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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 모두 미국의 정치적이유때문에 계획됐고, 미국인들의 정치적 이유 때문에 지연됐다.

 

냅코의 경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OSS워싱턴 본부와 OSS중국전구의 알력다툼, 그리고 태평양을 반으로 자른 니미츠와 맥아더의 알력다툼  가운데 있었다.

 

(일본을 어떻게 박살낼까 고민하는 와중에 OSS 튀어나와 한반도에 대한 첩보작전을 펼칠테니 수송수단을 지원해 달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일본 본토도 아니고, 한반도에 대한 작전을 위해서핵이 떨어지고, 옥쇄가 난무하고, 가미카제와의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말이다.)

 

냅코가 좌절된 와중 독수리 작전은 그나마 ‘실행 됐다는 것에 위안을 찾아야 할까.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독수리 작전은 실행됐고, 서울에 광복군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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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패망 후 귀국하는 이범석 장군>

 

 

일본이 명시적인 항복선언 직전인 1945 8 11일, OSS국장 도노번은 니미츠를 찾아가 협박한다.

 

지금 우리구역, 남의 구역 따질 때가 아닙니다. 지금 이렇게 맥 놓고 앉아 있으면 소련군이 한반도로 넘어올 것이고, 경우 한반도가 소련 땅이 됩니다. 지금 당장 한반도에 병력을 밀어 넣어야 합니다!”

 

한반도 작전의 걸림돌이었던 전역 관할권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독수리 작전의 애초 목적은 달성할 없게 됐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거다.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겠다는 발표를 거다.

 

 

2.

아니... 우리 훈련한 뭐가 되는 겁니까?”

 

국내 진공작전은요?”

 

일본 놈들이 항복했으니 우린 누구랑 싸우는 겁니까?”

 

여기서 다시 번, 비극(?!) 벌어진다. OSS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전을 결행하기로 했다.

 

애초의 작전 목적은... 그래, 너희들 첩보활동인데, 이제 작전목적이 바뀌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정보 수집, 일본문서 압수, 연합군 포로 구호 송환을 위해 활동한다!”

 

이렇게 해서 광복군 측의 이범석, 김준엽, 장준하, 노능서 4명이 OSS 책임자 버드(Willis Bird) 대령의 지휘 아래 한반도로 출발하게 된다. 그리고 1945 8 18 이들은 서울의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한다.

 

(여의도 공항은 원래경성비행장으로 불렸는데, 1938 1경성비행장, 지금의 김포공항이 건립되면서2 경성비행장으로 개칭된다. 처음에는 민간공항으로 사용하다 1930년대 중반부터는 공항으로 많이 활용되게 됐다. 1934년에는 일본 육군항공대가 1936년에는 항모 카가 소속의 항공대까지 와서 훈련을 정도가 된다.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나서는 중국 군용기의 중간기착지로 활용됐다. 1953년에 국제공항으로 승격했다가 1971 성남시에 공군기지, 그러니까 지금의 서울공항이 만들어지면서 폐쇄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기존 활주로를 그대로 활용해 5.16 광장을 만들었는데, 이게 바로 여의도 광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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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를 사건이 터진다.

 

당시 여의도 비행장을 지키던 일본군이진공군에게 총구를 겨눈 거다.

 

 

3.

, 씨바... 저것들 어째?”

 

아직 본국에서 지시가 내려오지 않아서...  씨바 어쩌지? 쏠까?”

 

쏘면 어떻게 ? 우리 항복한 아냐?”

 

아니, 항복한 같긴 한데...”

 

그럼 쟤들 어쩌지?”

 

“......”

 

야! 네들... 그냥 돌아가라! 원래는 우리가 너희들 죽여야 하는데... 텐노가 항복했다고 하니까...”

 

네들 항복한 아냐? 항복했으면 버리고 들어!”

 

몰라 씨발! 본국으로부터 정식으로 지시가 내려왔어!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

 

일본군들도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싸워 관성 때문에 이들을 위협했던 거다. 결국 이들은 다음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역사적으로독수리 작전이라 불렸던 작전은 이렇게 허무하게 .

 

 

 

4.

냅코 프로젝트가 그랬듯 1945 10 1일, 독수리 작전팀은 공식적으로 해체된다.

 

(10 1일이 안타까운 게 독수리 작전이 공식적으로 소멸한 날에 OSS 해체 됐다는 거다. 발주처가 부도났다고 해야 할까? 작전팀이 해체되고 말고 없이 그냥 프로젝트 자체가 백지로 돌아간 거다.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이 꿈꿨던 OSS 광복군의 공동작전은 물거품 됐다)

 

냅코 프로젝트나 독수리 작전 모두 미국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고, 정치적 이해타산에 의해 휘둘린, 안타까운 군사작전들이다(요즘 쿠르드 족이 미국 대신 들고 뛰어다니는 보면서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OSS 했던 짓을 CIA 이어서 다른 나라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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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100주년을 기점해 광복군 국내진공 작전에 대해 알아봤다. 답답하고 안타까울 것이다. 허나 우리가 기억할 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이런 굴욕과 수모를 모두 감내하면서 싸워왔다는 사실이다. 이용 당하는 줄 알면서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런 수많은 씨앗을 선조들이 뿌려주었기에 지금 우리가 어디 가서,

 

그때 광복군이 서울 하늘에서 공수작전을 펼쳤어야 하는데...”

 

같은 멘트라도 날릴  있다는 걸,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