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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이저 속의 마이너리거 

2. 종합직과 일반직 그리고 화초에서 잡초로

3. 직장의 일그러진 엘리트들

4. 크게 나쁜 일은 혼자서 못한다. 크게 좋은 일처럼. 

 

 

 

1.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가라 데이터 조작 지시) 임원과 일당은 결국 다른 비리가 발각되어 해고당했다.

 

나는 그 전에 팀에서 빠져나와, 아니, 애초에 그런 일을 깜냥이 못되기에, 일어난 징계의 파편을 간신히 피했다. 하지만 그 일은 내게 감정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내상을 입혔다. 스스로 생각보다 의롭지 못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라, 응당 불한당을 보면 누구보다 먼저 심장에 날선 칼을 찔러 넣는 사람인 알았다. 한데 웬걸, 나는 권력자가 하라면 하는 사람, 소위 말해 까라면 까는 인간이었다. 역시 먹고사는 앞에서는 가치관이니 신념이니 어째도 좋은 사람이었다. 사실이 너무나도 뼈아팠다

 

내가 여전히 마음을 쓰는 , 당시 저들의 잘못을 처음 알아차렸을 때, 보다 적극적으로 비리를 폭로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남아서.

 

그랬다면 피해 규모를, 피해자를 줄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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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무렵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당시, 나는 그룹 계열사 언저리에 다니는 여자 대리와 함께 일했는데, 그녀는 우리가 추진하려는 신규 사업 분야에 경력이 있어 급하게 그룹 프로젝트 팀에 합류하게 됐고, 이유 때문에 TF  그녀의 입지와 말에 무게가 실리던 참이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우리가 출시하려는 제품의 위탁 생산업체를 방문하게 됐다. 제품이 예상보다 더디 만들어져 확인차 쫓아갔는데 막상 공장에  제조 공정을 눈으로 보니, 이게 책상머리에 앉아 무조건 재촉해서는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자 연세가 지긋하신 공장장이 나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고 우리한테 죄송하다 했다.  얘기를 들으며 나는 말을 찾지 못해 양손을 마주잡고 비비고 있는데, 그녀가 대뜸 공장장에게 "이보세요. 여기 ㅁㅁ에요. 대기업이라고요. 지금 저희 앞에서 된다는 소리가 나와요?" 라고 했다. 

 

정신이 번쩍 나는 그녀 말을 자르고 들어가 얼른 사태를 수습했다. 

 

"공장장님. 무리한 부탁드려 죄송합니다. 저희도 어떤 회사 앞에서는 을의 위치입니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날짜 던지고 무조건 해오라고 하지요. 공장장님 마음 이해합니다.

 

여자애를 데리고 나와 좋은 말로 타일렀다.

 

"세상에나, 우리가 구글에 다니니, 애플에 다니니, 아니지, 그런데 다닌다고 해도 그러면 되는 거지, 그러는 아니다. 앞으로 어디 가서도 그러지 마라"

 

그러자  얘기를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입을 삐쭉거렸다.

 

그 일을 계기로 나와 그녀는 사사 건건 틀어졌고, 나는 나대로 그녀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 했고 그녀는 그녀대로 나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 했. 일이 그렇게 되자,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박힌 돌이었던 내가 프로젝트 팀에서 쫓겨나고 굴러온 돌인 그녀가 자리에 남았다.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때, 결과를 받아들일 없어 오래 속을 끓였다. 지금은 오히려 나쁜 일 적게 연루되고 진작에 빠질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3.

그녀는 어떤 의미로든 남다른 데가 있었다. 삼십 초반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온갖 보석과 명품을 휘감고 뚜껑이 열리는 벤츠를 몰고 다녔으며, 틈틈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이용해 자신의 부를 과시했다.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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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타워펠리스 사진을 찍어 올리고 "시댁 가는 이라고 해시태그를 다는 것. 그러자 세상물정 모르는 우리 범생들은 그런 그녀의 겉모습에 깜빡 속아 넘어갔다. 그들의 반응에 도취된 그녀는 대한민국 상위 1프로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인듯 행세하며, 언제라도 자신의 대단한 인맥을 이용해 회사 제품 하나 정도 시장에 띄우는 일도 아니라는 식으로 굴었다(사기를 치는 사람 대부분은 확신을 가지고 자신만만하게 행동한다. 그리고 사기를 잘 당하는 사람은 그런 모습을 매우 좋아한다)

 

우리 사람들은 순진하게도 그녀의 휘황찬란하고 뻔한 거짓말에 대부분 속아 넘어갔다. 돈도 많고 능력도 출중한데다 외모도 훌륭한 직원이라니! 계열사 사장은 늘그막에 애첩을 노망난 노인네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의 외모에 반했는지, 능력에 반했는지, 머리 위로 돈다발을 퍼부었다. 그녀가 회사에서 할 수 없는 일은 없었다. 사장이 밀어주는데 누가 대항할 수 있을까. 

