깃발 꽂고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두렵지만...철없는 소년이 가장 어른스러운 어른이라는 이 우화같은 아이러니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끝으로,

소년 홀든 콜필드는 신경쇠약으로 캘리포니아의 한 요양원에 입원한다. 그리고 어린왕자는 꽃이 사는 소행성으로 귀향하려고 자살한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이들 못지않게 예민한 영혼인 이승환은 지금 박근혜와 김무성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앞치마 두르고 락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더 대단하고,

그의 건투를 빌고 싶어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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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게 남은 그의 미스테리는, 그의 1집 타이틀이 왜 <BC603>인가 등 몇가지가 있는데 이 중 내가 풀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6은 좀 불길한 숫자 아닌가? 666이라던지...그래서 7을 채운다. 

난 에필로그가 될 다음번 글로 민족정론지 딴지의 기사를 사유화(私有化)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팬레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 글이 마음에 안 들었던 자들은 총궐기하여 기사의 공공성을 부르짖으며 공격해주기 바란다. 근데 아무도 욕 안할 거 안다. 안 보고 말겠지. 

 

참고로, 이승환의 팬이 아닌 분들도 문학성에 도취하여 비위 상할 틈이 없을테니 위생봉투는 준비할 필요가 없다. 

 

팬저널리즘에 팬리터러처까지 내가 이승환씨로 인해 개척하는 새로운 문화영역이 꽤 많음. 승환옹 고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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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1. 미스테리 1,2,3편은 딴지에 요청해서 기사삭제를 할 예정입니다. (이미 했는지도 모름.) 1화는 원래 기사화를 원치 않는 글이었고 2,3화는 일회성 퍼포먼스. 4화부터는 기록으로 남기려고 썼기에 남아 있을 겁니다. 7편까지 총 네 편 남겠네요. 

 

2. 환경은 많이 바뀌어 언론인이 보드카 들이켜기도 쉽지 않아졌고 이젠 이승환씨도 언론과 괜찮게 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3. 어린왕자 및 홀든 콜필드와 이승환의 큰 차이점: 이승환씨는 버르장머리가 있는 소년이었음. 

그리고 내가 어린왕자말고 떠오르는 인물이 달리 없어 홀든 콜필드를 들었음. 읽은 소설이 몇 권 없어 미안함.

 

 

4.단독전쟁

 

2012 파업콘서트 단독전쟁. 김진혁피디의 5분 본질직관에 포착된 영상이기도 함.

 

 

5.당부

 

창 파트는 아마도 사람들이 가수에게 제일 기대할만한 것을 충족시켜줌. 

 

 

6.차카게 살자 재단 창립식

 

강동모임이 왜 강동모임인지...&시간있으면 유튜브에서 <내가 젤 차케> 배틀도 찾아보셈.





지난 기사


이승환의 미스터리 4 : 체력의 비밀(이자 거의 모든 것의 비밀)

이승환의 미스터리 5 : 왜 인정받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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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