 

급기야 뒤, 그녀는 대리에서 팀장까지 특진했다. 이후에 드러났지만 알고 보니 그녀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다. 

 

돈도 능력도 재능도. 

 

 

4.

능력도 재능도 없는 데다 양심마저 없어 남이 버젓이 만들어 놓은 제품을 사다가 라벨 갈이를 해, 자신이 제품을 개발한 척 만들어 팔고 뒤로는 업체를 통해 마진(커미션) 챙겼다. 중간 재료상에게 대금도 갚지 않아, 그쪽 업계에 우리 회사 이미지만 심각하게 망가트렸다. 결국 그녀의 사기 행각은 탄로 났고, 그녀는 사람들한테 인사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이곳에서 쫓겨났다.

 

나중에 그쪽 계열사 사람에게 전말을 들었다. 그녀는 행사 지원 나간다는 명목으로 팀원 5명의 유니폼을 500 원씩 2500 원으로 기안을 올리고 돈까지 챙겼다. 와중에 나는 그녀를 끝까지 의심하고 추궁한 덕에, 그녀에게 우리 회삿돈은 1원짜리 주지 않았지만(삼성을 예로 들면, 삼성전자, 삼성전기 다르듯, 그녀와 나는 소속된 회사가 다르다 계열사는 그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 회사 자체가 없어지고 다른 계열사로 흡수 통합되었다.

 

물론 그녀에게 속지 않고, 추궁하고, 덕분에 리스크를 피해갔다고, 아무도 날 알아주진 않는다. 웬만큼 훌륭한 조직이 아니고서야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일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니까. 뭐, 그건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문제는  팀장과 그녀를 전폭적으로 밀어준 사장 때문에 회사를 열심히 다니고 있던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직장을 잃었다는 데 있다.

 

계열사 사장은 새롭게 나타난 직원에게 어떤 가능성을 봤는지도 모르겠다. 실무적인 걸 모두 잊어버리고 결정만 하는 위치에 가니, 큰 돈을 얘기하고 큰 돈을 벌어올 것 처럼 하는 자신만만하고 능력있어 보이는 직원이, 게다가 외모까지 출중해 마음에 쏙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헌데 그 바보같은 일들을, 사장이 속고 있다는 걸, 팀장이 속이고 있다는 걸, 주위 사람들은 다 몰랐을까. 나는 제법 많은 이들이 알았을 거라 본다. 그리고 외면했을 거라 생각한다.   

 

 

5.

위의 일들을 겪으며 몰라도 되는 세상, 책으로 배워도 되는 세상을 겪었다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그렇지만은 않은 같다. 그 일을 통해 나는 우리 사회 곳곳에 규모와 형태가 다를 수 많은 세월호가 떠있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사람이라도, " 출항하면 됩니다." 했더라면 하는 일들, 사람이라도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역시 자신이 없다.

 

조직 생활이란 걸 제법 오래 하면 알 수 있다. 큰 일은 혼자 없다. 혼자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뿐. 역시, 큰 나쁜 일도 혼자 할 수 없다. 드러나면 혼자 한 것처럼 꼬리를 자를 뿐. 

 

모두가 조금씩 나쁘게 굴어야 정말 나쁜 일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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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이 글을 쓰기 시작하자 많은 사람이 내게 묻는다. 어떻게 많은 일들을 겪고도 그렇게 직장을 오래 다녔느냐고. 결론부터 말하면 살아오는 내내 아무렇지 않은 적은 하루도 없었다. 그저 아무렇지 않게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시간은 나 혼자 만들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준 기록이다. 내가 아플 상사가 이해해 줬고, 내가 슬플 때, 동료들이 기다려줬기에 가능한 시간이다. 해서 나는 확실하게 말할 있다. 

 

조직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역량과 재능을 떠나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다. 조직에서 일을 못하는 사람은 제 아무리 뛰어난 실력자라 해도,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이다. 

 

 

 

 


 

 

 

필자 주

 

http://www.podbbang.com/ch/1770326

 

안녕하세요. 산만언니입니다. 저는 오랜세월 불행에 대해 다르게 고민했고우연히 세상밖으로 나왔는데, 말로 있는 글로 하지 못해 <삼풍 생존자가 말합니다>라는 지난 연재글의 연장 선상에서 팟캐스트를 시작했습니다주변에 독특한 캐릭터성을 가진 친구들을 섭외해 녹음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패널들 모두 평범한 직장인이다보니내용에 대한 전문성도 떨어지고, 밝은(?) 목소리 탓에 더러 ' 본의' 오해 받곤 하지만나름 이를통해 성장하고 싶고전에 제가 글을 올리며 독자분들께 받았던 진심어린 위로와 감동에 보답하고자 기획한 팟캐스트니까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들어봐 주세요나름의 컨텐츠들이 전부 감동과 재미가 있습니다!

 

질문있으시면 molaseo99@gmail.com 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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